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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방선문(訪仙門)의 선경(仙境)적 이미지와 명승적 가치 (Study on Enchanted Image and Scenic Value of Jeju Bangseonmun)

  • 노재현;신상섭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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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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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8-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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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방선문(訪仙門)은 한라산의 옛 이름인 영주산을 신비롭게 하는 신선사상의 흔적이 가장 역력한 명소로 한천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영주십경의 하나인 '영구춘화(瀛丘春花)'의 대상장으로 널리 알려진 방선문(訪仙門)과 들렁귀(등영구(登瀛丘))는 문자 그대로 '신선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며, 신선의 산 영주산으로 이르는 통로이자 속세와 탈속의경계로 그려지고 있다. 조선조 선비들은 신선의 고향 한라산을 무대 삼아 방선문, 환선대, 우선대 그리고 등영구의 제액(題額)을 바위에 각자(刻字)함으로써 신선의 문에 들어, 신선을 부르고, 신선을 만나, 신선의 세계로 오르는 선경의 이미지를 방선문에 구축해 왔다. 이는 세속의 번거로움을 털고 한라산 신선이 되는 풍류 행위의 시적 표현이며, 도교적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으로, 방선문 4승경의 장소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이다. 방선문이 갖는 선경적 장소성뿐만 아니라 계곡 및 하천경 관을 이루는 지질지형학적 특성과 식물생태학적 가치는 방선문이 '자연경관으로서 명승'으로도 부족함이 없음을 보여준 다. 고찰 결과를 종합할 때 방선문은 마애각에 새겨진 제영의 의미가 갖는 장소정체성과 선경적 의미 그리고 영주십경의 대상장이자 '영구춘화'의 시점장으로서는 물론 방선문 계곡의 자연적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선인과 자연과의 만남을 통한 교감의 장소로 유전되어 왔다. 지금도 제주민과 호흡하는 문화공간으로 지속되고 있음은 생활명승의 전형성 또한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현재 문화재보법의 명승적 가치와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제주 방선문계곡은 명승의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 전형적 장소이자 공간이라 할 만하다.

천수사(天壽寺)와 <대인(待人)> 화운시 연구 (A Study on the Cheonsu-Temple天壽寺 and the echo verse poems to 'Waiting'待人)

  • 안순태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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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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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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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천수사(天壽寺)는 고려조에 개성(開城) 동쪽에 있었던 사찰로 왕조 교체기에 폐사(廢寺)되었다. 천수사가 있던 자리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영송(迎送)하는 사람들이 많아 조선 초 그 터에 역원(驛院) 천수원(天壽院)이 설치되었다. 이후 1476년 개성부 유수 이예(李芮)가 천수원 곁에 천수정(天水亭)을 건립하면서 천수사의 자취를 이었다. 조선 전기까지 오가는 사람들로 번화하던 천수원과 천수정은 17세기경에 사라지고, 이후 그곳은 황량한 들판으로 변했다. 고려 말에 여러 시인들이 천수사에 들러 시를 남겼거니와, 그 가운데 특히 최사립(崔斯立)의 <대인(待人)>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조선조에도 천수사에서 지어진 시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최사립의 <대인(待人)>에 화운한 것들이었다. 천수사는 왕조 교체기에 사라졌지만 19세기까지도 그 이름이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최사립의 시 덕분이었다. 이 시는 벗을 기다리는 이의 설렘과 초조함, 실망감 등 기다림이 내포할 수 있는 다양한 심경을 회화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 후세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표현하였다'는 등의 절찬을 받기도 했다. <대인(待人)>에 화운한 시들은 스무 편이 넘는다. 이 화운시들은 대체로 시기별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조선 초에는 정영위(丁令威)의 요동학(遼東鶴) 고사를 차용한 화운시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선술(仙術)을 닦아 학으로 화(化)해 천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정영위가 읊조린 시변(時變)의 무상함을 옮겨와, 천수사의 풍경은 전조(前朝)와 다름이 없는데 그 풍경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바뀌었음을 읊은 것이다. 이후 중종(中宗)이 이곳에 행차하면서 중종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일련의 차운시를 지었는데 이 시들은 대체로 왕조의 흥망을 심상(尋常)한 것으로 읊고 있다. 이는 어제시와 응제시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17세기에 천수원과 천수정이 사라지면서 이곳은 인적 드문 황량한 곳으로 변했다. 그러한 광경을 목도하고 쓴 화운시에는 쓸쓸한 정조가 깃들어 있음을 살폈다. 화운시는 원운(原韻)을 염두에 두고 지은 시로, 형식은 물론 의경(意境)까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대인(待人)> 화운시들은 화운시 일반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보인다. <대인(待人)>이 이루어진 공간이 '천수사'이고 <대인>에 대한 화운한 시인들은 원운과 특정 공간(천수사)을 모두 염두에 두고 시를 제작해야 했다. 그 결과 형식과 의경 모두 원운을 따른 시작이 산생되기도 하였고 형식은 원운을 따르되 의경은 원운과 달라진 것도 나타나게 되었다.

콘텐츠를 통해 전통을 잇는 방식 - 단원미술관 전시사례를 중심으로 (The Way of Connecting to Tradition through Content)

  • 김상미
    • 트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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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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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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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논문은 안산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단원미술관의 전시 사례를 중심으로 콘텐츠 제작과 활용 그리고 확장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는 데 그 목적을 가진다. 1991년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조선 후기 화원이자 풍속화의 대가로 알려진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 ? )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안산을 '단원의 도시'로 명명했다. 이에 안산은 단원 김홍도를 지역 고유의 자원으로 활용하고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광자원이자 문화콘텐츠로 단원 김홍도를 활용하여 단원조각공원 조성과 단원미술관 운영, 단원 김홍도 축제 기획 등 대내외적인 활동을 통해 단원 김홍도를 안산의 대표 브랜드화하고자 했다. 단원미술관은 단원 김홍도의 미술관이라고 지칭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09년 <사슴과 동자>를 첫 매입하고 2016년 <화조도>를 매입한 이후 올해까지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총 6점 소장하게 됐다.1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수집하는데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에 2015년 10월 개관한 단원콘텐츠관의 역할과 방향은 단원 김홍도의 진본을 소장하지 않아도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단원콘텐츠관을 단원 김홍도와 관련된 다양한 시각예술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과 보존, 전시가 가능하도록 운영하고 디지털 자료 중심으로 고급 정보를 생산하여 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비전을 설정했다. 다시 말해 도서관과 아카이브, 미술관(Library + Archive + Museum)의 기능이 결합된 One-Source Multi-Use의 복합문화 정보기관으로 단원콘텐츠관을 찾는 관람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구축하고자 했다. 이는 소장품의 문제와 고서화(古書畫)가 가지는 전시의 한계를 극복하고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을 충족시키는 등 동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어 여러 방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관람하고자 단원콘텐츠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터치스크린과 딥 줌(Deep Zoom)의 기술을 이용하여 단원 김홍도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실감형 서비스로 제공하고, 단원 김홍도의 원작을 그대로 해석하여 미디어 콘텐츠로 제작한 콘텐츠 전시를 통해 조선 시대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의 작품세계를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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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성에 기반한 기록집(記錄集) 구성에 관한 연구 『노무현 대통령의 지붕 낮은 집(2019)』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Formation of an Archive Book Based on Its Placeness : Focusing on the Archive Book, "Home of Roh Moo-Hyun")

  • 김태현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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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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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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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경관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적 풍경을 재현하는 개념에 가깝다면 장소는 인간이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공간에 시간을 쌓아 만드는 곳으로, 기억이 축적되는 특별한 저장소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장소와 경관은 '노무현 대통령의집'을 이해하고 그 곳에 쌓여 있는 다양한 기억의 층위를 탐색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본 연구는 노무현재단이 '노무현대통령의집'을 개방하기로 결정하고, 이 집을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면서 시작되었다. 첫번째 결과물은 "추모의 공간에서 기억의 장소로-대통령의집 콘텐츠 큐레이팅 및 장소 아카이브 컨설팅" 보고서로 발행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의 지붕 낮은 집(2019)"이라는 이름의 기록집이 발간되었다. 보고서가 노무현대통령의집의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의미와 이 집에 쌓여 있는 다양한 기억의 층위, 그리고 그 기억을 따라 생산된 기록의 내용, 이를 통해 이 집에 형성된 장소의 성격 등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진행한 것이라면, 기록집은 노무현대통령의집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복원하고 문화적 사건으로 큐레이팅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의집에는 '세 가지 기억'의 층위가 쌓여 있다. 첫 번째 기억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에 내려와 펼치고자 했던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이고, 두 번째 기억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부터 시민 개방이 시작되기 전까지, 9년에 가까운 '상실의 시간'에 대한 것이다. 세 번째는 노무현대통령의집 상시개방과 함께 시작된 '시민의 기억'이다. 이 집을 찾은 시민들은 앞 선 두 개의 기억과 마주하며 세 번째 기억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붕 낮은 집"은 노무현대통령의집이라는 장소에 축적된 세 개의 기억과, 의미로 가득 찬 '기록의 언어'로 구성된 기록집이다.

밀양 금시당(今是堂) 12경의 문화경관 해석 (Interpretation of Cultural Landscape at the Geumsidang(今是堂) sibigyung(12 Landscapes) in Miryang, Gyungnam)

  • 엄태건;김수진;박정임;강한민;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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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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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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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조선 중기 밀양의 부호세력이었던 여주이씨 일가의 금시당 이광진 유적을 중심으로 그림, 시문, 기문 등에 나타나고 있는 문화경관으로서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금시당 이광진은 사회적 혼란기였던 문정왕후의 죽음 이후 중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응천강변의 백곡에 터를 잡고 금시당을 건립하여 별서를 경영하고자 하였는데, 그가 경영한 금시당은 숙부이자 스승인 월연 이태로부터 자연관과 효행, 산수경영 등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금시당십이경도는 이경홍이 병환으로 위중한 아버지 이광진을 위로하고자 금시당 주변의 아름다운 12경관을 그린 것으로 구전되며, 꾀꼬리봉, 용두산, 무봉사, 마암산, 월연대, 사인당 마을, 영남루, 밀양읍성, 배나무 소, 밤나무 숲, 밀양강변, 삼문동들 등 당시 여주이씨 일가가 소유하고 있었던 땅과 관아를 경관 대상으로 하여 소상팔경이나 사시팔경의 관념적인 산수화가 아닌 실경을 담고 있는 산수화이다. 금시당십이경시는 금시당십이경도에 근거하여 작성된 제화시로서 이광진의 11대손 이용구가 지은 것으로 시간과 계절 그리고 기상의 변화를 노래하였다. 시 12수 모두 칠언절구로 글자 수가 모두 28자로 이루어졌으며, 단순히 그림의 외형적인 묘사가 아닌 작자의 개성에 의해 재산출되었기 때문에 그림에서 보이는 요소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금시당십이경도는 단순히 효행의 의미뿐만 아니라 밀양의 부호세력으로서 여주이씨 일가 소유의 장원을 나타내고 있으며, 금시당십이경시는 그림을 재산출하여 특정한 명승지로 변화시켜 여주이씨 일가 소유의 영역성을 보다 강화시킬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병자호란기 조선 피로인(被虜人)의 호지(胡地)체험과 삶 (A Study on the living and the experience from Captive's story of war during the Second Manchu's invasion in 1636)

  • 남미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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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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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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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본 연구에서는 17세기 병자호란시 호지(胡地)에 피로되었던 조선 백성의 피로담을 통해 전쟁과 백성의 삶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평민 김승경과 안추원은 어린 나이에 몽고 북경으로 포로로 끌려가 27년간 포로생활을 하다가 조선으로 탈출해 왔다. 김승경과 안추원은 전쟁으로 인해 뒤틀린 자신의 삶을 되돌려 놓기 위해 도망을 선택하였다. 탈출에 성공한 김승경은 고향에 가족들이 생존해 있어 별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지만, 안추원은 가족의 생사조차 파악할 길이 없었고 그에게 정신적 경제적 지원을 해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다시 북경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발각되어 청과의 외교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김승경 안추원의 이야기는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강한 의지로 극복하려고 했던 조선 백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피로체험은 피로인 당사자들에게는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경험이었겠지만, 이들에 의해 전해진 이국 문화와 풍습은 당대인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해 눈 뜨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당시 조선 조정은 피로인의 수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도망포로를 청으로 돌려보내야하는 송환규정을 어기고 자국민 보호를 위해 아주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조선 백성의 피로체험담을 통해 자주적인 역사를 펼쳐나가지 못한 17세기 조선사회와, 망각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있는 현대사의 전쟁포로 문제 등에 대해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태원지>의 MMORPG 콘텐츠화 가능성 탐구 - 세계관과 공간의 제시를 중심으로 - (Analysis of the possibility of a MMORPG based on Taewonji - focused on the showing of outlook and new stage)

  • 김인회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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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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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9-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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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20세기 후반이후로 디지털 게임은 현대의 문화와 산업에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때문에 고소설을 디지털 게임의 소스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 시도는 산업분야 뿐만 아니라 인문학 분야에서도 이루어 졌다. 본고는 고소설을 디지털 게임으로 변환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다. 특히 고소설 연구자들이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볼 것이다. 기존의 연구들은 고소설의 스토리, 환상성, 아이템이 게임의 창작에 직접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게임은 규칙(rule), 결과(outcome), 경쟁(conflict), 자발성(voluntary)의 네 요소를 이용해 재미를 준다. 스토리와 환상성, 아이템이 게임에 쓰이지만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다. 고소설은 게임의 네 가지 요소 중 규칙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태원지>가 제시하는 규칙다음과 같다. (1)난세를 바로잡아야 한다. (2)천명(Heaven's will)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며 천명을 얻은 자만이 나라를 세울 수 있다. (3)중심(화(華))과 주변(이(夷))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이다. (1)과 (2)는 <삼국지연의>등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매우 익숙하다. 특히 중요한 규칙은 (3)인데 이는 <태원지>만의 독특한 생각이다. 자신의 고향에서 주인공 임성은 중심(화(華))이었지만 새로운 대륙에서는 주변(이(夷))이 되는 경험을 한다. 디지털 게임에서는 작품의 줄거리, 아이템 등을 활용하여 플레이어가 이 세 가지 규칙을 직접 체험하게 되는 만드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고소설 연구자들은 우선 고소설 속에서 게임에 적용할 만한 규칙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고소설을 게임에 활용하기 위한 특별한 분야가 필요하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소림일다(小林一茶)의 ≪시경≫ 배구화(俳句化) 양상 고찰 (Kobayashi Issa's ≪Shi jing≫ Hiku-ka and that meaning)

  • 유정란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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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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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9-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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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글은 소림일다(小林一茶)(고바야시 잇사, 1763-1827, 이하 '잇사'라고 칭함)의 ${\ll}$시경${\gg}$ 배구(俳句)(이하 '하이쿠'라고 칭함)화(化) 양상을 살피고 그 의미를 도출한 것이다. 잇사는 1803년 ${\ll}$시경${\gg}$을 공부하고, 이를 하이쿠로 재창작하여 ${\ll}$향화구첩(享和句帖)${\gg}$을 작성했다. 현재까지 이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없으며, 일본과 중국에서 잇사의 ${\ll}$시경${\gg}$ 수용 양상을 다룬 바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주로 국풍(國風)에 한정되었으며 연구자들 사이에 용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작품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번역이라는 관점을 지양하고 배구화(俳句化)라고 명명하였다. 나아가 두 장르간의 심층적인 교류와 영향 관계를 문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 ${\ll}$시경${\gg}$ 배구화(俳句化) 양상을 주제의식의 재현, 시어와 이미지의 변용, 의경 전화와 제목 차용의 층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주제의식의 재현에서는 주로 고향이나 부모를 그리워하는 작품이 선별되어 배구화(俳句化) 되었다. 이때 단순한 주제 차용의 수준이 아니라 핵심 의미를 도출, 주석을 고려하여 해석하거나 잇사 개인의 원작 이해가 많이 개입되었음을 살폈다. 시어와 이미지의 변용에서는 해당 원천들의 의미를 절취하거나 조합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한 작품이 두드러졌다. 의경 전화에서는 일본적 정경으로 그 분위기를 바꾸는 작품이 있었는가하면, 제목 차용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작품도 존재했다. 배구화(俳句化)의 의식 지향은 ${\ll}$시경${\gg}$의 감정이나 격앙된 어조, 비난 등을 의도적으로 탈락시키고 이치를 배척하거나 시교(詩敎)의 관점을 탈피한 것, 도덕적 이상을 담아내지 않는 작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잇사는 ${\ll}$시경${\gg}$을 하이쿠로 옮겨 올 때 매우 많은 부분에서 하이쿠적인 감상과 습관을 자각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잇사가 ${\ll}$시경${\gg}$을 배구화(俳句化)한 것의 의미는 우리의 ${\ll}$시경${\gg}$ 수용과 대조해볼 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조선에서는 ${\ll}$시경${\gg}$을 언해하였지만 의역이 아닌 직역을 하였기 때문에 ${\ll}$시경${\gg}$ 원문의 글자가 유지되었다. 일본의 경우도 훈독체로 ${\ll}$시경${\gg}$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원 글자가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잇사는 ${\ll}$시경${\gg}$의 출발점인 민요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하여 일본의 민족어 시가 형태로 그 내용을 옮겼다.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ll}$시경${\gg}$ 수용 방식을 벗어나 잇사는 민족어 시가로 ${\ll}$시경${\gg}$에 대응한 것이다. 따라서 잇사의 ${\ll}$시경${\gg}$ 배구화(俳句化)의 의미를 본래 ${\ll}$시경${\gg}$의 출발점인 노래 그 자체로 인식하여 받아들인 태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박완서의 소설 「미망(未忘)」에 나타난 인삼의 상징성 (The Symbolism of Ginseng in Mimang by Park Wan-Seo)

  • 옥순종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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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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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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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박완서의 소설은 여성문제, 자본주의 체제, 노년 문제 등을 현실감 있게 다룸으로써 문학계는 물론 여성학, 사회학 등 많은 분야에서 사회 현상의 분석 도구로 활용된다. 박완서 소설의 특징은 본인이 체험했던 사실들을 소설의 배경으로 배치한다. 하지만 소설 「미망」은 예외적으로 그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취재를 바탕으로 줄거리를 구성했다. 이는 잊지 못하는(未忘) 고향 개성 이야기를 통해서 시대정신을 보여 주려 한 것이다. 「미망」은 인삼재배와 상업을 기반으로 거대 자본가로 성장한 전처만과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한 4대에 걸친 가족 연대기가 줄거리를 이룬다. 19세기 후반부터 한국전쟁이 끝나는 시기까지를 배경으로 소설은 역사적 격동기에 살아왔던 인물의 행적을 중심으로 인삼과 개성상인이 상징하는 시대적 의미를 풀어낸다. 개성은 고려인삼의 메카로서 인삼과 개성상인 이야기를 빼고는 개성의 전형을 그릴 수 없다. 실재했던 사실들을 토대로 픽션이 가미된 「미망」은 근대사의 사료적 가치, 개성의 풍속사 뿐만아니라 미시사로서 인삼 역사의 소중한 증언이 담겨있다. 「미망」에는 개성의 시대상과 인삼 상인의 정신, 식민지 시절 일본의 인삼 약탈과 삼업인의 저항, 인삼 자본의 근대 자본주의로 전환 등의 흔적이 화석처럼 박혀있다. 특히 의미가 깊은 것은 소설 속 이야기들이 역사적 사실과 조응해 인삼사의 한 장(章)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미망」에서 나타난 인삼의 상징성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고려인삼의 정기를 보여 준다. 인삼 농사의 정성과 까다로움, 삼업(蔘業) 정신과 자부심을 통해 인삼의 영물(靈物)스러움을 드러낸다. 둘째, 일본의 인삼 수탈을 민족수난사로 상징한다. 이를 지키려는 인삼 상인들의 노력과 독립운동 지원을 중요한 테마로 풀어내 민족정신을 나타낸다. 셋째, 지주, 상업 자본에 머물지 않고 생산 자본으로 전환, 근대기업화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개성 인삼 상인의 근대 자본가적 진취성을 보여 준다. 세 개의 상징성은 그 당시 인삼 상인이 추구하던 시대정신을 보여 주는 것으로 우리 민족과 인삼의 관계를 더욱 명징하게 드러낸다.

체제전환 이전과 이후 폴란드 문학에 나타난 폴란드 이민자들의 디아스포라적 의식 비교 연구 (2) (A comparative study on Diaspora consciousness of polish emigrants before and after the transformation of the political system reflected in the polish literary works (2))

  • 최성은
    • 동유럽발칸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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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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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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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이 논문은 1989년 체제 전환 이전과 이후에 발표된 드라마 가운데 '디아스포라'를 소재로 한 두 편의 텍스트를 선정하여 연구·분석해봄으로써 각기 다른 정치체제(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에 귀속된 폴란드 이민자들이 조국을 떠나 타지에서 경험하게 되는 갈등과 혼란의 구체적인 양상을 비교하려는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체제전환 이전의 작품으로는 스와보미르 므로젝(Sławomir Mrożek)의 『이민자들(Emigranci)』(1974)을, 체제전환 이후의 작품으로는 야누쉬 그워바츠키(Janusz Głowacki)의 『뉴욕 안티고네(Antygonaw Nowym Yorku)』(1992)를 선정하였다. 연구대상으로 선정된 이 두 편의 드라마는 집필 시기는 다르지만, 폴란드 문학사에서 전후(戰後) '이주문학(literatura emigracyjna)'의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상당히 중요한 작품들이다. 므로젝과 그워바츠키는 각기 자신의 작품 속에서 2차 대전 이후 '구(舊) 소련의 위성국가'이자 '약소국' 혹은 '후진국'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주를 선택해야만 했고, 냉전 체제 이후에는 보다 나은 경제 조건을 찾아 서방으로 떠났던 폴란드 이민자들이 낯선 이국땅에서 '경계인'이자 '이방인'으로 겪어야만 했던 냉혹한 현실, 그로 인한 심리적 방황과 고민,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 정체성 혹은 민족성에 대한 탐구 등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세계 제 2차 대전과 냉전시대를 겪으며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모두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유달리 많은 해외 이민자를 배출한 폴란드는 문학 작품을 통해서 폴란드 이민자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상실감 등을 정교하게 그려냈다. 특히 혹독한 검열로 인해 문학이 정치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주의 체제 당시 (1948~1989), 폴란드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20세기 폴란드 문학의 정전(正典)으로 손꼽히는 여러 편의 명작들을 해외에서 출간함으로써 고유한 문학적 전통을 계승해나가는데 이바지했다. 그러므로 '이주문학(literatura emigracyjna)'은 20세기 폴란드 문학이 역사적 격동기를 겪으며 일구어 낸 소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