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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Production, Supply and Demand of Najeonchil Craft Works with a Focus on the Artisan, Min Jong-tae

나전칠 공예품 제작과 수급(需給)에 관한 연구 - 나전칠기장 민종태 제작 활동를 중심으로 -

  • CHAE Young (Exhibiton & Planning Division, SeMoCA)
  • 채영 (서울공예박물관 전시기획과)
  • Received : 2022.06.30
  • Accepted : 2023.08.16
  • Published : 2023.09.30

Abstract

The modernization of najeonchil, or mother-of-pearl lacquerware, began in the latter era of the Joseon period and started to set in during the phase of industrial development after the Korean War. Especially, the rise and fall of najeonchil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1900s fluctuated more compared to other types of craft. This paper focuses on the production, supply and demand activities of the works by Min Jong-tae, who was born in 1915, began his career in 1929 and devoted 70 years of his life creating najeonchil craft and furniture. As an apprentice under Jeon Sung-gyu, who revived the craft of najeonchil, Min Jong-tae was not only an artisan who ranked alongside Kim Bongryong, Song Juan, Shim Bugil, Kim Taehee, but also a businessman. In particular, Min led the boom of modern najeonchilgi during the 1970s-80s in Seoul, which was the most important market at that time. However, studies about Min Jong-tae are almost non-existence, despite his accomplishments. This study first describes how Min Jong-tae began the craft of najeonchil and early days of his career around the liberation period, then retraced his efforts in building a supply and demand system in the 1950s-60s. Moreover, this paper covers not only his creations of large-scale najeonchil furniture in the advent of an era of 'wardrobe culture' in the 1970s-80s, but also his exported pieces to Japan, including incense boxes and tea containers. In conclusion, this research derive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Min Jong-tae's role as an artisan of najeonchil- designated as Seou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4 in the field of craft.

나전칠공예는 구한말 근대화를 시작으로 6.25전쟁 이후 산업 발전에 힘입어 본격적인 현대화의 길을 걷는다. 1900년대 전반에 걸쳐 펼쳐지는 나전칠공예의 흥망성쇠는 여타 공예 종목과 비교하였을 때 매우 다채롭다. 본 연구는 1929년 나전칠기계에 입문하여, 칠십 평생을 나전칠 공예품과 가구 제작에 매진한 민종태의 제작과 수급 활동을 주제로 한다. 민종태는 근대 나전칠기계의 중시조 격인 전성규의 제자로 살아생전 김봉룡, 송주안, 심부길, 김태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나전칠기 장인이자 사업가이다. 특히 그는 한국 현대 나전칠공예의 호황기인 1970~80년대 주요 수급지였던 서울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본 연구에서는 민종태 나전칠공예의 입문과 광복 전후의 초기 활동을 기술하고, 본격적인 나전칠 공예품 제작과 수급 체계를 갖추어나가는 1950-60년대를 다루었다. 또한 1970~80년대 이른바 '장롱문화' 시대를 맞이하여 큰 규모의 가구를 제작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에 향합과 차통 등을 수출했던 그의 수급 활동을 관련 자료들과 함께 살펴 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나전칠기장 보유자였던 민종태 제작 활동의 공예사적 의의를 찾고자 하였다.

Keywords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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