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C를 통한 계란 유통 구조의 변화 필수
2016년 말부터 기승을 부렸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영향으로 사상 유례없는 살처분을 겪으며 단군 이래 없었던 고난가를 맛보았던 우리 채란인들은 살충제 파동과 사육수수 증가로 인해 산이 높았던 만큼 깊은 난가의 골을 1년 반 이상 겪으면서 대다수의 농장은 사료값을 걱정해야 할 만큼 깊은 시름의 세월을 지나왔다.
연초부터 적극적인 산란성계 도태와 자조금을 이용한 계란의 우수성 홍보로 소비가 예년의 수준으로 올라가면서 지난 3월부터 간신히 생산비를 상회하는 난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3 이상의 산란계를 살처분하면서 계란의 절대량 부족으로 인해 난가는 고공행진을 하였고, 고질적인 후장기·DC도 없어지는 듯 보였으나, 지난해부터 계란이 남아돌면서 조금씩 늘어난 DC는 어느새 고시가의 절반을 넘어서는 일을 겪었다.
왜 이러한 문제가 지난 30여 년 동안 없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걸까? 그리고 왜 유독 우리가 생산하는 계란만 항생제 문제, 살충제 문제로 고통을 겪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는 현재 양계협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계란 유통센터(EPC,Egg Processing Center) 건립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지난 3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있었던 “계란 안전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 계란 유통의 단계별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채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계란 유통의 문제점은 고질적인 후장기 제도와 DC일 것이다. 계란은 장기간 보관이 어렵고, 가격에 비해 부피도 큰 만큼 매일 생산되는 계란이 매일 소비되지 못하면 소비가 감소한 때에는 계란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DC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유통과정에서 계란의 많고 적음에 따라 움직이는 계란 기준가격도 누가 조절을 하더라도 투명하지 못한 가격의 결정 구조 때문에 항상 뒷말이 무성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대부분 채란 농가들은 자기가 생산한 계란이 얼마에 판매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유통인들에게 계란을 출하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미수금으로 인해 생산자와 유통인 간에 법적 분쟁까지 벌어지는 일도 있다.
그렇다면 계란을 제외한 다른 농축산물은 왜 가격에 대한 분쟁이 없을까? 다른 모든 농축산물은 투명하게 가격이 결정되고 그것이 모두에게 인정받는 공매 가격으로 공신력을 갖기 때문이다. 계란도 이렇게 되려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계란의 수량을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하고, 그 유통물량을 바탕으로 공신력 있는 가격을 발표할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관으로 EPC가 거론되는 것이다.
물론 가격 결정기능 외에도 안전성 확보를 위한 검사 기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현재 전국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계란은 4000만개 내외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수치는 추정치일 뿐 각 농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재고량이나 유통인들의 재고량을 정확히 알 방법이 현재로서는 전무한 실정이다.
전국에 몇 곳의 계란 유통센터를 신설하고 규모가 작은 농가의 계란은 계란 유통센터로 집하해서 검사 후 출하할 수 있게 하고, 규모가 큰 농가에서는 선별포장업에서 규정하는 시설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고, 자가 검사를 한 이후 출하하게끔 하고, 매일 생산과 출하되는 계란의 물량을 계란 유통센터에 의무적으로 보고하게 만들면 전국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계란의 숫자는 집계가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매일 재고량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될 수 있고, 그 가격은 공신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혹자는 자가 검사의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계란의 항생제, 살충제에 대한 문제는 그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2017년 살충제 파동 당시 오염된 토양으로 인해 방사 사육을 하는 농가가 폐업한 사례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사용해서 이미 오염된 사육시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난후, 농장에서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계란에서 검출될 일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가검사의 허점을 이용해서 살충제나 항생제를 사용하고도 생산된 계란을 불법적으로 유통시키는 업자에 대해서는 가축사육허가 취소 등의 강력한 법적 제제도 가해야 할 것이다.
각자 조금씩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계란 유통센터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면 많은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채란인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현재 (사)대한양계협회가 추진하고 있는 법안은 개별 농가의 선별포장업 허가는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으나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농가에서 500m 이상 떨어진 곳에 GP 를 설치해야만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농장 내에 검사, 선별, 포장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농가에게는 불필요한 중복 투자가 될 것이며, 만일 이미 농장 자체에서 계란 유통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중복 투자를 할 여력이 없는 농가에서는 수년에 걸쳐 구축한 유통망을 하루아침에 빼앗기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미 (사)대한양계협회에서는 지난 2011년부터 계란 유통센터를 통한 유통구조 개선을 주장해 왔으나,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2016년 8월에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내놓은 계란 유통구조개선 대책(안)에는 “GPC 유통 의무화 및 이력제 도입으로 계란 산업구조 개선”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GPC 유통 의무화, Cold Chain System 구축, 공정한 계란 가격 결정 시스템 구축, 난가공산업 지원들을 주요 과제 내용을 내놓은 바 있으나, 이미 지난 정부에서 축산물의 검사업무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이관되면서 농림축산식품부의 유통개선 의지는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생산 현장을 전혀 알지 못하는 식약처에서 내놓은 계란 안전성 확보방안에는 산란일자 표기 같은 불필요하며 시장에 큰 혼란만 가져올 수 있는 법안이 들어가 있어서 아직은 계도기간이지만 이미 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은 업체에는 지방 식약처에서 방문하여 산란일자 표기를 검사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이러한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축산물에 대해 반쪽밖에 알지 못하는 식약처의 축산물 검사업무를 농림축산식품부로 이관하고 계란 유통센터를 통한 계란의 유통구조 개선을 추구하는 것만이 진정 소비자에게 신선하고 안전한 계란을 공급하는 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