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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미스티(Misty)>에 나타난 미스터리 구조의 중층성 : 지연 전략과 장르 혼성을 중심으로

Complicative Mystery Structure Shown in the TV Drama Misty : Focusing on Delaying Strategy and Genre Hybrid

  • 투고 : 2020.12.07
  • 심사 : 2021.02.15
  • 발행 : 2021.04.28

초록

2018년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스티>는 시청자들에게 살인 사건과 관련된 여러 허구적, 언어학적 단서를 제시하고 있다. 또 범인인 남성 인물의 대사와 행동을 이중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애매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시청자들이 범인을 추론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지연시킨다. 이러한 지연의 기저에 놓인 것은 로맨스 서사과 미스터리 서사의 유기적인 인지적 결합이라는, 장르 혼성의 방법이다. 즉, <미스티>는 사랑에 헌신적인 남성 인물이라는 시청자의 로맨스 장르에 대한 기대지평을 전복하는 순간 범인에 대한 올바른 추론 과정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장르 인식을 교란시키면서 탄생되는 특수한 장르 혼성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미스티>에 나타난 미스터리 구조의 중층성은 TV 드라마에서 정통 추리 구조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통념을 벗어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보통 두 플롯의 물리적 인접성을 위주로 결합되는 기존 미스터리물의 장르 혼성 사례와 차별화된다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TV drama , aired on JTBC in 2018, used several fictional and linguistic clues on the murder case. It effectively delayed the process of inferring the perpetrator by utilizing 'ambiguity' and 'trap', which enabled the double interpretation of the the main character's diaglogue and action. This delay could be made by employment of genre hybrid, cognitive process and knowledge of viewers about typical romance plot and mystery plot in TV drama. In other words, could be evaluated as a special genre hybrid case that disturbs viewers' perception of genre in that the correct reasoning process began from the point that overturned the viewer's expectation about typical romance genre dramas in which male main characters mostly devoted to love. The complicating mystery structure shown in is against the opinion that the traditional mystery structure is difficult to succeed in TV dramas. Also, from the perspective of hybrid genre, it is different from the usual mechanical combination of two different plots. These characteristics in are worth to highly evaluated.

키워드

Ⅰ. 서론

2000년대 중반 이후, 추리 서사는 TV드라마의 영역에도 활발하게 차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편으로는 정통 범죄물, 스릴러물이 인기를 얻는 것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로맨스나 판타지와 같은 TV드라마의 다른 장르와 혼용되는 양상으로 분화되었다. 영화나 연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TV드라마의 몰입성은 정통 추리 서사의 플롯을 전면적으로 도입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평가되었음에도[1], <마왕>(2007), <유령>(2012), <시그널>(2016) 등의 추리물이 인기를 얻었다. 한편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동백꽃 필 무렵>(2019)에 이르기까지 추리 서사가 다른 서사와 결합하여 보조적 플롯으로 기능하는 경우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8년 2월 2일부터 3월 24일까지 JTBC에서 16부작으로 방영된 드라마 <미스티> 역시 드라마 초반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서사 진행에 따라 누가 범인인가를 추적해나가는 추리서사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드라마는 추리 서사 구조의 차용 이외에도 극중 주인공인 앵커 고혜란의 성공을 향한 욕망과 가정 유지 사이의 갈등, 선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려놓는 입체적인 인물 형상화로 인기를 얻었다. 고혜란은 성공을 향한 욕망이 강한 인물로서, 자신의 성공에 뒷받침이 되리라 여긴 강태욱과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자 앵커 오디션을 보기 위해 낙태를 하여 강태욱과 돌이킬 수 없이 어긋난다. 우연히 옛 애인이자 고등학교 동창 서은주의 남편이 된 골프선수 케빈 리(이재영)를 만나 위태로워진 앵커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와 다시 만나던 중, 케빈 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케빈리의 시체가 있던 차에 고혜란의 브로치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주된 용의자로 의심받게 되고, 그 와중에 고혜란의 비리 보도 대상이 된 사회 기득권층의 교묘한 조작으로 그녀는 검찰 조사를 받기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남편 강태욱이 변호를 맡은 재판에서 승리하게 되고 그녀는 누명을 벗어난 기쁨을 만끽하지만, 결국 여러 단서들을 통해 그녀의 남편인 강태욱이 케빈리를 살해한 범인임이 드러나게 된다. 이 서사 내에 여성의 사회 진출 욕망과 유리천장의 존재, 사회 기득권층의 부패와 권력 남용, 사랑을 믿지 않는 여성 주인공과 그녀를 소유하려는 남성 인물들의 지배욕, 개인의 출세 욕망과 사회적 대의를 은밀히 중첩시키는 여성 주인공의 입체적 성격화 등이 화제가 되었다.

이 중 대상 작품과 관련해서는 여성주인공의 팜므파 탈적 성격이 드러내는 악의 미학화의 사회적 징후를 주요하게 논한 선행 연구가 있다[2].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주로 여성 주인공인 고혜란 캐릭터의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고혜란이 악녀인가 아닌가’에 대한 관심 못지않은 서사적 추동을 가지고 있는 ‘누가 케빈 리(이재영)를 살해한 범인인가’의 서사축의 역동적 진행 과정에 대한 분석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드라마의 추리 서사는 기존 멜로드라마의 로맨스 문법과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가운데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장르 문법의 적극적 변형을 통한 추리의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이 점에서 <미스티>는 성공적이고 특수한 장르 혼성의 사례로서 적극적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또 특정 장면에서 주인공이자 범인인 인물의 말과 행동의 이중적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시청 회차에 따른 서로 다른 의미 발생의 유희를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이 논문에서는 드라마 <미스티>의 이러한 성격을 ‘미스터리 구조의 중층성’이라 이름 붙이고, 이를 구체적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선행 연구에서 TV 드라마 추리 구조는 흔히 서사 내에서 극적 긴장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논의 되어 왔다[3]. 한편, 2000년대 중반 이후 추리 드라마는 이전과 큰 변화를 보인다. 우선 <변호사들>, <히트>, <마왕>처럼 수수께끼식 추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또한 역사와 추리, 첩보 액션과 추리 등 장르 혼성도 시도되었는데,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는 <한성별곡>, <별 순검>, <아이리스> 등이 있다. [4] 2000년대 중반 이후 추리 드라마에 대한 개별 작품론도 어느 정도 축적된 편이다. <마왕>의 추리 서사에 초점을 맞춘 한 연구는 수수께끼 플롯과 복수의 플롯으로의 다원화와 각 플롯 사이의 유기적 연결성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밝히고 있다[5]. 또 신자유주의 이후 양극화의 갈등을 반영한 사회사적 징후가 어떤 식으로 개별 드라마의 추리 서사와 연동되는지 언급되기도 하며[6][7], <수사반장> 과 같은 80년대 수사드라마와 2000년대 추리물의 소재와 인물형의 변모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8].

또 다른 계열의 연구는 판타지, 로맨스, 역사 등의 장르와 추리 서사의 접합에 대해 논증하고 있는 것들이다. 박명진은 ‘추리 역사 드라마’의 장르적 욕망을 <별 순검>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별순검>은 1890년대 과거의 무대를 배경으로 삼아 21세기 현재 한국사회의 국가 역할을 문제 삼고 있으며, CSI를 모델로 한 카메라 기법으로 추리 서사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한 작품이라 평가된다[9].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대한 한 연구에서는 초능력이라는 판타지와 추리서사를 접합시키는 매개인 ‘진실’에 대한 서사에 주목한다. 즉, 범인은 이미 나와 있고, 그 범인이 범죄를 저질렀음을 입증해야 하는 서사적 필요성에서 초능력이 사용되고, 어떤 식으로 수하와 혜성이 범인의 전력을 입증하는지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범인의 재범행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혜성이 복수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서스펜스 역시 발생하게 된다. [1] 한편, 수하의 초능력이 여성의 마음을 읽고 행동하는 ‘완벽한’ 남성 인물 창조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멜로드라마의 관습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판타지적 설정이 사용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1].

추리와 휴먼, 로맨스 장르의 병합을 의도했다는 <동백꽃 필 무렵>(2019)에 관한 한 연구에서 추리서사는 정적인 서사가 진행되는데 있어 지루해지지 않을 만한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보조 서사로서의 위치를 점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혹은 혐오범죄가 만연하는 현대사회의 공포를 사실성 있게 드러내는 장치로서의 의미를 갖는다[10]. 이 연구에 따르면, <동백꽃 필 무렵>에서 추리서사는 로맨스 서사와 물리적으로 인접해 있을 뿐, 두 서사가 서로 구성 요소를 교환하며 긴밀한 상호 소통 양상을 보이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같이 선행 연구에서 추리 서사와 멜로의 장르 혼성 사례로 이야기되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나 <동백꽃 필 무렵>의 경우, 추리 서사는 기존 로맨스 플롯의 관습을 더욱 강화시키거나 혹은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보조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즉 로맨스 서사가 주된 서사적 추동이며, 추리 서사적 설정은 로맨스 서사의 익숙한 장르 문법을 소극적으로 변형하는 대체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공통적이다. 그러나 2018년 방영된 <미스티>의 경우 추리 서사의 미스터리 구조가 주된 플롯으로 전면에 내세워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범인을 추론하는 단서나 이를 지연시키는 속임수를 중층적으로 설정해 놓아 정통적 추리 서사로서의 속성을 강화하였다. 또한 기존 로맨스 서사의 장르 문법과 이에 익숙한 시청자의 기대 지평을 전복하는 자리에 범인 추리의 단서가 놓여 있어, 관습적 장르 이해를 교란시키면서 연결되는 특수한 장르 혼성 사례로도 논의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이 글의 2장에서는 <미스티>의 범인 추론에 영향을 미치는 허구적, 언어학적 단서들의 유형과 속임수 전략이 어떤 식으로 이중적으로 해석되는지, 특히 시청 회차에 따라 범인에 대한 지식이 있기 전과 후 어떤 식으로 그 의미가 다르게 이해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3 장에서는 <미스티> 내에서 미스터리 플롯과 로맨스 플롯이 어떤 식으로 길항하며, 특히 후자의 관습을 이 드라마에서 어떤 식으로 전복하는지, 그리고 그 전복의 지점과 미스터리 플롯의 진전이 어떤 유기적 연결성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미스티>의 미스터리 구조의 중층성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작업은 TV 드라마의 매체적 특성에 따른 추리 서사 형태에 대한 일반론을 벗어나, 시청자의 장르 관습에 대한 배경 지식과 이를 전복시키는 인지적 유희 과정의 복합성을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Ⅱ. ‘애매함’의 속임수와 장면의 이중적 해석 가능성

이브 뢰테르(Yves Reutuer)는 추리소설을 미스터리 소설, 범죄소설, 서스펜스 소설로 분류한다. 이 중 미스터리 소설은 범죄가 이미 발생한 과거의 서사와 그 범죄가 누구에 의해 자행되었는지, 동기와 배경은 무엇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발생한 것인지를 추적하는 사건 조사자의 현재 서사가 공존한다. 주로 과거 서사는 설명적 플래시백 형태로 이야기의 결말에 폭로되는 형식을 취한다. 범인이 누구인지, 동기가 무엇이며 정황이 어땠는지 모두 밝혀지게 되는 결말을 통해 독자의 인식욕이 충족되고 단서와 속임수를 둘러싼 퍼즐이 전반적으로 재조립된다. 이 소설 양식은 범죄 행위를 은닉하려는 범인과 밝혀내려는 사건 조사자 사이의 지적인 게임, 그리고 범인이 누구인지 감추려는 작가와 그것을 알아내려는 독자 사이의 게임이 주된 동력이 된다[11].

그리고 이와 같은 미스터리 소설에서 범죄 정황에 관한 ‘지식’은 핵심적인 지위에 놓인다. 서사 이론가인 미케발(Mieke Bal) 역시 독자와 인물간 지식 정도의 차등에 따라 플롯을 유형화한다. 그는 서스펜스를 크게 (1) 독자의 지식 정도와 인물의 지식 정도 사이의 차이, 그리고 (2) 내적 초점화와 외적 초점화 중 어떤 방식을 통해 독자가 해답을 얻는지를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지식 정도의 차이를 본다면, 독자와 인물 모두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황을 수수께끼, 탐정 소설, 수색과 같은 상황으로 본다. 그런데 인물은 알지 못하는 사실을 독자가 알고 있다면 이것은 ‘위협’의 서사가 되며, 반대로 독자는 알지 못하는 사실을 인물만이 알고 있다면 이는 ‘비밀’의 서사가 된다. 그리고 만약 독자도 사실을 알고 있고 인물도 알고 있을 때는 서스펜스가 종결되는 시점이다[12].

이러한 분류에 따르자면, <미스티>는 미스터리 구조 가운데서도 전반부는 ‘수수께끼 서사’, 그리고 중반부 이후부터는 ‘비밀의 서사’의 형식을 취한다. 이처럼 이 분화된 구조가 가능한 것은 전반부는 주인공인 고혜란에 의해 초점화되어 있고, 고혜란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중반부 이후부터는 강태욱, 강기준, 서은주 등 다양한 인물로 초점화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 끝나는 14회 이후부터는 강태욱이 범인이라는 단서가 좀 더 적극적이고 반복적으로 드러나며, 이 퍼즐이 조합되는 순간 시청자는 범인을 그로 단정 지을 수 있다. 따라서 14회 이후부터는 명백하게 강태욱이라는 인물이 모든 것을 알고, 시청자는 아직까지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비밀’의 서사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스터리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범인인지 추론할 수 있도록 하는 ‘단서’와 이 단서의 인지를 방해하는 ‘속임수’의 존재이다. 뢰테르에 따르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단서는 크게 허구적 단서, 언어학적 단서, 문자 단서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허구적 단서는 범죄와 관련된 구체적 사물, 비정상적 요소나 인물들의 신체적이고 심리적 특징으로부터 구축할 수 있는 상황적 가정으로 나뉜다. 언어학적 단서는 보통 ‘대화’로 나타나는데, 은연 중 나타나는 말이나 실수 등이 해당된다. 문자 단서는 철자 바꾸기, 대칭 등을 통한 텍스트적 암시이다[6]. TV드라마라는 영상 매체에서는 뢰테르가 소설 텍스트를 토대로 언급한 문자 단서는 보통 잘 사용되지 않고, 허구적 단서와 언어학적 단서가 주로 사용될 것이다. 특히 허구적 단서 중 인물의 신체적 특징으로는 인물의 표정이나 몸짓이 대표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뢰테르에 따르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숨기려 설정하는 ‘속임수’ 역시 다양한 방법이 있다. 정보의 과다함, 단서 차원의 과도한 다양성, 단서가 내용의 핵심인지 부차적인 것인지 알지 못하도록 하는 부정확함(바르트의 용어로는 애매함-인용자 주) 등이 있다[6].

이와 같은 ‘속임수’를 좀 더 다양한 차원으로 분류한 사람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이다. 바르트는 『S/Z』에서 발자크의 『사라진(Sarasine)』을 읽으면서 독서 행위 중 어떤 식으로 서스펜스가 발생하는지에 대해 다섯 가지로 유형화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서스펜스는 진실의 폭로가 지연되는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그 효과가 지속될 수 있는데, 바르트는 그 지연의 장치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① 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게 만드는 ‘함정’, ② 진실의 층위와 함정의 층위가 서로 혼합되어 있으면서, 애초의 수수께끼를 더욱 두텁게 만드는 ‘애매함(équivoque)’, ③ 진실의 기대감을 자극하는 ‘부분적 해답’, ④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는 침묵으로서의 ‘해답의 정지’, ⑤ 해결 불가능성을 확인하는 ‘봉쇄’가 있다[13].

이처럼 이브 뢰테르의 단서 유형과 바르트, 뢰테르의 속임수 유형의 분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추리서사 ‘단서’에 대한 분류 (이브 뢰테르)

이와 같은 단서와 속임수에 대한 유형화는 <미스티> 의 미스터리 구조의 수수께끼식 구성을 분석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미스티> 초반부에 범인에 대한 추론을 행할 수 있는 상황적 단서나 물건 등은 비교적 다양하게 제시된다. 고혜란의 브로치는 그녀가 범인일 수 있는 정황적 증거이며, 고혜란이 옛 애인이었던 케빈 리의 강요된 유혹을 받고 있었다는 점 또한 그녀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수도 있는 상황적 단서를 제공해 준다. 또 케빈 리와 고혜란의 밀회 장면을 강태욱이 목격했다는 점에서 강태욱이 범인일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배제될 수 없다. 그리고 케빈리의 아내이자 고혜란의 동창인 서은주가 케빈 리의 성공 이후 자만과 관련하여 갈등을 빚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용의자 선상에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많은 허구적 단서는 [표 2]에서 언급한 ‘정보의 과다’라는 속임수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초반부에서는 범인이 누구인지 특정하는 것이 더 어렵게 된다.

표 2. 추리서사 ‘속임수’에 대한 분류 (롤랑 바르트)

드라마 중반부 이후에는 고혜란의 첫사랑이자, 그녀를 강간하려던 금은방 주인을 살해하고 복역한 하명우가 강태욱에게 한, “당신이 조금만 인내심이 있었어도 이번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겁니다.”라는 대사, 그리고 서은주에게 “내가 재판에서 질 것 같아요?”라며 조소하는 표정을 지은 강태욱의 모습이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언어학적 단서로 주어진다. 그런데 <미스티>에서는 단서 못지않게 다채로운 속임수가 쓰여 범인 추론의 과정을 최대한 지연시킨다. 우선 고혜란의 브로치는 강태욱이 자신이 용의자로 의심받는 것을 애초에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대표적인 ‘함정’이다. 이 브로치 때문에 강기준 형사와 시청자 모두가 처음에는 고혜란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중반부 이전까지는 주로 고혜란이 범인일 수 있는 정황적 증거(브로치, 성공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맹목성과 대담함 등)가 지속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식적이며 모범적인 삶을 산 것으로 그려지는 강태욱은 의심에서 벗어나 있게 된다. 따라서 주로 강태욱 관련 장면에서는 그를 범인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애매함’의 속임수 장면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가령, 강태욱이 서은주의 집에 들어가 고혜란의 블랙박스 기록을 지우는 장면, 고혜란의 하명우에 대한 고백을 들으면서 괴로워하는 강태욱의 표정과 유리잔을 깨는 모습, 하명우가 강태욱에게 한, “당신이 조금만 인내심이 있었어도 이번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겁니다.”라는 대사를 들 수 있다.

이 장면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8회 ‘단죄’에서 태욱이 서은주의 집에 몰래 침입해 고혜란의 차에 있던, 그녀와 케빈리의 밀회 장면이 녹화된 블랙박스 기록을 지우는 장면은 ‘애매함’이 사용된 대표적 경우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태욱을 의심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은 불륜을 저지른 것이 밝혀질 경우 치명적으로 타격받을 고혜란의 사회적 명예를 위해, 그리고 강태욱 자신의 남편으로서의 체면을 위해 기록을 삭제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나중에 진실을 알고 보면 이 장면은 강태욱이 자신의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 고혜란이 범인이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를 없애는 장면이다. 결국 그 장면은 강태욱의 행위 동기를 이중적으로 해석하게 한다는 점에서 ‘애매함’의 속임수가 된다.

11회 ‘고백’에서 하명우의 존재에 대해 혜란이 태욱에게 말하는 장면 역시 이러한 ‘애매함’이 적용되는 장면이다. 하명우는 고등학교 시절 혜란을 강간하려던 금은방 주인을 살해한 (혹은 고혜란이 금은방 주인을 살해한 죄를 대신 뒤집어쓴) 인물로 그려진다. 하명우는 고혜란이 성인이 되어 기자, 앵커가 되는 장면을 감옥에서 계속 지켜봐왔다. 그가 출소한 이후 강태욱의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와 미행과 염탐하는 일을 맡아 강태욱을 돕게 되는데, 세 명(혜란과 태욱, 명우)이 한 자리에 만나는 일이 있게 되면서 혜란이 태욱에게 그 존재를 말하게 되는 것이다. 태욱은 혜란의 고등학교 시절 금은방 주인의 죽음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혜란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자신의 말을 명우가 믿었더라면 지금쯤 감옥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난 이후 고통에 찬 표정으로 울면서 술잔을 손으로 깨뜨려 던져 산산조각 내버린다. 이 행위 역시 태욱을 아직 범인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자신이 명우에 비해 혜란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자괴감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태욱이 아이를 잃은 이후 자신이 혜란에게 언제나 후순위의 존재라는 것에 실망과 자책을 안고 살아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강태욱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보면 이 장면은 마치 명우가 우발적으로 혜란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듯, 태욱도 혜란에 대한 ‘사랑’ (혹은 사랑이라는 미명의 소유욕) 때문에 결과적으로 케빈리를 살해하게 된 것이므로, 섬뜩할 정도로 명우와 동일한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 번 깨닫고 절망하는 장면으로 다시 읽힌다. 따라서 태욱의 분노와 눈물은 일정 부분 ‘진실’을 담고 있지만,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태욱 스스로에 의해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는 다른 식으로 (함정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애매함’의 장면인 것이다.

역시 11회 ‘고백’ 중 명우가 태욱에게 한 대사(“당신이 조금만 인내심이 있었어도 이번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역시 애매함의 층위에 속한다. 이 대사 전 명우는 태욱이 고혜란이 범인이 아님을 알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재판을 지연시키면서 혜란에 대한 그간의 배신감과 실망을 보상받고자 한 것이 아니냐며 묻는다. 그 이후 이 대사가 나오기 때문에, 태욱을 범인으로 보지 않는 시청자들은 ‘인내심’을 케빈 리와의 추문에 휩싸여 명예를 훼손하게 한 고혜란에 대한 인내와 용서로, ‘이번 일’을 ‘고혜란에 대한 재판의 지연’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 대사는 또 한 명우가 이미 태욱이 범인임을 알고 있으며, ‘인내심’은 혜란과 가까운 사이라며 자신을 도발하는 케빈리에 대한 태욱의 인내심을, 그리고 ‘이번 일’은 태욱이 케빈리를 살해한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층위의 해석에 따라 ‘애매함’의 속임수로 설정된 장면인 것이다[14].

이처럼 처음 시청과 결말을 알고 난 이후 2회차 시청에서 위의 장면들은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이는 애초에 인물의 대사나 표정, 행동과 같은 단서를 이중적 의미를 띤 것으로 해석하도록 한 ‘애매함’의 속임수 설정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서사 내에서 강태욱이 범인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은 TV 드라마의 ‘낮은 몰입성’이라는 매체적 특성 때문에 복잡한 정통 추리서사식 수수께끼 플롯이 도입되기 어려움을 지적한 것과 다르게[1], 추리 서사로 매개되는 작가와 시청자 사이의 지능적 유희가 TV드라마 서사 향유의 즐거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표 3. ‘애매함’의 속임수 장면과 시청 시점에 따른 해석 가능성

Ⅲ. 로맨스 서사의 문법 전복을 통해 완성되는 추론 과정

2장에서 언급한 ‘애매함’의 속임수가 이중적 해석 가능성을 내포할 수 있었던 근원에는 TV드라마 로맨스 서사의 익숙한 문법에 의한 ‘강태욱’이라는 인물에 대한 시청자의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1회 ‘균열’에서 강태욱은 어머니의 임종에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일하느라 가지 않겠다는 고혜란을 다잡고 나무라는 상식적인 인물로 그려지며, 고혜란이 앵커 오디션을 위해 아이를 낙태시켰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 오랫동안 상처로 괴로워하는 다감한 인물로 그려진다. 또 2회 ‘도발’의 케빈 리와 고혜란의 뉴스 인터뷰 장면에서 볼 수 있듯, 화면에 비치는 아내 고혜란의 미세한 표정 변화만으로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챌 수 있는 세심한 면도 갖추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고혜란의 불륜에 괴로워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결혼서약을 하며 했던 맹세를 지키고자 (사실은 그녀와 함께 프로그램을 한 케빈리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있지만) 그녀의 청와대 입성을 위해 선배를 소개시켜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추문에 휩싸인 혜란과 헤어지라고 어머니가 종용하자, 자신은 그녀의 남편이라며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는 장면 등을 통해 강태욱이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즉 다정다감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혜란에게 충실한, 자신의 사랑을 굳건히 지켜나가고자 하는 순정적 인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처럼 ‘다정다감함, 세심함, 충실성, 순정적, 헌신적’이라는 속성들은 강태욱이라는 인물을 인지하도록 하는 속성이 되며, 고유명사의 기호 아래 이러한 속성의 집합체로서 형상(figure)으로서의 인물이 탄생하게 된다[13].

그러면 이와 같은 강태욱 인물형의 이해가 어떤 식으로 지연 전략과 연결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바르트의 분류 내에서 ‘애매함’이라는 장치는 ‘진실’과 ‘함정’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을 의미하므로, 이론적으로 볼 때 <미스티>의 시청자들은 추리 과정 내에서 ‘진실’의 가능성, 즉 강태욱이 케빈리를 죽인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하에 주어진 상황을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가령, 2장에서 언급한 8회 <단죄> 가운데. 강태욱이 서은주 집에 불법으로 들어가서라도 혜란의 차에 있던 블랙박스 기록을 지우려는 것 등은 상식적인 행동은 아니기 때문에, 이 행동을 목격한 시청자가 바로 그를 범인으로 의심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11회 <고백> 중 명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술잔을 던지며 고통스럽게 우는 행동 또한 아무런 정보 제시 없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강태욱을 범인으로 의심하도록 하는 충분한 정황적 맥락을 갖추고 있다. 명우가 태욱에게 인내심을 말하는 장면 역시 유달리 태욱을 명확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한 마디씩 힘을 주어 이야기하는 배우의 연기를 통해 그것이 사건의 실마리와 관련된 중요한 대사라는 일종의 결정적인 암시를 포착할 여지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함정’의 해석, 즉 강태욱을 용의자선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추리를 계속하게 되는 것은 드라마 초반에 형성된 상식적이며 모범적이고 다정다감하며 충실한 남편으로서의 강태욱의 형상이 이미 인지 도식 내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범적이고 순정적인 남편이 아내인 고혜란을 살인범으로 몰면서까지 자신의 죄를 은폐할 리 없다는 고정관념이 진실의 층위에 다가가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연에는, 만일 고혜란이 살인을 실제 저질렀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혜란을 탓할 수 없다는, 서은주에게 하는 강태욱의 고백 장면 등(8회 <단죄>), 강태욱을 끊임없이 충실하고 순정적인 인물로서 형상화하려는 시도가 그 토대가 되고 있다.

‘애매함’의 속임수가 장면별로 연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청자들이 올바른 범인을 찾아내어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어떤 계기나 단서를 주어서는 안 되며, 범인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모호한 경계선을 서사 내에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활용된 것이 바로 멜로드라마의 전형적 주인공으로서의 강태욱의 속성이며, 이 점에서 <미스티>는 장르 혼성을 지연의 방법으로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개별 장면의 구체적 정황상으로는 강태욱이 범인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인물 형상화의 관습적 기대 층위가 서사 내에서 개별 장면의 구체적 정황과 그 논리적 정합성을 간과하도록 하는 인지적 충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 인지적 충돌과 부조화가 바로 ‘애매함’의 속임수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추리를 지속하도록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사실 강태욱 인물형은 <미스티>에만 한정된 새로운 인물형은 아니다. 강태욱이라는 인물은 TV 드라마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남성 멜로의 주체로서의 순정적 인물들의 계보에 놓인 것이기도 하다. <접속>, <편지>와 같은 영화에서 나오기 시작한, 헌신적이며 사랑을 최우선의 가치관으로 두는 남성 인물들[15]은 TV 드라마에서도 <다모> (2003), <대장금>(2003~2004),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등에서처럼 전문직 여성 인물의 성장과 자아계발을 헌신적으로 지원하며 사랑을 중시하는 남성 인물 유형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관련, 뢰테르가 미스터리 소설의 독자들이 문제 해결에 동참할 때 단서에 대한 인상보다 경험적 방식이나 다른 소설들을 읽은 기억, 혹은 다른 미스터리 소설의 일반적 규칙에 대한 지식에 의거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말한 바를 참조할 수 있다[11]. 즉, 기존 TV 드라마의 로맨스 서사와 인물형에 익숙한 시청자들 역시 우선은 태욱을 순정적이며 헌신적인 남성 멜로형 인물로 위치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부에 시청자들은 쉽사리 태욱이 범인일 것이라 의심하거나 단정 짓기가 어렵다. 그러나 혜란이 태욱이 살인을 저지르던 밤 신호위반 과태료 고지서를 발견하게 되는 14회 ‘진실’ 이후, 태욱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형상으로서의 인물은 변모를 겪게 된다. 줄곧 혜란만을 의심해왔던 강기준 형사 역시 혜란에게 ‘그녀가 절대 예상하지 못하는 사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혜란을 범인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는 사람’의 존재를 경고하게 되고, 진실을 추궁하는 혜란의 친구 윤송이에 대한 테러 등이 겹쳐지며 태욱은 점점 범인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이와 함께 헌신적인 로맨스 서사의 주인공의 속성을 모아놓은 강태욱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는 급속히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즉 명우의 대사에서처럼 자신의 지배와 통제 하에 놓이지 않는, 혹은 자신이 사랑한 만큼 그 보답을 돌려주지 않는 아내에 대한 불안감과 분노, 사랑과 소유욕을 가진 평범한 인물로 그 인물 자체의 고뇌와 번민이 다시금 부각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강태욱은 헌신적이며 다정다감한, 충실함의 속성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멜로형 인물에서 탈피하여 그 자체의 고유한 육체와 욕망, 인생의 서사와 행위 동기를 가진, 인격체로서의 인물로 다시금 이해되는 변모를 거친다[13].

특히 드라마 중반부 이전까지 화제가 된 것은 90년대 중반 이후 멜로드라마의 남성 인물의 헌신성과도 구별되는 비현실적인 ‘충실성’의 사랑이었다[16]. 혜란은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케빈 리와 이미 부적절한 행동을 했으며, 태욱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혜란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한다. 어머니의 이혼 종용에 반발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 혜란의 퇴직을 막기 위해 신념을 꺾고 평소에 경멸하던 사회 기득권층의 모임에 나가는 것, 혜란이 사람들의 비난으로부터 태욱을 보호하고자 그의 변호를 거절했음에도 로펌을 옮겨 그녀의 변호를 맡은 것 등으로 이 ‘충실함’은 반복된다. 아내가 불륜을, 살인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끝까지 그녀의 편에서 있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굳건함은 혜란에게마저도 ‘내가 당신에게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14].

바로 이 지점이 강태욱을 기존 남성 멜로의 헌신적 인물의 계보에 서게 하면서도 그 계보의 정점에 혹은 그 계보를 일탈하는 지점에 그를 위치시키는 특성이기도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충실성’으로 해석되게 하는 이 모든 장면들은 범인을 알고 나서 보면 자신이 용의자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치밀한 계략이나 그 계략에 따르는 인간적 후회와 죄책감으로 다시금 해석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자신의 신념을 꺾고 기득권층의 모임에 나가는 것은 살인 용의자가 된 아내가 퇴직까지 당하는 것을 막으려는 죄책감으로, 그의 변호를 거절한 혜란에게 끝끝내 자신이 변호를 맡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용의자로 몰리지 않기 위한 그의 자기방어로 다시금 해석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보면, 시청자가 요구하는 드라마 속 인물의 비범성[17], 특히 상식적인 수위를 넘어서는 사랑에의 충실성이라는 시청자의 환상이 오히려 범인을 추론하는 데 방해나 속임수가 되는 셈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강태욱의 충실성은 쉽게 사랑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에 거부감이 없게 된 현재 시점의 사랑관과 대립되는 위치에 놓인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환상’으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게 된다는 점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에바 일루즈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종종 불확실성과 부정적 선택의 양상을 지닌다. 부정적 선택이란 “자유와 자아실현이라는 명분으로 헌신과 관계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를 의미한다[18]. 애정과 결혼의 영역은 수많은 상품을 놓고 선택하는 시장 논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장이 되었으며, 얼마든지 한 사람을 대체할 수많은 다른 이들이 있다는 감각은 관계에 대한 헌신이나 장기적 신뢰를 중요하지 않게 만들고, 쉽게 관계를 끝내거나 혹은 회피하는 경향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 형태의 변화가 역설적으로 살인용의자가 된 극단적 상황에서도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저버리지 않는 연인이나 배우자의 존재에 대한 환상을 더욱 키우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청자의 이해와 환상을 추론의 방해와 지연 요소로 역으로 활용하는 양상은 <미스티>가 기존 로맨스 드라마의 장르 문법을 전복시키면서 새롭게 추리 서사와 접합시키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때 추리 서사는 TV 드라마의 로맨스 서사나 판타지 서사를 보완하는 보조적 서사의 기능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시청자 자신의 드라마 속 인물에 대한 환상이 그야말로 ‘환상’일 수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특수한 설정으로서 서사 향유 행위의 중심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 또 이 부분은 기존의 로맨스 서사의 도식과 장르적 관습을 적극적으로 전복하면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유기적인 장르 혼성의 사례로도 평가할 수 있다. 즉, 단순히 로맨스 서사와 추리 서사가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함께’ 놓였다는 의미에서의 장르 혼성이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스티>에서의 장르 혼성은 로맨스 서사의 관습적 이해가 추리와 관련된 시청자의 인지 공간 내에서의 역동적 실행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며 서사 이해가 ‘지연’되는 식으로 수용의 복합적인 양상에 총체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좀 더 근본적이며 깊이 있는 장르 혼성의 사례로 평가받을 수 있다.

Ⅳ. 결론

2018년 방영된 드라마 <미스티>는 기존 TV드라마에서 정통 추리 서사는 도입되기 어렵다는 예측과 다르게, 범죄 발생 이후 범인을 추론하도록 하는 미스터리 구조와 로맨스 구조가 유기적으로 상호 결합되어 있다. 우선 시청자들에게 추론의 재미를 부여하는 여러 허구적, 언어학적 단서들이 사용되었으며, 이 단서들을 통해 빠르게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함정’, ‘애매함’과 같은 속임수가 다채롭게 활용되었다. 특히 범인인 강태욱의 대사나 행동을 이중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하여, 1회차와 2회차 이상 시청 시점에 따른 대사나 행동의 다른 의미를 고려해 보는 서사 향유도 가능한 구조이다.

이와 같은 ‘애매함’이라는 속임수의 지속적인 활용과 개별 장면에 대한 이중적 해석 가능성의 근원에는 90년대 중반 이후 남성 멜로의 주인공의 전형인, 사랑을 최우선의 가치관으로 놓고 헌신하는 인물이라는 전형적 로맨스 서사에 대한 시청자의 배경 지식이 놓여 있다. 이미 <대장금>,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 다양한 드라마를 통해 이러한 로맨스 장르 규범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다정다감함, 세심함, 헌신적임, 충실함’의 속성들을 집합하여 강태욱이라는 인물을 하나의 형상(figure)으로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미스터리 구조 후반부에 가면 그 인물이 사실 여주인공인 고혜란을 유력한 용의자로 만들고 자신은 뒤로 숨은 범인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즉, 미스터리 구조가 로맨스 서사 관습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 층위에 균열을 내면서 성립할 수 있게 되며, 동시에 시청자들은 형상으로서의 인물이던 강태욱을 그 자체의 고유한 욕망과 육체, 삶의 서사를 지닌 인격체로서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미스티>에서의 장르 혼성은 로맨스 장르에 대한 기대 층위를 적극적으로 전복하면서 미스터리 구조의 추론에 서사적 동력을 부여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유기적으로 상호 결합의 사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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