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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환영적 몰입과 이화의 관조: VR 미디어 사례를 중심으로

Illusionary Immersion and Alienative Contemplation of Media: Focusing on the Cases of VR Media

  • 김무규 (부경대학교 신문방송학과) ;
  • 이상기 (부경대학교 신문방송학과) ;
  • 김정규 (부경대학교 신문방송학과) ;
  • 한혜경 (부경대학교 신문방송학과)
  • 투고 : 2021.12.07
  • 심사 : 2022.01.26
  • 발행 : 2022.02.28

초록

본 논문의 목적은 미디어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수용자의 심리를 몰입과 관조의 상호작용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미디어는 인간에게 특정한 대상이나 의미를 지각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울러 미디어는 지각과 사유의 대상을 확장시키거나 또는 변화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맥루한이나 루만의 이론은 특히 미디어가 수용자를 몰입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관조할 수 있도록 하여, 지각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미디어의 기능을 강조하였다. 영화의 탄생으로 출발한 영상 미디어 역사를 해석해보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영화와 컴퓨터 게임 미디어를 통해 몰입과 동시에 그와는 대조적인 관조의 심리작용이 발생되는 사례를 살펴보았다. 아울러 최근 기술혁신으로 수용자에게 강한 몰입을 유도하는 VR 미디어를 살펴보면서, VR의 수용자에게도 역시 관조의 심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찰하였다. 틸트 브러쉬와 VR 페인팅 퍼포먼스의 사례를 통해 VR 미디어가 수용자로 하여금 가상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방향으로도 또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서 핫미디어의 극단화가 내부확산을 일으킨다는 맥루한과 미디어가 자기지시적으로 진화한다는 루만의 이론적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plain the recipient's psychology, which results from the operation of media, from the perspective of the fluctuation between immersion and contemplation. Media allow to perceive and speculate about specific objects or meanings. In addition, the media perform the function of expanding or changing the objects of perception and thought. McLuhan or Luhmann's media theory emphasized this function of changing the state of perception by inducing a contemplative attitude. This notion is exemplified by interpretation of the visual media history. In this paper, the cases of film and computer game are discussed. In particular, it is considered that VR media causing strong immersion have also developed in a way that allows recipients to contemplate an virtually constructed reality. The commercialization of Tilt Brush and the experimentation of VR painting artwork are the examples for this dual development.

키워드

I. 서론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라프라는 기술 장치를 발명한 이후, 영상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화학적 사진과 기계적 기술로 작동하는 시네마토그라프는 시네마로 제도화되었으며, 그리하여 전기신호를 활용한 텔레비전과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는 관계를 백 년 동안 유지하였다. 20세기 말 상용화되기 시작한 디지털 기술로 영상 미디어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였다. 디지털 기술은 기존의 영화와 텔레비전의 미디어 작용을 활성화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미디어 작용의 개발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구현하는 기술, 즉 VR 기술이다. VR로 표기되는 이 기술장치는 최근에 상용화되기 시작하였고, 또 많은 콘텐츠들이 그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기도 하여, 이제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가상현실 미디어가 과거 영상 미디어들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VR은 수용자에게 실감 콘텐츠를 제공하여 원격 현전(telepresence)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해 최적화된 미디어이다. 그리하여 수용자는 실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상의 현실에 몰입(immersion)하는 쾌감을 향유할 수 있다. 몰입이란 인간이 어떠한 대상이나 활동을 통해 그것에 빠져들어 집중하게 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심리상태는 큰 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1]. 오래전부터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다양한 미디어가 인간에게 몰입 쾌감을 전해주기 위해 개발되었고, 최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통해 그 목적이 완벽하게 달성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관측의 배경에 VR이 있다.

그러나 미디어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미디어의 활용은 수용자에게 몰입과 대조적인 심리작용, 즉 관조 (contemplation)의 작용도 동시에 유발시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디어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고찰한 이론들도 몰입을 일으키는 미디어 효과에서 관조의 심리작용이 동반된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관조는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2], 본 논문에서는 미디어가 재현하는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어 생각하며, 대상보다도 대상을 관찰하는 수용자 스스로 의상 황을 인지하는 심리상태로 파악하고자 한다. 관조의 심리작용은 게임의 규칙과도 같이 형성된 몰입의 상태를 파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관조의 의미를 벤야민 (Walter Benjamin)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말한 일종의 분산적 지각(distracted perception) 과 결부시켜 이해할 수 있다[3]. 분산적 지각이란 몰입되지 않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다양한 지각을 서로 분리하여 활용하는 상황을 말한다. 그리하여 관조적 수용은 이화(alienation) 의 효과로도 볼 수 있다. 이화란 소외 혹은 소격효과 (Verfremdungseffekt)라고도 하며 “감정을 이입하거나 극 중 사건에 몰입하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가지고 보는 관객의 사고하는 태도”를 말한다[4].

앞서 언급한 점들을 의식하면서, 본 논문에서는 미디어 활용이 항상 몰입을 유발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에게 관조적 태도를 취하도록 한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몰입과 관조는 서로 대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미디어는 수용자에게 두 가지의 심리작용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한 가지의 작용의 심화는 다른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동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러한 점은 특히 기술적으로 몰입을 유발시키기 위해 개발된 미디어들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몰입을 위해 최적화된 미디어로 알려진 VR 에서 관조의 수용현상도 아울러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해볼 것이다. 본 논문은 몰입과 관조의 효과가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미디어론을 고려하여, 기술적 미디어는 항상 두 가지 방향으로 활용되며 또 그렇게 발전된다는 점을 몇 가지 사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주장을 위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첫째로 미디어 철학에서 몰입과 관조의 이중성, 혹은 둘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논의한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맥루한의 미디어론과 루만의 체계 이론적 미디어 개념을 언급할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일반적인 미디어 이론을 구체화하기 위해 여러 영상 미디어를 논의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영화와 컴퓨터게임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몰입에 최적화된 VR 기술을 언급할 것이다. 특히 그 미디어가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수용자의 관조를 불러일으키도록 활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해 다루어 볼 것이다.

Ⅱ. 본 론

1. 미디어 두 가지 작용

이제부터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그 작용이 몰입을 지향하여 이루어졌다는 입장과 함께, 많은 경우에 있어서 관조나 이화와 같이 거리를 두게 하는 효과도 아울러 유발되었다는 점을 설명해보려고 한다. 미디어 개념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되지만, 미디어가 인간에게 특정한 대상에 대한 인지나 사유를 성립시켜 준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리고 특히 미디어는 기술과 같은 방식을 활용하여 그 대상의 시공간적 차이를 극복해준다. 그런데 극복되어야 하는 그 시공간적인 차이가 극단적으로 커져서 인간에게 지각되는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미디어는 실제 현실의 대상이 아닌 가상적 대상의 인지와 사유를 성립시키며 심지어 그 안에서 활동하도록 한다. 최근에는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그 현실 아닌 현실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을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고 한다.

VR에 대한 고찰에 앞서 미디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과거 존재론이나 반영론과 같은 전통적 철학이 우세했던 시기에 미디어의 개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떠한 대상이나 현실은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지각이나 사유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어 대상의 반영은 그렇게 간단하게 이뤄지지 않으며, 복잡한 지각과정을 통해서, 혹은 어떠한 도구나 기술적 장치의 도움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의식적 작용을 가리킬 수도 있고, 기술적 장치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 미디어개념이 중요하게 된 계기는 따라서 현대적 사고방식의 출현과 연관되어 있다.

미디어가 시공간의 차이를 극복하여 지각이나 사유가 이뤄지게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미디어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작용이 있다. 그 작용이란 첫째, 차이 때문에 불가능했던 대상의 지각과 사유를 이뤄지게 하는 작용, 그리고 둘째, 한 번 발생한 지각에 변화를 주어서 또 다른 것을 지각하도록 하는 작용을 말한다. 첫 번째 작용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지만, 두 번째 작용 또한 중요하다. 왜냐하면 지각이나 사유를 중단하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도록 변화를 일으키는 미디어가 없다면, 우리는 이미 지각된 것에 계속해서 머물러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 지각한 것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지각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디어는 대상을 우리에게 밀착시키기도 하고 또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할 수도 있다.

가끔 미디어의 문제는 플라톤의 동굴(Platon’s cave) 에 비유되곤 한다. 그 이야기에서 어떤 이는 동굴의 한쪽 벽면에 비추어진 허상을 실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허상이며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함을 깨달은 사람도 있다. 미디어의 작용이란 이 두 가지의 인식, 두 가지 유형의 관찰자 모두에 기여한다. 즉 1차 질서의 관찰을 2차 질서로 변화시키는 데에도 역시 미디어가 필요하다. 1차 질서에서 미디어는 그것이 허상이든 실제이든 특정한 것을 인지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와 2차 질서로 이동하여 다른 것을 인지할 수도 있다. 미디어의 의미와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이 두 가지 특성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미디어의 작동을 지원하는 테크놀로지도 같은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어떤 기술은 몰입을 유발시키지만, 또 다른 기술은 몰입된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는 미디어 작용, 즉 관조나 이화로 표현되는 작용이 손쉽게 이뤄지도록 한다.

여러 미디어 이론은 이렇게 같은 의미로 파악되면서도 모순적으로 여겨지는 미디어의 두 가지 상반된 효과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맥루한은 미디어를 핫미디어와 쿨미디어로 구분하였는데, 이러한 구분도 앞서 언급했던 미디어의 이중적 작용과 연관되어 있다. 심혜련은 맥루한이 주장한 핫미디어와 쿨미디어, 그리고 그 두 미디어의 사이의 변화, 즉 외부확산과 내부확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잘 정리하였다. “맥루언은 하나의 매체가 지나치게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면 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이 온다고 설명한다. 외부확산이 극에 달하면, 더 이상 외부로 확산될 수 없기 때문에, 폭발적인 힘은 내부로 향한다. 그래서 내부확산이 발생한다. 내부확산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매체와 차가운 매체의 관계 역전 문제도 바로 이러한 외부확산과 내부확산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어떤 매체가 단일 감각에 의존하고 단일 감각의 힘을 극단적으로 키우게 되면, 이와 동시에 다른 감각에 대한 요구가 생겨난다. 그렇기 때문에 뜨거운 매체는 뜨거움의 정점에 까지 외부확산을 하다가, 그 정점에는 차가운 매체로 전환될 수 있다. 즉 내부확산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에 맥루언 이론에 따르면 구텐베르크 은하계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5].

맥루한에게 인쇄 미디어는 핫미디어에 해당하며 단일감각에 의존하는 미디어이다. 그만큼 특정한 대 상의지각이나 이해에 집중시켜 준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지각의 상태가 심화되면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변화의 운동을 내부확산이라고 하였다. 내부확산을 통해 등장하는 쿨미디어는 인쇄 미디어로 인지하지 못했던 다른 것을 인지하도록 유도한다. 맥루한의 미디어론은 그러한 기능을 전자 미디어가 수행한다고 생각한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루만(Niklas Luhmann)이 사회체계 이론으로부터 미디어의 개념을 언급한 경우를 살펴볼 수 있다. 미디어는 특정한 체계를 확정지어 관찰자에게 어떠한 대상을 인지시켜주지만, 그 미디어는 동시에 2차 질서의 체계를 성립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2차 질서의 성립으로 인지의 대상은 변화하게 되는데, 루만은그러한 관찰단계의 질서가 우연적(contingent)으로 성립된다고 하였다. 간단히 말하여 미디어는 특정한 대상의 인지를 위해 작용하지만, 그 작용의 지속은 자연스럽게 다른 것이 인지될 수 있도록 체계를 진화 (evolution)시킨다. 그리하여 루만에 따르면, 미디어는 어떠한 대상에 형식을 부여하여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며, 동시에 그러한 인지로부터 벗어나도록 한다. 그것을 각각 1차 질서의 인지와 2차 질서의 인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미디어는 각 단계에서 구성된 인지의 체계를 고정시키는 작용을 하고, 또한 일차적으로 구성된 체계를 다른 체계로 변형시키는 작용도 한다고 설명하였다. 루만은 특히 다른 체계로의 변형은 미디어가 자기 스스로를 매개할 때 발생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미디어가 외부의 대상을 지시(reference)할 때도 있지만, 그 외부지시의 상태 그 자체를 지시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자기지시적 미디어(self-referential media)의 작용이다[6]. 그리고 변화는 자기지시적 미디어의 작용으로 발생된다고 주장하였다. 맥루한과 루만의 미디어론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미디어가 단순히 어떠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해주는 도구이거나 혹은 특정한 대상의 지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디어는 목적의 달성과 몰입의 유발로부터 거리를 두어, 또 다른 목적을 설정하거나 혹은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기능도 지니고 있다. 맥루한의 외부확산과 내부확산 개념, 그리고 루만의 자기지시적 미디어에 의한 체계 진화의 개념, 이 두 개념은 모두 미디어가 인간의 지각이나 사유를 하나의 상태로 고정시키지 않고 다양하고 탄력적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2. 영상 미디어에서의 몰입과 관조

이제 영상 미디어의 경우를 살펴보면서 언급했던 미디어에 관한 논의를 구체화해보겠다. 첫째로 영화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영화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관객들은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스크린에 영사되는 영상에 몰입하여 그것이 현실 그 자체인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영사된 현실이 어떠한 기술장치에 의해서 구현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착각과 관심이 서로 다른 것이듯, 초기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복잡하고 모순적이었는데, 거닝(Tom Gunning)은 그러한 현상을 매혹의 영화(cinema of attraction)라고 하였다[7]. 그 개념은 관객의 관심을 끄는 요인이 단지 몰입할 만한 영화의 내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성립시키는 외부환경에도 있다는 뜻으로 파악된다. 그 외부환경은 초창기 영화발명가들의 신기한 기술장치이거나 영화가 상영되는 그 현장을 말한다.

그런데 초기영화 시대를 지난 영화는 내용에 관객의 주의가 집중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진보된 영화 기술과 영화관 시설은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환영주의(illusionism) 미학을 뒷받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주류영화의 발전은 1990년대 이후 활성화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정점을 이루게 된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동원하여 비현실적인 장면을 실감나게 구현하여 환영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었다. 그 환영성으로 말미암아 관객은 더 큰 몰임 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관객의 몰입을 목표로 하였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일종의 매혹의 영화처럼 작용할 수도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 관한 달리(Andrew Darley) 의해석이 흥미롭다. 그는 “스펙터클이 강화되는 순간의 시뮬레이션에 의해 관객은 이미지 자체의 물질성과 기교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8]. 다시 말해서 디지털 기술에 의해 영상의 실감이 더욱 강화될수록 오히려 관객은 영상의 물질적 속성과 기술적 배경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그 관심으로 관객의 환영은 깨어진다. 강한 몰입을 유발시키려는 시도로 인해 결과적으로 그러한 상황에 거리를 두려는 관객의 심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달리의 해석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몰입을 핫(hot)하게 유발시키려는 시도가 결국 쿨(cool)한 상태로의 변화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쿨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관객의 감상 태도는 현대미술의 극사실주의적 표현방식, 즉 하이퍼리얼리즘의 어떠한 해석과 맥을 같이 한다. 대상을 현실과 구별될 수 없을 정도로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회화를 감상하면, 감상자는 오히려 그것을 현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작품 그 자체에, 그러니까 회화적 표현양식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환영으로 받아들여 몰입할 것인지 그것에 거리를 두어 관조할 것인지의 문제는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선택적이다. 바로 그 점을 지적하기 위해 극사실주의 회화는 현실을 사진처럼 정교하게 표현하였다. 달리가 말한 영화의 스펙터클 영상도 같은 관점에서 파악된다.

초기영화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나타나는 몰입과 관조의 상호작용은 사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관객의 심리를 연구한 메츠(Christian Metz)가 이미 주장한 바 있다. 그는 관객이 영화의 배경이나 인물에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동일화 (identification) 심리는 지각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다시 말해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내가 어떤 것을 상상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그것을 지각하는 것이 자신임을 알고 있다”[9]. 그렇게 메츠는 관객의 몰입은 자신을 망각하고 다른 현실에 자신을 내맡기는 단순한 작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몰입이 강화될수록 관객은 언제든지 그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관조하는 입장으로의 변화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둘째로 컴퓨터 게임의 경우를 살펴보겠다. 그것으로 앞에서 언급된 몰입과 관조의 이중적 작용이 비단 영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게임도 영화처럼 몰입을 통하여 사용자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미디어이다. 컴퓨터 게임의 여러 가지 흥미 요인들이 존재하지만, 게임의 현실이 실제 현실처럼 느끼도록 하여 몰입을 유도하는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몰입된 게임의 진행이 사용자에게 게임 현실에 거리를 두는 심리상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게이머는 그렇게 몰입된 게임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는 현상, 즉 이화(alienation)라고 할 법한 현상을 피할 수 없는가?

던(Daniel Dunne)은 컴퓨터 게임 상황에서 게이머가 원치 않더라도 이화의 경험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마치 텍스트를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하려는 독자가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또 다른 텍스트, 즉 파라 텍스트에 그 상황을 비유하였다[10]. 왜냐하면 제목과 목차를 읽은 연후에 비로소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독자처럼 게이머는 게임에 몰입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위해 게임은 계속해서 중단되어야 한다. 던은 그것을 “스크린 로딩, 투박한 메뉴, 옵션, 시스템 파일, 다운로드와 업데이트”의과 정이라고 하였다. ‘제4의 벽을 파기’하는 것과 같은 그 과정들을 던은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새로운 연극론을 위해 제시한 이화의 효과(alienation effect) 의 관점에서 설명하였다[11].

게임에 열중하던 게이머가 게임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이화의 상황이 달갑지 않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게임의 흥미요인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게이머들은 가상현실에서의 활동을 즐길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게이머는 그 가상현실 자체를 구성하는 데에 큰 만족감을 갖기도 한다. 그것을 게임 모딩(modding)이라고 한다 [12]. 모딩을 수행하는 모더(modder)는 게임개발자가 아니라 게임을 직접 수행하면서 그것을 변형시키는 게이머이다. 예를 들어 이미 출시된 게임의 캐릭터를 변경시킨다든지 혹은 다른 배경을 직접 구현하여 게임의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것이 모딩의 활동이다. 그는 가상현실 외부에서 누군가 자신의 게임에 몰입할 것을 고려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게임을 스스로 즐기기도 할 것이다. 그는 게임의 내부와 외부를 계속해서 옮겨 다니며, 몰입과 관조의 입장을 동시에 취한다. 그렇게 본다면, 던이 언급한 게임의 이화 현상은 게임 모딩을위해 관조하는 모더의 입장으로 더 잘 설명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딩의 작업을 위해 게임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수용자의 적극적인 의도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3. 영상 미디어로서 VR

이제 VR의 경우에도 몰입과 관조의 이중적인 작용을 고려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VR은 애초에 몰입을 극단적으로 강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기술이다. 수용자는 앞에서 언급했던 영화와 컴퓨터 게임보다 더 강도 높은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VR은 실제 현실과의 완벽한 차단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영화와 텔레비전과 같은 기술 영상은 사각의 프레임에 의해 영상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반면에, VR은 그러한 제약이 없다. 그리고 VR 수용자의 활동을 통해 관찰자의 시야로 제한된 영상 프레임의 범위를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수용자는 VR에서 구현된 시간과 공간의 같은 시점과 지점에 위치하게 된다. 그라우(Oliver Grau)는 그것을 통합(integration)이라고 표현하였다. VR의 “영상은 환영, 혹은 몰입의 360도 공간에 위치한 관찰자를 시간과 공간의 단일성으로 통합한다.” 다양한 영상 미디어가 현실을 온전하게 구현하여 수용자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통합적 특성을 지니지 못하였다는 데에서 VR의 특정성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와 텔레비전 영상이 프레임에 의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수용자가 영상에서 표현된 것을 현실이라고 믿게 되는 환영의 현상은 한계가 있다. 시야에 프레임이 들어오는 한, 관찰자는 그 프레임의 존재를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VR 기술의 목표는 프레임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영상의 뜨롱쁘레유 (Trompe-l’oeil)와 같은 특징을 제거하려는 기술적인 조치이다. 그러한 조치로 구성된 현실과 관찰자의 시공간적 일치감, 그러니까 그라우가 말한 통합은 수용자가 영상으로 표현된 현실에 위치시키도록 하여 원격현전 감을 일으킨다. 그리고 수용자의 심리상태는 마치 그가 영상 속에서 구현된 현실이 실제 현실이며 자신이 그 현실에 현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몰입의 심리상태로 귀결된다. 프레임의 제거와 함께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영상의 극대화된 사실주의적 특성도 몰입의 효과를 위한 환영주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VR 미디어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기술 장치들, 예를 들어 HMD(head mounted display)나 손에 쥘 수 있는 컨트롤러와 같은 장치들은 수용자로 하여금 영상이 구현하는 현실의 그 장소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적합하다. 그 목적은 몰입을 지향했던 이전의 영상 기술과 다르지 않지만, VR 인터페이스는 그것을 더욱 효과적이며 완벽한 환영으로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환영을 불러일으키도록 구성된 영상 기술장치와 그것의 디스포지티프(dispositif) 배치는 VR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 장치에 의해 구성된 현실이 실제 현실과 구별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이루어질수록 그것을실현시켜주는 환경은 오히려 현실에서 멀어지게 된다. HMD나 컨트롤러와 같은 장치들은 수용자에게 그들이 관찰하는 콘텐츠에게 현전감이나 몰입감을 유발시키지만, 그럴수록 그것을 사용하는 수용자의 모습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거리가 멀어진다. 한편, VR 미디어를 성립시킨 여러 혁신적 기술장치가 개발되었지만, 틸트 브러쉬(Tilt Brush)라는 장치는 다른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2014년에 개발되었고 2016년에 구글에 의해 출시된 틸트 브러쉬(Tilt Brush)에 의해 VR 기술은 더욱 상용화되었고 대중화되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VR 미디어의 대중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적합한 콘텐츠가 부재하다는 점이 논의된다. 기술의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VR 환경에 적합한 콘텐츠 개발이 뒤쳐져 있다는 판단을 말한다. 그래서 OSMU 방식, 다시 말해서 다른 미디어에서 이미 구현되었던 콘텐츠를 VR 미디어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VR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안이 제안되기도 하였다[13]. 물론 그것도 콘텐츠 부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진단은 미디어의 수용자가 단순히 실감현실로 구현된 콘텐츠를 VR 환경을 통해 향유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VR의 흥미요인을 수용자의 몰입으로만 파악한 결과인데, 그래서 다른 관점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블록버스터 영화나 컴퓨터 게임의 경우, 특히 모딩의 경우를 살펴보았지만, 미디어는 수용자에게 몰입감만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관조의 태도 또한 유발시키며 아울러 그것도 수용자의 중요한 흥미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틸트 브러쉬의 특성을 고려할 수 있다. VR 미디어는 실감 콘텐츠를 수용자에게 전달해주어 현전감을 느끼도록 하고 몰입을 유도하는 장치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틸트 브러쉬의 사용자라면 누구나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여, 오히려 몰입될 법한 현실을 직접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장치의 사용자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작업을 직접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즐기는 것이며, 그에게 몰입만이 유일한 흥미요소는 아니다. 그가 틸트브러쉬로 창작한 결과물이 실감 콘텐츠일 필요도 없다.

틸트 브러쉬의 상용화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VR이 애초에 목표하였던 수용자의 몰입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환경을 수용자 스스로 구성하여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고, 나아가서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틸트 브러쉬를 활용한 VR은 던이 주장했던 컴퓨터 게임의 이화작용과 같은 맥락에서 고려할 수 있다.

4. 몰입적 VR의 관조적 감상

사실 VR은 매우 다양하게 활용된다. 영화나 게임과 같은 예술 콘텐츠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뿐만 아니라 의료나 교육과 같은 실생활에 응용될 수 있는 장치로도 활용된다. 특정한 대상을 실제현실처럼 구현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모든 곳에서 VR기술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VR에 의해 구현된 현실이 실제현실로 착각을 일으키도록 하는 몰입의 효과만으로 VR의 효용성을 축소할 수 없다. 다음에서는 그 점을 입증할만한 사례들만을 언급해보고자 한다.

VR 영상에 대해 논의했던 그라우는 “비판적 거리”와 “몰입”이 서로 단순하게 구분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분명히 비판적 거리와 몰입 사이의 이분법적인 단순한 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관계는 다면적이고 서로 얽혀있으며, 변증법적이며, 부분적으로 모순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분명히 관찰자의 성향에 종속되어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14]. 그의 주장은 틸트 브러쉬를 활용한 예술작품에서 그 점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쇼(Jeffrey Shaw)의 <도시읽기>(The Legible City)는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초창기 미디어 아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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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도시읽기>(Legible City, 1988-1991)

이 작품은 관객에게 어떠한 가상현실 콘텐츠를 감상하도록 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관객의 행위를 작품 내부로 끌어들여 그 행위도 아울러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갤러리에 방문한 사람 중에 한 명이 자전거에 올라타서 스크린에서 펼쳐진 세상을 여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상호작용이 가능한 설치로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품 전체를 감상하는 다른 관객은 스크린의 영상과 함께 여행하는 상호작용자도 함께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감상은 가상현실의 콘텐츠가 상영되는 스크린과 자전거 인터페이스 모두가 작품의 내용으로 형상화되었기에 가능했다. 이에 감상자는 가상현실에 몰입하기보다 그 몰입이 발생하는 환경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데, 그러한 2차 질서에 놓여있는 상황을 전시하여 관조적 감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콘텐츠에 몰입되기보다 거리를 두고 기술장치의 원리에 대해 사용자의 행위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그것은 비평가의 입장에서 작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유가 될 수도 있다. 다니엘스 (Dieter Daniels)는 쇼의 이 작품을 ‘모델 관람자’(exemplary viewer)라는 말로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이 작품에서 작품의 내용과 감상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가상현실이 구현된 스크린의 영상과 그 영상과 상호작용하는 관람자의 구분은 사라진다. 이렇게 전통적인 콘텐츠와 수용자의 범위를 중첩시킴으로써 가상현실의 몰입적 수용상황을 인지시키도록 하였다. 모델 관람자가 등장하여 가상현실을 여행하는 상황이 형상화되었기 때문에 그 작품 전체의 감상자는 관조적 시점을 취할 수 있다[15].

1990년대 <도시읽기>라는 작품의 의미는 VR 기술이 혁신적으로 발전된 이후, 최근 VR 예술작품에서도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완벽한 가상현실을 위한 디지털 영상 기술과 인터페이스 기술이 첨단화되었지만, 그 기술들이 관조적 감상을 위해서도 역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HMD를 착용한 VR 수용자에게 관조적 태도는 기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틸트 브러쉬와 같은 인터페이스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VR 페인팅이 그 예이다. 틸트 브러쉬의 개발과 함께 VR의 활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고, VR 콘텐츠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기존의 VR 콘텐츠는 구성이 완료된 상태에서 수용자들이 콘텐츠를 관람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자유롭게 그 구성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석태와 김선영은 VR 기술이 실제 현실과의 차단을 통해 수용자에게 완벽한 몰입을 유발시키도록 고안된 것이라는 상식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창작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16]. 그들은 VR 기술이 보다 확대된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수용자에게 제공하여, 적극적으로 현실을 구성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VR 미디어가 단순히 수용자들을 피동적으로 몰입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소극적인 관점에 대해 비판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틸트 브러쉬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통해 구현되는 VR 콘텐츠가 몰입이 아닌 다른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VR 예술작품의 창작자들이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다니엘스가 언급한 모델 관람자의 모티브와 틸트 브러쉬의 활용은 VR 페인팅 작가인 안나 질레예바(Anna Zhilyaeva)[그림 2]와 국내 작가인 염동균의 작품[그림 3]에서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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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안나 질레예바 작가의 VR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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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염동균 작가의 VR 퍼포먼스

그들은 작가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작업활동을 작품의 요소로 흡수시켜서 작가의 퍼포먼스를 작품화하였다. 그렇게 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VR 콘텐츠에 대해 관조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틸트 브러쉬의 드로잉 툴은 <도시읽기> 의 자전거 인터페이스보다 더욱 활동적이고 자유롭게 가상현실의 환경을 구성할 수 있다. 그렇게 3차원의 가상 캔버스에 콘텐츠가 손쉽게 제작될 수 있다[17]. 그러나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 퍼포먼스를 지켜보는 관객은 그들의 작품활동을 지켜보면서, VR환경에 몰입되기도 하지만 또 관조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 VR 콘텐츠의 제작과정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Ⅲ. 결론

특정한 대상을 현실과 구분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을 미디어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것을 유일한 기능으로 간주할 수 없다. 미디어는 사용자가 콘텐츠에 집중하여 수용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동시에 그 집중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각 상태가 집중과 분산으로 다양하게 나뉠 수 있는 것처럼, 미디어를 통한 지각도 핫한 수용과 쿨한 수용이 있다. 그리고 인지를 위해 구성된 체계도 구성과 동시에 해체되어 다른 체계로 진화하는 순환적 반복을 지속한다.

사실 현대 미디어 이론가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 미디어의 쿨함과 미디어 체계의 해체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려 했다. 앞에서 그 점을 맥루한과 루만의 미디어론을 통해 살펴보았다.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절제하려는 욕망도 또한 존재하는 것처럼, 몰입의 쾌감의 이면에 관조적 성찰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욕망과 심리상태의 상호작용은 필연적이라는 것이 현대 미디어 이론가들의 주장이기도 한다. 20 세기 이후 기술발전의 도움으로 미디어는 복잡해졌지만 다양해졌고, 또 더욱 효율적으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영에의 몰입을 추구했던 미디어 발전의 반대 편에는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미디어 작용의 발전도 또한 있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미디어의 이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영상 미디어에 나타나는 몰입과 관조의 상호작용과 동시성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특히 영화와 컴퓨터 게임의 경우를 언급하였다. 소설서사를 따라갔던 영화보다 텔레비전이 더욱 관조적인 미디어라고 할 수 있으며,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하더라도 수용자의 선택에 따라 스펙터클 영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은 풍부하게 존재한다. 게이머는 게임에 몰입하기도 하지만 게임을 관조하면서 어떻게 하면 다른 게임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지 고민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몰입과 관조가 혼재되어있음을 알려준다.

최근 급격한 기술개발로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VR 미디어도 관조와 이화의 수용이 가능한가? 본 논문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틸트 브러쉬와 VR 페인팅 작가들을 간단히 언급하였다. VR을 몰입적 미디어로만 간주한다면, VR 페인팅 퍼포먼스 예술과 그것을 성립시켜준 틸트 브러쉬라는 인터페이스는 이해할 수 없다. 그 두 사례는 맥루한의 미디어 개념으로 보자면 핫미디어와 쿨미디어에 해당한다. 그리고 핫한 상태의 외부확산은 자연스럽게 내부확산을 일으켜 쿨한 상태로 변모한다. 루만의 체계이론은 그러한 변화를 체계의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설명하며, 그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미디어라고 한다. 페이스북의 오큘러스가 있다면 구글의 틸트 브러쉬가 있는 것처럼, 기술의 발전은 몰입을 지향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관조의 가능성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지속적인 움직임과 균형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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