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四端七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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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高峯)의 성리학(性理學)과 수양론(修養論) (Kobong(高峯)'s Philophy and the theory of Self-cultivation(修養))

  • 강희복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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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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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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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이 논문에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과 함께 16세기 조선의 성리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인물인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사상에 관하여, 수양(修養)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해해보았는데, 이런 논의를 위하여 고봉의 "주자문록(朱子文錄)"의 구성과 특징 및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문제에 관한 견해도 함께 살펴보았다. 유학은 인학(仁學)(성학(聖學))이며, 이런 유학(儒學)의 문제는 근원 주체 관계로 요약해 볼 수 있고, 수양(修養)란 하늘과 사람의 관계 및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삶의 주체(主體)로서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자문록(朱子文錄)"은 고봉이 퇴계와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문제에 관하여 논변(論辯)하기 이전(1557년, 31세)에 주자학(朱子學)을 어떻게 이해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주자의 사상 가운데에서 수양(修養)를 지향하는 심성설(心性說)의 소개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으며, 퇴계의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 비교해볼 때 고봉의 "주자문록(朱子文錄)"은 문집 전체에서 시(詩)를 제외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보다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퇴계(退溪)와 고봉(高峯)는 약 8년 동안(1559-1566)에 걸쳐 편지를 통하여 인간의 본성의 문제(정(情)과 선악(善惡)의 문제)에 관하여 논쟁하였는데, 퇴계(退溪)는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질적 차이가 있는 감정(이기호발(理氣互發) 칠정대사단(七情對四端))으로 이해하였고 고봉(高峯)는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부분과 전체의 관계(이기공발(理氣共發) 칠정포사단(七情包四端))로 이해하였는데,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이 이발(理發)인가 기발(氣發)인가에 관한 논의는 개념에 관한 논리적 분석이나 이론적 타당성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 결국은 체인(體認) 확충(擴充)과 성찰(省察) 극치(克治)를 내용으로 하는 수양(修養)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을 중심으로 하는 성리학(性理學)과 "논사록(論思錄)"을 중심으로 하는 경세론(經世論)에 관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지만, 그의 수양론(修養論)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다.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은 고봉이 수렴(收斂)의 공부가 부족하고 조존천리(操存踐履)의 공(功)이 없다고 하였다. 고봉은 "이심법설(移心法說)"과 "삼해(三解)"에서 마음(심(心)) 그리고 경(敬)과 성(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마음(심(心))은 몸(신(身))을 주재하며, 활물(活物)로서 광명동철(光明洞徹)하여 온갖 이치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성(性)(체(體))과 정(情)(용(用))을 포함한다. 마음(심(心))은 배(주(舟))와 같고 경(敬)은 키(타(?))와 같으니, 배가 파도에 있을 때에는 키로써 움직이며 마음이 물욕(物欲)에 있을 때에는 경(敬)으로써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성인(聖人)과 중인(衆人)이 동정(動靜)할 때에 성(性)을 온전히 하기도 하고 해치기도 하는 것은 경(敬)과 사(肆) 혹은 성(誠)과 위(僞)의 차이에 불과할 뿐이며, 성인의 도(道)로서의 경(敬)(주일무적(主一無適))을 통하여 하늘의 도(道)로서의 성(誠)(진실무망(眞實無妄))을 이룰 수 있는데, '심사명변(審思明辨)'하여 스스로 힘써 그치지 않는 것이 '사성지실(思誠之實)'이라면 정제엄숙(整齊嚴肅)하고 삼가하고 스스로 잘 지키는 것은 '주경지실(主敬之實)'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봉은 책을 읽을 때는 언어와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옛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하며, 마음으로 견득(見得)해서 삶 속에서 체인(體認)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학(大學)"의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과 "중용(中庸)"의 중화(中和)에 관하여도 시(詩)를 썼다. 이렇게 볼 때 고봉(高峯)은 유학의 수기(修己)(명명덕(明明德))와 안인(安人)(신민(新民))을 전제로, 신(新)유학(儒學)(주자학(朱子學))의 인간관(심(心) 성(性) 정(情)/미발(未發) 이발(已發)/체(體) 용(用))과 수양론(거경궁리(居敬窮理)/정제엄숙(整齊嚴肅) 주일무적(主一無適)/경(敬) 성(誠))을 충실하게 따르며 나름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익(李瀷)과 신후담(愼後聃)의 사칠론(四七論)에서 중절(中節)의 의미 (The Appropriateness in Yi Yik and Shin Hudam's Theories of Moral Emotion)

  • 홍성민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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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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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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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논문은 이익과 신후담의 사칠론에서 중절의 철학적 함의를 해명하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퇴계의 사단칠정론에서 사단과 중절한 칠정 사이의 관계 규정은 곤란한 문제로 남겨졌다. 이익은 중절한 칠정의 의미를 새롭게 분석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는 중절한 칠정의 도덕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사단과 차별적이라는 점을 철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하였다. 공정무사한 공감자를 설정하여 이 문제를 풀고자 한 것이 그의 해법이었다. 이러한 이익의 생각은 중절의 윤리적 가치에 대해 참신한 재평가를 수행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후담은 스승 이익의 생각에 반대하면서 중절의 도덕적 가치를 평가 절하하였다. 신후담에 따르면, 성인(聖人)의 공칠정(公七情)과 중절(中節)한 칠정은 다른 것이었다. 성인의 공칠정은 공적 도덕성이 실현된 감정 상태이지만 중절한 칠정은 자연적 욕구와 생리적 기호가 적절한 상태에 놓인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전자가 이발(理發)이라면 후자는 기발(氣發)인 것이다. 그는 이익에게서 모호하게 표현되었던 성인칠정(聖人七情)을 명백히 공(公)과 사(私)의 두 측면으로 차별화함으로써 퇴계학 전통의 이발(理發)을 한층 강화하였다. 여기에 이르러 사단과 칠정이라는 오래된 구분선은 해체되고 공(公)과 사(私)가 도덕 감정의 기준으로 부각되었다.

우담 정시한의 「사칠변증(四七辨證)」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Woodam Jeong Si-Han(愚潭 丁時翰)'s "Siqibianzheng (「四七辨證」)")

  • 서근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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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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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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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정시한은 72세에 "사칠변증"을 완성하고 이후에 제자 이식과 인물성동 이논변을 벌인다. 정시한의 입장은 인물성이론의 입장이었고 이식은 인물 성동론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인물성동이논변은 잊혀지고 "사칠변증"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에 퇴계학파와 율곡학파가 대립점에 있었고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비판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사칠변증"을 완성하게 되는 데에는 이현일의 "율곡이씨논사단칠정서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이의 사단과 칠정에 대한 생각은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라는 '혼륜(渾淪)의 입장'이었고, 이황은 사단과 칠정은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분개(分開)의 입장'이었다. 정시한은 분개의 입장에서 혼륜의 입장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다. "사칠변증"을 통해 정시한은 무엇을 추구하려고 하였는가?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정시한이 제자 이식과 벌였던 인물성동이논변을 잊게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현재 정시한의 "사칠변증"에서 이이를 비판한 사실은 알지만 정시한이 인물성동이논변을 벌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논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칠변증"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정시한이 희망했던 희망하지 않았던 것과 상관없이 정시한 이후에 사단칠정논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익과 신후담, 정약용에게까지 "사칠변증"이 영향을 준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추파(秋坡) 송기수(宋麒壽)의 철학이론과 유학정신

  • 남명진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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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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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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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추파(秋坡) 송기수(宋麒壽)(1507-1582)는 500년 전에 출생하여 조선시대 중종, 인조, 명종, 선조의 4대에 걸친 75세를 일기로 생존했던 재조(在朝)의 선비로서 행정가요, 또한 학인이었다. 추파는 기묘사화의 참상을 직접 목도하고 본의 아니게 위훈이 하사되어 평생 마음의 질곡이 되었고, 또한 소위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된 종형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를 구명(救命)하지 못한 그의 처신이 또한 역사 속에서 오해의 사단(事端)으로서 추파에게 큰 굴레로 작용되었다. 추파의 현실인식은, 사화로 사림이 사기저상되었고, 그로 인해서 치도와 강상이 붕괴되었으며, 재해가 출현하고, 민심의 흐트러짐이 모두 천명의 노여움으로 본 동시에, 그 처방을 요순지치인 치도(治道)를 확립할 것, 선진 성학으로서 학문을 진흥할 것과 그 실천 주체인 선비의 기상을 진작시킬 것에서 찾았던 것이다. 추파의 성리설은 이기관계론을 부상리(不相離)라는 주제만을 채택하여 존재론적으로 접근하였고, 그 결과 율곡보다 훨씬 앞서 '리기지묘(理氣之妙)'라는 표현을 쓰면서 리발(理發)보다는 발어리(發於理)라는 말에 무게중심을 둠으로서 기발을 중심으로 말한 "기발어리설(氣發於理說)"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바로 그 뜻으로서의 천리(天理)를 밝혀 기(氣)로 발하는 구체적인 삶 속에 구현 하는 실천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추파의 학문은 바로 천리(天理)를 깨달아 실천궁행하여 가는 길로서 삶의 목표로 삼은 점이 특징적인 것이다. 즉 추파에 있어서 학문의 길은 리(理)의 본래적 뜻을 깨닫고 리(理)의 뜻을 심성의지(心性意志)를 통해서 구현하는 길인, 리(理)로 부터 발한 기발(氣發)을 몸소 역행실천(力行實踐)하는 길인 것이다. 이 길을 실제로 자신의 사명과 직결된 삶의 바른 길로 삼았던 것이다. 요컨대 추파의 학문사상의 궁극적 특징은 역행궁리(力行窮理)의 실천학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결론적으로 사사(事事)(실사(實事))구시정신(求是精神)에 입각한 실천철학만이 그의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되었던 것이다. 현실정치의 민생문제도, 역사적 이념으로서 선비정신 부양과 벽이단도 모두 이 사사구시(事事求是)의 시(是)를 통해야 되고, 이 시(是)를 통해서 구현하는 길이 추파학문사상의 궁극처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언설과 삶 자체가 실사구시의 실천 그 자체 이었던 것이다. 학문사상사적으로 본다면 추파의 위상은 근본유학의 정신을 살려 그를 근간으로 하여, 한국 성리학의 개화기(開花期)에 새로운 개념으로서 이 기관계를 '리기지묘(理氣之妙)'라든가 발(發)의 근거를 리(理)에 두되 리(理)가 직접 발하는 것이 아니라, 발(發)하는 것은 기(氣)라는 '기발어리(氣發於理)'의 한길만을 중시한 점으로서 이기설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 점이라 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기발론적(氣發論的)인 바탕에서 실천역행의 근거를 확립하게 됐다는 특징을 볼 수 있는 점이다. 또한 이것은 한국성리학의 기발일도라는 기발설의 선구적 주장이며, 또한 이(理)를 근거로 결국 사사구시(事事求是)의 경세실학(經世實學)을 제시함으로서 실학의 선구가 될 만한 문제제기(問題提起)를 했다고 평가할 만한 특징이라 하겠다. 이 연구가 그의 마음속에 얹혀져있던 멍에도, 그간 오해받은 역사적인 멍에도 벗겨질 수 있고, 한국철학사상장성기(韓國哲學思想長成期)(국유사상주류기(國儒思想主流期))의 학술사적인 위상도 바르게 드러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중국·조선철학의 성정(性情)과 동의수세보원의 성정(性情)에 관한 문헌적 고찰(考察) (A Bibliographic study between Sung-Jung in and Sung-Jung in and Sung-Jung in Chinese and Chosun's philosophy)

  • 설유경;김종원
    • 사상체질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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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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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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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1. 연구목적 사상의학(四象醫學)에서는 사상인(四象人)의 생리(生理), 병리(病理)의 원인이 희노애락(喜怒哀樂)으로 표현되는 성정(性情)의 작용으로 설명되어진다. 따라서 동의수세보원에 나타나 있는 희노애락(喜怒哀樂)으로서의 성정(性情)과 중국 조선철학에서의 성정(性情)에 관한 연관성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 연구 목적이다. 2. 연구방법 먼저 중국철학에서의 성정(性情)개념의 변천과 의미를 고찰하고 그 다음 조선철학에서 성정(性情) 개념을 중심으로 한 논변(論辯)인 사단칠정론과 정제두의 양명학에서의 성정(性情)에 대해 고찰하였고 마지막으로 동의수세보원에서의 성정(性情)의 개념을 조사하였다. 3. 연구결과 이제마가 동의수세보원에 중국과 조선철학에서의 성정(性情)을 모두 포괄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사심신물적(事心身物的)인 사고체계를 나타낸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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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심리학에 의한 부용지(芙蓉池) 일곽과 이기론(理氣論) 비교연구 (A Comparative Study on Buyongji and Likiron based on Analytical Psychology)

  • 최효식
    • 한국실내디자인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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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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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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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Reflecting the idea of benevolent royal government of King Jeongjo(鼎俎), the Buyongji(芙蓉池) and Juhamru(宙合樓) of Changdeokgung(昌德宮) are the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to represent the Joseon(朝鮮) period. The purposes of this study were to investigate how the Likiron(理氣論), one of the foremost theories of Joseon Confucianism, was applied to the principle of space composition by analyzing Buyongji and Juhamru with Jung's analytical psychology and to provide basic data to utilize the results in modem space planning. The research findings indicate that Buyongji is the space of Ki(氣) to reflect the reality, corresponds to conscious, and represents the Joseon land and people including Chiljeong(七情) And Juhamru is the space of Li(理) with the ideal of benevolent royal government inherited in it and represents unconscious. It also has each building placed which contained the nature of Sadan(四端) along with Gyujanggak and Jewolgwangpunggwak(齊月光風觀) to represent "Self Archetype" that's the core of human mind. Each representing Ki and Li, Buyongji and Juhamru must have worked as a major composition principle of Likilwonronjeokilwonron(理氣二元論的一元論) that could simultaneously satisfy the practice philosophy of reality and ideal among Likiron.

유학의 흐름과 하도낙서(河圖洛書) 및 사단칠정을 통한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인 형성에 대한 연구 (Stream of Confucianism and a Study of Dongmu Lee Jema's Formation of Sasang through Hado and Nock-seo, along with Four Character and Seven Feeling Theory)

  • 송시원;강정수
    • 동의생리병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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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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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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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According to Confucianism, the world before Confucius focused on respecting the heaven which meant that everything could be done by the heaven. After the period of Confucianism, Joo-Ja asserted that everything could be done by nature. During the Chosun Dynasty, philosophers such as Seo Kyung-duck, Lee Hwang, and Lee Yi talked about four characters and seven passions of human being. They started to focus more on the inside of human nature. During the later period of the Chosun Dynasty, a philosopher by the name of Dongmugong Lee Jema analyzed that one's nature and feelings can change his or her external matter and the function of internal organs by purity or impurity of one's mind. Based on these analysis, Dongmugong discovered 'sasangin' which puts more emphasis on one's state of mind compared to the outside the world. Also, Dongmugong tried to figure out the connections between Confucianism and medical science. If you use change fire and stone theory which is difference between hado and nock-seo to expain four seven theory one's mind could be define as four natural characters and seven feelings. From four seven theory four is ying and seven is yang. This is the method of cure and understand the structure of human body. And also, four natural characters and seven feelings can be divided into heaven and earth. You can see Four natural characters is far more similar to heaven and seven feelings are similar to earth. According to four-seven theory hado is permanent and you can find out 'sasangin' is permanent also. Since seven feelings are influenced by sam-jae, you can analogize there are 21 different types in 'sasangin'. An underlying principle should there be 28 different types of sasangin instead of 21 different types of sasangin but one quater of sasangin is hidden according to samhyuniljang theory. All creations in the world are organized by unification of the great absolute and symmetry distinction of yingyang. With these facts identity of the heaven, earth and man which is named samjae generates symbols of independent sasang. And also, sasang generates relations between five element, six energy and the six family relation. From six family relation comes seven feelings of man which creates a category of the eight trigrams for divination and unification of nine palace. All these process are united.

율곡철학(栗谷哲學)에 있어서 '마음'의 문제 (The Issue of Mind in Youlgok's Philosophy)

  • 이상익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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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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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7-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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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율곡의 마음에 대한 논의는 '심성정의일로설(心性情意一路說)'과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로 대변된다. 심성정의일로설(心性情意一路說)은 두 의미를 지닌다. 첫째, 마음과 본성 감정 의지는 각각 별도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마음에 속하는 여러 차원의 양상들이라는 것이다. 둘째, '인심과 도심,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사단과 칠정' 등을 각각 이원적으로 대립시키지 않고 일원적으로 통합시켰다는 것이다.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은 이(理)의 규범성과 기(氣)의 능동성이라는 관점에서 마음과 본성 감정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율곡은 기(氣)(마음)는 '발(發)하는 작용의 주체'이고, 이(理)(성(性))는 '마음의 작용을 통해 발현되는 내용'이라 하였다. 이렇게 마음의 작용을 통해 본성이 발한 결과를 감정이라 한다. 율곡의 '이승(理乘)'은 '기(氣)를 주재한다(기(氣)의 표준이 된다)'는 의미와 함께 '기(氣)에 의해 실현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요컨대 마음은 본성을 실현하는 주체이지만, 또한 마음의 작용은 본성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理)(본성)의 규범성과 기(氣)(마음)의 능동성을 동시에 주목하는 것이 율곡철학의 특징이었다.

장현광 성리설의 연원에 대한 고찰 - 나흠순 성리설과의 관련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ources of Jang Hyeongwang's Theories of Li and Ch'i)

  • 김용헌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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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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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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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나흠순의 이기일물론과 인심도심성정설은 장현광의 성리설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장현광의 경위설은 리기불상리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점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나흠순의 이기일물설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장현광의 이기경위설은 나흠순의 이기일물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장현광이 리와 기가 두 가지 존재가 아님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이론체계에서 리와 기는 내용적 일치의 관계에 있지 않다. 둘째, 장현광의 철학체계에서 최고 범주는 어디까지나 리라는 점이다. 그의 이기론이 지닌 이러한 특징은 나흠순의 이기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면모이다. 장현광이 도심을 성, 인심을 정으로 본 것은 나흠순의 인심도심성정설의 영향이 분명하다. 다만 그는 체는 용을 겸할 수 있다는 논리로 도심이 미발뿐만 아니라 이발도 겸한다는 논리를 펼쳤기 때문에 그의 인심도심설이 나흠순의 설의 단순한 답습이라고 하기 어렵다. 더욱이 공과 사를 기준으로 도심과 인심을 구분한 인심도심공사설은 인심과 도심을 모두 이발의 정 층위에서 이해했다는 점에서 나흠순의 인심도심성정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렇다면 장현광 성리설의 형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한 마디로 장현광의 철학이론은 호발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주된 철학적 관심사는 리(사단 도심)와 기(칠정 인심)를 두 근본으로 여기는 학설을 비판하고 리와 기를 하나로 통합하는 철학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결국 리기경위설로 대표되는 그의 성리설은 당시 조선유학계의 학문적 상황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보길도 세연정(洗然庭)의 공간구조 형식에 내재한 전통색채 분석 (Analysis of the Korea Traditional Colors within the Spatial Arrangement and Form of the Traditional Garden of Seyeonjeong)

  • 한희정;조세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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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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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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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세연정의 공간구조 및 형식과 공감각적, 상징적 인지적 요소에 내재하는 전통색채를 분석함으로써 첫째, 세연정 작정에 내재한 전통 색채를 찾아내고 동시에 그 의미를 해석함으로써 세연정 작정의 또 다른 해석 방법을 제시하고 둘째, 기존에 제시된 별서정원의 전통색채 분석 방법론의 신뢰성과 타당성을 검증함을 부목적으로 하였다. 연구방법으로는 전통색채 및 세연정의 작정 배경과 이론, 전통색채 분석 방법 등에 대해서는 문헌연구를 통해 수행하였으며, 전통색채 분석 방법을 세연정 별서에 실증적으로 적용하여 연구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특히, 전통색채 분석 방법으로는 세연정에서 나타나는 공간적 요소를 크게 시각적, 공감각적, 상징적 인식적 공간 요소로 구분하여 시각적 공간으로 공간 및 경물의 위치와 방위, 공감각적 공간으로 계절과 시간 및 오관, 상징적 인식적 공간으로 칠정과 사단 등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공간요소에 대한 오정색 체계 분석하여 그 의미를 해석하도록 하였다. 연구 결과를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연정에서 나타난 공간구조 및 형식은 세연정(洗然亭)을 중심으로 하여 세연정의 사각형 누각의 평면 형태에 따라 동남, 서북의 두 개의 방위 축으로 구분될 수 있었다. 둘째, 세연정에 나타나는 전통색채는 '백색', '청색', '흑색', '적색', '황색 '순으로 나타났다. 셋째, 전통색채 분석에서 청렴과 순결을 상징하는 '백색'이 가장 많이 출현하는 것은 작정자인 윤선도가 맑고 깨끗하게 정치적 미련 없이 세속에 묻혀 살아가는 것을 즐기고자 작정하였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또한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청색의 출현이 우세를 보이는 가운데 지혜를 상징하는 '흑색', 신성하고 숭고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적색'이 유사한 비율로 출현하고 높고 고귀한 지위를 상징하는 '황색'이 제일 낮은 빈도로 출현하는 것은 윤선도가 세연정을 통해 벼슬 등 지위보다는 자연을 즐기며, 그를 통해 지혜를 쌓고, 춤과 시 짓기 등 놀이를 통해 윤선도 스스로 신성하고 고귀한 존재로 여생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의도로 작정되었다는 것과 일치되거나 적어도 연관되어 해석될 여지를 보였다. 넷째, 이상의 연구 결과는 본 연구에 선행된 소쇄원의 전통색채 분석과 의미 해석과 비교 고찰해 보았을 때 소쇄원에 처음으로 적용된 전통색채 분석 방법론에 대한 신뢰성과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