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일본 애니메이션에 파란을 일으키며 등장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공각기동대’는 수많은 마니아를 낳고 전세계로 파장의 강도를높여가며 유명세를 떨친 작품으로 기억된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공각기동대의 오프닝에서 주인공 쿠사나기가 시니컬한 웃음을 지으며 열광학 위장술로 천천히 사라지던 장면을 비롯, 많은 부분을 자신들의 영화, 애니메이션에 차용하며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철학세계에 경배를 올렸다. 그후 9년, 독특한 철학과 영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속편인‘이노센스’로 말이다. 기획 2년, 제작 3년 등 5년 간의 작업 끝에 만들어진 이노센스(감독 오시이 마모루, 수입 대원C&A홀딩스)는 공각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가 육체를 버리고 네트워크 속으로 사라진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3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다. 10월 8일 국내 개봉 예정인 이노센스는 한층 더 심오한 철학세계를 펼쳐보인다. 공각기동대의 후속작으로 한층 더 진일보된 비주얼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노센스의 세계에 빠져본다.
본 논문은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인 사이보그 여전사 쿠사나기 소령에 초점을 맞춰, 포스트휴머니즘과 퀴어이론의 시각에서 <공각기동대>를 재해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기존비평에서 쿠사나기 소령의 몸이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극찬 받거나, 아니면 그 성적 함의로 인해 여성성의 상품화란 비난을 받았다면, 포스트휴머니즘과 퀴어 이론은 인간/비인간, 남성(성)/여성(성)이란 이분법을 넘어 소령의 몸을 보다 급진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준다. 즉, 이분법의 해체를 통해 이미지에 함몰된 현실 속에서 과연 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현실적"이며, 현실 속의 다양한 대립범주들이 얼마나 인위적인 것인지 재고해 보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틀로 본다면, 쿠사나기 소령의 몸은 현실 속 여성상의 "반영"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존재의의를 지닌 아니메 속 허구 존재, 인간/비인간, 여성/남성의 범주에 속하는 대신 SNS와 정보화사회 속에 점점 내면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불안을 구현해주는 혼종적 존재이다. 많은 포스트휴머니즘 이론가과 퀴어 이론가들이 경고하듯, "포스트휴먼"이나 "퀴어"란 용어는 너무도 종종 인간중심적 사고를 재확인하기 위해 대중문화텍스트에서 남용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며, 본 논문은 소령의 혼종적 몸이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기에 의미 있는 몸이라고 단순하게 주장하거나, 혹은 피상적인 포스트모던 읽기를 통해 경계를 넘나드는 해방적 몸이라고 미화하지 않을 것이다. <공각기동대>가 거두고 있는 성취는, 소령의 몸 속에 어지럽게 구현되고 있는 개인성, 동물성, 그리고 기술의 결합이 인간이 "언제나, 항상" 포스트휴먼적 존재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본 논문은 <공각기동대>가 유려한 영상을 통해 그려내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 즉 억압적인 인간중심 휴머니즘에서 퀴어한 존재들과의 공존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윤리적 함의를 지녔음을, 그리고 이러한 윤리적 시도가 바로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성취이자 지속적인 매력임을 주장하려 한다.
사이보그와 노화는 현대 과학기술의 두 가지 중요한 화두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카미야마 켄지(神山健治)의 SF 작품인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를 통해 이 두 가지 화두가 만나는 지점을 분석해 본다. 실로 연령은 젠더와 인종, 계급과 더불어 현대 사회와 정치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범주이나 과 학기술학자들은 이에 대해 깊게 연구하지 않았다. 특히 다너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사이보그 선언문(Cyborg Manifesto)"(1991) 이후 현대 과학기술에 의해 변화하는 젠더의 전망에 대해서는 많은 과학기술학적 연구가 있었으나 연령이 과학기술과 맺는 관련과 그 영향에 대해서는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해러웨이가 주장한 것처럼 사이보그가 여성에게 지워진 생물학적 담론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노인들에게도 자신들의 변화하는 몸의 한계와 연령주의적 담론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까? 마이크 페더스톤(Mike Featherstone)은 과학기술이 늙어가는 몸과 결합하여 생겨난 사이보그적 상태가 만든 새로운 전망을 긍정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공각기동대>를 통해 노년기의 사이보그화와 관련된 더 복잡한 문제들을 분석한다. 나는 과학기술과 노인의 만남을 통해 태어난 노쇠한 사이보그가 전통적 가족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설 수 있게 하나 연령주의를 극복하지는 못하며, 세계화된 자본주의와 네트워크 속의 통제된 신체를 통한 새로운 개인주의적 삶의 형태를 창조해 내고 있음을 보일 것이다.
우리의 세계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우리를 점점 더 잘 알아 갈수록 어디가 세계의 끝이고 어디에서 자아가 시작되는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는 앤디 클라크의 지적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의미 심장하다. 거대한 테크놀로지의 힘이 노아의 방주처럼 지구를 휩쓸고 있는 현대에 인간들은 역사상 유례 없는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인간신체들 속에서 파편화되어 다양한 방향으로 표류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를 가늠하게 하는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 볼 수 있는데 본 논문은 이 특징들을 금단을 향한 인간 욕망과 테크놀로지가 낳은 사생아인 사이보그라는 코드를 통해 접근해 보고자 한다. 경계 해체와 혼종, 변형, 융합, 이미지 커뮤니케이션 디지털적 감수성과 사고방식, 여성성 등과 같은 특성들은 현대에 와서 기계와 인간의 흔종이란 협의의 의미를 넘어 디지털 세상의 다양한 성격들을 지칭하는 광의의 의미로 확장되고 있는 사이보그 특성들과 공명한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각광받고 있는 매체 중 하나인 애니메이션을 통해 현대 사이보그의 역사를 추적하고 이러한 사이보그 개념의 확장을 촉발, 담론화 시킨 오시이 마모루의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의 작품분석들 통해 그 특성들을 확인해 볼 것이다. 후속 작업을 통해 본 논문의 문제제기가 현대라는 시대와 현대인들이 각자 삶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하나의 계기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우리는 신유물론을 배경으로 공각기동대, 뉴럴링크, 유전자 혼종인 카밀, 삼체인 등의 SF 주인공을 참조하여, 자기생성체계와 공-산 체계 사이의 교차적 연결을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였다. 연구 결과 첫째, 래디컬한 공-산 체계에서는 개체와 경계를 해체하고 혼종적 연결과 융합만으로 존재를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 둘째, 이들이 개체수준의 자율적 사고능력을 외면함으로써, 혼종적 공-산이 야기할 파괴적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거나 이에 따른 실질적 대응책을 모색하는 단계로 나가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셋째, 이질적 연결에 의해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될 상황이라면 혼종적 공-산의 연결망보다는 자기생성적 체계의 자율적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아가 자기준거적인 조절을 안정시키기 위한 개체단위의 역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였다. 우리는 본 연구를 통해, 존재자간 교차를 통해 반복되는 혼종적 연결을 기술(description)하는데에만 치우친다면 제대로 된 실천적 비전을 제시하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과, 존재자간 파괴적 상호작용에 대한 상상을 촉발하는 다양한 SF를 활용하여 인류종의 정체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정의하고, 나아가 일정한 수준의 경계긋기와 이에 기초한 공생적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자기생성 기제를 탐색하고 자기준거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할 것으로 촉구함으로써 신유물론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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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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