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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황동 유적 일대 출토 삼국시대 초기 기와 검토

A Study on Tile from the Early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Excavated in Bonghwang-dong

  • 윤선경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 ;
  • 김지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
  • YUN Sunkyung (Gaya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
  • KIM Jiyeon (Gaya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 투고 : 2023.09.13
  • 심사 : 2023.10.26
  • 발행 : 2023.12.30

초록

기와라는 건축 재료는 기본적으로 방수와 방습을 목적으로 하며, 중요 건축물에만 사용이 제한되어 권위까지 보여준다. 특히 출토 사례가 드문 삼국시대에는 더욱이 그럴 것이다. 그마저도 신라, 백제 지역의 유적에서 확인된 기와가 대부분이다. 현재까지 가야 지역에서 확인된 기와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제작기법을 보이는 부원동 유적 출토 기와 이래로 금관가야 왕궁지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최근 삼국시대 초기 기와가 출토되었다. 이들은 금관가야의 고도인 김해 지역 초기 기와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출토된 기와는 연질 소성의 세석립이 일부 포함된 적· 황갈색 계통의 색조를 띠며, 두께가 얇다. 내면에는 포목흔이 확인되지 않으며, 점토띠 흔적이 보인다. 내· 외면에 타날흔 및 목리흔이 뚜렷하게 관찰되며, 깎기조정 및 물손질흔과 내면에 내박자흔도 확인된다. 이를 통해 무와통작법의 토기 제작방식과 동일하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가야 토기를 제작하던 도공집단의 계통과 연결시켜 본다면, 고령 송림리, 인천 불로동, 경주 손곡동·천리 유적 등과 같이 와도겸업(瓦陶兼業)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김해 지역 출토 기와는 김해 분지 일원의 금관가야 도성(왕성)으로 추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확인되었으며, 이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문헌기록과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성과 및 입지적 경관 등을 통해 보았을 때, 봉황동 유적 일대는 금관가야 도성 후보지로 유일하며, 출토된 기와의 존재를 통해서도 이러한 면모를 보여주기 충분하다. 이 시기 기와는 소량 출토되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지붕자재로써의 기능보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위세품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컸을 것이며, 사용 범위의 제한 및 통제가 엄격히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The basic purpose of building material called tiles is waterproofing and damp proofing, and they were restricted to use on important buildings to symbolize authority. This is especially true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although unearthed examples are rare. Most of these tiles are found in ruins in the Silla and Baekje regions. Tiles were excavated from the Buwon-dong ruins that show the oldest manufacturing technique in the Gaya region to date, and tiles from the early Three Kingdoms period were recently excavated from the Gimhae Bonghwang-dong ruins, which is presumed to be the site of the royal palace of Geumgwan Gaya. These are important materials that show the appearance of tiles from the early days of Gimhae, the ancient capital of Geumgwan Gaya. The tiles excavated from the Bonghwang-dong ruins are reddish-yellow because a small amount of sand was mixed in the tile material and baked at a low temperature. The tiles are thin, no traces of fabric were identified, but traces of clay bands were identified. Tapping tool marks and traces of an anvil used in pottery production are clearly observed on the inside and outside, indicating that the tiles were made in the same way as earthenware manufacturing methods. If this is connected to the genealogy of the potters who made Gaya earthenware, it is estimated that tiles and earthenware were produced together as in the Songrim-ri ruins in Bulo-dong, Incheon, Songgok-dong ruins in Gyeongju, and Mulcheon-ri ruins. To date, tiles excavated from the Gimhae area have been identified only in places believed to be the Geumgwan Gaya City Wall (Royal Palace) in the Gimhae Basin. Considering what has been recorded so far and the geographical scenery, the Bonghwang-dong remains are the only city wall candidate site, and this is clearly revealed through the existence of the excavated tiles, which proves this. Considering that a small number of tiles were excavated during this time, it is estimated that the role of tiles as a luxury product with a symbolic meaning was greater than that of roofing materials, and there were strict restrictions and controls on its 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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