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Introduction
2010년 중반 이후 대한민국의 기술 담론에서 가장 지배적이었던 담론은 (2016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간의 바둑 대결’ 이벤트로 대변되듯) 제4차 산업혁명 담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려는 사회 각 부문에서의 대응책에 대한 논의가 매우 분주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분주함 속에서 한국 기술 문화의 본거지이자 그동안 쇠락의 길을 걸어온 세운상가는 2017년 9월 ‘메이커시티 세운’(Maker City Sewoon)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도시재생과 산업재생의 프로젝트로 새롭게 변신을 시도해 왔다.
서울시와 (서구의 메이커 운동을 국내에 도입하고자 한) 다수 기술 운동가들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로 이뤄지고 있는 세운상가의 혁신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업 실행의 전제에 해당되는 문제의식에 있다. ‘메이커시티 세운’은, 용어의 어법이 말해주고 있듯이, 한편으로는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전문가나 전문업체(메이커)가 제조한 물건을 그저 구매해 소비하던 일반 대중이 이제는 직접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제작자(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지구적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을 국내적으로 수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창의적 제작 문화를 이끌어 온 세운상가의 역사성을 계승하자는 문제의식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학술적인 견지에서 ‘메이커시티 세운’(Maker City Sewoon) 프로젝트가 주목되는 이유는, 이 기획이(인공지능과 3D프린터 등의)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사회변화를 이끌어간다는 가시적 증거물이 넘쳐나는 현 상황에서 기술결정론적인 시각으로부터 뉴테크놀로지에 대한 선점 능력이 한국 사회의 미래 모습을 좌우한다고 보는 한국사회의 근시안적인 태도와는 전혀 다른 인식론 상의 출발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즉, 기술이 사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기술을 구성한다는 인식, 다시 말하자면 기술을 둘러싼 그 사회의 문화가 기술의 발전 방향을 결정한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메이커시티 세운’ 프로젝트가 표방하고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 문화’인 것이며, 그 문제의식의 밑바탕에 기술적 아마추어리즘이 가진 창조성과 변혁성에 대한 사회적 주목이 자리 잡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 문화를 규명하고자 하는 학술적 작업으로서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메이커 문화의 국내적 수용과정에 대한 연구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1]. 그러나 이러한 최근의 학술적 성과들은 현재적 국면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 초점 맞춰진 나머지, 청계천 제작 문화의 역사적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전자적 제작 문화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소홀한 편이다. 예외적인 연구로는 2017년 2월 27일 아세아 전자상가에서 이뤄진 워크숍 보고회 〈키트의 사회문화사〉가 있다. 〈키트의 사회문화사〉 프로젝트는 세운상가를 비롯한 청계천 일대와 한국의 기술 문화를 ‘키트’(Kit)를 매개로 추적하며, 키트가 개인 자작(自作) 문화 이상의 사회문화적 현상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기록한 작업이다. 특히 퍼스널 컴퓨터 이전의 시대, 즉 1960년대 부터 1980년대까지 타임라인에서의 키트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간, 매체, 정책, 인물, 행사, 지식의 네트워크를 그려 내고 있다[2]. 한국의 역사적 맥락으로서 청계천 기술시장의 존재에 주목하는 일부 연구가 있기는 하지만 에세이적 성격의 글에 가깝거나[3], 전자·정보 기술을 중심으로 하여 청계천 제작 문화의 역사를 검토하고 있는 본격적인 연구에서도 초점은 공간성의 역사적 변화에 두고 있을 뿐, 기술적 아마추어리즘에 기반한 ‘전자적 제작 문화’에 대해선 일종의 전사(前史)로서만 다뤄지고 있다[4].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연구의 현재적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는 ‘메이커 문화’를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고 변경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소스 코드를 공개·공유하는 해커문화가 소프트웨어를 넘어 하드웨어의 제작에 적용되면서 나타난” 결과로 보고 있다는 점에 있다. 말하자면 ‘메이커 문화’의 기원을 해커 문화로 보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메이커들이 컴퓨터의 모든 부위나 시스템을 능숙하게 사용하면서 스스로의 의지나 사상을 실현하려는 해커의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인식이 전혀 그릇된 것은 아니지만, 놀이라는 시도를 근간으로 한, 미디어와 인간 간의 관계에서 쌍방향성을 되찾으려는 비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해커의 문화적 선구자는 ‘아마추어 무선가’(아마추어 무선 HAM)-사전적 의미에서 아마추어 무선은 직업이 아닌 취미 활동으로서 음성이나 모스 부호로 교신하는 등의 무선 통신을 즐기는 취미를 지칭하는 말 – 이다[5].
이러한 견해에서 보면,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하여 세운 상가가 지닌 ‘메이커 문화’로서의 창조적 잠재력에 주목하고 창조적인 한국 기술 문화의 역사적 기원을 탐구하고자 한다면, 작업의 첫 출발점이자 대상은 ‘무선’을 열망하는 문화에 맞춰져야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지만 최근 아마추어 무선 햄의 지방자치단체의 실용적 활용에 대한 논문만 발표되었을 뿐[6], 아직까지 아마추어 무선 햄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 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단행본이 발행된 바 있지만[7], 기술 문화적 측면이나 미디어 역사의 맥락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었다. 비록 최근의 연구를 통해, 1960년대 펠팔(pen pal)과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 등의 아마추어 통신문화가 당시의 냉전적 세계질서 속에서 대외 방송 담당자에 의해 적극 활용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지만[8], 이 역시 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라고 보긴 힘들다.
이렇듯 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학술적 문제의식의 부족과 자료 접근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아마추어 무선의 취미 문화적 측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이 유지되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취미 문화가 형성되었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한국 아마추어 무선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그동안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던 한국 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한국 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시각을 제시하고, 그 시각에 입각하여 진행된 외국의 연구들을 검토한 후 주요 연구 쟁점들을 도출해 내고자 한다.
II. Theoretical Background
1. The 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
기술 문화사나 기술과 문화 간의 관계를 조망하는 이론적 자원으로서 유용한 관점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은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구성주의(the 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 SCOT)’ 이론이다. 특히 이 이론에서 제기하는 매체화 테제는 특정한 미디어 현상의 전과 후의 논리적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연구 시각이다. 특히 SCOT 이론이 주로 천착하고 있는 초기사(初期史) 국면에 대한 관심은 본고의 기획, 아마추어 무선 문화의 역사적 변화를 검토하는데 필요한 연구 쟁점을 도출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시각을 제시해 준다.
기본적으로 SCOT 이론에서는 기술과 사회 간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즉, 이 둘 간의 관계를 상호작용적인 것으로 파악하면서 이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이론적 전제로서 기술과 미디어 개념이 별개의 이념형이라고 이해한다. SCOT의 입장에서 미디어 역사를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 브라이언 윈스톤(Brian Winston)에 의하면, 미디어는 사회적 생성물이고 정보 기술은 그러한 사회적 생성물이 결실을 맺게 만드는 데 있어서의 핵심적이지만 단지 하나일 뿐인 요소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미디어는 기술적 요인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들이 모여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며, 문화적 상황에 적합한 형태로 사람들에게 채용되어 그 기능을 발휘하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9].
이러한 기술의 사회적 구성주의의 이론적 입장을 특정 미디어 현상 등장의 전과 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 미쓰코시 신(水越 伸)의 소위 ‘매체화 테제’이다. 그가 정리한 매체화 테제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하위 테제들로 구성되어 있다[5].
첫째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기술자 집단 내에 등장해도 그것이 미디어로서 사회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긴 세월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보통 새롭다고 생각되는 미디어의 생성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적 계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는 새로운 미디어는 그것에 선행하는 오래된 미디어의 비유에 통솔되면서 그 사회적 양태를 형성해 나간다는 점이다. 어느 시대에 있어서도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의 ‘새로움’이라는 특성을 순수하게 지각하지는 못하고, 단지 새로운 미디어와 지금까지 경험해 온 미디어의 양태를 비교해 보고 서로 겹치는 부분에서 새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오래된 미디어의 비유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지를 얻은 새로운 미디어는 그 양식을 서서히 독자적인 형태로 변화시켜 나가지만, 넷째 미디어와 사회의 상호작용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는 사회의 중심 영역에서부터 여러 가지 형태의 반발과 비판, 그리고 반동이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에는 여러 가지 풍부한 상상력이 다양한 사회영역으로 제시되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디어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만, 어떠한 한 가지 모습이 국가적․산업적으로 확립되면 그러한 여러 가능적인 양태가 잊혀 간다는 것이다[10].
2. Amateur as a Cultural Intermediary
본고의 기획과 관련하여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구성주의’ 이론이 가지는 강점은 무엇보다 문화 매개자로서의 아마추어가 가진 영향력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요시미 슌야(吉見俊哉)에 의하면, 전화나 축음기, 라디오 등과 같은 “새로운 음향 테크놀로지가 사회화해 나가는 초기 단계에서 (이미 사회적 지위를 확립한 음악가나 방송업자 같은 전문 송신자가 아니고, 신기술에 완전히 수동적인 청중도 아닌, 오히려 그 중간에 위치하는) 넓게 보면 ‘아마추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활용하며, 나아가 거기에서 복제된 ‘소리 문화’를 어떻게 형성해 갔는가 하는 문제는 음향 미디어의 사회적 형성과 수용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11].
무엇보다 무선(radio) 테크놀로지가 미디어로 발전되는 과정에서 아마추어 무선이 담당한 역할은 매우 큰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무선은 유선전신이나 유선전화의 연장선에 놓인 선박 무선이나 군사 무선이라는, 약간 특수한 사업영역으로 확립될 것처럼 여겨졌다. 즉, 일대일 통신의 용도로 굳어질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음성의 송수신, 이른바 무선 전화가 세계 각지의 아마추어들에 의해 왕성하게 행해지게 되면서, 매스미디어로서의 의미, 즉 방송으로서의 의미가 발견되었다. 선행 미디어의 영향을 수용하여 거대한 사업으로 발전되었던 무선 전신에 비해 무선에 의한 음성의 송수신(즉, 무선 전화) 활동이 1차 대전 이후에도 구미 각지의 아마추어 발명가와 무선가들의 손에 맡겨져 있던 시기, 특히 젊은 남자들에게 무선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들은 무선 소년으로 불렸으며, 대기가 청명해지는 밤이 되면 무선으로 모스 신호를 듣거나, 먼 곳의 동료와 음성에 의한 교신을 하기도 했다. 첨단적인 무선 소년들의 꿈은 지구 전체를 무선으로 뒤덮는 것으로, 실시간으로 양방향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민주주의 사회를 발전시켜 가고자 하는 고결한 것이었다. 그것은 인터넷의 비전과 기본적으로 같다고 볼”[5]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무선은 일방향의 방송이라기보다는 쌍방향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국의 군 무선국에서 군사 무선기술을 습득한 이후 전후에 다시 민간으로 돌아온 아마추어 무선국 중 뛰어난 음성송신 기능과 장치를 갖춘 무선국은 대중을 수신자로 상정하여 정기적인 정보 서비스를 행하는 확실한 수익시스템을 가진 방송국으로 출현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요시미 슌야는 통신적 용도와 방송적 용도의 기술적 가능성이 열려 있었던 “라디오(radio, 無線)가 ‘방송’으로 수렴해 가는 데는 소리를 소비하는 대중의 부르조아적 욕망과 소리를 소비하는 문화가 하나의 힘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하였다[11].
Fig. 1. SCOT's description of the popularization process of amateur radio culture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구성주의’ 이론의 관점에 서서 ‘무선 테크놀로지의 미디어 역사’ 속에서 아마추어 무선(HAM)이 담당한 역할을 규명하고자 했던 기존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추어 무선은 무선 테크놀로지의 (양방향의 통신용에서 일방향의 방송용으로의) 용도 변화과정에서 기존 전문가와 대중 사이를 매개하는 문화매개자 역할을 담당하며, 대중들의 욕망과 소리를 소비하는 대중문화가 기술적 (용도) 변용의 역선(力線)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방송용으로의 용도 변화과정은 무선 테크놀로지에 대한 초기 아마추어 무선가들(혹은 무선 매니아)의 경험이 엔드유저(end-user)의 문화를 결정하는 과정, 즉 초기 기술 문화가 대중화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선(양방향)에서 라디오 방송(단방향)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대상이 점점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처음에 등장한 것은 전자파 이론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과학적인 환희였고, 두 번째는 전자파에 모스 신호를 실어서 송수신하는 것이 사람들을 매료시켰으며, 세 번째로는 음성의 송수신에 이용되는 무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무선 소년들은 처음에는 잡지를 읽거나 세계 각지의 발명가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스스로 연구하여 만들어갔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무전기는 세트로 판매되어 이것이 더 많은 무선 소년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의 정보 내용을 즐기게 되는 단계가 온 것인데, 이 마지막 단계가 일반 대중들에게 보급된 라디오이며, 현재의 방송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5].
III. Deriving Research Issues
1. Implications of Previous Research
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본격적인 외국 연구들에서는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 집단의 자기 인식과 무전기 및 라디오의 자작(自作) 문화, 전자제품 시장과의 관계 등이 탐구되었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텐 헤어링(Kristen Haring)의 연구는 단행본 분량의 종합적 연구로서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의 자기 인식, 국가적 편차의 요인, 전자시장 간의 관계 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 그는 왜 20세기 중반 미국인들이 취미(recreation)를 위해 쌍방향 라디오를 작동시켰는지, 어떻게 취미가 사회적·기술적 접촉을 형성시켰는지를 검토하였다. 그에 의하면, 아마추어 무선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근거해 번성했다. 그가 주로 검토했던 내용의 첫 번째는 미국 아마추어 무선가들의 자기 인식 문제였다.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들은 라디오 테크놀로지의 취미적 적용에 의해 뭉치고 자신들의 전자공학적 스킬에 의해 구별되고 있었기에, 자주 스스로를 ‘기술적 형제애’(technical fraternity)로 묘사할 정도였다. 그러나 스스로를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라고 말해왔으나, 20세기 중반 라디오 취미 공동체는 현격하게 동질적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강하게 남성적이고 중산층적인 사회경제적 계급성을 띠게 되는 ‘미묘하지만 의도적인 과정’을 탐구하였다. 한편, 그가 탐구하고자 했던 두 번째 연구 문제는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들이 압도적으로 미국에 편중되었던 맥락적 요인에 대한 검토이다. 그에 의하면, 초창기 국제 커뮤니케이션계의 전망들에서는 햄(HAM) 라디오에 대하여 많은 열광과 함께 우려도 표명되었지만, 미국인들은 이 취미를 지배하게 되었다. 1960년 미국에서는 20만 명 이상의 아마추어 면허 소지자가 있었지만, 두 번째로 많은 면허 소지 국가였던 영국은 약 9,400명에 불과하였고, 대략 절반가량의 국가들은 25명 이하였고, 단지 16개국 만이 1,000명 이상의 면허 소지자를 보유했었다. 이와 같이 지역적으로 편중되었던 주된 이유는 군사기술에 대한 냉전 펀딩의 증대가 특정 나라에서는 이 취미에 대한 지지 요인으로 작용되었던 반면, 냉전이라는 글로벌한 긴장의 시기에 편재된 ‘비밀주의나 고립의 기후’는 사적이고 국제적인 연결을 추구하는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들을 의심하게 하게 하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연구 문제는 취미로서의 아마추어 무선이 (제2차 세계대전부터 1970년대까지 그 시대의 전형적인 기술이었던) 전자기술과 맺은 관련성이었다. 그에 의하면, 아마추어 무선의 라디오 산업에 대한 기여는 부품이나 설비 차원의 직접적 기여보다는 인적 영향이 컸다고 보았다. 그리고 오히려 1930,40년대에 성장했던 라디오 전자기술 시장이 아마추어 무선의 취미 시장의 성장을 지원했다고 보고 있다. 즉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들의 레저 추구 경향성은 하이테크 민간인과 군사 직업으로 확대시키는 요인이었고, 전자기술 시장에 대한 지원을 배경으로 라디오 취미의 조직들은 미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FCC)에 “쌍방향 라디오는 전략적인 기술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설득적인 로비 활동에 나서서 결국 아마추어 용도의 전파 대역을 유지할 수 있었다[12].
한편 미조시리 신야(溝尻眞也)의 연구는 1945년을 전후로 한 시기 라디오를 둘러싼 일본의 경험이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그 구도의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에 의하면, 일본의 1930년대 (기술적 실천으로서의) 라디오 자작(自作, DIY)은 기본적으로 근대의 상징인 기술에 대한 동경(憧憬)이라는 맥락 속에서, 정보나 오락의 희구, 거리를 초월하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욕망,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의 내재화 욕구가 교착하는 지점에서 라디오 자작이 실행되었다. 그러나 라디오가 매스커뮤니케이션인 방송으로 확정되었던 1945년 이후 1950년대 전반기까지 시기 동안에는, 취미로서의 라디오 키트(Kit) 조립에 몰두하는 소년들도 또한 반드시 정보나 오락만을 지향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미국적 풍요로움에 대한 동경이라는 맥락 속에서,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취미화되는 공작(工作) 문화의 흐름 중에서 이들은 전문성을 탈색시키는 라디오 키트를 조립하였다. 이것은 방송의 청취에 한정되지 않고 물질적 요소와 결합되어 있던 라디오 경험의 존재 방식이었다. 이와 같이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전반기까지 일본의 라디오 자작은 라디오 수신기의 보급과 확대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고, 수신기를 자작하는 행위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방송이라는 매스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라디오 경험을 확대시키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라디오 경험의 구도는 1950년대 후반기 이래로 변용되었다. 1951년에 일본 단파방송이 개국하고 1952년에 개인에 의한 전파의 송수신이 해금되면서, 이러한 행위를 구동시켰던 ‘거리를 초월하는 커뮤니케이션에의 욕망’은 아마추어 무선이라고 하는 자율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1950년대 후반기 이래 트랜지스터의 보급에 즈음한 전기제품의 고성능화는 사용자가 제품의 기술적 차원에 관여할 필요성을 축소시켰다. 이러한 흐름에서 라디오 자작은 그 이후에 오디오 자작으로, 그리고 그것에 한정된 매니아에 의한 행위로 변형되었다. 이것은 라디오 경험의 존재 방식이 방송 청취로 축소됨과 동시에, 라디오를 기술·물질로서 경험하는 신체로 축소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논의를 그림으로 요약한 [그림 2]는 1930년대 전간기(戰間期), 즉 만주사변으로부터 태평양 전쟁 발발까지의 기간과 전후기(戰後期), 그리고 1950년대 말 이후의 시기에 걸쳐, 라디오에 대한 일본 수용자들의 경험이 어떻게 변용되었는가를 ‘기술의 내재화 욕구’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욕망’, ‘정보 및 오락의 욕구’가 적절한 비율로 결합된 라디오 자작 문화의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13].
Fig. 2. Transformation of the driving factors surrounding the radio in modern Japan [13]
2. Future Research Issues in Korean Amateur Radio HAM Research
본고의 연구기획과 관련하여 위에서 살펴본 기술의 사회적 구성주의 이론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마추어 무선 면허를 보유하고 있었던) 미국 및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된 자본주의 분업 질서 속에서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일본의 사례를 다루고 있는 두 연구가 시사하는 연구 쟁점은 대체로 세 가지이다.
첫째는 아마추어 무선(기술)문화의 역사적 단계와 문화 형성의 사회맥락적 요인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서구 역사를 기준으로 해서 볼 때 한국의 아마추어 무선(기술)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1950년대는 이미 무선 테크놀로지가 주로 방송 용도로 확정된 역사적 시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서구나 일본에서 나타났던 역사적 경험들이 압축된 형태로 발현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령 역사적 시기에 따라 일본의 라디오 자작 문화에 영향 미쳤던, 근대의 상징으로서의 기술에 대한 동경과 미국의 풍요로움에 대한 동경이라는 맥락이 동시에 작동되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하는 연구가설이나, 순수하게 원거리 통신에 대한 욕망이 아마추어 무선 매니아를 형성시켰던 서구사회나 일본과 달리 195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야 라디오 방송의 제도화가 본격화되었던 한국의 역사적 상황은 한국의 아마추어 무선 문화가 일방향의 방송문화(즉, 정보와 오락에 대한 희구)에 의해 좀 더 자극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가설이 이에 해당한다. 현재까지 회고담을 통해 수집된 초기 한국 아마추어 무선사들의 커리어패스(career-path)에 기반해 볼 때, 한국 아마추어 무선 매니아의 기술 문화적 토대는 광석식 라디오 자작(自作)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아마추어 무선(기술) 문화의 한국적 결과이지 않을까 추정된다.
1950,60년대 한국 아마추어 무선(기술) 문화의 역사적 구도(構圖)를 가늠하는 이 연구 쟁점은 기본적으로 역사 연구에 있어서 시기구분론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가 겪은 경험의 단계를 정리한 [그림 1]에서 제시하였던 바와 같이,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의 경험은 ‘무선 문화의 대중화’의 방향에서, ‘1.과학적 환희 → 2.신호 송수신 → 3.무선기 조립 → 4.키트(Kit) 조립 → 5. 무선 청취(BCL, Broadcasting Listener)’의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앞서 라디오 자작 문화 변용의 역사적 구도를 추적하고자 했던 미조시리 신야의 연구에서는 키트 조립을 구도 변화의 분기점으로 삼은 바 있다. 따라서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의 경험 단계를 기준으로 하여, 무선 관련 (취미) 잡지에 대한 내용분석과(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회원록과 회고담의 비교분석을 통한)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 소지자들의 커리어패스 분석, 그리고 한국 키트 문화의 변화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일제강점기 무선 문화와 광복 이후 무선 문화 간의 관계, 그리고 광복 이후 무선 문화 구도의 변곡 시기를 판별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는 1950,60년대 한국의 아마추어 무선 문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자율적인 문화로 성립되기 어렵게 만들었던 국가정책적 요인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후 전 세계적인 냉전 질서 하에서 광복 이후 남북분단까지, 그리고 그 이후 군사적으로 최전선에 위치한 국가일 뿐만 아니라 소련의 일상 문화와 미국의 일상 문화가 대립하는 문화적 최전선에 위치한 ‘변경국가’(frontier state)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14]던 한반도의 국제정치학적 메커니즘을 고려할 때, 앞서 헤어링이 표현했던 바의 “냉전이라는 글로벌한 긴장의 시기에 편재된 ‘비밀주의나 고립의 기후’”는 1950년대 한국 사회에서 더 강렬하게 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정책에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본고의 시론적인 사료 검토에서도, “무선을 이용하여 허허실실의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를 ‘간첩 통신’으로 간주”[15]해야 한다는 체신부의 견해가 제기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던 만큼, 라디오/무선의 쌍방향적 가능성을 봉쇄하고자 한 정부의 아마추어 무선정책과 이에 대한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들의 반응, 그리고 “체신부와 교섭을 통해 아마추어 무선의 완전 개방을 위해 노력”[16]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표명하고 있는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KARL)의 로비활동과 논리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 아마추어 무선(기술)문화의 냉전적 변용 양상을 살펴보는 연구 쟁점을 위한 주요 연구 자료로서는 한국 전파 관리 정책의 변화를 담고 있는 통사 자료인 〈전파관리 50년사〉가 있는데, 이 자료를 기본으로 하여 전파관리법의 제정 과정과 전파감시 체제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 밖에 활용할 수 있는 사료로는, 주로 체신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잡지로서 무선전파에 대한 규제 담론을 담고 있는 잡지인 〈체신문화〉, 그리고 비록 1970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했지만 무선업계 종사자들의 교양지로 발행되었던 〈무선계(無線界)〉등의 잡지에 실린 기사들이 있다. 한편, 정부의 아마추어 무선 정책에 대한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들의 반응과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로비 활동과 논리 등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는 1955년 4월 창립 후 12월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공식잡지인 <KARL>, 그리고 무선전파에 대한 취미잡지로 1959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했던 〈전파과학〉의 기사들이다. 특히 아마추어무선연맹의 공식잡지인 <KARL>은 일반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지 않지만,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에 DB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정부 정책에 대한 유관 전파 관련 업계의 회지로서는, 대한전파통신협회에서 발행한 〈전파〉(1957년 12월호), 〈전파통신〉(1958년 8월호), 〈전파회보〉(1960년 2월호/5월호) 등도 참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수집한 미국 정부 문서 중에서 아마추어 무선과 관련된 문서 또한 한국 아마추어 무선햄의 제도화 과정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미디어 역사 연구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연구 방법은 텍스트에 기반한 역사적 문헌 연구방법이다. 현실적으로 60~70여 년 전의 교신 내용을 담은 오디오 테이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역사적 문헌 연구의 방법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렇지만 규명하고자 하는 현상에 대한 내용을 담은 문헌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의 협조를 통해 원로 아마추어 무선사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라디오 전자기술 시장과 아마추어 무선의 취미 시장 성장 간의 관계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헤어링의 연구와 데보라 포스칸자 등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견해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1930,40년대 성장하고 있던 라디오 수신기 산업계가 아마추어 무선 매니아의 취미 시장을 지원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17]. 1950년대 말 금성사 설립을 통해 기업 단위의 전자공업 모색이 추진된 이후 국가 단위의 전자공업 육성 정책이 공식 표명되어 ‘전자공업진흥법’이 통과·시행되었던 1960년대 말까지의 기간은 한국 정부가 세계 전자 산업의 분업구조 속에서 라디오 수신기 산업을 수출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자 노력했던 시기이다[18]. 따라서 이 시기의 두 시장 간의 관계에 대한 검토는 아마추어 무선 문화의 한국적 특수성을 규명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무선의 라디오 산업에 대한 기여는 부품이나 설비 차원의 직접적 기여보다는 인적 영향이 컸다고 한 헤어링의 연구결과와 그 연구결과가 아마추어 무선 문화가 취미 문화로 활성화된 미국적 배경에 나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마추어 무선 문화가 한국의 전자 산업에 끼친 인적 영향에 대한 검토는 (냉전적 요인에 의해 전파송신이 봉쇄되었던 사회적 조건을 감안하여) 무선공학적 지식의 대중화와 교육체계 간의 관계 등을 고려한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경험적 증거보다는 정황적 판단에 의해 전파상 등의 아마추어 기술자들이 한국 라디오 산업의 국산화에 선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몇몇 연구의 단평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19]
다분히 아마추어 무선(기술) 문화의 한국적 특성을 도출해 내기 위한 비교 준거를 마련하는 차원의 연구 쟁점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점은 세계 전자 산업의 분업구조 속에서 이뤄지는 동아시아 전자 산업의 정치경제학적 재편 과정이다. 따라서 비교의 준거로서 전자 산업의 분업구조 속에서 이뤄진 일본과 한국 라디오 수신기 산업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금성사에 발행한 통사를 비롯하여 한국 전자 산업의 변천과 관련된 통사 자료, 그리고 연감류로는 1960년대 경제기획원에서 발행한 〈과학기술연감〉등을 비롯하여 〈한국전자연감〉을 연구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지적하였다시피 아마추어 무선의 라디오 산업에 대한 기여는 부품이나 설비 차원의 직접적 기여보다는 인적 영향이 컸다고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1950,60년대 전 세계 냉전적 질서의 최선두에 위치하고 있던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인 탓에 아마추어 무선(기술) 문화가 봉쇄된 조건 속에서) 어떻게 아마추어 무선 문화가 한국 전자 산업의 성장에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었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아마추어 무선 문화가 한국의 전자 산업에 끼친 인적 영향에 대한 검토를 위해선 무선공학적 지식의 대중화와 교육 체계 등을 고려한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무선 관련 잡지의 내용분석 결과를 재분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1960년대 무선기술과 관련된 주된 교육 경로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늘날의 기술학원에 해당하는) 서울라디오·테레비통신학교 등에서 발행한 라디오 기술 관련 통신강의록과 교과서, 그리고 문교부 발행의 공업 교과서 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IV. Conclusions
본 연구는 한국 기술 문화의 기원이 1950,60년대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 집단의 형성에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그동안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던 한국 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시각을 제시하고, 그 시각에 입각하여 진행된 외국의 연구들을 검토한 후 주요 연구 쟁점들을 도출해 내고자 했다.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의 기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 시각으로 기술의 사회적 구성주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기술 문화사나 기술과 문화 간의 관계를 조망하는 이론적 자원인 ‘기술의 사회적 구성주의’ 이론은 초기사(初期史) 국면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미디어 현상의 전과 후의 논리적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연구 시각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이 연구 시각에 입각하여 수행되었던 (미국과 일본을 사례로 한) 주요 외국 연구들을 검토함으로써, 주요 연구 쟁점을 도출하고자 했다. 도출한 연구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연구 쟁점은 역사 연구에 있어서 일종의 시기구분론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한국 아마추어 무선(기술)문화의 냉전적 변용양상을 아마추어 무선(기술) 문화의 역사적 단계와 문화 형성의 사회맥락적 요인에 대한 고려를 통해 해명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라디오 전자 기술 시장과 아마추어 무선의 취미 시장 성장 간의 관계를 검토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의 목적이 한국 아마추어 무선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아직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 쟁점들을 탐색하는 것에 있었던 만큼, 여전히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중심으로 아마추어 무선 햄에 대한 연구 문헌을 검토했을 뿐, 당시 1,000명 이상의 아마추어 무선 면허를 보유하고 있던 북유럽 국가의 사례를 시야에 넣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유관 전파 관련 업계의 회지 등의 사료에 대한 서지학적 분석이 충분치 못하다는 점도 보완해야 할 점이다.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의 탐색 결과가 향후 이 연구 쟁점에 대한 관련 학계의 학술적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ACKNOWLEDGEMENT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Shinhan University Research Fund,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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