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화는 일제강점기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의 한국학 연구 분야는 유 불 도는 물론 기독교 등 종교 분야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민속학분야에까지 걸쳐있으며, 그 영향력은 현재도 유효하다. 이 논문에서 이능화의 종교 연구 가운데 전통사상으로서 유교와 불교에 대한 그간의 연구를 정리하고 그 의미에 대하여 재평가했고, 그가 주장했던 '조선민족 고유의 종교'인 '단군신교'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보았다. 다른 구한말의 개화 지식인의 경우처럼 이능화도 근대화 실패에 대한 역사적 반성에 고뇌하였고, 그 원인을 조선후기 정권과 주자학에 돌리면서 '주자만능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조선후기 주자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시도하였다. 또한 이능화는 일제 강점기 거사불교 운동에 영향력을 미쳤던 불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불교계에서도 정치계의 경우처럼 친일행보를 보이며 현실적 이득과 세력을 넘보는 승려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능화는 이런 문제에 중립적 태도를 보이면서 학문적 성과를 세간에 선보이게 된다. 특히 그의 "조선불교통사"는 그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이능화는 조선불교를 거론하는 과정에서 조선불교의 일본 불교에 대한 독립성과 장점을 지적하면서 '민족주의적 성향'의 단초를 표출하였다. 한편 그의 조선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성에 대한 민족주의적 성향은 단군신교 연구를 통해서 여과 없이 표출된다. 이능화에게 있어서 건국신화와 문화적 정체성은 단순히 역사적 실증과 학문적 고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성립에 대한 이념적 문제였다. 이능화의 단군신교는, 건국신화와 조선민족의 문화적 독립성과 정체성을 확보하여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대응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구축의 측면에서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북한산 불교 석조미술이 북한산이라는 문화 영역에서 갖는 의의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북한산은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불교문화가 성행했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사찰이 건립된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다. 조선 후기 북한산 승영사찰(僧營寺刹)의 건립은 기본적으로 신앙 기도처로서 사찰의 기능을 가졌지만 북한산성 축성이 중요 배경으로 작용한 만큼 북한산의 지정학적 위치, 교통로, 관방체계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점이 매우 주목되는 북한산 불교문화의 특징이다. 북한산 불교 석조미술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석조부도, 석탑, 마애불, 석불, 탑비(석비), 석등, 당간지주, 마애사리탑 등으로 구분되는데 비교적 다양한 유형이 남아 있다. 시대별 특징은 신라 불교미술이 경기지역까지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며 고려 전기와 조선 후기에 석조미술이 가장 많이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북한산 일원 사찰은 왕실 원찰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북한산성 축성이 불교 석조미술 증가에 가장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분포 현황을 보면 통일신라 석조미술은 남쪽에서부터 등장하며 고려 전기까지는 북한산 서쪽에 주로 조성되었다.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는 북한산 동쪽지역에 다수 조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초기에 한강을 이용해 서해안 방향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신라의 군사적 목적과 조선 후기 북한산성 축성에 따른 도성 방어 목적으로 변화하면서 북한산의 중심 사찰도 변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북한산 불교 석조미술은 불교 도입 이래 다양한 유형이 꾸준히 조성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새로운 도상과 유형이 등장하고 사례가 많지 않은 특징적인 양식이 등장한다는 점, 고려 후기와 조선 후기 분사리 부도의 건립, 조선 후기 불교신앙 흐름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와 가치가 매우 높다.
본 논문의 목적은 광해군 대(代)의 불교정책과 이것의 영향을 받는 불교계의 양상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통해 조선불교를 "숭유억불"이라고 규정지음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았던 광해군 대의 불교가 가진 나름의 영향력과 역동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에 불교는 성리학의 벽이단을 내세운 지배층에 의하여 배척되어야 했고, 이것은 광해군 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배층이 이중적 불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지배층의 이중적 불교관은 광해군 대의 불교계의 상황에 영향을 끼쳤다. 임진왜란에서의 전공으로 지배층은 불교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조선에서 불교의 위상이 일정부분 상승했다. 상승한 위상과 임진왜란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불교계는 보사(報謝)와 구호 활동에 종사했다. 그 결과, 승려의 수는 증가했고, 사찰과 승려의 토지 소유가 허가됨으로써 경제적 상황도 좋아졌다. 이 과정에서 임진왜란은 광해군 대의 불교정책을 좌우하고 불교지형을 변동시킨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광해군 대에 지배층은 불교를 이단으로 간주하면서도, 임진왜란에 공이 있는 승려들에게 시호를 하사했고, 승려에게 관직을 제수하는 등 일부 승려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또한, 승려들은 국방, 건축 등 조직력과 물리적 힘을 요구하는 역을 부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광해군 대까지는 승려들이 부담하는 역에 대하여 일정 부분 보상해서, 승려가 역을 부담하는 것이 불교에 대한 탄압의 면보다는 불교에 대한 용인의 측면이 강했다. 불교정책에 대하여 불교계는 지배층과의 유착과 사찰의 창·재건, 그리고 불교 예술품 제작이라는 양상을 보인다. 지배층과의 유착을 통해 불교계는 광해군 대 불교정책에 적극 호응했고, 이것을 통해 교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이러한 모습 속에서 부휴 선수(浮休 善修)와 제자인 벽암 각성(碧巖 覺性)의 부휴계가 불교계에서 주도권을 가지기 시작했음도 확인된다. 광해군 대의 불교정책은 지배층의 이중적 불교관과 좋아진 측면과 악화된 측면이 공존하는 불교계의 상황을 배경으로 시행되었다. 지배층은 불교의 조직력을 전후(戰後) 복구와 국방, 토목 공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이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시행했다. 불교계 역시 지배층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불교정책에 호응하였고, 사찰과 예술품을 보수하고 제작하였다. 광해군 대의 불교정책과 대응을 살펴보면, 조선 불교에 대한 일반적 묘사인 "숭유억불"로 설명할 수 없는 불교의 조직력과 영향력이 확인된다.
이 연구는 조선시대 금속활자로 간인한 불교서적에 대해서 서지학적 측면에서 그 특징을 고찰한 것이다. 조선시대 금속활자로 간행한 불교서적은 모두 36종이 현전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를 간행에 사용한 활자별로 분석해 보면, 갑인자본이 9종, 을해자본이 13종, 정축자본이 2종, 을유자본이 3종, 그리고 전사자본이 9종으로 밝혀졌다. 그 가운데 을해자로 간인된 불서가 13종으로 가장 많은 수량을 보이고 있어 전체 36%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이를 간행시기로 분석한 결과, 조선전기에는 모두 27종이, 조선후기에는 모두 9종의 불교서적이 간행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중 세조대에 간행된 금속활자본은 19종으로 조사되어 전체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조의 비정상적 즉위와 더불어 호불적 성향과 깊은 영향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전개된 불교음악의 역사를 살펴보려면 이 땅에 불교가 처음 유입된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까지를 모두 아울러야 할 것이다. 이는 1,600년이 넘는 시간 속의 전개 양상을 고찰해야 하는 일이라 연구 범위가 넓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이 글은 그 긴 시간 동안 펼쳐진 한국 불교음악의 역사적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고찰함으로써 21세기 이후 불교음악이 이 땅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펼쳐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삼국시대 이후 고려, 조선을 거쳐 일제강점기, 현재에 이르는 동안 펼쳐진 불교음악의 역사는 '불교 성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며 전개되어 왔다. 왕실의 비호가 있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불교음악의 양상과 억불숭유정책이 펼쳐진 조선시대, 그리고 불교가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일제강점기, 대중 포교를 위해 불교음악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현재의 불교음악은 그 긴 시간만큼이나 역사적 전개 양상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각 시기별로 불교음악의 주요한 관점과 과제가 무엇이었는지 구분해서 시대별 특징을 밝혀야 하는 작업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글은 좁은 의미의 불교음악을 통칭하는 '범패'의 역사만이 아닌, 이 땅에서 소통된 '불교적 성격을 띤 불교음악'을 모두 포함시키고, 20세기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찬불가 계통의 음악까지를 모두 대상으로 하여 이 땅에서 펼쳐진 '불교와 관련된 음악의 역사적 전개'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조선 전기의 승려들이 부른 명칭가곡, 조선시대에 대중 포교를 위해 만든 음악, '화청'의 존재 의미, 조선시대 음악에 남이 있는 불교음악의 흔적을 파악해 보는 일도 이 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 글은 하남지역에서 찾아진 많은 불교유적에 대한 최근까지의 조사와 연구성과를 소개한 것이다. 이제까지 찾아진 불교유적중 천왕사지와 신복선사지, 약정사지 등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즉 삼국시대 불교가 수용된 이후에 많은 사찰과 불상이 조성되었으며, 조선시대까지도 불교는 그 역사적 맥을 이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남의 불교유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 특히 천왕사지를 비롯한 약정사지$\cdot$신복선사지 등의 절터는 최근 지표조사를 통해 발견되었고, 문헌기록에도 그 자취가 남아 있어 이 지역의 역사를 복원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각 절터에서 찾아지는 석물과 유물들을 통해서 사찰의 창건과 폐사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글은 하남지역의 중요한 불교유적을 바탕으로 하여 한강유역의 잃어버린 고대사와 불교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I. 서론 II. 대륙문화의 남진 1. 고조선(단군조선)시대는 물론 기씨조선, 위만조선, 한의 사군, 삼국시대 그후 조선시대까지 우리 한반도는 중국의 한문화를 받아들여 한자문화권역에 포함되었다. 2. 한반도는 나름대로의 토착문화를 발전시켰다고는 하겠으나 이 북방문화는 다시 일본열도에 불교, 천자문의 전달에서 볼수 있듯이 동북 아시아권의 문화권이 새로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3. 따라서 북방 민족 문화권, 한자문화권이 동북아시아 문화권이라 보겠다.(중략)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일제강점기의 유리건판 사진과 조선총독부박물관 공문서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북한 지역 소재 문화유산이 큰 피해를 입기 전의 모습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이에 최근 유리건판과 총독부박물관 문서를 활용한 북한 지역 불교조각 연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본고에서는 황해도의 대표적 사찰 중 하나인 황주 성불사의 불교조각에 대해 기존 성과를 바탕으로 몇 가지 새로운 의견을 개진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문헌기록을 토대로 성불사의 연혁을 정리하고 현황을 짚어본 후, 유리건판 속 존상별 제작시기와 조성배경 등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성불사 불교조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1945년 해방 이전 성불사의 불교조각은 보살상 2건, 여래상 4건, 삼존상 1건의 총 7건이 확인된다. 제작시기에서는 고려 전기 2건, 고려 후기 1건, 조선 전기 3건, 조선 후기 1건의 분포를 보인다. 이 가운데 오늘날 실물이 남아있는 2건이 주목된다. 먼저 성불사 응진전에서 촬영되었다는 고려 전기 석조약사여래좌상이다. 이 상의 당시 대좌 실측도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현재 정방산 내금강 골짜기의 옛 상원암 터에 전하는 머리없는 석조약사여래좌상 및 대좌 부재와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이 판단이 맞다면 북한 지역에 전하는 고려 전기 불교조각의 작례를 새롭게 확보하는 것으로서 의의가 크다. 다른 하나는 성불사 극락전에서 발견된 조선 1454년(단종2) 작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다. 이 상은 현재 사리원력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조선 전기 이북 지역에서 확인되는 소형 금동불의 기년작으로서 중요하다. 본고는 성불사라는 단일 사찰에 초점을 맞추어 북한 지역 불교조각을 고찰한 사례 연구이다.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자료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면 우리나라 불교조각사의 연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본고는 한국 불교사에서 거의 주목되지 않은 조선초 요동 월경과 월경승 만공(滿空)과 적휴(適休)의 중국 불교행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조선초 태종과 세종대의 대대적인 불교탄압 시책에 대하여 불교계가 속수무책으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불교계 나름대로 저항을 하였던 것이다. 특히 조계종의 나옹혜근과 태고보우의 문도 계열이 두드러졌다. 보우의 문도들이 주로 신문고를 치거나 불교의 자정을 주창하였으며, 나옹의 문도 계열은 무학을 중심으로 불교계를 재편하거나 탄압에 맞섰으며, 명(明)의 황제의 도움을 받아 불교계를 수호하고자 하거나 아예 요동으로 월경(越境)하기도 하였다. 월경을 시도하다가 해선(海禪)처럼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태종대 만공(滿空)과 세종대 적휴(適休)처럼 월경하여 중국 불교계에 뚜렷한 행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만공(滿空)은 태종대 요동으로 월경한 11명 가운데 한 고승으로 홍도(洪道) 홍인(洪因) 등과 함께 하였는데 무학의 문도이자 나옹의 문손인 듯하다. 나옹의 문도인 듯한 만공은 월경후 북경에서 다시 해로로 이동하여 금릉 금릉(金陵) 천계사(天界寺)에 주석하다가 조선과 친근하며 유서가 있는 산동(山東) 태안(泰安)으로 이주하여 죽림사(竹林寺)와 보조선사(普照禪寺)를 중창하면서 불법을 널리 홍포하였다. 적휴(適休)는 세종대에 승려 신내(信乃)와 신휴(信休) 신담(信淡) 혜선(惠禪) 홍적(洪迪) 해비(海丕) 신연(信然) 홍혜(洪惠) 신운(信雲) 등 총 10명과 함께 요동으로 월경하여 북경에서 명 황제의 보호속에 산해관을 거쳐 금릉 천계사(天界寺)에 이주하였다. 그후 그들의 행적은 더 알 수 없으나, 적휴는 북경 곡적산(穀積山)에서 고려 승속이 거주하였던, 특히 나옹과 문도 무학 등이 머물렀던 영암선사(靈巖禪寺) 근처에 반야선사(般若禪寺)를 창건했다. 이와같이 이와같이 조선초 승려들은 국가의 탄압에 저항하거나 월경하였는데 태종과 세종대 만공과 적휴는 중국 불교계를 유력하면서 사찰을 중창하며 중국불교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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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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