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국제수학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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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U의 재탄생과 ICM (The Rebirth of the IMU and ICM)

  • 김계환;김성숙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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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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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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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20세기 초에 발생하였던 제1, 2차 세계대전들은 유럽 사회뿐만 아니라, 수학계에도 지대한 손실을 끼쳤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탄생되었던 국제 수학연맹(IMU)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던 이유로 해체되어졌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함에 따라 모든 국제 학회모임은 중단되었다. 독일에 나치정권이 들어선 후, 많은 뛰어난 수학자들이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거나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학문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심각한 정치 경제 위기에 처한 유럽의 학자들은 수학계를 대변할 능력을 잃었다. 이에 국제적인 의무감을 갖게 된 미국의 스톤(Stone)을 비롯한 수학자들은 정치에 상관없이 모든 나라가 가입할 수 있는 새 IMU를 탄생시킨다. 이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IMU의 재탄생 과정과 1950년도의 ICM에서 일어난 일들을 면밀히 알아봄으로써 20세기 중반의 수학계의 발전상을 연구하고자 한다.

IMU탄생에서 해체까지의 ICM (ICM from the foundation to the suspension of the old IMU)

  • 김성숙;강미경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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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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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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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일어났던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사회의 모든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학술분야에서도 갈등이 나타났고 수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쟁에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불가리아, 터어키를 비롯한 강대국이 패전한 후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며 유럽의 지도가 바뀌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들은 1919년 국제연구협의회(International Research Council) 를 창설하고 그 산하에 국제 수학연맹 (IMU) 을 만들어 은밀히 독일계의 수학자들을 배제하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그 정책은 심한 비판을 받았고 1928년 ICM에는 모든 수학자들이 초대를 받았다. 결국 그 정책을 반대하던 많은 수학자들의 노력으로 1932년에 IMU가 폐지되었고 수학자들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IMU는 1951년에 재창조 될 때까지 거의 20년간 사라졌었다. 첫 번째 IMU가 존속하던 시기는 정치가 수학회에 영향을 끼쳤던 시기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1920년부터 1932년까지의 ICM과 제 1차세계대전이 수학협회와 수학자들에게 끼친 영향 등을 알아봄으로써 20세기 초반의 수학계의 발전상을 연구하고자 한다.

ICM의 초기역사 -태동기부터 제5차 ICM까지를 중심으로- (History of ICM )

  • 강미경;김성숙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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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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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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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2014년 8월 13일에서 21일까지 서울에서 ICM(국제수학자대회) 이 열린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ICM은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클라인 (Klein) 에 의하여 ICM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칸토어 (Cantor) 가 먼저 국제수학자대회와 국제수학자연합체를 꿈꾸고 씨앗을 뿌렸다. 이 논문에서는 ICM이 시작된 계기와 ICM 초기인 1회부터 5회까지의 회의 발전 과정을 자세히 알아본다. 특히 ICM의 공식언어의 변화, 참석자들의 수의 변화, 논문발표의 수, 기조강연자의 구성, 수학 분과의 변화등을 통하여 20세기 초반 수학의 발전상을 함께 연구 한다.

Oswald Veblen이 미국수학계에 미친 영향과 한국에서의 의미 (Contribution of Oswald Veblen to AMS and its meaning in Korea)

  • 이상구;함윤미
    • 한국수학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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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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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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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미국 수학계는 하버드대학이 근대수학 교과과정을 도입 한 후 280여년(1640년)이 지나고, 미국수학회(AMS;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 창립 후 30년(1890년 뉴욕수학회, 1894년 미국수학회)이 지난 1920년대에도 아직 열악한 연구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미국수학계에 국가연구위원회(National Research Council, NRC)를 통하여 수학분야에 최초로 박사후연구원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고, 기금을 조성하여 프린스턴대학에 당시 세계 최고수준의 수학과 건물인 파인 홀(Fine Hall)을 건축했으며, 1932년 새로 생긴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에 A. 아인스타인(Einstein), 폰 노이만(von Neumann)등을 초빙하고, Math Review 창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미국에서도 수학자가 순수수학 연구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미국 초창기 수학자 O. 베블런(Osward Veblen)에 대하여 분석한다. 20세기 초반 대부분의 시간을 식민지 상태에서 보낸 한국은 20세기 후반에 회원들의 적극적인 학술활동에 힘입어 2008년 현재 국제수학연맹(IMU)의 5그룹(투표 수를 뜻함) 중에 4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더구나 2014년 국제수학자대회(ICM)를 서울에서 유치하게 되었다. 한국이 21세기를 한국 수학의 빠른 발전기로 만들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수학 후진국이었던 미국이 1876년 J. 실베스터를 초빙하여 연구 수준의 수학교육을 최초로 시작한 후 궁극적으로 시카고대학의 E. H. 무어(Moore)가 미국수학회장으로 리더쉽을 발휘한 1900년부터 단 100여년 만에 세계 수학 정상에 자리한 미국수학과 미국수학회의 예를 검증하여 찾아보고자 한다. E. H. 무어가 배출한 인재와 제시한 비전은 E. H. 무어의 제자, L. E. 딕슨(Dickson), O. 베블런, R. L. 무어와 G. D. 버코프(Birkhoff)를 통하여 미국에 구현되었다. 그 중 O. 베블런은 'Princeton algebraic topology' 그룹을 리드하며 미국수학 전반에 세계적인 연구여건을 조성한 탁월한 행정능력가 이었다. G. D. 버코프의 역할은 수학에 대한 학술적 기여의 비중이 컸다. 이들은 20세기 중반 미국이 세계 수학연구의 주류에 진입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9],[10],[21]). 수학자 베블런은 당대 미국 최고수준의 학술적 경지에 도달하였고 1923년 미국수학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자신이 미국수학계에 제시한 비전과 통찰력을 실제로 구현한 수학자, 리더, 그리고 창조적인 행정가였다. 본 논문은 수학자 베블런이 미국수학계에 끼친 전반적인 영향을 연구하고, 이를 통하여 미국 수학에 실질적인 경쟁력을 부여하며 미국을 세계 수학의 주류에 진입시킨 초창기 미국 수학계 리더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본 연구는 근대수학 교과과정 도입 110여년, 2007년 대한수학회 창립 60년을 맞으며 최근 20년간 커다란 발전을 이루어 양적인 면에서는 2007년 세계 12위로 평가된 한국의 다음 단계로의 발전에 대한 논지를 제공하고, 실제로 한국이 세계 수학의 주류로 진입하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할 일(Action plan)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는 빠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내 과학기술계의 흐름에서 수동적인 추종이 아니라 수학계 스스로 연구-교육-봉사에 균형 잡힌 비전을 제시하고 추구하는 긍정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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