근대 사회로 진입을 시도하면서 서양의 근대 문물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다. 그 중 전등은 고종의 필요에 의해 빠르게 도입되면서 서울의 경관을 근대적으로 이행시켰다. 전등으로 인한 야간경관은 도시의 시공간적 변화를 모두 지니는 경관으로 근대도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 연구는 서울 최초의 근대적 야간경관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고자 했다. 한국에서 전등이 가장 먼저 설치된 곳은 1887년 경복궁의 건청궁이었다. 하지만 고종이라는 특정 인물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일면 중세적인 성격을 지닌 경관이라 할 수 있다. 궁궐에서만 사용되었던 전등이 민간인에게까지 전파된 데에는 전차 부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전차는 부국강병의 지표이자 개화된 사회의 상징이었다. 전차의 이용객이 늘어나게 되면서 운행시간은 22시까지 연장되었다. 이때 전차의 야간운행은 1900년 종로 보신각에 가로등을 설치하는 계기가 된다. 종로 가로등은 민간이 볼 수 는 최초의 근대적 야간경관이다. 종로 야간경관은 일반 백성들이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당시 백성의 상권을 위하여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근대적 야간경관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기존 '한국 근대불교' 연구에서 사용하는 '근대' 및 '근대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나름의 대답을 마련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한국근대불교/학' 연구 담론에서 그동안 본격적인 논의가 없었던 '근대'와 '근대성'의 특징들을 서구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해명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적 조건에서의 '근대'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적 조건에서 과연 '근대' 혹은 '근대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이러한 검토를 기반으로 하여, 기존의 '한국근대불교'에 대한 연구들이 '근대'에 대하여 언급해 온 부분을 비판적으로 검토 및 계승함으로써, '한국근대불교'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근대'와 관련하여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전제가 무엇인지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 논문은 근대 민족국가 형성과 민족 공용어의 창출의 상관성을 염두에 두고 식민지기 버마에서 버마어가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환경 하에서 어떻게 공용어의 지위를 획득해나갔는지에 대해 주로 버마어 산문의 대중화라는 각도에서 분석한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연구가 시사하는 것처럼 근대적 인쇄매체의 출현과 더불어 근대 버마어의 등장 및 대중화는 버마의 근대적 민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영국-버마 전쟁 종결 후,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 변화와 함께 인쇄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버마어는 대중매체에서 공용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해갔다. 식민시기에 버마 내 여러 지역에 어학원이 설립되었고 버마인이 어학교육 담당자로 고용되었다. 1930년대 초반에 근대 버마어 산문이 많은 저자들에 의해 집필되었으며,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독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는 호황을 누렸다. 일본군 점령 후에는 일본군 당국의 허가 하에 버마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공식적 언어로서 인정되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근대 버마어는 1947년 헌법에 버마의 공식 언어로 명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 논문에서는 버마어가 식민지기에 표준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고 그 버마어로 작성된 근대 버마어 산문의 사용이 버마의 민족 형성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한국근대미술은 유화 도입기인 1910년대를 한국미술사의 중요한 시작점이다. 1910년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유화 도입배경과 그것이 당시 사회의 절실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는지,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규명하는 것이 한국근대미술 초기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일본근대 유화의 역사는 국수주의와 서구주의 물결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점차 일본화된 소재의 등장과 일본정서에 부합하는 화풍을 만들어 나가게 되는 것이 1890년대부터 1910때까지의 일본근대 유화계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를 다시 요약하면 외광파와 인상파가 절충된 양식에 일본의 메이지낭만주의에 부합하는 소재 즉 일본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풍경에 대한 애착 등이 전체 유화의 기류로 나타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새로운 문화의 하나였던 유화는 점차 세계의 다양한 미술사조 속에서 일본화다운 것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던 일본근대 유화양식과 구로다의 외광파 양식, 또 외광파가 일본 근대유화의 주류로 형성하게 되는 계기, 여기에 프랑스에서 직접 배워 온 작가들에 의한 인상파 도입 그리고 일본 '메이지낭만주의'(明治浪漫主義)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환경구조의 변화 속에서 양성된 그들의 절충양식의 초기유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근대미술은 '민족적 자부심'과 '민족적 열등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사회적 배경논리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근대미술의 사상적 배경에는 민족 개량주의적 발상과 계몽주의적 문화 활동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는 미술자체를 근대사회 발전의 연장선 속에서 파악하지 못했고, 따라서 미술자체를 새로운 문명수입이라는 근대적 풍물 정도로만 파악했던 것이 어쩔 수 없는 근대미술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미술을 주목한 이유는 근대적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로 미술자체를 파악하고 나아가, 식산흥업(殖産興業)의 수단으로 인식 했던 신지식층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명의 발달이 미술의 발달에서 연원한다는 '미술문명론' 같은 시각이 미술자체가 성격이나 창작의 방향과는 무관하게 어떤 미술이든 그것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근대 즉 문명화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근대미술에 있어서 아카데미즘 역시 일본근대미술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초기유학생들은 그 당시 일본의 잡지나 화단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시안들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정도였을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한국근대미술에 있어서 초기유학생들의 작품과 그 이후 선전에서 입선하는 작품들은 일본아카데미즘의 영향 밑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 근대 유화에서 형성된 외광파의 요소와 인상파 요소들이 일본 낭만주의로 표면화된 하나의 일본근대 유화의 형식 그대로가 한국아카데미즘의 성격을 결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1922년에 시작된 선전은 심사위원 대부분이 동경미술학교 교수이면서 구로다의 제자이거나 동료였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더욱 확고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유학생들이 남긴 작품들은 완전한 인상파에 대한 지식이나 깊은 자아의식을 가지고 제작된 것은 아니라, 일본 동경미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던 것들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그림은 구로다의 외광파라고 부르는 것들의 영향보다는, 인상파를 보고 배웠던 동경미술학교 교수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은 그대로 한국 근대미술의 아카데미즘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은 단순히 자연 자체라기보다 사회적 구성물이다. 따라서 물에 관한 연구는 자연/사회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근대 과학적 접근에서 '사회적 자연'으로 이해하는 구성주의적 및 정치생태학적 접근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특히 도시의 물은 자연적 순환과는 다른 인위적 생산-유통-소비-배출-처리 과정, 즉 사회적 순환과정을 통해 흐른다. 도시에서 물의 사회적 순환체계는 도시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발전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자연의 사회적 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도시 물의 사회적 순환을 개념화하고, 대구시를 사례로 물의 사회적 순환체계의 발달, 즉 물의 근대화 과정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대구시의 물의 근대화 과정에 따른 사회적 순환체계의 발달은 4 단계, 물의 근대화 도입 시기, 물의 본격적 근대화 시기, 물의 성찰적 근대화 시기, 물의 신자유주의화 시기로 구분된다. 이러한 대구시 물의 사회적 순환체계의 발달은 도시의 공간적 팽창과 도시적 생활양식을 뒷받침하면서 도시 인구의 증가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현재 대구의 물의 사회적 순환체계는 취수장 이전, 정수시설의 과잉, 수돗물에 대한 불신, 물 이용의 불평등, 물 요금의 현실화, 도시 내 공단 폐수, 물 환경의 창조적 파괴, 물의 민영화 등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본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전개된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CSH)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주택의 개념이 미국화되어 가는 과정을 파악하고 그 건축적 특징을 제시하고자 한다. CSH 프로그램은 미국식 근대주택의 개념이 설정되어 가는 과정에서 선도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동시에 실행과정의 한계때문에 공공사업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소규모의 실험적 프로젝트로 한정되었다. CSH프로그램의 실행단계에서 가장 큰 난제는 주택시장의 유통과정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가격경쟁력을 잃어버린 점이다. 하지만, 유럽의 근대건축을 수용하고 발전시켜 미국식 실용주의에 근거한 독자적인 건축양식으로, 그리고 미국 근대건축의 원형(prototype)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했다는 측면에서 CSH 프로그램의 중요성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CSH 주택들은 유럽 근대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한 미국식 근대주택의 개념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다.
본 연구는 거문도를 사례로 근대화 과정에 대하여 사회구조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먼저 근대화 이전 거문도의 사회구조는 하나의 마을을 기본적인 공간단위로 하는 공동체 의례와 조직에 기초한 전통적인 사회로 각 마을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이고 병렬적인 공간구조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일본인의 이주라는 일제에 의한 강제된 근대화로 기존의 마을과는 별개로 형성되는 집단거주공간을 중심으로 근대화가 이식되고 확산되었다. 그 과정에서 개별 거주지 간 의 연계성이 강화되면서 공동체 의례뿐만 아니라 새로운 근대적 사회조직의 출현과 그 성격도 변화하였다. 그 후 근대화 토착화기에는 선진어업기술 및 유통체계의 근대화에 따른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로의 전환으로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근대적 규범이 정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관변조직 뿐만 아니라 각종 자생적 자치조직까지도 식민지 수탈정책을 보조하는 근대화에 역행하는 조직으로 전락하였다. 공간구조는 공동체의 영역 및 구성원의 외연적 확대로 마을 간의 연계성이 강화된 위계적인 구조로 재생산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강제된 근대화'라는 한계성으로 기존의 자율적이고 자생적 조직의 해체에 따른 지역공동체 의식의 붕괴라는 부작용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일반적으로 근대 디자인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시기의 유럽은 프랑스 혁명과 한업혁명을 거치면서 성장한 부르주와 계층이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며 과거 봉건적 전퉁사회와는 전혀 다른 근대사회를 성립해가고 있었다 새롭게 사회의 주역으로 부상한 부르주아 계층은 그들만의 고유한 새로운 미학을 확립하고자 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근대 디자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지난 150여 년간의 디자인의 역사를 근대 프로젝트로서의 디자인 혹은 모던 디자인 프로젝트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초기 근대 디자인 이념의 형성과정에서부터 최근의 탈근대 논의에 이르기까지의 디자인 역사를 모던 디자인 프로젝트의 형성과 변질,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과 재평가라는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이ㅓ한 논의가 현재 진행중인 탈근대로의 급격한 전환과정을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근대에 의한 현대 체제 일반과 그를 극복하려는 탈근대 담론 안에서 왜 로컬 혹은 로컬리티가 필연적으로 인간 삶의 존재론적 '사이'의 문제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지를 철학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근대와 탈근대의 논의 과정에서 제기된 수많은 문제들 중 인간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인간 삶의 질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2). 또한 이 과정에서 로컬 혹은 로컬리티는 인간 삶의 질과 어떤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로컬 안에서만 비로소 인간은 다양한 질감의 흔적과 주름들이 뒤엉켜 시간과 장소를 의미화시켜 나가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체들은 상호주관적 관계망을 통해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3). 이럴 때 로컬 혹은 로컬리티는 참된 인간적 사회적 삶이 가능한 장소, 즉 존재론적 '사이'로서 로컬리티 인문학의 가능성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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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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