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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어의 장포자충(Thelohanellus kitauei)증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기초적 연구 II. 물리화학적 요인이 장포자충 포자에 미치는 영향 (Prophylactic and therapeutic studies on intestinal giant-cystic disease of the Israel carp caused by Thelophanellus kitauei II. Effects of physical and chemical factors on T. kitauei spores in vitro)

  • 이재구;김종오;박배근
    • Parasites, Hosts and Dise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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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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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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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
  • 장포자충(Thelohanellus kitauei) 포자의 극사탈출 여부를 생사 각정 기준으로 하여 물리 화학적 요인이 포자의 활성 및 생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관찰하였다. 신선 포자를 0.45% 및 0.9% 생리식염수와 증류수에 현학시켜 $5^{\circ}C$ 또는 $28^{\circ}C$에 단기간 보존하면 3일까지, Tyrode액에 철 탁시켜 $-70^{\circ}C$에 단기간 냉동 보존하면 8일까지 극사탈출률이 상승하였다. 신선 포자를 0,45%생리 식염수에 현탁시켜 $5^{\circ}C$에 장기간 보존하면 1,270일간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증류수에 현탁시켜 $28^{\circ}C$에 보존하면 152일간 밖에 생존하지 않으나, Tyrode액에 현탁시켜 $-70^{\circ}C$에 법통 보존하면 750일 후에도 냉동 초기와 거의 같은 패턴으로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신선 효 자를 Tyrode액에 현탁, 냉동시킨 다음 $5^{\circ}C$의 조건 하에서 해동시킬 때 포자의 극사설출률이 가잔 높았다. 냉동 후 해동 포자에 열을 가하면 냉동기간이 길수록 극사탈출률이 약간 높아지는 경향이었으며 180일간 냉동례에 있어서 포자가 전부 사멸하는 한계점은 대체적으로 $60^{\circ}C$ 78.5시간, $70^{\circ}C$ 23.4시 간, $80^{\circ}C$ 189.1분 또는 $90^{\circ}C$ 10.5분이었다. 냉동 포자의 해동 후 사멸에 요하는 대체적인 기간도 냉동기간이 길수록 길며, 그 한계점은 20일간 냉동시 17.4일, 100일간 냉동 시 33.2일, 400일간 냉동시 37.8일이었다. 냉동 포자를 해동 후 자연건조시키면 냉동시간이 길수록 포자의 사멸에 요 하는 대체적인 기간도 길며, 그 한계점은 540일간 냉동시 23.5일, 160일간 냉동시 21.0일, 20일간 냉동시 14.4일이었다. 한편, 냉동 후 해동 포자에 l0W 자외선등을 조사하면 냉동시간이 길수록 빨리 사멸하며, 그 한계점은 100일간 냉동시 26.0시간, 300일간 냉동시 21.9시간, 540일간 냉동시 13.9시간이었다. 각종 소독제(1,000 ppm)가 200일간 냉동 후 해동 포자를 사멸시키는데 필요한 시 간은 산화칼슘 5.2분, 과망간뜬칼륨 10.4분, 말라카이트그린 27.8분, 포르말린 14.3시간의 순이었다. 그리고, 각종 항원충 및 둔진균제 중에서 ketoconazole, metronidazole, dapsone의 순으로 일시적인 극사탈출 억제 효과가 인정되었다. 이상의 실험 결과로 미루어 보아 장포자충증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시점에 있어서 양어장의 바닥을 콘크리트로 축달하여 완전 건조시킨 다음 산화칼슘을 철포하고 태양광선을 수일 간에 걸쳐 조사시키는 방법 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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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CT 검사에서 매개변수 입력오류에 따른 표준섭취계수 평가 (The Evaluation of SUV Variations According to the Errors of Entering Parameters in the PET-CT Examinations)

  • 김지아;홍건철;이혁;최성욱
    • 핵의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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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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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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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PET/CT검사에서 표준섭취계수(standardized uptake value, SUV)는 병소의 악성 여부를 판별하는 지표로서 인체내 각 장기의 생리적인 변화에 대한 정량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그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개변수를 올바르게 입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그 매개변수 중 방사능량, 체중, 방사성 동위원소 섭취시간의 입력오류에 따른 결과의 차이를 측정하여 수용 가능한 결과의 오차범위를 평가하고자 한다. 1994 NEMA 모형 내부에 열소, 테프론, 그리고 공기 3개의 삽입물을 위치시켰다. 총 27.3 MBq의 $^{18}F$를 열소와 배후 방사능 비율이 4:1로 되도록 채우고 GE Discovery STE 16(GE Healthcare, Milwaukee, USA)로 촬영하였다. 촬영 후 입력된 방사능량, 체중, 섭취 시간의 값을 기준 값에서 ${\pm}5%$, 10%, 15%, 30%, 50% 만큼 오차를 발생시킨 후 영상을 다시 재구성하였다. 재구성된 영상에서 각 삽입물 부위에 한 개, 배후방사능 부위에 총 네 개의 관심영역을 그린 후 $SUV_{mean}$과 백분율오차를 측정하여 비교 평가하였다. 기준 영상의 열소, 테프론 그리고 공기와 배후방사능에서의 $SUV_{mean}$은 각각 4.5, 0.02, 0.1 그리고 1.0이였다. 방사능량 오차 변화에 따른 $SUV_{mean}$의 최대값과 최소값은 열소에서 9.0, 3.0, 테프론에서 0.04, 0.01, 공기에서 0.3, 0.1, 배후 방사능에서 2.0, 0.6로 변화된 값을 보였다. 이 때 백분율오차는 모두 동일하게 최대 100%에서 최소 -33%로 나타났다. 체중 오차 변화의 경우 열소에서 2.2, 6.7, 테프론에서 0.01, 0.03, 공기에서 0.09. 0.28, 배후방사능에서 0.5, 1.5로 변화된 값을 보였다. 이 때 백분율오차는 테프론의 최소 -50%, 최대 52%를 제외하고 모두 최소 -50%에서 최대 50% 로 동일하게 나타났다. 섭취시간 오차의 경우 열소에서 3.8, 5.3, 테프론에서 0.01, 0.02, 공기에서 0.1, 0.2, 배후방사능에서 0.8에서 1.2로 변화된 값을 보였다. 백분율오차는 열소와 배후방사능은 최소 -14%에서 최대 17%로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테프론의 경우 최소 -11%에서 최대 21%, 공기의 경우 최소 -12%에서 최대 20%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수용 가능한 오차의 범위를 5%로 설정할 경우, 본 실험 결과에서 방사능량과 체중의 오차가 ${\pm}5%$ 이내 일 때 $SUV_{mean}$의 오차가 5% 범위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결과들을 고려해 볼 때 검사장비에 입력되는 방사능량과 체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선량검량계와 체중계의 검교정은 오차범위 5% 이내로 이루어져야 한다. 섭취 시간의 경우 삽입물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오차 범위를 보였으며 열소와 배후방사능에서 오차가 ${\pm}15%$ 이내일 때 $SUV_{mean}$에 5% 내의 오차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검사 시 촬영용 스캐너를 포함하여 두 개 이상의 시계를 사용할 경우 각각의 시간 오차들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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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 서병오(1862-1936)의 1889년작 난죽석도 연구 (A Study on the 1889 'Nanjukseok' (Orchid, Bamboo and Rock) Paintings of Seo Byeong-o)

  • 최경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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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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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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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서병오(徐丙五, 1862-1936)는 서구적 '미술' 개념의 도입으로 일본화 내지 서양화로 기울던 일제강점기 시서화일치의 대구 문인화단이 형성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1879년 이하응(李昰應, 1820-1898)과의 만남을 계기로 서화계에 입문하였으나, 문인화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부터이다. 그의 예술세계는 세 시기로 구분되며, 학습기인 1879년부터 1897년까지는 관직 진출을 목표로 하였던 때문인지 중국 화보를 임모하거나 이하응의 영향 아래 사군자화를 여가에 그리는 정도였다. 발전기는 1898년부터 1920년까지로 그는 애국계몽운동 등 사회적 지도자로 활동하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삶의 방향을 문인화가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중국 여행에서 다시 만난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의 운미란과 포화(蒲華, 1830-1911)의 묵죽법을 근간으로 새로운 화풍을 적극 모색함과 동시에 산수, 화훼, 기명절지 등의 화목도 다루었다. 완숙기인 1921년부터 1936년까지는 대구와 한양을 오가며 근대 한국 화단의 서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며, 묵란과 묵죽에서 윤묵의 호방한 필법을 특징으로 하는 개성적 화풍을 완성하였다. 특히 학습기의 경우 관련 기록이나 현전작품이 드물어 서병오의 창작활동이나 화풍 등에 관한 것은 추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본고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한 서병오의 1889년작 난석죽도 11점은 학습기의 화풍 연원이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889년작 난죽석도 가운데 묵란도는, 이하응이 1882년 7월 청군에 의해 체포되기 이전에 그린 초기 군란도와 석란도에서 영향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묵죽도는 한양에 널리 알려진 양주화파 정섭(鄭燮, 1693-1765)과 김정희의 제자 허련(許鍊, 1809-1892)의 화법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하응의 석란도 형식을 응용하여 변화를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괴석도의 경우 직접적인 관련성은 찾지 못하였으나, 19세기 후반 청나라의 괴석화가 주당(周棠, 1806-1876)과 여항화가 정학교(丁學敎, 1832-1914) 등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서병오의 1889년작 난죽석도는 학습기에 그려진 것으로 운현궁을 찾았던 허련과 정학교 같은 동시기 화가들이나, 한양에 작품이 유입되었던 정섭과 주당 등의 중국 작품을 실견하며 이들의 화풍을 수용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경우궁도(景祐宮圖)'에 관한 연구 (Study on the Painting of Gyeongwoo-gung Shrine (景祐宮圖))

  • 김경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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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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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6-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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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시대 종묘(宗廟)에 모실 수 없는 왕의 사친, 등극하지 못한 세자와 같은 왕족의 신위를 모신 공간, 사묘(私廟)는 왕명에 의해 건립되고 관리되었다. 또한 사묘의 영건은 각 의궤(儀軌)에 담겼고 이와 함께 왕실사묘의 평면배치도 등이 남겨졌다. 정조의 후궁으로 순조(純祖)를 생산한 수빈박씨(綬嬪朴氏)의 신위를 모신 경우궁의 영건기록인 1824년 "현사궁별묘영건도감의궤(顯思宮別廟營建都監儀軌)"가 현존하기에 그간 소개된 바도 없고 연대조차도 알 수 없었던 <경우궁도(景祐宮圖)>의 제작 연대, 사용재료 및 장황(粧潢)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즉 <경우궁도>는 1822년에 타계한 수빈박씨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궁내에 설치했던 혼전(魂殿)을 폐하고 궁밖에 별도로 마련한 터에 왕명에 의해 1824년 현사궁별묘를 영건하면서 영건도감(營建都監)에서 제작한 <현사궁별묘전도>인 것으로 확인된다. 영건도감에서 <경우궁도>의 제작이 이루어졌을 것이기에 의궤에 제시된 화원(畵員)들이 주목되지만 이들의 현존작이 없어 화풍을 비교할 수 없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경우궁도>는 <동궐도(東闕圖)>에서 볼 수 있는 완벽한 평행사선구도로 일목요연하게 많은 전각 등을 묘사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양식적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주지하듯 건축물을 다룬 그림들은 해당 건축그림 제작 의도에 맞게 시점을 택해 그리거나 아니면 다시점을 이용해 그리게 된다. 우리 회화에서 건축물을 다룬 그림은 일찍부터 평행사선구도, 정면부감시 또는 다시점 등을 적절히 활용하여 제작되었다. 18세기에 이르면 평행사선구도로 정확하게 그리면서도 회화성도 높은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19세기 전반기에 이와 같은 현상이 최고로 발전한 듯 <동궐도>가 등장한다. <경우궁도> 또한 완성된 평행사선구도로 200칸 가까운 많은 전각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치밀하게 표현하고 있어 <동궐도>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건축그림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수지법, 옥우법, 지면의 표면질감 표현 등 구체적 화법의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다만 사당공간 중 가장 중요한 정당권역만은 의궤도설 '정당이하제처(正堂以下諸處)'라는 평면배치도와 그대로 일치하여 평행사선구도를 버리고 정면부감시 및 사방전도식묘법으로 표현된 점은 <경우궁도>만이 갖는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다. 동시대 영건과 관계된 그림은 아닌 개인의 거주지를 표현한 그림에 이와 같이 시점을 각각 달리하여 표현한 예가 있기도 하여 사당공간을 그린 그림만이 가지는 특성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한편 왼편 하단으로 향하는 평행사선구도를 택해 그릴 경우 화면 왼편 상단과 오른편 하단은 비게 된다. 경우궁도가 이에 부합되는 화면을 보여주는데 반해 동궐도는 다양한 나무 등을 채워 빈 여백 없는 완벽한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현상은 두 작품의 장황의 현황과도 일치하는데 지본 낱장으로 완성된 경우궁도는 화첩으로 표제까지 달아 완성된 동궐도와는 완성도의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마치 동궐도가 그 묘사의 사실성, 기록성을 넘어 감상의 목적까지도 고려하여 작품제작 및 장황까지 마친 것이었다면 경우궁도는 영건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겨 그리는 기록이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서울시 가로수 역사와 수목 고찰 (A Study on the History and Species of Street Trees in Seoul)

  • 송석호;김민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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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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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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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서울시 가로수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수종 선정을 위한 기초연구로써 고문헌에 기록된 가로수 역사와 수종을 고찰하였다. 또한 다양한 수종 대안을 위해 전통조경수목을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가로수 역사는 고구려 양원왕(陽原王) 2년(546), 고려 명종 27년(1197) 등에 가로수로 추정되는 기록이 남아있으나 사료적 명료성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조선 초 세종 23년(1441)에는 국가의 역로(驛路)에 표목(標木)으로 가로수를 심은 것이 확인되며, 표목으로 식재된 가로수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가 확인된다. 조선 초 가로수제도의 시행은 단종 1년(1453) 기록으로 알 수 있으며 큰길 좌우로 소나무, 잣나무, 배나무, 밤나무, 회화나무, 버드나무 등이 식재되었고, 세조 5년(1459)에는 길가에 뽕나무를 심었다. 영조 연간에 그려진 정선의 『압구정』이나 『진헌마정색도』에는 가로수가 열식되어 있으며 이는 왕들의 행차, 한양 출입의 주요 도로, 마장(馬場)의 장소성, 수해에 따른 도로 보호와 표식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고찰되었다. 정조 연간에는 왕의 능 행차에 연관되어 소나무, 전나무, 버드나무 등의 가로수를 열식한 사례가 두드러지며, 이는 왕이 지나는 연도(輦道)와 해당 능역을 성역화하려는 가로수 식재기법으로 보았다. 개항 이후 고종 32년(1895)에는 국가에서 도로 좌우에 가로수를 심을 것을 장려하였고, 근대적 가로수 식재개념이 도입되었다. 당시 한양의 가로수는 사시나무가 속성수로써 주요하게 식재되었다. 서울시 가로수로 활용 가능한 고문헌 출현 교목은 삼국시대 17분류군, 고려시대 31분류군, 조선시대 55분류군이 추출되었으며, 16분류군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모두에서 중복적으로 3회 출현한 수목으로 역사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외래수종이 유입되고 법제가 변화하면서 가로수제도의 현대적 수용이 이루어졌다. 1936년 경성부 권역의 확대에 따른 가로수 6개년 식수계획(1934-1940)이 시행될 당시 경성의 10대 가로수 수종은 '모니리페라'로 불린 현재 미루나무의 아종, 이태리포플러, 사시나무, 은백양 등의 포플러류가 1~4순위로 가장 많이 식재되었으며 수양버들, 아까시나무, 버즘나무,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네군도단풍이 5~10순위로 나타났다. 1930년대 중후반부터 버즘나무와 양버즘나무가 새로운 가로수로 소개되며 대규모 식재되기 시작하였고, 1942년부터는 피마잠의 장점이 있는 가죽나무를 가로수로 권장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1957년 가로수 수종은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이태리포플러, 가죽나무, 미루나무, 수양버들 순으로 나타나 일제강점기 수종들의 순위변화를 보였으며, 양버즘나무와 은행나무의 비중이 높은 점에서 당시의 식재 경향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사 미쓰요시(土佐光芳) 필(筆) <무라사키노 자일 놀이(紫野子日遊圖)·오이강 유람도 병풍(大井川遊覽圖屛風)> 시론 (Tosa Mitsuyoshi's Screen Paintings Gathering on the Year's First "Day of the Rat" and Boating on the Oi River from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정미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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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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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6-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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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라사키노 자일 놀이(紫野子日遊圖)·오이강 유람도 병풍(大井川遊覽圖屛風)>(이하 국박본으로 지칭)은 일본 교토 궁정의 화사(畫事)를 전담한 직책인 에도코로아즈카리(繪所預)였던 도사 미쓰요시(土佐光芳, 1700~1772)의 묵서와 인장을 지닌 김병풍(金屛風) 한 쌍이다. 이 병풍은 국립중앙박물관이 2018년 미국 뉴욕에서 구입한 것으로, 판매자에 따르면 20세기 초 어느 시점에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왔으나 그 자세한 시점은 불명이라고 한다. 여섯 면의 두 폭 한 쌍으로 이루어진 이 병풍은 오른쪽 병풍에 새해 정월 자일(子日)에 야외로 나가 어린 소나무 묘목을 채집하는 궁중 행사인 '자일 놀이(子日遊)'의 장면을, 왼쪽 병풍에 교토 오이강(大井川)에 한시(漢詩), 와카(和歌), 관현(管弦)을 의미하는 세 척의 배를 띄워 유람했다는 '세 척의 배(三船の才)' 고사 장면을 그렸다. 이 작품은 훗코야마토에(復古やまと繪) 장르를 대표하는 화가인 우키타 잇케이(浮田一蕙, 1795~1859)가 고메이 천황(孝明天皇, 1831~1867)의 명으로 제작한 교토 센뉴사(泉涌寺) 소장 <무라사키노 자일 놀이(紫野子日遊圖)·오이강 유람도 병풍(大井川遊覽圖屛風)>(이하 센뉴사본으로 지칭)과 화제와 도상이 일치한다. 단독 작품으로 제작된 사례는 다수 찾을 수 있는 '자일 놀이'와 '오이강 유람' 화제가 서로 짝을 이루어 한 작품으로 제작된 작례는 현재까지 국박본과 센뉴사본뿐이다. 부케덴소(武家傳奏) 히로하시 가네타네(廣橋兼胤, 1715~1781)의 일기인 『히로하시가네타네코부고요닛키(廣橋兼胤公武御用日記)』에 따르면 1760년, 미쓰요시는 1709년(보영도(寶永度))에 건축된 교토 고쇼(御所)의 전각인 쓰네고텐(常御殿) 내부의 낡은 후스마에(襖繪)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임무를 맡았다. 미쓰요시는 이때 국박본의 주제와 도상을 구상할 기본 자료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쓰네고텐 내부에는 가노파 화가가 그린 '봄날의 야외 행차(春日野行幸)'와 '오이강을 떠다니는 세 척의 배(大井川逍遙三艘)'라는 화제의 후스마에가 연속되어 배치되어 있었다. 미쓰요시는 1760년 쓰네고텐 후스마에 교체 작업을 통해 '오이강 유람' 화제의 도상을 학습하고 '자일 놀이'와 '오이강 유람' 화제를 서로 짝을 지어 한 쌍의 병풍으로 제작한다는 구상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새해 정월 첫 자일에 어린 소나무를 채집하는 행위는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길상적인 의미를 가진다. 오이강에 각각 한시, 와카, 관현을 의미하는 세 척의 배를 띄워 유람했다는 '세 척의 배' 고사는 교토 궁정의 필수 교양인 한시, 와카, 관현의 삼재에 모두 능통한 인재를 뜻한다. 이처럼 길한 주제의 병풍이 소용되는 자리로는 천황의 즉위식을 제일 먼저 고려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교토 궁정 관련 화사를 전담했던 도사 미쓰요시가 천황 즉위식이나 연중행사 등 궁정 의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국박본을 제작했을 가능성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두경부암 환자 방사선 치료 시 BinkieRTTM(구강용 고정장치)에 대한 유용성 평가 (Evaluating the usefulness of BinkieRTTM (oral positioning stent) for Head and Neck Radiotherapy)

  • 이경진;손상준;임경달;김찬용;이제희
    • 대한방사선치료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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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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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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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목 적: 본원에서 방사선치료를 받는 두경부암 환자들에게 적용하기 위하여 도입한 구강용 고정장치 BinkieRTTM의 구강 내 재현성을 평가하고 기존 고정장치와의 재질과 선량 비교를 통해 그 유용성을 평가하고자 한다. 대상 및 방법: BinkieRTTM를 사용하여 치료한 두경부암 환자 24명을 대상으로 혀 재현성 평가를 위해 치료계획용 CT와 치료 중 3일 간격으로 촬영된 CBCT영상에 혀를 그린 후 DSC와 중심축 이동값을 분석하였다. 또한 BinkieRTTM를 사용하는 경우와 다른 종류의 구강 고정장치(mouth piece, paraffin wax)를 사용했을 때 선량 분포측면에서 혀에 조사되는 선량을 비교하였다. 이를 위해 상악에 위치한 종양 치료를 받는 환자들과 편측 두 경부암 환자들을 각 10명씩 선정하고 전산화 치료 계획 시 혀에 조사되는 선량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재질 평가 측면에서는 임상에서 혀를 치료부위 반대 방향으로 보내 고정하는 목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Paraffin Wax나 Putty와의 비교를 통하여 BinkieRTTM의 단순 물질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전산화 치료 장비로 Mass density 및 상대전자밀도 등을 확인하고, 팬텀과 이온챔버를 이용하여 Transmission Factor를 측정하였다. 결 과: BinkieRTTM를 사용 시 DCS (n=144) 의 평균은 0.8 ± 0.07, 95% 신뢰구간은 0.79~0.82 로 나타났고, 빈도분포 분석 결과는 왜도 -0.8, 첨도 0.61 로 나타났다. 치료 기간 중 혀 중심축 이동에 대한 편차를 분석하기 위해 LR, SI, AP 방향 이동에 대한 95% 신뢰구간과 편차의 이상값인 0에 대한 일표본 t검정을 실시하였다.(n=144) t검정 결과 LR, SI 방향의 평균은 각각 0.01 ± 0.14 cm(p>.05), 0.03 ± 0.25 cm(p>.05), AP 방향은 -0.08 ± 0.25 cm(p<.05) 로 나타났다. 혀를 치료부위의 반대 방향으로 고정한 경우인 편측 귀밑샘 종양 환자들의 경우 BinkieRTTM를 사용한 환자들의 혀 평균선량은 처방선량 대비 평균 16.92% ± 3.58%, Paraffin Wax 환자 23.99% ± 10.86% 로 BinkieRTTM 사용 시 혀 선량이 비교적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p<.05). 반면, 혀를 아래로 누르는 목적으로 BinkieRTTM를 사용한 환자들 중 비강암 환자의 혀 평균선량은 평균 4.4% ± 5.6%, mouth piece를 사용한 환자들은 5.9% ± 6.8% 로 나타났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p>.05). Paraffin Wax와 BinkieRTTM, Putty의 상대전자밀도 측정 결과 각각 0.94, 0.99, 1.26, Transmission Factor는 각각 0.99, 0.98, 0.96로 나타났다. 결 론: BinkieRTTM의 치료기간에 걸쳐 나타난 혀 DSC분석 결과는 약 0.8, 고정력은 LR, SI 방향으로의 편차가 0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우수하였으며, AP방향의 고정력 또한 평균 0.08 cm 로 우수한 편이었다. 또한 혀를 옆으로 밀어 치료부위 반대 방향으로 고정하는 편측 두경부암 환자의 경우 Paraffin wax나 Putty를 사용하는 것보다 BinkieRTTM를 사용하는 것이 혀에 조사되는 불필요한 선량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본 실험 결과와 BinkieRTTM의 특성을 적절히 고려하여 두경부암 치료에 적용한다면 혀의 재현성 유지 및 선량 감소에 도움이 되리라 사료된다.

보물 제440호 통영 충렬사 팔사품(八賜品) 연구 (A Study on the Palsapum (八賜品, Eight-Bestowed Things), Treasure No. 440, in Tong-Yong Shrine to the Loyal Dead in Korea)

  • 장경희
    • 역사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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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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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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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팔사품은 이순신의 위대함을 기억하는 상징물이자 삼도수군통제사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의물로서 400년간 통제영과 충렬사에 배향되어 있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1966년 보물 제440호로 지정되었으나 중국에서 전래된 유물이라서 그동안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팔사품 유물을 중심으로 문헌기록이나 회화 및 한중 관련 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양식적 특징을 알아내고, 유물의 제작 연대나 제작지 및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현존하는 8종의 유물 중 5종은 본래의 것이고, 3종은 후대에 새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전자는 도독인(都督印)·영패(令牌)·귀도(鬼刀)·참도(斬刀)·곡나팔이며 1598년 이전 명나라에서 제작되어 진린 장군에 의해 전래된 것이었다. 후자는 깃발[독전기(督戰旗)·홍소령기(紅小令旗)·남소령기(藍小令旗)]들이며 19세기 조선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특히 전자의 유물을 양식적으로 분석한 결과 명 황실의 품격이나 공식적인 성격보다는 개인적이며 광둥지방의 토착적인 특색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팔사품을 중국 명나라 신종황제가 이순신에게 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진린 장군이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통제영에 남긴 것임을 밝혀내었다.현존하는 팔사품 유물은 시기별로 명칭이나 품종과 수량 및 부속품에서 변화가 있었는데, 이것을 시대에 따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7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도독인만 주목했다. 그 도장은 명대에 제작된 것은 확실하나, 사인(私印)이어서 진린 도독의 것으로 여겨진다. 둘째, 18세기에는 '팔사물'로 불렀고 8종 14점이며, 1795년 발간된 『이충무공전서』 「도설」에서 확인된다. 이들 중 도독인을 비롯한 5종의 유물은 크기에서 기록과 유사하나, 형태나 문양은 조선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국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 광동지방의 향토성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19세기에도 '팔사물'로 불렀고 8종 15점이며, 1861년 신관호가 그린 <팔사품도> 16곡 병풍에서 확인된다. 도장함과 영패주머니 및 3종의 깃발은 가죽이나 천처럼 쉽게 훼손되는 재료에 조선식 글자와 문양을 넣어 새로 제작한 것이다. 보존에 취약한 유물들은 19세기 말 이후에도 계속 개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팔사품은 이른 시기에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이후 정부의 무관심과 공식적인 기록의 관리 소홀로 오류가 많았다. 앞으로 이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심과 유물의 안정적인 보존을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렇게 팔사품이 영원히 보존될 때 16세기 말 일본의 침략 야욕을 한중 양국의 협력으로 이겨낸 역사를, 또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한국의 이순신장군과 중국의 진린도독을 함께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홍삼 유래 성분들의 면역조절 효능

  • 조재열
    • 식품저장과 가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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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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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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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면역반응은 외부 감염원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외부감염원을 제거하고자 하는 주요항상성 유지기전의 하나이다. 이들 반응은 골수에서 생성되고 비장, 흉선 및 임파절 등에서 성숙되는 면역세포들에 의해 매개된다. 보통 태어나면서부터 얻어진 선천성 면역반응을 매개하는 대식세포, 수지상 세포 등과, 오랜기간 동안 감염된 다양한 면역원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얻어진 획득성 면역을 담당하는 T 임파구 등이 대표적인 면역세포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면역질환이 최근 주요 사망률의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암, 당뇨 및 뇌혈관질환 등이 생체에서 발생되는 급 만성염증에 의해 발생된다고 보고됨에 따라 면역세포 매개성 염증질환에 대한 치료제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또한 암환자의 급격한 증가는 암발생의 주요 방어기전인 면역력 증강에 대한 요구들을 가중시키고 있다. 예로부터 사용되어 오던 고려인삼과 홍삼은 기를 보호하고 원기를 회복하는 명약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우리나라 천연생약이다. 특별히, 홍삼은 단백질과 핵산의 합성을 촉진시키고, 조혈작용, 간기능 회복, 혈당강하, 운동수행 능력증대, 기억력 개선, 항피로작용 및 면역력 증대에 매우 효과가 좋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홍삼에 관한 많은 연구에 비해, 현재까지 홍삼이 면역력 증강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분자적 수준에서의 연구는 매우 미미한 것으로 확인되어져 있다. 홍삼의 투여는 NK 세포나 대식세포의 활성이 증가하고 항암제의 암세포 사멸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어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주요 면역증강 성분은 산성다당류로 보고되었다. 또 한편으로 일부 진세노사이드류에서 항염증 효능이 확인되어졌으며, 이를 통해 피부염증 반응과 관절염에 대한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본 연구는 KT&G 연구출연금 (2009-2010)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기에 이에 감사드린다]. 면역반응은 외부 감염물질의 침입으로 유도된 질병환경을 제거하고 수복하는 중요한 생체적 방어작용의 하나이다. 이들 과정은 체내로 유입된 미생물이나 미세화학물질들과 같은 독성물질을 소거하거나 파괴하는 것을 주요 역할로 한다. 외부로 부터 인체에 들어온 이물질에 대한 방어기전은 현재 두 가지 종류의 면역반응으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즉, 선천성 면역 반응 (innate immunity)과 후천성 면역 반응 (adaptive immunity)이 그것이다. 선천성 면역반응은 1) 피부나 점막의 표면과 같은 해부학적인 보호벽 구조와 2) 체온과 낮은 pH 및 chemical mediator (리소자임, collectin류) 등과 같은 생리적 방어구조, 3) phagocyte류 (대식세포, 수지상세포 및 호중구 등)에 의한 phagocytic/endocytic 방어, 그리고 4) 마지막으로 염증반응을 통한 감염에 저항하는 면역반응 등으로 구분된다. 후천성 면역반응은 획득성면역이라고도 불리고 특이성, 다양성, 기억 및 자기/비자기의 인식이라는 네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외부 유입물질을 제거하는 반응에 따라 체액성 면역 반응 (humoral immune response)과 세포성 면역반응 (cell-mediated immune response)으로 구분된다. 체액성 면역은 침입한 항원의 구조 특이적으로 생성된 B cell 유래 항체와의 반응과 간이나 대식세포 등에서 합성되어 분비된 혈청내 보체 등에 의해 매개되는 반응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포성 면역반응은 T helper cell (CD4+), cytotoxic T cell (CD8+), B cell 및antigen presenting cell 중개를 통한 세포간 상호 작용에 의해 발생되는 면역반응이다. 선천성 면역반응의 하나인 염증은 우리 몸에서 가장 빈번히 발생되고 있는 방어작용의 하나이다. 예를 들면 감기에 걸렸을 경우, 환자의 편도선내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류는 감염된 바이러스 단독 혹은 동시에 감염된 박테리아를 상대로 다양한 염증성 반응을 유도하게 된다. 또한, 상처가 생겼을 경우에도 감염원을 통해 유입된 병원성 세균과 주위조직내 선천성 면역담당 세포들 간의 면역학적 전투가 발생되게 된다. 이들 과정을 통해, 주위 세포나 조직이 손상되면, 즉각적으로 이들 면역세포들 (주로 phagocytes류)은 신속하게 손상을 극소화하고 더 나가서 손상된 부위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려는 일련의 염증반응을 유도하게 된다. 이들 반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발적 (redness), 부종 (swelling), 발열 (heat), 통증 (pain)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손상된 부위 주변에 존재하는 모세혈관에 흐르는 혈류의 양이 증가하면서 혈관의 직경이 늘어나게 되고, 이로 인한 조직의 홍반과, 부어 오른 혈관에 의해 발열과 부종이 초래되는 것이다. 확장된 모세혈관의 투과성 증가는 체액과 세포들이 혈관에서 조직으로 이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이를 통해 축적된 삼출물들은 단백질의 농도를 높여, 최종적으로 혈관에 존재하는 체액들이 조직으로 더 많이 이동되도록 유도하여 부종을 형성시킨다. 마지막으로 혈관 내 존재하는 면역세포들은 혈판 내벽에 점착되고 (margination), 혈관벽의 간극을 넓히는 역할을 하는 히스타민 (histamine)이나 일산화질소(nitric oxide : NO), 프로스타그린딘 (prostagladins : PGE2) 및 류코트리엔 (leukotriens) 등과 같은 chemical mediator의 도움으로 인해 혈관벽 사이로 삼출하게 되어 (extravasation), 손상된 부위로 이동하여 직접적인 외부 침입 물질의 파괴나 다른 면역세포들을 모으기 위한 cytokine (tumor necrosis factor [TNF]-$\alpha$, interleukin [IL]-1, IL-6 등) 혹은 chemokine (MIP-l, IL-8, MCP-l등)의 분비 등을 수행함으로써 염증반응을 매개하게 된다. 염증과정시 발생되는 여러 mediator 중 PGE2나 NO 및 TNF-$\alpha$ 등은 실험적 평가가 용이하여 이들 mediator 자체나 생성관련효소 (cyclooxygenase [COX] 및 nitric oxide synthase [NOS] 등)들은 현재항염증 치료제의 개발 연구시 주요 표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염증 반응은 지속기간에 따라 크게 급성염증과 만성염증으로 나뉘며, 삼출물의 종류에 따라서는 장액성, 섬유소성, 화농성 및 출혈성 염증 등으로 구분된다. 급성 염증 (acute inflammation)반응은 수일 내지 수주간 지속되는 일반적인 염증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국소반응은 기본징후인 발열과 발적, 부종, 통증 및 기능 상실이 특징적이며, 현미경적 소견으로는 혈관성 변화와 삼출물 형성이 주 작용이므로 일명 삼출성 염증이라고 한다. 만성 염증 (chronic inflammation)은, 급성 염증으로부터 이행되거나 만성으로 시작된다. 염증지속 기간은 보통 4주 이상 장기화 된다. 보통 염증의 경우에는 염증 생성 cytokine인 Th1 cytokine (IL-2, interferone [IFN]-$\gamma$ 및 TNF-$\alpha$ 등)의 생성 후, 거의 즉각적으로 항 염증성 cytokine인 Th2 cytokine(IL-4, IL-6, IL-10 및 transforming growth factor [TGF]-$\beta$ 등)이 생성되어 정상반응으로 회복된다. 그러나, 어떤 원인에서든 면역세포에 의한 염증원 제거 반응이 문제가 되면, 만성염증으로 진행된다. 이 반응에 주로 작용을 하는 염증세포로는 단핵구와 대식세포, 림프구, 형질세포 등이 있다. 암은 전세계적으로 사망률 1위의 원인이 되는 면역질환의 하나이다. 산화적 스트레스나 자외선 조사 혹은 암유발 물질들에 의해 염색체내 protooncogene, tumor-suppressor gene 혹은 DNA repairing gene의 일부 DNA의 돌연변이 혹은 결손 등이 발행되면 정상세포는 암화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양성세포 수준에서 약 5에서 10여년 후 악성수준의 암세포가 생성되게 되면 이들 세포는 새로운 환경을 찾아 전이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암환자들은 다양한 장기에 동인 오리진의 암세포들이 생성한 종양들을 가지게 된다. 이들 종양세포는 정상 장기의 기능을 손상시켜며 결국 생명을 잃게 만든다. 이들 염색체 수준에서의 돌연변이 유래 암세포는 거의 대부분이 체내 면역시스템에 의해 사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스트레스나 암유발 물질의 노출은 체내 면역체계를 파괴하면서 최후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면서 암발생에 무방비 상태를 만들게 된다. 이런 이유로 체내 면역시스템의 정상적 가동 및 증강을 유도하게 하는 전략이 암예방시 매우 중요한 표적으로 인식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면역증강 물질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인삼은 두릅나무과의 여러해살이 풀로써, 오랜동안 한방 및 민간에서 원기를 회복시키고, 각종 질병을 치료할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전통생약이다. 예로부터 불로(不老), 장생(長生), 익기(益氣), 경신(經身)의 명약으로 구전되어졌는데, 이는 약 2천년 전 중국의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 "인삼은 오장(五腸)을 보하고, 정신을 안정시키고, 혼백을 고정하며 경계를 멈추게 하고,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병사를 제거하여주며, 눈을 밝게 하고 마음을 열어 더욱 지혜롭게 하고 오랫동안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장수한다" 라고 기술되어있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고려인삼 (Panax ginseng)이 효능 면에서 가장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별이 고려인삼으로부터 제조된 고려홍삼은 전세계적으로도 그 효능이 우수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대부분의 홍삼 약효는 dammarane계열의 triterpenoid인 ginsenosides라고 불리는 인삼 saponin에 의해 기인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화합물군의 기본 골격에 따라, protopanaxadiol (PD)계 (22종) 및 protopanaxatriol (PT)계 (10종)으로 구분되고 있다 (표 1). 실험적 접근을 통해 인삼의 약리작용 이해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경주되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충분히 이해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현재까지 연구된 인삼의 약리작용 관련 연구들은 심혈관, 당뇨, 항암 및 항스트레스 등과 같은 분야에서 인삼효능이 우수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면역조절 및 염증현상과 관련된 최근 연구결과들은 많지 않으나, 향후 다양하게 연구될 효능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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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龍珠寺) <삼세불회도(三世佛會圖)>의 축원문(祝願文) 해석(解釋)과 제작시기(製作時期) 추정(推定) (Interpretation of Praying Letter and Estimation of Production Period on Samsaebulhoedo at Yongjusa Temple)

  • 강관식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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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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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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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용주사 <삼세불회도>는 유교적 이념과 불교적 이념, 궁중화원 양식과 산문화승 양식, 고유한 전통화법과 외래적 서양화법 같은 다양한 이원적 요소들이 창조적으로 융합되어 이룩된 기념비적 걸작으로서 조선 후기의 회화 발달과 혁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의 하나이다. 그러나 화기(畫記)가 없기 때문에 현존 <삼세불회도>의 제작시기와 작가를 비정하고 양식 특징을 분석하는 문제를 놓고 연구자마다 견해 차이가 심해 지난 50여 년 간 논쟁이 끊이지 않음으로써 회화사적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존 <삼세불회도>의 제작시기를 추정하는 문제는 모든 논의의 기본적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불화와 달리 화기(畫記)가 없고, 작가에 대한 기록이 문헌마다 다르며, 화승들의 전통적인 불화 양식과 화원들의 혁신적인 서양화법이 혼재되어 있어 작가와 양식을 일치시켜 이해하는 문제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제작시기를 추정하는 문제는 특히 논란이 많은 쟁점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현존 <삼세불회도>는 일반적인 불화와 달리 수미단 중앙에 왕실(王室) 존위(尊位)의 축원문(祝願文)을 써놓아 주목되며, 애초에 썼던 "주상전하(主上殿下), 왕비전하(王妃殿下), 세자전하(世子邸下)"의 삼전(三殿) 축원문을 지우고 '자궁저하(慈宮邸下)'를 '왕비전하(王妃殿下)' 앞에 추가해서 고쳐 써넣어 더욱 주목된다. 따라서 이 축원문은 현존 삼세불회도의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객관적 단서의 하나이다. 그리하여 최근에 새롭게 제시된 19세기 후반 제작설은 1790년의 용주사 창건 당시에는 순조(純祖)가 '원자(元子)' 신분이었고 1800년 1월 1일에야 '세자(世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세자(世子)'라는 존호가 쓰여있는 현존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은 세자 책봉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아야 하며, 형식과 도상이 19세기 후반기 화승들이 그린 청룡사나 봉은사의 <삼세불회도>와 유사하고 서양화법은 후대에 개채된 것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현존 <삼세불회도>는 19세기 후반기의 화승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불화(佛畫) 화기(畫記)의 축원문을 광범위하게 조사해보면, 불화 제작 시점에 왕실에 실존한 인물의 신분(身分)과 생년(生年), 성씨(姓氏)까지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에 19세기 후반에는 용주사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처럼 수십 년 전에 승하한 사람들을 생전의 존호(尊號)로 고쳐 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1790년 전후에는 원자(元子)나 세자(世子)의 유무(有無)와 무관하게 의례적으로 "주상전하(主上殿下), 왕비전하(王妃殿下), 세자저하(世子邸下)"의 삼전(三殿) 축원문을 쓰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현존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에 '세자저하(世子邸下)'의 존호가 쓰여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왕실 위계와 달리 '자궁저하(慈宮邸下)'가 '왕비전하(王妃殿下)'보다 앞에 쓰여있는데, 이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비극으로 인한 정조와 혜경궁(자궁(慈宮)), 왕비 세 사람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정조가 혜경궁의 왕실 위상을 왕비 앞에 오도록 하여 정조대에만 사용된 특별한 왕실 전례였기 때문에 현존하는 삼세불회도의 축원문은 정조대에 개서(改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애초에는 당시의 일반적인 불화 축원문처럼 의례적인 삼전(三殿) 축원문을 썼다가 이를 지우고 다시 '자궁저하(慈宮邸下)'라는 특별한 존호를 넣어 개서(改書)하는 매우 특별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는 현륭원(顯隆園)의 재궁(齋宮현륭인 용주사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와 부인인 혜경궁(惠慶宮)(자궁(慈宮))임에도 불구하고 축원문에 의뢰적인 삼전(三殿)만 쓰여있고 혜경궁이 빠져있는 것을 보고 정조가 지시하여 개서(改書)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개서(改書)는 정조가 현륭원과 용주사가 준공된 뒤 처음으로 현륭원에 원행(園幸)하여 원소(園所)를 두루 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용주사에 들러 <삼세불회도>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견했던 1791년 1월 17일에 정조가 지시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어진다. 따라서 이와 같이 특수한 내용과 형태로 이루어진 축원문은 현존 <삼세불회도>가 1790년의 창건 당시에 그려진 원본 진작임을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객관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