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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고학 성립 시기 청동기 연구에 대한 새로운 인식 - 윤무병(1924~2010)의 연구를 중심으로 -

A new glimpse on the foundation of the Bronze Age concept in Korean archaeology

  • KANG, Inuk (Dept. of History, Kyung Hee University)
  • 투고 : 2021.03.30
  • 심사 : 2021.04.18
  • 발행 : 2021.06.30

초록

해방 직후 한국 고고학의 성립기에서 청동기시대의 설정은 가장 핵심적인 성과중 하나이다. 일본의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금석병용기시대를 반박하고 청동기시대라는 개념을 안착시키고 청동기 연구의 기반을 수립한 대표적인 인물은 윤무병이라는 데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동안 윤무병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꼽히는 세형 동검의 형식분류와 전개과정이외에도 청동기시대의 설정도 주요한 성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 지석묘 연구 프로젝트로 일환으로 진행된 파주 옥석리의 발굴이 한국 청동기시대의 설정에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윤무병의 성과를 그와 함께 한국 고고학계를 주도한 김원룡과 비교하여 살펴보고, 아울러 해방이후 한국 고고학을 둘러싼 환경도 고려하여 그 현상을 해석했다. 윤무병의 연구는 동아시아재단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재정적 지원이라는 하드웨어적 기반과 일본 고고학에서 출발한 정치한 형식적 기법이 결합된 것이다. 한편 자료적 측면에서 본다면 아울러 195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개시된 북한연구의 소개와 북방 지역 자료를 소개한 김원룡의 역할 등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이 윤무병의 연구는 1960년대 탈식민지라는 주요한 과제를 한국 고고학계가 어떻게 성취했는가를 볼 수 있는 주요한 근거가 된다. 다만, 일본 편년관의 의존으로 청동기시대의 편년관을 지나치게 낮게 잡아서 한반도 청동기의 편년을 '문화지체 현상'에 근거하여서 만주나 북한과는 동떨어지게 본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물론, 21세기의 시각으로 윤무병의 연구를 재단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윤무병이 견지했던 유물에 대한 천착이라는 고고학적 전통을 새로운 연대관과 거시적인 안목에 결합하여 새로운 연구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1세기 세계화와 거시적인 안목으로 한국 고고학의 저변을 확장해야하는 시점에 윤무병의 연구를 다시 살펴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The establishment of the Bronze Age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chievements suggested by Korean archaeology shortly after liberation. There is no doubt that Moo-Byung Yoon is the representative figure, who refuted the ambiguous Eneolithic age (金石倂用期) created by Japanese scholars and settled the concept of the Bronze Age. In this article, the author takes a new look at Yoon's institutional role in studying the Bronze Age in Korea. Until now, Yoon's representative achievement has been his typology of the Slender dagger of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it is not less important that Yoon also established the Bronze Age concept with the excavation of a dolmen and a Bronze Age subterranean dwelling in Oksok-ni, Paju during the 1960s. Of course, it was not a personal assignment for Yoon. He was aided by Prof. Kim Won-Yong's work, who had introduced newly excavated materials from North Korea and China; these materials gave some insight for establishing the Bronze Age concepts in the 1960 and 1970s. Kim's suggestion about the possibility of a Korean Bronze Age led to Yoon's refined typological study on Korea's bronze wares. However, Yoon's excessive schematic classification of artifacts and reliance on the Japanese chronology became an obstacle for making the Korean Bronze Age isolated from East Asia. As a result, it is regrettable that his research led to the "cultural lag" phenomenon of Bronze Age research. Meanwhile, Japanese archaeology, which had influenced Yoon, also faced a major change. In 2003, the Japanese archaeological community revised the Yayoi culture's beginning around the 1,000 BC. This means a shift in the perception that we should understand Japan's Bronze Age in the context of the East Asian continent. Of course, it is not appropriate to reevaluate or denigrate Yoon's research from the current view. Rather, it is necessary to recognize the limitations of Yoon's time and present a new path to research by combining the archaeological tradition of refining research on the relics he maintained with a new chronological view and a macro view of East Asian archaeology. This is why we should take a new glimpse into Yoon's research.

키워드

과제정보

이 연구는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NRF-2019S1A5C2A01083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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