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이주현, 유혜경, 김찬주, 홍나영 (2001). 현대 한국인의 한복 착용: 아시아 전통문화 양식의 전개과정에 관한 비교문화 연구(제3보). 한국의류학회지, 25(1), p. 48
과학기술학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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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조효숙 (2007). 생활 속의 아름다움 - 우리 옷, 배자 전시회 도록. 재단법인 아름지기, 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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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조오순 (2003). 배자 디자인 개발에 관한 연구(1). 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생활과학연구, (7), pp. 137-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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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유희경, 김문자 (1998). 한국복식문화사. 서울: 교문사. p.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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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위의 책, p.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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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6두품 여자는 모직으로로 만든 라(罽羅), 색사로 무늬를 넣은 라(錦羅), 포방라. 들꽃 무늬를 넣은 라(野草羅), 금박. 은박 혹은 금과 은으로 그림을 그린 것(金銀泥)의 사용을 금하였으며(六頭品 女. 禁 罽羅錦羅布紡羅野草羅金銀泥). 5두품 여자는 모직으로 만든 라(罽羅), 금(錦), 들꽃 무늬를 넣은 라(野草羅), 포방라, 금박, 은박 혹은 금과 은으로 그림을 그린 것(金銀泥). 협힐(夾纈)의 사용을 금했고(五頭品 女. 禁 罽羅錦野草羅布紡羅金銀泥夾纈), 4두품 여자에게는 능(綾)의 사용이 허용되었다(四頭品 女. 用 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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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김정자 (1996). 韓國 軍服의 變遷史 硏究. 세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p.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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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홍나영 (1999). 후단 방령반비에 관한 고찰. 복식, (44). p.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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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유희춘. 미암일기 (眉巖日記). 유희춘은 학문이 뛰어난 사대부로서 정5품 홍문관 교리에 제수되어 왕의 글을 가르치는 직분을 맡았다. 유희춘이 55세가 되는 해인 1567년부터 1577년까지 11년에 걸쳐 거의 매일 같이 쓴 “미암일기(眉巖日記)”에는 매일의 일상사를 기록함은 물론 사대부가에서 통용되는 복식의 명칭과 의차(衣次)도 비교적 자세히 담고 있다. (조효숙 (2003). 파평윤씨 모자미라 출토직물에 관한 연구. 파평윤씨 모자미라 종합 연구논문집. 고려대학교 박물관, 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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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김미자 (1977). 개화기의 문관복에 대한 연구. 복식, (1), p.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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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최남선. 조선상식(朝鮮常識). 제4(第4). 전복조(戰服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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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위의 책, p. 53, 해당 도식화는 참고 문헌에 나와 있는 유물사진과 실측 크기를 토대로 연구자가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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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앞의 책, 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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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위의 책, 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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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위의 책, p. 23. 18세기의 유물을 기본으로 현대 여생 치수에 맞도록 약간의 치수를 조정하여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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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신윤복. 쌍륙삼매(雙六三昧).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소장, 국보 1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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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한국문화 콘텐츠 컬렉션 고유복식. 자료검색일 2008. 11, 자료출처 http://clothl.krp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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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부혜성 (1998). 현대 패션디자인을 위한 배자의 조형성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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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유희경, 김문자. 앞의 책, 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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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임현주, 조효숙 (2004). 조선시대 16 . 17세기 출토복식의 직물유형 및 문양에 관한 연구. 복식, 54(8), pp. 11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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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위의 책, 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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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위의 책, p. 249. 해당 도식화는 참고 문헌에 나와 있는 유물사진과 실측 크기를 토대로 연구자가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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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80. 예고27, 장복2, p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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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영조실록(英祖實錄). 52년(五十二年) 3월조(三月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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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주성희 (1982). 일본 정창원의 '오녀배자'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p.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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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위의 책, p.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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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5). 名選 中 민속 . 복식. 서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p.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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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나라국립박물관 (1988). 제40회 正倉院展 도록.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p.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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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옷감 사용에 있어 남자의 경우, 진골 대등은 표의와 동일하였고(眞骨大等. 同 表衣), 5두품은 내의와 동일하며(五頭品, 同 內衣), 4두품에게는 시(絁), 면(綿), 주(紬)의 사용이 허용되었으며(四頭品, 用 絁綿紬), 여자의 경우. 진골 여자는 내의와 동일하며(眞骨 女, 同 內衣), 6두품 여자는 계(罽), 수(繡), 라(羅), 세라(繐羅)의 사용을 금하였고(六頭品 女, 禁 罽繡羅繐羅), 5두품 여자에게는 계(罽), 수(繡), 금(錦), 들꽃무늬를 넣은 라(野草羅), 세라(繐羅) 사용을 금했으며(五頭品 女. 禁 罽繡錦野草羅繐羅), 4두품 여자는 바지와 동일하였다(四頭品 女. 同 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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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나라국립박물관 (1998). 제50회 正倉院展 도록.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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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왕선정 (2007).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를 응용한 현대 배자 디자인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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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박두이. 앞의 논문, pp. 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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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고려사(高麗史). 第72卷, 志 第26, 여복(與服), 서문(序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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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위의 책, pp. 298-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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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문화관광부 (2001). 우리옷 이천년. 서울: 문화관광부 한국복식문화 2001년 조직위원회, pp.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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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위의 책, p. 212. 해당 도식화는 참고 문헌에 나와 있는 유물사진과 실측 크기를 토대로 연구자가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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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이진영. 앞의 논문, p. 44. '태종실록'에는 태상왕(태조)의 숭하 시 상정한 여자의 상복으로 왕비와 빈의 것은 대수장삼(大袖長衫)이고 궁주 이하 옹주 및 시녀들의 상복은 대(帶)가 있는 배자 착용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에는 28년 왕비 상제에 상정된 세자비의 이하의 상복에 배자와 대가 기록되어있다. 또한 조선 전기의 국가 의례를 법제화 한 '오례의'의 흉례의식에도 배자는 대수 다음가는 상복으로 규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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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송문흠. 한정당집(閑靜堂集). 卷七. 雜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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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위의 책, p.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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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이진영 (1997). 배자 고찰을 통한 한, 중, 일 복식문화의 비교.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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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이경자, 홍나영, 장숙환 (2003). 우리 옷과 장신구. 서울: 열화당, p.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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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박두이 (1988). 배자의 양식변천에 관한 고찰.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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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경기도박물관 (2004). 심수륜묘 출토복식. 용인: 경기도박물관, p.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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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위의 책, p. 147. 해당 도식화는 참고 문헌에 나와 있는 유물사진과 실측 크기를 토대로 연구자가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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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
위의 책, p. 59. 해당 도식화는 참고 문헌에 나와 있는 유물사진과 실측 크기를 토대로 연구자가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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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
위의 책, 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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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조효숙 (2007). 앞의 책, pp.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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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위의 책, pp. 14-31. 재단법인 아름지기에서는 2007년 10월 23일부터 2007년 11월 22일까지 열린 '생활 속의 아름다움 - 우리 옷, 배자' 전시회를 위하여 조효숙의 고증 하에 배자 작품을 재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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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
조효숙. 문화재청 (2006). 문화재대관 : 중요민속자료 2. 복식 . 자수 편. 대전: 문화재청. p.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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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
'광해군일기'중 광해군 11년(1619). '예조에서 '당상관은 아청색의 무늬가 있는 비단 단령(鴉靑有紋四段團領) 대홍필단 더그레(加文刺)를 입는 것이 전부터 정해진 제도였으니 변경해서는 안된다'고 아뢰었더니 광해군은 이에 대하여 '세자의 복색과 당상관의 복색을 같게 할 수는 없으니, 조정의 관원이 대홍 더그레를 입는 것을 금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한자 '加文刺'는 곧 더그레로, 당시의 반팔 옷인 '답호'를 뜻한다. 또한 1623년 '상례언해'에 '답호는 더그레라는 옷으로, 단령이나 심의의 받침옷으로 입는데 '오례의'에 '반팔 옷(半臂衣)'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더그레가 답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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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
위의 책, pp.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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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
위의 책, p. 25.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된 16세기 남성의 배자 유물을 현대 여성 치수에 맞도록 약간의 치수를 조정하여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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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
손경자, 김영숙 (1982). 한국복식사자료선집 - 조선편 3. 서울: 교문사. p.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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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
조효숙 (2006). 앞의 책, p.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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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
위의 책, p.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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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
위의 책, pp.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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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
고려대학교박물관 (1990). 仁村金性洙先生 誕長100周年紀念 服飾類名品圖錄. 서울: 고려대학교박물관, p.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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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
박두이. 앞의 논문,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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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최무장, 임연철 (1992). 고구려벽화고분. 서울: 신서원, 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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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
인조실록(仁鳥實錄). 2년(二年) 1월조(一月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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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
유희경, 김문자. 앞의 책, pp. 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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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
김동욱 (1982). 신라통일기의 복식. 한국의 복식. 서울: 한국문화재보호협회. pp. 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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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고려사(高麗史). 第72卷, 志 第26, 여복(與服), 의위(儀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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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
위의 책, p. 44. 해당 도식화는 참고 문헌에 나와 있는 유물사진과 실측 크기를 토대로 연구자가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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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
위의 책, pp.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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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
김부식. 삼국사기(三國史記). 6권, 신라본기. 색복조(卷六, 新羅本紀, 色服條). 흥덕왕 복식금제(興德王 服飾禁制)에는 복식명과 직물명. 색상에 관한 명칭이 언급되어 있어 그 당시 복식제도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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