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1950~60년대부터 현재까지 남한과 북한의 구석기 고고학 연구는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달려왔다. 수십 년간 서로 다른 가치의 구석기 연구를 해 온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구석기 고고학의 궤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궤적이 놓인 정치·사회적 지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북한 구석기 고고학을 '읽기' 위해서는 문헌의 정보를 살피는 동시에 문헌의 밖을 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북한의 구석기 고고학을 읽는다는 것은 고고학적 연구와 함께 북한의 정치·사회적 특성을 연동하여 살핀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메시지나 사회적 변혁에 따른 구석기 고고학의 변이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도서 정리 사업'이라는 정치·사회적 사건과 이에 따른 학술 자료 인용의 관계성은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정치·사회적 일정과 관련하여 북한의 구석기를 읽기 위해서는 북한의 구석기 연구를 고고학적 자료와 같이 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고학적 자료를 각각의 속성으로 구분하여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1950~6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북한의 구석기를 여러 속성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여러 속성, 즉 세부적인 연구 단위를 찾고 그 연구 단위의 변화를 읽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북한 구석기 연구 단위는 편년 연구, 사회 진화, 유물 조합, 인류 진화, 지질 환경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해당 다섯 가지 연구 단위의 세부적 내용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 세부 연구 단위의 변화는 크게 1950~60년대 이후, 1970년대 이후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 나누어 관찰이 가능하다. 새로 조사된 고고 자료로써 각 연구 단위의 내용은 누적되는 방향으로 변화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일종의 대응도 관찰된다. 각 연구 단위의 표지적 내용은 대체적으로 서로 대응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편년 연구의 특정 표지 개념은 인류 진화의 특정 표지 개념 그리고 사회 진화의 특정 표지 개념과 대응이 된다. 그 대응을 살펴보면 마치 잘 짜인 오면체 구조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각각의 연구 단위가 서로 공고히 연결될 수 있게 하는 연결의 특징도 관찰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중심 주제는 핏줄로 대표되는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초기 구석기 연구를 벗어나 '조선민족' 개념의 확산 이후, 기원, 계승, 계통은 구석기 연구에서도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 담론을 담는 기능으로 각 연구 단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데 있어 연구 단위는 서로 공고히 연결되어 있다.
Considering significant words that stand for the history of Paleolithic in North Korea, these can be summarized for each decade since the 1960s. The 1960s ought to be when the earliest discovery of a Paleolithic site was made by Korean hands. The 1970s might be the earliest period for textbooks being published that were geared towards increasing general understanding of the Paleolithic era in the Korean peninsula. The 1980s can be summarized as a period of reissued Paleolithic articles from a newly introduced archaeological journal. The 1990s witnessed efforts to formulate nationalistic interpretations about the Paleolithic period in Korea. The 2000s then synthesized several of these aspects of Paleolithic studies. Gulpori, the Paleolithic site that was discovered in the 1960s, holds significance not just because of the discovery itself, but because of its prompt acceptance by North Korean academic authorities. The publications that covered general understanding of Paleolithic archaeology such as Joseon Gogohag Gaeyo, Joseon-ui Guseoggisidae, and Joseonjeonsa: Wonsipyeon in the 1970s hold immense significance themselves, as they demonstrate contemporary achievements. Reintroduction of the archaeological Journal, Joseongogoyeongu in 1986, is the beacon of alleviation of conspicuous effect to the academic sector. During the 1990s, a new emphasis on nationalism influenced Paleolithic studies. In the 2000s, the formally constructed elements of Paleolithic research such as Paleolithic chronology, social evolution, lithic assemblage, Quaternary studies, and human evolution were consistently refined. Metaphorically speaking, these parts are like a polygonal structure. As is the case with a polygonal structure, these research aspects are united and work together. Each part affects the others. Although the content of each research aspect has been altered by either academic growth or sociopolitical agenda, the fundamental part of the polygonal structure is not likely to be changed. The structure is solid enough to continue to serve the purposes of North Korean Paleolithic studies. North Korean Paleolithic archaeology seems to be a juxtaposition; some parts are easily changed while others are not. In order to ascertain these, not only the academic but also the sociopolitical context should be follow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