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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 영상레이더를 이용한 멕시코시티 시계열 지반침하 관측 (Monitoring of a Time-series of Land Subsidence in Mexico City Using Space-based Synthetic Aperture Radar Observations)

  • 주정헌;홍상훈
    • 대한원격탐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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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6_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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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57-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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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지반침하는 인위적인 인간 활동 또는 자연적 현상에 의해 지표면이 가라앉는 현상이다. 멕시코시티는 전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지반침하가 발생하는 지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멕시코시티 지반침하의 원인은 과도한 지하수 채취로서 해당 지역 전체의 물 사용량의 약 70%를 지하수가 차지하고 있다. 범 지구 위성 항법 시스템(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 GNSS) 또는 수준측량과 같은 전통적인 현장 관측 방법은 지반침하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선호되어 왔다. 하지만 GNSS 관측은 매우 높은 시간해상도를 가진 정확한 지표 변위량을 측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넓은 지역에 대한 부분적인 관측 정보를 제공하고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공위성 영상레이더(Synthetic Aperture Radar, SAR)는 주야 조건과 기상상태에 관계없이 높은 공간 해상도의 지표변화 정보를 mm에서 cm 크기의 정밀도로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관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2007년 2월 11일에서 2011년 2월 22일까지 획득된 ALOS PALSAR L-band 영상레이더를 이용하여 멕시코시티의 지반 침하 시계열을 추정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대표적인 시계열 분석 방법인 고정 산란체 위상간섭기법(persistent scatterer interferometry, PSI)과 small baseline subset (SBAS)을 적용하여 지표 변위의 시계열 결과를 획득하였으며 대기 효과 및 지형 오차를 제거하였다. PSI 및 SBAS 기법을 이용한 분석 결과 최대 지반침하 속도는 각각 -29.5 cm/year, -27.0 cm/year로 나타났다. 또한 연구지역을 지질 공학적 특성에 따라 세 가지 구역으로 분류하여 각 분류에서의 지반 침하속도를 비교한 결과, 단단한 기반암으로 구성된 지역에 비해 압축률이 큰 호수성 퇴적물로 구성된 지역에서 침하가 크게 발생하였다.

차세대염기서열 분석을 이용한 소, 돼지, 닭의 장내 미생물 군집 분석 및 비교 (Comparative Analysis of Gut Microbiota among Broiler Chickens, Pigs, and Cattle through Next-generation Sequencing)

  • 정호진;하광수;신수진;정수지;류명선;양희종;정도연
    • 생명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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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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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9-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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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국내 가축의 장내 미생물 군집 분포와 시료간 미생물학적 차이에 대하여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을 이용하여 분석하였다. 전국의 축사에서 닭, 돼지, 소의 분변시료를 무작위로 채집하여 α-diversity를 분석한 결과, 종 추정치와 종 풍부도가 세 종류의 가축 모두에서 통계학적 유의성을 가지면서 소, 돼지, 닭 순으로 높게 분석되었다. 그러나 조류에 속하는 닭과 포유류에 속하는 돼지, 소에 대한 각 사이의 종 다양성은 통계학적 유의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나, 돼지와 소의 사이의 종 다양성은 통계학적 유의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각 가축 내 장내 미생물 군집의 분포를 분석한 결과, 문 수준에서 세 종류의 가축 모두 Firmicutes가 우점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속 수준에서는 닭의 분변시료는 Weissella, 돼지의 분변시료는 Prevotella, 소의 분변시료는 Acinetobacter가 우점 속으로 나타났다. 각 가축 분변시료의 미생물 군집 분포에 차이가 있는지 분석하기 위해 PERMANOVA 분석을 수행한 결과, 닭, 돼지, 소의 분변시료 내 미생물 군집의 중심과 산포는 통계학적으로 유의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각 가축 분변시료의 미생물 군집을 대표하는 biomarker를 분석하기 위해 LEfSe 분석을 수행한 결과, Weissella와 Lactobacillus는 닭의 분변을 다른 두 가축과 구분할 수 있는 미생물로, Preveotella는 돼지의 분변을 다른 두 가축과 구분할 수 있는 미생물로, Acinetobacter는 소의 분변을 다른 두 가축과 구분할 수 있는 미생물로 분석되었다. 본 연구를 기반으로 축사 여건에 적합한 체증 관련 미생물의 탐색, 생애주기별 장내 미생물 군집과 유전체 분석 및 각 가축에 특화된 생균제 개발 등 추가적인 연구 진행에 필요한 미생물학적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20년 동아시아지역에서 COVID-19 폐쇄로 인한 장거리 이동 PM10, NO2, O3 농도 변동성 분석 (Analysis of Concentration Variations of Long-Range Transport PM10, NO2, and O3 due to COVID-19 Shutdown in East Asia in 2020)

  • 김유경;조재희;김학성
    • 한국지구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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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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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8-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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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2020년 중국의 COVID-19 폐쇄는 한국의 풍상측에 위치한 중국의 대기오염 배출량을 감소시켰다. 몽골 북부로부터 중국 동부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2020년 1~2월에 기온 아노말리가 양(+)으로 온난하였고, 2020년 1월에는 동서류 아노말리가 음(-)으로 정체적인 특징을 보였다. 2019년 12월~2020년 3월에 한국 중부 서쪽의 석모리와 파도리에서 중국 배출량 감소의 영향에 따라 PM10, NO2, O3 농도 변동이 나타났다. 파도리에서 PM10, O3 월평균 농도와 최근 4년의 월평균 농도의 비는 2019년 12월과 비교하여 중국의 COVID-19 폐쇄 이후인 2020년 1~3월에 각각 0.7~4.7%, 9.2~22.8%로 감소하였다. 2020년 1월 중국의 춘절 기간에는 석모리와 파도리에서 PM10, NO2, O3 농도가 최근 4년의 춘절 기간과 마찬가지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2020년 1월 평균 농도가 최근 4년 1월과 비교하여 감소한 것은 중국 춘절 전후의 기간에도 배출량이 감소하였던 것과 관련 있다. 2020년 1~3월 석모리의 PM10, NO2, O3 농도의 비(${\bar{O}_s$/M)는 각각 70.8~89.7%, 70.5~87.1%, 72.5~97.1%이었고, 파도리에서도 각각 79.6~93.5%, 67.7~84.9%, 83.7~94.6%로 추정 월평균(M)보다 월평균(${\bar{O}_s$)이 감소하였다. 2020년 1월에 몽골 북부로부터 중국 동부와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의 온난화로 인한 광화학 반응으로 최근 4년과 비교하여 AOD가 높게 나타났으나 2020년 3월에는 풍상측인 중국에서 2차 에어로졸을 생성하는 전구물질 배출 감소로 최근 4년과 비교하여 낮은 AOD 분포를 보였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조선시대 고악보에 나타난 『만보전서(萬寶全書)』의 금도론(琴道論) (Manbojeonseo(萬寶全書) Geumdoron(琴道論) in the old scores of Joseon(朝鮮))

  • 최선아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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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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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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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만보전서(萬寶全書)"는 명 청 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간행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사서민(士庶民)의 일상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1720년 청나라를 방문한 조선의 사신단을 통해 조선으로 유입된 "만보전서"는 당시 사회에 유포되어 일상의 유용한 정보지로 혹은 개인문집의 참고서적으로 유행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금도론(琴道論)의 내용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고악보에 금도론을 수록할 때 유용한 참고서로 이용될 수 있었다. 실제로 "한금신보"(1724)에 소개된 금도론 중 오불탄, 탄금수지, 태음기법은 그 출처에 대해 "만보전서"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본고에서는 4종의 "만보전서"에 수록된 금도론의 순서와 내용을 비교해 보았다. 우선 다량의 금도론을 수록하고 있는 서기룡이 편집한 "만보전서(1610)"의 금학문(琴學門)과 유자명이 편집한 "만보전서(1612)"의 금학문의 항목을 비교 대조해 보았다. "만보전서(1610)"와 "만보전서(1612)"는 모든 면(page)마다 상(上)층 하(下)층으로 영역이 나뉘어 기록되었다. 금학문의 상층과 하층은 각각 4개의 상위 분류 항목을 가지고 있다. 상층이 하층에 비해 비교적 오래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상층이 이론적인 덕목 중심이라면 하층은 금(琴)을 실제로 연주할 때의 손의 사용법 및 노랫말과 감자보(減字譜)로 구성된 악보류가 중심이 된다. 즉 상층은 형이상학적인 내용이라면, 하층은 형이하학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었다고 하겠다. "만보전서(1610)"와 대조해서 "만보전서(1612)"의 금도론의 분류는 상위 항목을 지칭하는 명칭과 순서에서 일부 차이점이 발견된다. 이러한 차이는 금도론의 분류 체계에 보다 합리성을 갖추고자 하였기 때문에 나타난다. "만보전서(1614)"의 경우는 금도론의 내용이 동일한 편자가 편집한 "만보전서(1610)"에 비해 매우 소략해 졌으며, "만보전서(1739)"의 경우는 오음정조보(五音正操譜)가 새롭게 첨가되었으나 역시 간략해 졌다. 다음으로 "만보전서"의 금도론과 우리나라 몇몇 고악보의 금도론을 비교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상당량의 금도론이 체계적으로 필사되기 시작하는 국악원 소장 "금보"와, "한금신보"는 비교적 오래된 금도론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유예지"와 "방산한씨금보"는 비교적 최근의 실용적인 내용의 금도론을 수용하였는데, 금도론의 기록 순서와 내용이 "만보전서(1739)"의 것과 유사하다. "금헌악보" 역시 우리나라의 다른 고악보에 없는 금도론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으며, "만보전서(1612)"의 상층뿐 아니라 하층 항목의 금도론까지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기록한 점으로 보아, 옛 금도론부터 비교적 최근의 것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월정사 탑돌이의 전형과 공연문화 (Paragon of people circling the pagoda of Woljeongsa Temple and performance of its cultural inheritance)

  • 이창식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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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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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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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월정사 탑돌이는 광복 이후 재현된 첫 번째 불교민속놀이로 불교문화로서의 대표성과 역사성을 지닌 주요 무형문화재이다. 월정사 탑돌이는 한국 고유의 전통성과 강원도의 정체성이 내재된 불교민속유산이라는 점에서 지정 가치가 크다. 전국 사찰에서 탑돌이가 시연되고 있지만 무형문화재 지정을 기반으로 체계적인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는 월정사 탑돌이가 유일하다. 월정사 탑돌이의 문화재 내재적 가치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탑돌이는 부처님, 탑에 대한 예경방식의 총체적 표현물이다. 월정사 탑돌이의 원형은 추정하기 어려우나, 월정사의 역사성으로 보아 고구려 계통의 놀이와 신라 복회(福會)에 닿아 있다. 고구려벽화의 달, 오대산 화엄사상경 배경과 팔각구층탑의 본질의 측면에서 우요삼잡의 예법에 부합한다. 탑돌이 때 처음에는 범종, 고(鼓), 운판, 목어의 사법악기(四法樂器)만 쓰이다가 후에 삼현육각(三弦六角)이 합쳐지고, "보렴"과 "백팔정진가"을 부른 것을 보면 처음에는 순수한 불교의식이던 것이 차츰 민속화해서 민중 속에 전파된 것을 알 수 있다. 월정사 탑돌이의 전형은 회향의례의 환희심을 체험하는 우요삼잡의 풀이와 관련된다. 절에서 대재(大齎)가 있으면 신도들은 공양을 올린다. 이때에 염불, 범음(梵音), 범패(梵唄)가 따르며, 재가 끝나면 신도는 승려와 함께 불탑을 돌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빌고, 또 저마다의 기원을 빈다. 일신의 왕생극락은 물론 국태민안을 빌어 태평성대를 누리고자 하였다. 큰 재일수록 많은 신도들이 모이며 따라서 탑돌이도 성황을 이루었다. 법음(法音)에 맞춰 제각기 소원을 외면서 탑을 도는 모습은 엄숙하였다. 월정사 탑돌이의 변형과 융합에 대한 발상은 전형 곧 문화재 지정의 취지 유지와 정체성 차원을 살리되 전승의 공연화를 위한 계승적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탑돌이는 4월 초팔일과 중추절인 한가위 날에는 탑돌이가 있었다. 탑돌이의 공연성은 스님이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부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사찰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 등을 밝혀 들고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회향형(回向型) 불교민속놀이에 있다. 공연성 활성화는 신행 보유자 전승교육, 전문가 자문의 다차원 접근, 원형 재현의 담론 등을 단계적으로 보강하여야 한다.

취병(翠屛)의 조성방법과 창덕궁 주합루(宙合樓) 취병의 원형규명 (Studies on the Construction Method of Chwibyeong and Investigating Original Form of the Chwibyeong at the Juhapru in the Changdeok Palace)

  • 정우진;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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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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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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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고문헌 분석을 통해 조선시대 취병의 특성과 제요소를 분석하고 주합루 취병의 원형적 물상을 고찰한 것으로서 다음의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임원경제지", "증보산림경제" 등의 문헌분석결과 취병은 지지대의 종류, 식물소재, 식재형식에 따라 분류되었다. 지지대는 대나무, 진장목(眞長木), 기류(杞柳)에 따라 분류되며, 사용된 식물소재는 소나무, 주목, 측백나무 등의 상록침엽교목의 사용이 우세했다. 식재방법은 자연지반에 심는 것이 일반적으로 나타났으나, 분을 사용하여 인공지반에도 조성하였다. 둘째, 문헌에서 취병은 상록수를 사용한 식물 병풍에서만 사용된 용어였으며, 이의 상위범주어는 '병(屛)'으로 지시되었다. 즉 취병은 사계절 푸른 상록수의 특성을 일컫는 '취(翠)'와 대나무로 지지대를 만든 수벽 구조물인 '병'을 합성한 말이다. 또한 취병이라는 명칭에는 자연 산수를 묘사하는 문학적 상징성과 무산십이봉에 내재된 신선사상이 융화되어 있었다. 셋째, 1880년대에 촬영된 주합루 취병은 주목으로 보이는 침엽수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높이가 거의 2m에 달했다. 일제강점기 때 취병은 철거되었으나 취병의 소재로 사용된 주목이 몇 주 존치되어 있었고, 식재 시기가 불분명한 향나무가 어수문 양 옆으로 줄기를 늘어뜨린 채로 가꿔지고 있었다. 이 향나무는 한일병합 후 일본인에 의해 이입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같은 시기에 어수문 좌우 협문이 변형되어 일본 건물의 합각모양을 한 지붕이 씌워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넷째, 2008년 창덕궁 주합루 취병은 복구되었으나, 정밀한 고증의 부재로 원형적인 취병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식재된 조릿대가 동해를 입어 상당 부분 고사됨으로써 취병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바 가능한 본래의 식물소재를 사용하여 원형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취병 제작기술의 개발, 현대 조경에 응용하는 것은 과제로 남아있다.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 속 인물들의 복식 고찰 (A Study on the Costumes of the Characters of Higyongru Banghwoedo)

  • 배진희;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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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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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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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2015년 9월, 보물 제1879호로 지정된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 속 인물들의 복식을 고찰한 것이다. <희경루방회도>는 1567년 6월 광주목(光州牧) 관아의 희경루(喜慶樓)에서 개최된 동방(同榜) 계회(契會)를 그린 것으로, 방회(榜會)의 주인공인 관료 5인과 관아 소속의 향리(鄕吏), 아전(衙前), 나장(羅將), 조례(?隷), 악공(樂工), 여기(女妓), 동기(童妓) 등 다양한 신분의 남녀가 묘사되어 있다. 이들이 착용하고 있는 복식을 밝히기 위해 문헌자료와 복식유물, 회화자료 등을 활용하였으며 연구범위는 겉으로 드러나는 두식(頭飾)과 포류(袍類), 그에 따른 부속품류로 한정하였다. 현직에 있는 시임관료(時任官僚)는 사모(紗帽) 홍단령(紅團領)을 착용하였다. 그 외에 품계에 따른 품대(品帶)와 흑화(黑靴)를 신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직에서 물러난 원임관료(原任官僚)는 말총[마미(馬尾)]이나 사(紗)로 싼 흑립(黑笠)에 홍직령과 도아(?兒) 등을 착용하였다. 향리는 흑죽방립(黑竹方笠)에 흰색 직령(直領)을 입고 도아를 띠었다. 고려시대에는 방립이 왕 이하 지식층에서 썼던 관모였지만 조선전기에는 향리의 관모로 전락하였는데 그 착용 모습이 <희경루방회도>에서 확인되었다. 아전은 흰색 직령에 흑립을 쓰고 도아를 띠었다. 나장은 조건(?巾)을 쓰고 철릭 위에 반비의(半臂衣)를 착용하는 것이 규정이었지만 <희경루방회도> 속 나장은 반비의를 착용하지 않고 조건과 철릭만 착용한 모습이었다. 또한 조례는 포(布)로 싼 흑립에 홍철릭을 착용하고, 악공은 소모자에 홍철릭을 착용하였다. 나장 이하 하속은 허리에 모두 청색 계통의 도아를 둘렀다. 여기(女妓)와 동기(童妓)는 주인공의 시중을 들거나 춤을 추고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들은 크게 부풀린 둥근 고계(高?)에 홍색 대요(臺腰)를 두르고 곧은 깃 또는 젖힌 깃의 황장삼(黃長衫)을 입고 허리띠를 둘렀다. 동기는 뒤쪽에 양 갈래로 짧게 땋아 내린 머리에 교임형 홍색 포를 착용하였다.

조선시대 한양 동부(東部) 함춘원(含春苑)에 관한 연구 (A Study on Dongbu Hamchunwon in Hanyang during the Joseon Dynasty)

  • 오준영;김영모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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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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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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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연구는 한양 도성의 동부(東部)에 조성되었던 왕실 원유(苑?) 함춘원(含春苑)을 대상으로 조영 사실과 운용적 특징의 규명에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성종(成宗) 연간에 창경궁이 건립된 이후 대비(大妃)들의 이어(移御)가 예정되면서 통망처(通望處)를 중심으로 논의된 차폐용 수목 식재가 동부 함춘원의 시원적 형태로 추정된다. 동부 함춘원은 창경궁 동측 궁장(宮墻)에 부속된 월근문(月覲門)부터 선인문(宣仁門)에 이르는 구간의 건너편 일대에 조영된 종방향의 원유(苑?)이었으며, 오늘날 서울대학교 병원 신축 본관의 서측 일대에 해당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궁궐 내부에 조성된 원유만이 금원(禁苑)으로 불렸지만, 궁궐 외부에 조영되었던 동부 함춘원도 금원에 비견되는 상징적 위계적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동부 함춘원의 입지처(立地處)는 한양의 풍수지리 체계에서 내청룡(內靑龍)에 해당하는 요지(要地)였으며, 내청룡의 지맥(地脈) 보호를 위해 대규모의 토목공사는 허용되지 않았다. 인조(仁祖) 연간에 이르러 동부 함춘원의 일부는 마장(馬場)으로 분할되었다. 마장 일대는 마동산(馬東山), 방마원(放馬苑)으로도 불리었고, 휴식과 유락(遊樂)의 장소로 이용된 개방적 성격의 공간이었다. 동부 함춘원의 조성 초기에는 창경궁으로의 조망을 차폐하기 위해 속성수(速成樹)가 식재되었지만, 경모궁(景慕宮) 건립 이후에는 내청룡의 지기(地氣)를 보완하기 위해 대대적인 식목(植木) 공사가 이루어졌다. 특히 정조 연간에 유근문(?覲門)과 유첨문(?瞻門)이 건립된 이후 동부 함춘원은 궁궐(창경궁)-원유(함춘원)-사묘(경모궁)로 이어지는 전배(展拜) 동선의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재식밀도가 '초롱' 단수수의 생육 및 수량구성요소에 미치는 영향 (Effect of Planting Density on Growth and Yield Components of the Sweet Sorghum Cultivar, 'Chorong')

  • 최영민;한현아;신소희;허병수;최규환;권석주
    • 한국작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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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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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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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단수수 '초롱'(Sorghum bicolor (L.) Moench)의 재식밀도(16.7, 11.1, 8.3, 6.7, 5.6주${\cdot}m^{-2}$)에 따른 생육, 착즙액의 수량 및 품질을 비교하고 적정 재식밀도와 다변량 분석을 통해 수량에 관계된 요인을 분석하고자 수행하였다. 재식밀도에 따라 파종 후 일수별 주경장은 처리간 차이가 없었으나 재식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경태는 얇아지고 분지의 퇴화가 빨라지는 경향을 보였다. 수확기 추정한 착즙액과 당수량은 재식밀도가 높은 16.7 (각각 42.9, $4.16Mg{\cdot}ha^{-1}$), 11.1 (37.1, $3.73Mg{\cdot}ha^{-1}$)주${\cdot}m^{-2}$ 처리구가 8.3(30.5, $2.96Mg{\cdot}ha^{-1}$), 6.7 (26.6, $2.41Mg{\cdot}ha^{-1}$), 5.6 (24.7, $2.22Mg{\cdot}ha^{-1}$)주${\cdot}m^{-2}$ 처리구보다 많았다. 가용성 고형물 및 유리당 함량은 통계적인 차이는 없었으나 11.1, 8.3주${\cdot}m^{-2}$ 처리구에서 높은 편이었다. 반면 재식밀도가 5.6~11.1주${\cdot}m^{-2}$까지 증가했을 때 도복지수(9에 가까울수록 도복피해가 커짐)가 2.00~6.33까지 급격히 증가하여 최종 재식밀도의 결정시 태풍의 도래 횟수나 지형적인 특성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추가적으로 조사항목간 상관분석과 주성분 분석에서 재식밀도는 생경수량($r=0.62^{**}$), 건물수량($r=0.58^{**}$), 착즙액($r=0.63^{**}$) 및 당수량($r=0.66^{**}$)과는 정의관계를, 주경의 굵기($r=-0.65^{**}$)와는 부의관계를 나타내었다. 또한 수량 관련 요인들은 초장, 경태, 마디수와 통계적 관계가 없었다.

고려인삼의 유래 및 효능의 서지학적 고찰 (Bibliographic consideration on the efficacy and the origin of Korean ginseng)

  • 곽이성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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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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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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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고려인삼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특산물로서 가장 인기있는 건강식품중의 하나로 한반도(북위 33~48도)가 원산지이다. 인삼은 중국 전한 시대 '사유'에 의해 쓰여진 "급취장" (BC 48~BC 33)에 최초로 언급되어 있으며, 1145년 고려시대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의약적 치료용으로 중국에 인삼을 수출하기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인삼의 인공재배에 대한 기록은 1596년 중국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이후 야생삼이 감소하는 시기와 맞물려 숙종 13년(1687년) "승정원일기"에 '묘삼'의 기록이 나타난다. 묘삼은 벼의 이앙법을 활용한 독창적인 발명으로 1600년대 초반에 인삼의 인공재배법이 확립되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한편 홍삼에 관해서는 1123년 중국 송나라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숙삼'(인삼을 쪄서 건조한 삼)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며 이것이 홍삼에 대한 최초 기록이다. 조선 중종 17년(1552년) "조선왕조실록"에 '판삼'(삼을 찌고 압착하여 얇은 판처럼 만든 후 풀로 붙인 삼)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선조 35년(1602년)에는 '파삼'(삼을 찌고 압착하여 얇은 판처럼 만든 후 실로 꿰어 붙인 삼)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종(1506~1545) 시기부터 선조(1567~1608) 시기에 홍삼의 제조방법이 개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홍삼의 제조법은 그 전부터 이루어졌다고 추정되지만 조선 중종~선조 시기에 더욱 발전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홍삼'이란 용어는 정조 21년(1797) "조선왕조실록(정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며, 고종 36년(1899) "조선왕조실록(고종실록)"에는 대한제국 궁내부 내장원 삼정과에서 홍삼을 제조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아울러 순조 10년(1810년)에는 증포소를 개성으로 이전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시기에 대규모 홍삼제조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하면 조선 숙종시대에 확립된 인삼 인공재배기술과 정조시대의 홍삼제조법, 그리고 순조시대의 증포기술 등이 결합하여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후 1916년 '김택영'이 지은 "소호당집"에는 홍삼의 제조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전통적 한국홍삼 제조법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한편 인삼의 효능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BC 83-96년 중국에서 저술된 "신농본초경"으로 이 효능은 그 이후 여러 의학서에서 지속적으로 계승되어 오고 있다. 앞으로 고려인삼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은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보존되어야 하며 이러한 서지학적 노력은 과학적 연구결과와 더불어 세계속에 고려인삼의 독창성을 알리고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