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 QR코드

DOI QR Code

『교주부인양방(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설기(薛己)의 부인과 의안(醫案) 연구

Xueji's Gynecological Medical Records In Xiaozhufurenliangfang

  • 류정아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인문사회의학부)
  • Lyu, Jeong-ah (Division of Humanities and Social Medicine, School of Korean Medicine, Pusan National University)
  • 투고 : 2019.04.22
  • 심사 : 2019.05.02
  • 발행 : 2019.05.25

초록

Objectives : Medical records of Xueji in the "Xiaozhufurenliangfang" were examined in this study which aimed to look at the medical situation in gynecology of China's Ming Dynasty period, in hopes for it to yield implications and treatment directions to gynecology in $21^{st}$ century Korea. Methods : The medical records were systematically organized with a medical anthropological approach along with overall analysis of the entire records, which lent meaningful statistical information in numeric form. A bibliographical review of the text as historical artifact was undertaken as well. Results : In managing gynecological conditions, Xueji frequently attributed them to depletion of Qi and Blood of the Spleen and Liver. In terms of pathogenic factors, he frequently mentioned Fire and Heat, and as etiological factors, emotional distress. For treatment, he frequently used 'Bu Zhong Yi Qi Tang(補中益氣湯)', 'Xiao Yao San(逍遙散)' and 'Gui Pi Tang(歸脾湯)'. Conclusions : Through studying the medical records of Xueji in "Xiaozhufurenliangfang" a close look into a master's insight on gynecological disorders in terms of diagnosis and treatment was achieved. The formulas he used are widely applied even today, and this study shows that the formulas's clinical application could be expanded even wider.

키워드

Ⅰ. 序論

『婦人大全良方』은 宋代 陳自明(약1190~1270)의 저작으로 昝殷의 『經效産寶』를 이어 당시까지의 부인과 방면 이론과 임상 성과를 집대성한 부인과 전문 의서이다. 의학사 상 의학 발달의 지표 중 하나가 소아과, 부인과, 외과 등의 분과와 그에 따른 전문의서의 출현이다. 부인과의 경우 唐代 孫思邈(약 581~682)의 의서 『備急千金要方』과 『千金翼方』에서 婦人門을 나누어 편장하고 규모와 내용을 크고 자세하게 설정하였으며, 동시에 부인 관련 전문과의 독립 분과를 주장한 이후 宋代 陳自明에 이르러 부인과의 전문 분과가 온전히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薛己(1487~1559)는 중국 明代 吳縣(지금의 江蘇省 蘇州)에서 활약했던 명의로 御醫 및 太醫院使를 역임하였다. 처음에는 家學을 이어받아 瘍醫(외과의)로 이름을 떨쳤으나 나중에는 內科(內傷雜病)醫로 유명하였다. 학술사상적 특징은 王冰, 錢乙, 張元素, 李東垣 등의 학설을 계승하여 사람의 병을 인식함에 있어 補脾와 益腎을 중시하였다. 특히 眞陰眞陽의 부족을 강조하여 八味丸, 六味丸을 즐겨 씀으로써 이후 趙獻可, 張介賓 등 溫補腎陽을 중시하는 醫學思潮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로써 陳修園, 徐靈胎 같은 의가로부터 “庸醫之首”라는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부친인 薛鎧 역시 太醫院官을 지낸 명의였다. 『外科樞要』, 『內科摘要』, 『女科撮要』 등 저서를 비롯하여 『校主婦人良方』, 『小兒直訣』, 『十四經發揮』 등 교감주석서를 합한 수십 종 저작이 『薛氏醫案』으로 편성되어 전해져 온다.1)2)3)

『校注婦人良方』은 薛己가 宋代 陳自明의 부인과 저서 『婦人大全良方』을 새로 편집하고 자신의 醫論 및 臨床 醫案(의무기록)을 부가하여 만든 저작으로 1547년에 編成, 刊行되었다.4) 혹 1547년 간행에 앞서, 1529년에 編成된 것으로 고찰한 보고도 있다.5)6)

본 논문은 薛己가 새롭게 편성한 『校注婦人良方』에 부가한 臨床 醫案(의무기록)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明代 부인과 의료의 실제적 상황을 고찰해봄으로써 21세기 대한민국 부인과 의료에의 시사점과 치료방향 적용 요소들을 얻고자 의도하였다. 이를 위해 醫案들에 고유의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개별 醫案들을 분석하기에 적절한 형식을 고안한 다음, 그 형식에 따라 전체 醫案을 분석하고 고찰하였다.

선행연구로 오창영7)은 調經門 등 편목별로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주요 醫案을 소개하였으며, 魯兆麟8)은 薛己 醫案 중 咳嗽 등 몇 가지 증상을 택해 소개하였다. 薛己의 의학사상에 대해 朴載正9)10)은 생애와 저작을 위주로 연구하였으며, 王新智11), 胡菊英12)은 부인과 방면의 특징을 보고하였으며, 黃曉紅13)은 ‘足三陰虛損’ 치료에 대해 고찰하였으며, 胡創北14)은 ‘因時診治’에 대해 고찰하였다. 來雅庭15), 旰江醫學硏究課題組16), 王咪咪17)는 『婦人大全良方』과 『校注婦人良方』을 비교 고찰하였다. 劉洋18)은 판본에 대해 고찰하였다. 金曈一19)과 卞庭換20)은 각각 『校注婦人良方』의 국문 번역서를 출간하였다.

본 연구는 『校注婦人良方』에 수록된 薛己의 醫案이 明代 부인과 의료 실제에 대한 의무기록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에 따라 현대의 의무기록들에서 여러 가지 고찰사항에 관한 통계적 수치를 도출하듯 薛己의 醫案에 대해서도 같은 작업을 시도함으로써 醫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수치화된 여러 가지 유용한 통계적 정보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더불어 이와 같은 작업을 위해서는 『校注婦人良方』에 수록된 薛己 醫案의 ‘역사적 사실성’이 담보되어야 하겠기에, 판본 및 史料로서의 『校注婦人良方』에 대한 고찰도 함께 수행하였다

Ⅱ. 本論

1. 『校注婦人良方』의 판본

『婦人大全良方』의 각종 板本은 30여 종에 달하나, 劉洋의 선행연구에서는 이를 크게 3가지로 ‘原板本’, ‘補遺本’, ‘校注本’으로 분류하였다. ‘原板本’은 1237년 陳自明(약1190~1270)이 편제한 양식을 대체로 보존하고 있는 판본을 말하고, ‘補遺本’은 1440년 熊宗立(약1415~1487)이 補遺하여 再編한 판본을 말하며, ‘校注本’은 1547년 薛己(1487-1559)가 새롭게 편성한 판본을 말한다.21)

『校注婦人良方』은 『婦人大全良方』의 ‘校注本’에 해당된다. ‘校注本’은 단행본으로 된 것도 있고 叢書 중에 포함되어 있는 것도 있다. 단행본 판본으로 대표적인 것은 首都도서관에 소장된 1547년 明嘉靖26년각본, 1548년 明嘉靖27년각본, 1653년 일본莊左衙門각본, 漁古山房에서 薛氏醫案 중 『校注婦人良方』 부분만 떼어 刊刻한 漁古山房刻薛氏醫案本이 있다. 뒤의 3가지 刻本은 모두 中國中醫硏究院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총서본으로 대표적인 것은 1368년 明新安吳琯合刻本, 1809년 淸嘉慶14년書業堂刻本, 首都도서관 소장 1809년 淸兩儀堂刻薛氏醫案本이 있다. 앞의 두 刻本은 모두 圖家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22)

본 연구에 底本으로 삼은 서적은 대만 文光圖書有限公司에서 印行한 것으로 첫머리에 「校註婦人良方提要」와 「序」가 차례로 나오며, 「序」의 끝에 “秀水石山沈謐撰”으로 되어 있다. 이어 「校註婦人良方目錄」에 卷一부터 卷二十四까지 목록을 제시하였다. 이어 본문의 처음에 “校註婦人良方. 宋 臨川 陳自明良甫編輯, 明 古吳 薛 己立齋補註, 鄞縣 曹赤電炳章圈校”라 제시한 후 卷一부터 본문을 전개하였다. 文光圖書有限公司 印行 『校注婦人良方』의 冊面 구성형식은 다음과 같다. 『校注婦人良方』의 펼쳐진 양면에는 테두리 없이(四周無邊) 좌우에 각각 “校註婦人良方 卷數 ○○門 ○○○○方論第○○ 面數”를 표기하고, 하나의 冊面은 세로로 14行, 行마다 31字로 편집되어 있다. 沈謐의 「序」가 있는 것은 1547년 明嘉靖26년각본, 1653년 일본莊左衙門각본, 漁古山房刻薛氏醫案本, 1368년 明新安吳琯合刻本, 1809년 淸嘉慶14년書業堂刻本, 1809년 淸兩儀堂刻薛氏醫案本 모두가 해당하나 인쇄된 면의 行수와 하나의 行에 들어가는 字수 그리고 교정한 사람의 성명이 이 중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는다.23) 서문을 쓴 沈謐(1501~1553)은 浙江 嘉興府 秀水縣 사람으로 號를 石山이라 하였다. 王守仁의 제자인 薛侃에게 수학하였으며 수만 권의 藏書를 모아 秀水長溪沈氏藏書의 창시자가 되었다.24) 薛己와 같은 시기에 薛己가 의사로서 활약하던 지역에 살았으며 학자였으므로 薛己와 평소 친분이 있어 서문을 지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교감자인 曹炳章(1878~1956)은 字가 赤電이며, 浙江省 鄞縣 출신 의가로 1934(5)년 上海 大東書局의 초빙을 받아 叢書인 『中國醫學大成』을 主編하였다. 『中國醫學大成』은 漢, 唐~明・淸 및 일본의 365종 醫書를 찬집함에 모두 상세한 교감을 가하고 원작자의 간략한 행장 및 內容提要를 지어 갖추어 그 일부가 1937년 출판되었으며, 이후로 續集과 三集까지 총 4185종 醫籍과 약물고증류 도서 655종이 출판되었다.25)26)27) 첫머리에 쓴 “校註婦人良方提要”와 “鄞縣 曹赤電炳章圈校”라고 밝힌 교감자로 볼 때, 본 연구의 底本이 된 판본은 曹炳章의 編輯 및 校勘으로 上海 大東書局에서 간행한 中國醫學大成刊本일 가능성이 높다. 이 刊本은 연구고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살펴본 결과 誤字가 거의 없었으며, 표점 또한 정확하고 글자체가 단정・명료하여 획순이 많고 복잡한 글자도 잘 알아볼 수 있었다. 더구나 본 연구에 底本으로 삼은 臺灣文光圖書有限公司에서 印行한 刊本은 고전적인 세로쓰기 冊面 형식을 그대로 유지한 번체자로써, 근래 中國中醫藥出版社에서 가로쓰기 형식 간체자로 출판한 『中國醫學大成』 叢書本보다 연구・고찰에 용이하였다.28)

2. 『婦人大全良方』과의 차이점

校注本인 『校注婦人良方』은 原板本인 『婦人大全良方』의 陳自明 편찬 당시의 편제와는 차이가 있다. 『婦人大全良方』은 調經, 衆疾, 求嗣, 胎敎, 妊娠, 坐月, 産難, 産後의 8門으로 되어 있었으나 『校注婦人良方』은 調經, 衆疾, 求嗣, 胎敎, 候胎, 妊娠疾病, 坐月, 産難, 産後, 瘡瘍의 10門 24卷으로 되어 있다. 증보된 候胎, 瘡瘍 두 門 중 「候胎門」은 새로운 내용을 첨가한 것은 아니고 『婦人大全良方』「胎敎門」의 일부를 「候胎門」으로 편성하였다.29)30) 「瘡瘍門」은 陳自明의 醫論을 보충한 부분이 아니고 薛己 자신의 醫論 및 醫案을 새롭게 편성한 것으로, 대부분 薛己의 저작인 『口齒類要』, 『女科撮要』 및 『外科樞要』의 내용과 중복된다.31) 아울러 原板本『婦人大全良方『의 편목에 있던 辨識修制藥物法度, 極一方總論, 聖惠方婦人脚氣論 등 10개 篇이 없고, 반면 筋脈瘈瘲方論, 虛風顫振方論, 泄痢秘結方論 등 20여 篇은 새로 보입되었다. “姙子論”을 “受形論”으로 바꾸는 것 같이 부분 편명을 고친 경우도 있다.32)

HOOJBM_2019_v32n2_49_f0001.png 이미지

그림 1. 文光圖書 有限公司印行 中國 醫學大成刊本 『校注婦人良方』 표지

HOOJBM_2019_v32n2_49_f0002.png 이미지

그림 2. 文光圖書 有限公司印行 中國 醫學大成刊本 『 校注婦人良方』 본문

내용 서술 형식은 각 門의 소항목마다 陳自明의 醫論이나 인용한 醫論(이하 “本文 醫論”으로 간칭함)을 앞에 기술하고, 이어서 “愚按”이라고 제목을 달아 薛己 자신의 醫論이나 인용한 醫論 및 임상성과로부터의 귀결점을 병기하였으며, 그 뒤에 “附治驗”이라는 제목 아래 역시 薛己 자신의 부인과 임상醫案을 부기하였다. 그러나 실은 “愚按”이 아닌, 각 門의 소항목마다 앞쪽에 기술한 本文 醫論에도 원래의 내용을 대폭 없애거나, 陳自明이 수록한 醫論이 아닌 宋代 이후 醫家의 醫論이나 薛己 자신의 醫論을 전개한 경우가 적지 않다. 本文 醫論에 陳自明 사후 시기인 金・元代 朱丹溪(1281~1358)의 醫論을 제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33) 本文 醫論에 明代 醫家 樓英(1332~1401)의 『醫學綱目』을 인용한 곳도 여러 곳이다.34)35) “愚按” 부분에 朱丹溪나 李東垣(1180~1251)의 醫論을 자주 인용하였음은 물론이다.36) 반면 原板本『婦人大全良方』에서 陳自明이 『素問』, 『靈樞』를 비롯하여 당시까지 저명 의가들의 의학 이론 및 자신의 임상 경험에서 발췌하여 정리한 本文 醫論은 校注本『校注婦人良方』에서 본래보다 거의 1/3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점을 두고 “『校注婦人良方』은 ‘校注’의 범위를 벗어났다”, “사실상 학술사상적 기반이 다른 별개의 의서이다”, “陳自明의 학술사상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評이 있기도 하다.37)

醫案의 경우 原板本『婦人大全良方』에는 陳自明이 편제한 약 48례의 醫案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38)39) 다만 48례의 醫案 모두가 陳自明 자신의 치험례는 아니다. 校注本『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의 醫案은, 대체로 薛己가 北京 및 南京의 太醫院에서 醫職을 역임한 후 44세 되던 해 사직하고 귀향하여 진료와 저술에 전력한 1530년 경 부터 『校注婦人良方』이 간행된 1547년 사이에 축적한 진료기록일 것으로 추정된다.40)41) 그렇게 추정하는 까닭은, 뒷장에 언급하였듯이 환자의 연고를 알 수 있는 몇몇 醫案이 대부분 上海, 蘇州 등 薛己의 출신지역 및 인근지역에서 진료한 기록으로 밝혀져 나머지 醫案들도 비슷한 지역에서 진료한 기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진료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醫案에 표기된 연도가 辛丑(1541)년부터 丙午(1546)년 사이에 분포하여 나머지 醫案들의 성립 시기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42)43)44)45)46) 薛己의 醫案은 부인과 방면 다양한 질환과 상황을 망라하고 있다. 『校注婦人良方』에는 중복된 것을 포함하여 총 576首의 임상 醫案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중 陳自明 당시 原板本『婦人大全良方』에도 수재되어 있었던 醫案 7首가 남아있다. 나머지는 모두 薛己가 새로 수록한 것인데, 대부분 薛己 자신의 치험례인 것으로 보이나 전부는 아니다. 자세한 것은 다음 장에서 논한다.

HOOJBM_2019_v32n2_49_f0003.png 이미지

그림 3.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연도 표기

방제의 경우 『婦人大全良方』에 있던 680餘首를 없애고 새로이 260餘首를 더하였는데, 이러한 점은 原板本『婦人大全良方』이 宋代까지의 부인과 방제를 집대성했던 의의를 크게 퇴색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47)48) 그러나 “附方”은 “附治驗”의 내용과 상관성을 가지고 종속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明代부인과 의료 상황을 반영한 “附治驗”의 내용에 따라 자연 대폭 교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3.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개수

『校注婦人良方』에 수록된 薛己 醫案의 개수에 대하여 지금까지 정확한 고증이 되어있지 않다. 오창영은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의무기록(醫案)에 관한 연구」에서 薛己 醫案의 개수를 546개로 보고하였고49), 來雅庭은 530여례로 보고하였으며50), 王咪咪는 520여례로 보고하는 등51) 연구자마다 보고하는 醫案의 개수가 일치하지 않으며 또한 정확히 산정되어 있지도 않다. 이에 논자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醫案에 일련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醫案의 개수를 정확히 산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薛己가 수록한 것이 아닌듯한 醫案이 발견되어, 陳自明이 『婦人大全良方』에 원래부터 수록하였던 醫案으로 추정하였다. 原板本『四庫全書・婦人大全良方』52)및 人民衛生출판사에서 元代 勤有書堂刻本을 底本으로 출판한 原板本『婦人大全良方』53)을 고찰하여 확인한 결과, 陳自明이 原板本『婦人大全良方』을 편제할 당시에 수록한 醫案 7首가 校注本『校注婦人良方』에 잔존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勤有書堂刻本은 『婦人大全良方』의 현전하는 판본들 중 가장 이른 시기의 판본이면서 善本이다.54) 여기에 더하여 또 다른 校注本인 『四庫全書・薛氏醫案・校注婦人良方』55) 및 明新安吳琯合刻本『薛氏醫案・校注婦人良方』56)과도 대조하여 비교하였다. 이 7首의 醫案은 薛己가 수록한 醫案들과 구분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原板本『四庫全書・婦人大全良方』과 校注本『四庫全書・薛氏醫案・校注婦人良方』에 모두 수재되어 있다. 둘째, 校注本『四庫全書・薛氏醫案・校注婦人良方』 중 수록 위치가 本文 醫論을 쓴 곳에 이어져 있다. 薛己의 醫案은 보통 薛己의 醫論인 ‘愚按’의 뒤 ‘附治驗’에 소속되어 있으며, 文光圖書有限公司 印行 中國醫學大成刊本『校注婦人良方』에는 本文 醫論에 비해 한 칸 내려 씌어져 있다. 셋째, 醫案에 등장하는 치료 처방이 薛己가 자주 쓰는 처방들과는 그 방향성이 확연히 달랐다. 이 7首의 醫案들은 薛己가 수록한 醫案의 일련번호에 포함하지 않고, 별도로 陳自明 醫案 1번에서 7번까지의 일련번호를 부여하였다.

7首의 醫案 중 5首는 陳自明 자신의 치험례이며 나머지 2首는 “許學士云”으로 시작하면서 許叔微(1079~1154)의 치험례를 수록한 것이다. 薛己는 수록한 醫案에서 자신을 “余”로 일컫고 있는데 비해 陳自明은 그의 醫案에서 자신을 “僕”으로 칭하고 있었으며, 許叔微는 그의 醫案에서 자신을 “予”로 칭하고 있어서 각각 누구의 치험례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예컨대, 陳自明 醫案 1번은 陳自明 자신의 치험례인데, 校注本『校注婦人良方』에는 “僕”字가 생략되었으나 原板本『婦人大全良方』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을 “僕”으로 칭하고 있다.

愚曾治一女人, 眼見鬼物, 言語失常, 循衣直視, 衆醫多用, 心藥治之, 無效. 僕投養正丹二貼, 煎乳香湯送下, 以三生飮佐之, 立愈.57)58)

내가 일찍이 한 여인을 치료하였는데, 눈에 헛것이 보이고 말하는 것이 평소와 다르며 옷을 더듬고 눈을 치켜떴다. 여러 의사들이 心을 다스리는 藥을 많이 써도 효과가 없었다. 내가[僕] 養正丹 2첩을 乳香 달인 湯으로 넘기도록 투여하되, 三生飮으로 돕게 하니 즉시 나았다.

그런가하면 陳自明 醫案 2번은 許叔微의 치험례인데, 許叔微는 醫案에서 자신을 “予”로 일컫고 있다. 역시 校注本 보다 原板本의 내용이 더 자세하여 原板本『婦人大全良方』에 수재된 醫案을 소개한다.

許學士云, 予得此方, 凡是歷節及不測疼痛, 一二服便瘥. 在歙川日, 有一貴家婦人, 遍身走疰疼痛, 至夜則發, 如虫嚙其肌. 多作鬼邪治. 予曰, 此正歷節病也. 三服愈.59)60) 許學士가 이르길, 내가 이 처방(麝香圓)을 얻어 모든 이 歷節 및 불측한 동통에 한두 번 복용으로 곧 낫게 하였다. 흡천(地名)에 있을 때 한 귀한 집의 부인이 전신에 돌아다니면서 조직이 곪는 동통을 앓아 밤이 되면 발작하는 것이 마치 벌레가 그 기육을 깨무는 듯하였다. 많은 (의사들이) 鬼邪로 보고 치료하였다. 내가 [予] (진단하여) 말하기를, 이는 바로 歷節病이다. (麝香圓을) 3번 복용케 하니 나았다.

이들 陳自明 醫案 7首는 薛己가 校注本『校注婦人良方』을 재편성할 때 새롭게 수록한 醫案이 아니며, 薛己가 뜻이 있어 남겨두었더라도 明代의 의료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니기에 연구 과정에서 전체 醫案의 일련번호에 포함하지 않고 陳自明 醫案1, 2 식으로 별도로 개수를 산정하였다. 이 7首를 제외한 나머지 醫案에 총 559개 일련번호를 부여하였으며, 그 가운데에는 하나의 일련번호 내에 2首 또는 3首의 醫案이 존재하는 경우가 총 9회 있었다. 이러한 경우는 1-1, 1-2 식으로 하위 번호를 부여하여 구분하였다. 동일한 病理나 治法에 해당하는 醫案을 2~3개씩 묶어서 제시한 경우이다. 하위 번호를 부여한 해당 일련번호는 다음과 같다. 169-1,261) / 200-1,262) / 225-1,263) / 321-1,2,364) / 407-1,265) / 476-1,266) / 490-1,267) / 503-1, 268) / 559-1,269) 하위 번호가 부여된 醫案까지 하나의 개별醫案으로 보아 『校注婦人良方』에 수록된 薛己 醫案의 정확한 개수를 상정하면 총 569首가 된다.

총결하면, 薛己의 임상 醫案은 그 규모가 상당하여 『校注婦人良方』에 총 569首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와 별개로 陳自明 편제 당시의 醫案 7首가 원래보다 상당히 간략화 된 모습으로 수재되어 있어서, 『校注婦人良方』에 수록된 醫案은 총 576首가 된다.

본 연구의 고찰 대상은 총 569首의 薛己 醫案으로 한정하였다. 薛己 자신의 치험례이거나 薛己가 수집한 치험례이며, 明代의 부인과 의료상황을 반영하는 범주로 연구범위를 설정한 것이다.

HOOJBM_2019_v32n2_49_f0004.png 이미지

그림 4. 『校注婦人良方』에 수록된 醫案의 개수

4. 醫案 분석 방법

薛己는 醫案을 기록할 때 대체로 환자의 신분, 연령, 평소상황, 주소증, 겸증, 辨證 내용 및 치법, 처방 및 구체적인 투약상황, 치료결과 및 예후 순으로 배열하였으며, 誤治나 失治 또는 남은 증상으로 말미암아 재차, 삼차 진단・치료가 있을 경우에도 증상, 辨證, 처방, 치료결과의 순으로 반복하여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였다. 때문에 몇 줄 되지 않는 醫案에도 많은 정보가 밀도 있게 논리적으로 담겨 있다. 이에 薛己가 남긴 적지 않은 양의 醫案에 밀도 있고 논리적으로 담긴 방대한 정보를 현대 한의학의 임상에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기 위해 개개의 醫案을 醫案일련번호, 구분편목, 연령, 평소상황 및 신분, 주소증과 겸증, 월경증상, 辨證 및 辨病, 치료처방, 예후의 9개 항목으로 분석・분류하여 정리하였다. 주소증과 겸증을 구분하는 기준은 해당 구분편목에 속하는 증상은 주소증으로 보고 그렇지 않고 동반되는 증상은 겸증으로 보았다. 예컨대 月經不調가 「調經門」에서는 주소증이 되지만 다른 門에서는 겸증이 되는 식이다. 나머지 분석・분류 요소들은 각 항목에 상세히 설명하였다.

표 1.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에 대한 분석연구 예시

HOOJBM_2019_v32n2_49_t0001.png 이미지

5. 나이와 신분, 지역

『校注婦人良方』에 수록된 薛己 醫案은 환자의 신분이나 나이를 명시한 경우 보다는 “一婦人”, “一姙婦”, “一産婦”, “一老婦” 등으로 표기한 경우가 훨씬 많다.

적어도 10년 단위의 연령대를 가늠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환자의 나이를 표기한 醫案은 총 16首가 있었다.

「調經門」에 8首로 가장 많았는데, 1번 “婦人 年三十有七 早孀居 兩腿骨作痛”70)은 37세 과부로 하지골통, 3번 “放出宮人 年四十餘 臀腿內股作痛”71)은 40餘세 출궁한 궁인으로 둔부와 하지 및 서혜부통증, 18번 “室女 年十七 癧久不愈 天癸未通”72)은 17세 미혼여성으로 월경폐색, 21번 “年三十餘 無嗣月經淋瀝無期”73)는 30餘세로 월경이 조금씩 지속되면서 주기가 없음, 37번 “年將七十 素有肝脾之症”74)은 70세를 앞두고 있으며 토혈, 38번 “婦人年六十有四 久鬱怒”75)는 64세로 불규칙하게 하혈이 있음, 39번 “五十歲 辛丑患血崩”76)은 50세로 몹시 심한 하혈, 41번 “年五十 內熱晡熱”77)은 50세로 월경이 2~3월에 1번씩 옴이 각 주요 증상이었다.

다음으로는 「衆疾門」에 4首로, 97번 “室女 十四歲 天癸未至”78)는 14세로 血風으로 인한 두드러기와 소양, 137번 “年六十有四 久鬱怒”79)는 64세로 두통과 寒熱이 있으면서 때때로 하혈, 146번 “年三十餘 忽不進食”80)은 30餘세로 血風이 脾를 공격하여 갑자기 먹지 못함, 225-2번 “婦人 年五十 不食夜飯”81)은 50세로 20년간 저녁밥을 먹지 못하고 五更 설사를 하던 끝에 이질을 앓음이 각 주요 증상이었다.

「姙娠門」에 1首가 있었는데, 285번 “年二十餘 疫疾墮胎時咳”82)는 20餘세로 전염병으로 인해 유산됨이 주요 증상이었다.

다음으로 「産難門」에 2首가 있었는데, 322번 “三十五歲女爲繼室”83)은 35세로 노산으로 산문이 열리지 않음, 324번 “婦人 分娩最易 至四十”84)은 40세로 40세에 임신하여 하혈을 몹시 심하게 한 후 산문이 열리지 않음이 주요 증상이었다.

끝으로 「瘡瘍門」에 1首가 있었는데, 497번 “女子十二歲 善怒”85)는 12歲로 血風으로 전신에 소양과 赤痕이 돋는 피부병이 주요 증상이었다.

증상별로는 출혈증상 4首, 골관절 통증 2首, 월경부조 3首, 난산 및 유산 3首, 피부병 2首, 음식불입 및 이질 2首에 대하여 해당 질환을 이환한 환자의 나이를 표기한 것이다.

아래 차트에 연령대별로 분석한 개수를 제시하였다.

HOOJBM_2019_v32n2_49_f0005.png 이미지

그림 5.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나이 표기

한편 과부나 출궁한 宮人 등을 포함하여 환자의 신분이나 특수상황이 표기된 醫案은 총 56首가 있었다. 일반적인 婦人, 室女, 妊婦 등은 여기에 포함하지 않았다.

과부나 출궁한 궁인은 배우자가 없는 특수상황에 있다. 明代에 배우자 없는 여성 혼자서는 보통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을 것이며, 특히 정서적 울체가 생기기 쉬워 병리적으로 內因으로 인한 각종 부인과 질병이 발병하기 쉬운 경향성을 가진다. 薛己는 임상의로서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그래서 醫案에 일반 여성과 구분하여 특별히 표기하였을 것이다. 과부는 “早孀居”, “一孀婦”, “寡婦” 등으로 표기하였는데, 총 8首가 있었다. 출궁한 궁인은 “放出宮人”이라 표기하였으며, 총 2首가 있었다. 이밖에 배우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외지에 나가 있어서 배우자가 없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醫案이 1首 있었다. 139번 “婦人 因夫久出經商”86)으로 남편이 돈 벌러 오랫동안 나가있는 상황이 발병의 素因이 되었다.

환자인 여성의 신분 표기로 가장 많은 것은 특정한 남성을 기준으로 누구의 아내, 어머니, 누이, 며느리, 집안 부인 등으로 기록한 경우인데, 총 41首 있었다. 예컨대 26번 “大尹 王大成之內”87)는 大尹관직에 있는 王大成이라는 남성의 아내이며, 169-2번 “府痒 沈姬文母”88)는 府痒관직에 있는 沈姬文이라는 남성의 어머니이며, 198번 “上舍 陳履學 長子室”89)은 上舍품계에 있는 陳履學이라는 남성의 큰 며느리이며, 201번 “通府 張孟威云, 其妹”90)는 通府관직에 있는 張孟威라는 남성이 자신의 누이가 앓은 병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중 드물게 여성의 姓을 기록한 醫案도 1首 있는데, 133번 “大方室 趙氏”91)는 大方의 아내인 趙氏이다. 醫案 중 “先生診之云, 此乃虛熱無火, 投以壯水生土之劑,隨服隨愈”라는 내용으로 보아 여기서의 “大方”은 薛己가 알고 지내던 의사이고, 환자인 趙氏는 의사의 아내이며, 해당 醫案은 薛己가 알고 지내던 의사가 자신의 아내를 진찰하고 치료한 치험례인 것이다. 薛己 자신을 중심으로 기술한 경우도 있는데, 39번 “表弟 方健甫內”92)는 사촌 아우인 方健甫의 아내이며, 348번 “家人婦”93)는 薛己 일가 사람의 부인이다.

그런가하면 남성을 중심으로 여성의 신분을 표현한 41首 가운데에는 특정 지역을 함께 언급한 경우가 총 5首 있었다. 189번 “松江太守 何恭人”94), 200-2번 “陳湖 陸小村母”95), 205번 “吳江 史玄年母”96), 226번 “吳江 史玄年母”97), 285번 “吳江痒吏 萬湖仲子室”98)에 나타나는 “松江”, “陳湖”, “吳江”은 모두 지금의 上海, 湖北省 남부, 江蘇省 蘇州지역으로 “吳縣”으로 일컬어지는 薛己의 활동 영역과 일치하거나 인근에 있는 곳들이다. 이 5首의 醫案은 『校注婦人良方』에 수록된 569首 醫案들이 주로 양자강 하류 및 중국 강남지역에서 형성된 의료상황임을 시사하고 있어서, 의사학적 및 의료인류학적 가치가 자못 크다고 할 것이다. 이외에 특정 남성을 기준으로 하진 않았지만 46번 “靳閣 老婦人”99)도 浙江省 靳州 지역에 사는 나이든 여성의 치험례로 추정된다.

반면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의 신분을 표기한 경우가 기준이 되는 남성의 관직이나 품계를 내세운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여성들임에 비해, 노비나 산파의 딸 같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여성들이 환자임을 알 수 있는 경우도 3首 있었다. 84번 “錦衣 楊永興 擧家避眚 有伏 沈醉失避者”100)는 ‘飛尸’라는 돌림병이 도는 시기 錦衣관직에 있는 楊永興이라는 남성의 집안이 모두 피접을 가는데 어느 노비가 술에 몹시 취해 미처 함께 피해가지 못하고 병에 걸렸다는 사연을 전하고 있다. 321-2번 “一穩婆云 我止有一女”101)는 薛己가 알고 지내던 산파가 외딸의 출산 때에 마침 그 지역에 순방 온 높은 신분의 귀족 부인 출산에 불려가게 되어 딸이 놀라고 당황하여 마침내 난산을 겪다 사망했다는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 330번 “穩婆之女 勤苦負動”102)은 역시 산파의 딸이 평소 몹시 부지런히 육체노동을 하다 임신을 하였으나 태중 아이는 이미 죽고 薛己가 사태를 배출하는 약을 써서 어머니만 회복할 수 있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아래 차트에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을 신분별 및 지역별로 분석한 비율을 제시하였다.

HOOJBM_2019_v32n2_49_f0006.png 이미지

그림 6. 『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신분 표기

HOOJBM_2019_v32n2_49_f0007.png 이미지

그림 7.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지역 표기

6. 평소정황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에는 병증 발현 전 환자의 감정상태, 성격, 신체적 불균형 상태, 가족관계 및 주변상황, 생활습관 같은 평소 상황을 간략히 표현하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대체로 醫案의 앞쪽에 16번 “胃氣素弱”103), 53번 “素有內熱”104), 22번 “性急”105), 23번 “多怒”106), 198번 “素怯弱”107), 257번 “稟弱”108), 258번 “素虛弱”109) 등으로 간략히 표현하고 있다. 총 86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출산과 관련한 특수한 정황은 포함하되 임신 중이거나 단순 산욕기는 여기에 포함하지 않았다.

예컨대 8번 “婦人 性善怒”110)는 평소 화를 잘 내는 부인의 산후 입술이 붓는 증상과 거듭된 誤治에 대해 薛己가 七情으로 인한 肝脾虧損으로 辨證하고 치료한 사례이다. 44번 “婦人 素性急”111)은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고 월경부조가 있는 부인의 증상을 거듭 오치하여 설사, 전신종창, 소변불리가 된 것을 脾肺虛冷으로 辨證하여 치료되었으나 환자가 七情 및 음식을 경계하지 않아 재발하여 다시 치료한 사례이다. 여기서 환자의 급한 성격은 병이 나은 후 감정과 음식을 충분히 조섭하지 못하는 조급함으로 드러나 재발의 素因이 되고 있다. 78번 “婦人 懷抱鬱結”112)은 스트레스나 고민을 풀지 못하고 쌓아둔 부인이 筋이 뒤틀리고 骨痛이 있으면서 목구멍에 단단한 核이 생긴 병을 앓아 烏藥順氣散으로 誤治한 것을 薛己가 鬱火가 脾를 상하여 된 血燥生風으로 辨證하고 치료한 사례이다. 83번 “婦人 素淸苦”113)는 평소 깔끔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성격의 부인이 놀라는 일로 인해 癲症을 앓았는데, 風痰藥을 써도 더욱 심해진 것을 薛己가 인삼, 황기, 당귀, 백출과 薑汁, 죽력으로 치료한 사례이다. 평소의 성격으로 인해 이 부인의 氣血이 소모되어 있다가 급작스런 일이 계기가 되어 발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2번 “婦人 素有胃火 用淸胃飮而安”114)은 평소 胃火가 있어 淸胃飮을 써서 가라앉히곤 했던 부인이 勞役으로 인하여 燥渴內熱하고 월경이 제때 오지 않자 薛己가 胃火가 陰血을 태워 소진한 것으로 辨證하고 치료한 사례이다. 28번 “婦人 面黃或赤”115)은 평소 안색이 노랗거나 혹 붉은 부인이 허리 또는 배꼽아래 통증이 생겼는데, 辨證 내용을 보면 “脾胃虧損, 元氣下陷, 相火, 濕熱”로 보고 치료하였다. 즉 부인의 평소 안색이 노란 것은 脾胃가 약한 것과 濕을 나타내고, 혹 붉은 것은 熱과 相火가 동함을 나타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1번 “無嗣 夫婦異處幾年”116)은 후사가 없이 부부가 각방을 쓴지 수년째 되는 상황에 부인의 월경이 淋瀝無期한 것을 鬱怒傷肝, 脾虛火動으로 辨證하고 치료하여 병이 나았을 뿐 아니라 이듬해에는 자식도 얻었다는 사례이다. 반면 135번 “婦人 生育多胎”117)는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아 기른 부인이 월경부조 및 足熱, 身熱, 과로시의 足痠痛, 脣腫裂痛 등 증을 여러 해 앓다가 마침내 밥을 먹지 못하면서 월경도 끊어지게 되었다. 薛己는 氣血이 모두 쇠한 症으로 辨證하였으나 듣지 않고 通經丸등의 약으로 誤治하여 결국 회복하지 못한 사례이다. 수차례의 임신과 출산, 수유를 감당하면서 부인의 氣血이 많이 소모되었을 것인데 환자가 안타깝게도 스스로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이런 症에 氣血을 보하는 약을 온전히 회복되기까지 복용하려면 약값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겠기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 비슷한 사례로 20번 “生子二年”118)은 출산 후 2년이 경과했다는 것으로, 이는 수유를 마치고 월경이 다시 시작될 즈음임과 동시에 출산과 수유를 감당한 여성의 陰血이 몹시 허해져있을 때임을 시사한다. 이 부인은 원래 氣血이 부족한 체질을 타고나 經行腹痛 등 증이 있었지만 八珍湯으로 氣血을 보한 후 자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출산 후 2년에 월경이 돌아오지 않자 재차 八珍湯과 逍遙散 100여제를 복용하여 치료되었다.

특수한 경우로 182번 “婦人 爲哭母”119)는 어느 부인이 모친상에 어머니를 추모하며 곡을 한 후 吐血과 咳嗽 등의 병이 생긴 사례인데 悲傷肺, 思傷脾로 辨證하여 치료되었다.

한편 146번 “日飮淸茶水果 三年餘矣”120)와 147번 “日飮淡茶 果品之類”121)는 모두 차와 과일을 매일 즐기는 생활습관이 병리와 상관관계를 가지는 경우이다. 두 경우 모두 밥을 먹지 못하게 된 症을 脾氣鬱結 및 肝脾氣鬱로 辨證하고 치료하였다. 脾氣나 肝氣가 鬱結된 것과 차나 과일을 매일 즐기는 생활습관 중 어느 것이 먼저라고 단정 짓긴 어려우나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만은 분명함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평소정황을 표기한 86首의 醫案들 중 “性急”, “多怒”와 같은 감정이나 성격과 관련된 경우는 총 37회, “胃氣素弱”, “素怯弱” 등으로 臟腑氣의 부조화나 先天부족 등 신체적 불균형 상황을 표현한 경우는 총42회, “無嗣 夫婦異處幾年”으로 가족관계와 주변상황을 나타낸 경우는 1회, “日飮淸茶水果 三年餘矣”, “勤苦女工” 등으로 생활습관을 나타낸 경우는 총8회 찾아볼 수 있었다. 신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는 “孀婦”나 “放出宮人” 등은 여기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는 감정 상태와 신체적 불균형상태를 겸한 경우가 1회, 감정 상태와 생활습관을 겸한 경우가 2회 있었다.

HOOJBM_2019_v32n2_49_f0008.png 이미지

그림 8.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평소정황 표기

7. 症狀

『校注婦人良方』은 총 10개의 門으로 되어 있으나, 薛己의 醫案은 「調經門」에 44首, 「衆疾門」에 212首, 「求嗣門」에 7首, 「妊娠疾病門」에 60首, 「産難門」에 13首, 「産後門」에 97首, 「瘡瘍門」에 136首가 각각 수록되어 있고 「胎敎門」, 「候胎門」, 「坐月門」에는 醫案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각 門 마다의 수록 醫案 개수를 차트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HOOJBM_2019_v32n2_49_f0009.png 이미지

그림 9.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分 門別 개수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 중 상당수는 다른 의사가 잘못 치료한 것을 薛己가 바로잡은 내용이다. 이런 醫案들은 특히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지식과 경험이 얕은 의사가 환자의 증상만 보고 잘못 판단하게 되는 맥락과 실력을 갖춘 의사가 四診을 통해 심층적으로 執證하는 올바른 의료가 잘 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醫案은 총 167首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다른 의사뿐 아니라 환자나 환자 가족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경우도 있다. 예컨대, 2번 “一孀婦 兩腿作痛”122)은 과부의 두 다리 통증에 除濕化痰 등의 약을 쓰자 전신에 여기저기 통증이 생겼다. 薛己가 血症임을 말해주었으나 환자가 믿지 않고 流氣飮 등을 복용하고 사망하였다. 5번 “一婦人 發熱口乾 月經不調”123)는 열이 나고 입이 마르며 두 다리에 힘이 없으면서 월경이 고르지 못한 부인의 증에 祛風滲濕劑를 쓰자 다리가 아프고 몸이 늘어지고 양 무릎이 붓고 월경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을 薛己가 足三陰經의 血이 허하여 火와 燥로 생긴 鶴膝風으로 辨證하였다. 六味丸과 八味丸을 함께 복용하기를 2달이 되자 형체가 점차 세워지고 음식을 점차 먹을 수 있게 되며 무릎의 부종이 점차 내렸으며, 반년을 하자 온전해졌다. 139번 “一婦人 因夫久出經商 發寒熱 月經旬日方止”124)는 앞서 상인의 아내 사례로 소개했던 醫案인데, 寒熱과 함께 월경이 10일이나 간 후에야 멎는 증에 降火凉血藥을 복용하니 속 열이 더욱 심해지며 自汗盜汗과 함께 월경이 빈삭해졌다. 薛己가 속 열과 自汗은 곧 脾氣가 허약한 것이며, 월경이 빈삭한 것은 곧 血이 脾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라 이르고, 歸脾湯과 六味丸을 써서 나았다. 더불어 誤治해서 발생한 內熱, 自汗, 月經頻數 증 각각에 대해 자세한 병리설명을 기술하고 있다. 이런 醫案은 특히 읽는 사람이 誤治에 대한 정정과 함께 특정 임상 상황에서 개개의 증상을 어떻게 분석하고 辨證으로 귀결시키는지에 대한 명료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교안이 된다.

그런가하면 薛己 자신의 진단치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내용의 醫案은 모두 4首가 있었다. 377번 “一産婦惡寒發熱”125)은 특히 다른 의사의 誤治와 薛己 자신의 만족스럽지 못한 치료가 모두 있었던 사례이다. 부인의 오한발열 증에 薛己가 氣血이 모두 虛한 증으로 辨證하였으나 환자는 믿지 않고 도리어 小柴胡湯을 복용하여 땀나면서 헛소리를 하며 번열과 갈증이 나고 팔다리에 경련이 생겼다. 薛己가 十全大補湯 2제를 쓰니 증상이 더욱 심해지고 脈은 洪大하나 깊이 누르면 없는 듯하였다. 이는 藥力이 미치지 못한 것이므로, 이에 附子를 가하여 4제를 복용하니 증상이 조금 완화되었으며 여러 제를 복용하여서 안정되었다. 먼저 小柴胡湯을 복용한 것은 다른 의사와 환자의 잘못된 판단에 따른 誤治이며, 뒤에 十全大補湯 2제로 증상이 더욱 심해진 것은 薛己가 병세에 비해 약을 약하게 써서 초래된 失治이다. 그러나 다행히 薛己의 辨證과 치법의 방향이 올바르게 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誤治와 失治를 모두 극복하고 환자를 구할 수 있었다. 539번 “一婦人 素血虛 內熱時咳”126)는 평소 血이 허하였던 부인이 속열이 있으면서 때로 기침을 하였다. 甲辰年 초겨울에 兩尺脈이 浮洪하기에 脾胃가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 치료를 청하였다. 薛己가 肺症이 생길 것을 마땅히 방비해야 한다 말하였다. 丙午年 초봄에 과연 咳嗽와 함께 좌우 寸脈이 洪數하니, 肺癰이 된 것이었다. 膿이 이미 이루어져서 左寸脈이 거듭 洪數하였다. 이는 心火가 肺金을 尅한 것으로, 여름이 걱정이었다. 薛己가 水를 북돋우고 脾를 건강히 하는 약을 쓰자 조금 나았으나, 환자가 조심하지 않고 스스로 소홀하여 조섭하지 않으니, 과연 여름이 되어서 사망하였다. 薛己 같은 명의였어도 환자의 비협조로 치료에 착수하는 시기가 늦어 “不治已病, 而治未病”하지 못하였고, 이후로도 환자가 중한 병에 조섭하지 않아 병이 든 肺臟을 극하는 時令이 베풀어지는 여름에 가서 사망한 것이었다.

HOOJBM_2019_v32n2_49_f0010.png 이미지

그림 10.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誤治와 失治

한편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醫案은 모두 부인과 醫案으로, 주소증이 月經관련 질환이 아닌 경우에도 月經不調나 經閉 등을 겸증으로 동반한 경우가 많았다. 산후惡露를 제외하고, 月經不調나 經閉 등 월경관련 증상이 주증 혹은 겸증으로 기록된 醫案은 총 120首가 있었다. 이는 전체 569首의 醫案 중 약 21%에 해당된다. 이중 調經門에 속한 醫案은 28首로, 나머지 92首는 월경증상이 주증이 아닌 겸증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는 調經門에 속한 44首 醫案을 제외한 나머지 525首 醫案 중 약 17.5%에 해당한다. 이는 여성의 건강에 이상 상황이 초래되었을 때 月經에 그 영향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월경 상태는 여성의 생리 및 병리 상황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이며, 薛己는 부인과 질환을 오래 진료하면서 월경상태와 여성 건강의 이상여부 간 밀접한 관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월경증상을, 주증인 경우는 물론이고 주증이 아닌 경우에도 겸증으로 함께 관찰하여 醫案에 기록하였을 것이다.

HOOJBM_2019_v32n2_49_f0011.png 이미지

그림 11.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月經관련 증상

8. 辨證과 辨病

薛己는 『校注婦人良方』에 수록한 醫案에 자신의 辨證 및 辨病 소견을 명확하게 밝혀놓고 있으며, 이 소견에 따라 치법을 정하고 처방을 운용하였다. 그에 따른 치료 결과는 6번 “愈”127), 3번 “痊”128), 62번 “安”129), 2번 “歿”130), 4번 “不起”131), 18번 “不救”132) 등으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辨證이란 薛己가 자신의 진찰 소견을 陰陽表裏寒熱虛實, 風寒暑濕燥火, 臟腑, 氣血, 經脈 등 현대 한방병리학 상의 각 辨證의 범주에 속하는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한 내용을 아울러 지칭한 것이다. 辨病이란 위 陰陽表裏寒熱虛實, 風寒暑濕燥火, 臟腑, 氣血, 經脈 외에 七情, 食積, 痰飮, 酒, 毒, 勞, 蟲 등 病因의 범주에 속하는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한 내용을 아울러 지칭한 것이다. 즉 辨證과 辨病이란 醫案 중에 薛己가 스스로 피력하고 있는 진단 소견에 대해 현대 한방병리학의 학문적 범주로 분석한 내용이다.

辨證 및 辨病 소견을 기술하는 용어로는 氣血, 風寒暑濕燥火의 六氣, 肝心脾肺腎의 五臟과 胃膽膀胱 등의 六腑, 그리고 陰陽虛實 등의 八綱 용어를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 足三陰, 足太陽, 膀胱經 등 三陰三陽 및 經脈 용어도 함께 사용하였다. 薛己의 부인병 辨證 상의 특징을 고찰해보기 위해 위 辨證 용어들 중 빈도가 높은 용어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사용 횟수를 파악해보았다.

血虛, 血症, 瘀血, 血凝, 血熱, 氣血虛 등을 포함하여 ‘血’로 辨證한 경우는 총 193회가 있었다. 이 중 ‘氣’도 함께 언급한 경우는 총 96회가 있었다. 따라서 순수하게 ‘血’로만 辨證한 경우는 97회가 된다.

元氣, 氣虛, 氣滯, 氣症 등을 포함하여 ‘氣’로 辨證한 경우는 총 108회가 있었다. 여기에는 ‘血’과 함께 말한 것은 제외하였고, 순수하게 ‘氣’로만 辨證한 경우이다.

‘氣血’만 놓고 보면 ‘氣’만 언급한 경우가 108회, ‘血’만 언급한 경우가 97회, ‘氣血’을 함께 언급한 경우가 96회로 氣血의 비중이 거의 비슷하나 氣가 약간 더 많고 氣血을 동시에 문제 삼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는 薛己가 부인병의 특수성에 따라 血에 근거하여 辨證을 하면서도 氣를 동시에 고려하거나 또는 의외로 부인의 氣를 문제의 중심으로 본 경우가 많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HOOJBM_2019_v32n2_49_f0012.png 이미지

그림 12.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氣血辨證

虛火, 相火, 無火, 伏火, 命門火 등을 포함하여 辨證결과에 ‘火’가 포함된 경우는 총 116회가 있었다. ‘濕’을 말한 경우는 총 25회가 있었다. ‘風’을 말한 경우는 총 26회가 있었다. ‘寒’을 말한 경우는 총 46회가 있었다. ‘暑’를 말한 경우는 없었으며, ‘燥’를 말한 경우는 총 10회가 있었다. ‘熱’을 말한 경우는 총 75회가 있었다.

寒熱과 六氣를 놓고 보면 ‘火’가 가장 많고 ‘熱’이 그 다음, 이어 ‘寒’, ‘風’, ‘濕’, ‘燥’의 순으로 辨證 결과를 언급하였다.

HOOJBM_2019_v32n2_49_f0013.png 이미지

그림 13.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六氣辨證

腎經, 足三陰, 命門을 포함하여 辨證결과에 ‘腎’이 포함된 경우는 총 24회가 있었다. 心經을 포함하여 ‘心’을 언급한 경우는 총 6회가 있었다. 肺經을 포함하여 ‘肺’를 언급한 경우는 총 36회가 있었다. 肝經, 足三陰을 포함하여 ‘肝’을 언급한 경우는 총 207회가 있었다. 脾經과 足三陰을 포함하여 ‘脾’를 언급한 경우는 총 243회가 있었다. 足陽明과 足三陽을 포함하여 ‘胃’를 언급한 경우는 총 55회가 있었다. 膀胱經과 足三陽을 포함하여 ‘膀胱’을 언급한 경우는 총 6회가 있었다. 肝과 함께 膽을 말한 경우가 3회, 足三陽이 1회, 따라서 ‘膽’을 언급한 경우는 총 4회있었다. 大腸, 小腸의 ‘腸’을 언급한 경우도 총 2회있었다. ‘血室’ 및 ‘胞’로 자궁을 언급한 경우도 총 2회 있었으며, 특별히 ‘帶脈’을 언급한 경우가 1회 있었다.

臟腑 및 經脈의 경우 辨證 결과로 ‘脾’를 언급한 경우가 가장 많고 ‘肝’이 그 다음, 이어 ‘胃’, ‘肺’, ‘腎’, ‘心’, ‘膀胱’, ‘膽’, ‘腸’, ‘血室’ 및 ‘胞’, ‘帶脈’의 순으로 언급하였다.

HOOJBM_2019_v32n2_49_f0014.png 이미지

그림 14.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臟腑經絡辨證

이외 辨病하여 그 病因을 七情, 怒, 思, 悲 등으로 七情을 언급한 경우가 총 38회 있었다. 여기에 단순 鬱이나 結 등은 제외하였다. 痰飮, 水飮, 濕痰, 風痰, 涎을 포함하여 痰飮을 언급한 경우가 총 19회있었다. 飮食과 食積을 포함하여 ‘食’을 언급한 경우가 총 11회 있었다. ‘膿’을 말한 경우가 총 3회 있었으며, ‘毒’, ‘勞’, ‘蟲’, ‘酒’를 말한 경우가 각 1회 있었다.

辨病 결과에 언급한 기타 病因으로는 七情을 언급한 경우가 가장 많고 痰飮이 그 다음, 이어 ‘食’, ‘膿’과 ‘毒’, ‘勞’, ‘蟲’, ‘酒’의 순으로 언급하였다

HOOJBM_2019_v32n2_49_f0015.png 이미지

그림 15.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기타病因

辨證 및 辨病에 사용된 용어를 종합적으로 고찰하여보면, 氣血로 한 경우가 총 301회, 寒熱 및 六氣로 한 경우가 총 298회, 臟腑 및 經脈으로 한 경우가 총 586회, 기타 七情과 痰飮 등으로 한 경우가 75회 있었다. 따라서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醫案에서 薛己가 부인과 질병의 辨證 및 辨病에 가장 많이 활용한 辨證은 臟腑 및 經脈이며, 다음은 氣血, 그 다음으로 寒熱 및 六氣辨證을 사용하였으며 그밖에 七情이나 痰飮 등으로 辨病하였음을 알 수 있다.

HOOJBM_2019_v32n2_49_f0016.png 이미지

그림 16.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辨證과 辨病

9. 治法과 處方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醫案들에서 薛己는 辨證 및 辨病 결과에 맞추어 주가 되는 처방에 환자의 증상에 필요한 單味를 가하여 방제를 적확히 구성하였다. 주가 되는 처방으로는 補中益氣湯, 十全大補湯, 加味逍遙散, 加味歸脾湯, 小柴胡湯, 八珍湯, 六君子湯, 六味丸, 四物湯 등을 자주 사용하였다. 환자의 병증이 복잡할 경우 2개의 처방을 합하여 쓰기도 하지만, 아침과 저녁에 복용하는 처방을 다르게 하거나 치료단계를 나누어 차례차례 투약하는 방법을 더 선호하였던 것 같다.

예컨대 182번 “婦人 爲哭母 吐血咳嗽”133)는 앞서 소개한 醫案으로, 모친喪을 당하여 추모하고 슬퍼하면서 곡을 한 후 吐血, 해수, 발열, 盜汗과 함께 월경이 행하지 않는 병을 앓은 경우인데, 薛己는 아침에는 補中益氣湯에 길경, 패모, 지모를 가하고 저녁에는 歸脾湯으로 六味丸을 삼키게 하는 방법으로 완치시켰다. “此悲傷肺, 思傷脾”라고 辨證한 내용을 미루어 보면, 아침에 補中益氣湯에 길경, 패모, 지모를 가하여 복용케 한 것은 陽氣가 활발해지는 시간의 도움을 받아 脾肺의 氣가 회복되도록 한 것이고 저녁에 歸脾湯으로 六味丸을 복용케 한 것은 陰氣가 왕성해지는 시간의 도움을 받아 脾肺의 陰血이 재생되도록 한 것이다.

또 75번 “婦人 身顫振 口妄言 諸藥不效”134)는 薛己가 鬱怒로 변증하고, 먼저 小柴胡湯을 투여하여 조금 나아지자 다시 加味歸脾湯을 써서 치료한 경우이다. 앞서 투약한 小柴胡湯으로는 먼저 鬱怒와 邪氣를 없애고, 이어 加味歸脾湯으로 心脾의 氣血을 보함으로써 질병을 근원적으로 다스린 것으로 볼 수 있다.

64번 “婦人 頭搖目箚 手揚足擲”135)은 脾胃가 허약한 부인이 갑자기 담이 뭉치면서 숨이 가쁘고 머리를 흔들고 눈을 번득이며 사지를 휘젓는 병증에 맥이 잘 잡히지 않고 안색은 누런 가운데 푸른색을 띤 경우이다. 薛己는 肝木이 脾土를 乘한 것으로 변증하여, 六君子湯에 시호, 승마를 가하여 환자를 風症에서 소생시킨 후 재차 補中益氣湯에 반하와 복령을 가하여 완치시켰다. 이 부인이 원래 脾胃가 허약하였음을 원칙으로 하여 우선 中氣를 강력히 끌어올 리는 방법으로 動風을 제압한 후, 이어 餘痰을 없애면서 脾胃를 보하여 온전히 낫게 한 것이다.

532번 “足跟足指作痛 其熱如炙”136)는 원래 월경부조와 晡熱 등이 있던 부인을 淸熱寬中消導劑, 除濕化痰藥, 通經降火劑로 誤治하여 발가락과 발꿈치에 덴 것처럼 열이 나면서 아프게 된 醫案이다. 薛己는 이를 足三陰의 虧損으로 辨證하고 먼저 補中益氣湯과 六味地黃丸을 2개월 투여하여 여러 증상이 점차 물러나게 되었다. 이어 補中益氣湯, 六味地黃丸에 八珍湯을 더하여 다시 2개월 투약하여 건강을 회복하였다. 內傷病의 온전한 치료에는 수개월이 소요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래 차트에 補中益氣湯 등 多用한 처방의 사용 횟수를 제시하였다.

HOOJBM_2019_v32n2_49_f0017.png 이미지

그림 17.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薛己 醫案의 치료처방

10. 醫案에 부가한 醫論

醫案 기재 상의 또 한 가지 특징은, 本文 醫論이나 薛己 자신의 “愚按” 부분이 아닌 醫案을 기재하는 부분에 해당 醫案의 내용과 관련된 醫論을 부기한 경우가 있다. 총 28회 찾아볼 수 있었는데, 醫案에 덧붙여 증상을 감별하는 법을 설명하거나 구분한 증상에 따라 치법과 약을 달리 쓰는 요령을 기술하는 등 임상가로서 터득한 세세한 내용들을 친절하게 설명하였다.

예컨대 『卷二十・産後門・産後積聚癥塊方論第十一』의 369번 “一産婦 腹中似有一鼈 或時作痛而轉動”137)은 산후 복중에 생긴 적취를 鼈子(鼈瘕, 鼈癥; 뱃속에 자라모양의 덩어리가 생기는 병증. 溫經活血散瘀하여 다스린다.138)로 잘못 인식하여 誤治가 거듭되는 가운데 마침내 사지 관절마다의 근육 속에 작은 核이 맺히게 된 사례이다. 앞서 행해진 誤治를 바로잡는 최종 辨證과 처방을 기술하는 부분에 薛己의 다음과 같은 醫論이 펼쳐지고 있다.

余云, 肝臟血而養諸筋, 此因肝血復損, 筋涸而攣結耳, 蓋肢節胸項,皆屬肝膽部分, 養其脾土, 補金水, 以滋肝血, 則筋自舒.

내가 이르길, 肝은 血을 藏하여서 모든 筋을 기르니, 이는 肝血이 다시 손상되어 筋이 메말라서 뒤틀리고 맺힌 것일 따름이다. 대개 사지의 마디와 가슴과 뒷목은 肝膽에 속한 부분이니, 그 脾土를 기르고 金水를 보하여서 肝血을 기르면 곧 筋이 저절로 펴진다.

이 부인은 八珍湯, 逍遙散, 歸脾湯을 가감하여 調治하는 방법을 써서 나았다.

또 『卷十四・姙娠門・姙鬼胎方論第四』의 301번“一婦人 經閉八月 肚腹漸大”139)에서는 肝經의 血症과 脾經의 血症을 겸증과 맥상을 통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面青脈濇,寒熱往來,肝經血病也. 面黃腹大,少食體倦,脾經血病也.

안색이 푸르고 맥이 濇하며 한열왕래증이 있으면 肝經의 血病이다.

안색이 노랗고 맥이 大하며 식사량이 적고 몸이 귀찮은 증이 있으면 脾經의 血病이다.

이 부인은 쌓인 분노로 말미암아 肝脾가 손상됨으로써 8개월간 월경이 없고 배가 점차 불러 오르는 병을 앓았다. 鬼胎(자궁외임신)로 잘못 여겨 거듭誤治함으로써 위중하게 된 것을 薛己가 加味歸脾湯, 逍遙散, 人蔘, 炮薑, 十全大補湯 등의 약을 써서 안정시킨 사례이다.

薛己는 증상이 급박하여 邪氣가 유여한 實證이라고 여기기 쉬운 다수의 병증에 대하여 맥상이나 평소 상황을 참고하여 精氣가 훼손된 虛證으로 辨證하여 치료한 경우가 많았다. 「卷六・衆疾門・喘滿方論第十四」의 160번 “一婦人 患前症”140) 醫案에 實證과 虛證을 구분하는 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凡屬邪氣有餘者,其症易識,治效亦速,其屬元氣不足者,變症不一,效非可以旦夕期也.

모든 邪氣가 유여한 경우는 집증도 쉽고 치효도 빨리 나타나나, 元氣가 부족한 경우는 증상의 전변도 다양하고 치효가 나타나는 것도 더디다.

간단하지만 임상에서 虛證을 집증하고 治法을 운용하는 경험이 배어있는 문장이다.

薛己가 醫案에 부가한 이러한 醫論들은 학습자가 질병 대처법, 증상 구분법, 처방법, 치법 운용에 대해 임상실제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인 지식을 제공한다. 따라서 이 醫論들은 辨證 및 辨病 결과와 함께 薛己 醫案의 매우 유용한 부분이라 하겠다.

Ⅲ. 結論

明代 醫家 薛己(1487~1559)가 1547년에 간행한 『校注婦人良方』은 宋代 陳自明(약1190~1270)이 저작한 『婦人大全良方』의 校注本임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일반적인 ‘校注’의 범주를 벗어나 原書의 醫論과 처방을 대폭 줄이고 金元代 李杲, 朱震亨 및 明代 樓英 등 宋代 이후 醫家들의 醫論과 薛己 자신의 醫論을 상당히 수록하였다. 본 연구에 底本으로 삼은 曹炳章 校勘編輯 中國醫學大成刊本 原文을 통해 고찰한 결과, 특히 그 자신이 1530년 경 부터 1547년 사이에 고향인 江蘇省 蘇州와 인근 지역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기록하거나 수집한 569首의 부인과 의무기록(醫案)과 그에 따른 처방을 수록하고 있어서 明代 부인과 임상의학에 대한 原典學, 의사학, 의료인류학적 가치가 높은 저작이다.

醫案에 연도가 표기된 경우는 총 9회로 辛丑(1541)년 부터 丙午(1546)년 까지 보이며, 진료한 지역은 蘇州(吳江) 외에 上海(松江), 湖南省남부(陳湖), 浙江省 靳州(靳閣) 등이 보인다. 환자의 연령대를 알 수 있는 醫案은 총 16首 있었는데, 30대가 4首로 가장 많고 10대와 50대가 각 3首, 40대와 60대가 각 2首, 20대와 70대가 각 1首 있었다. 환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醫案은 총 56首로, 주로 사회적으로 이름을 대면 알만한 남성을 기준으로 누구의 아내, 어머니, 며느리 등으로 표기한 경우가 41首로 가장 많았으며 산파의 딸이나 노비도 각 2首와 1首 있었다.

86首의 醫案에서는 병증 발현 전 환자의 평소정황이 발병 및 예후와 상관관계를 가짐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42회로 “胃氣素弱”, “素怯弱” 등으로 臟腑氣의 부조화나 先天부족 등 신체적 불균형 상황이었고, 다음으로는 37회로 “性急”, “多怒”와 같이 감정이나 성격과 관련된 경우가 많았다.

『校注婦人良方』은 10개의 門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胎敎門」, 「候胎門」, 「坐月門」에는 醫案이 없고 「調經門」에 44首, 「衆疾門」에 212首, 「求嗣門」에 7首, 「姙娠疾病門」에 60首, 「産難門」에 13首, 「産後門」에 97首, 「瘡瘍門」에 136首의 醫案이 수록되어 있었다. 167首의 醫案에서는 다른 의사나 환자 혹은 보호자가 처음에 병증을 잘못 다스린 것을 薛己가 바로잡아 완치시키거나, 또는 薛己의 치법에 따르지 않고 마침내 좋지 않은 결과를 맞게 된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어느 경우든 잘못된 辨證‧治法과 올바른 辨證‧治法이 대비되어 특히 교육적 의의가 크다. 또 4首의 醫案에서는 薛己와 같은 명의라도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있음을 보고, “不治而病, 而治未病”이라는 한의학 치료 원칙의 임상적 의미를 명확히 알게 된다. 전체 569首의 약21%에 해당하는 120首의 醫案에는 月經不調나 經閉 등 월경관련 증상이 주소증 또는 겸증으로 포함되어 있어 월경상태와 여성 건강의 이상여부 간 상관관계를 알 수 있었다.

薛己는 金元代 張元素(약1131~약1234), 李杲(1180~1251), 王好古(약1200~?), 羅天益(1220~1290)으로 이어지는 易水학파의 內傷臟腑病機학설을 계승하여 明代 孫一奎(1522~1619), 張介賓(1563~1640), 趙獻可(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로 이어가는 溫補학파의 始原으로 평가받는다. 明代의 溫補학파는 滋陰학파에서 命門・相火의 병리적 속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命門과 相火의 생리적 기능을 중시하고 배양함으로써 인체의 질병을 근원적인 차원에서 다스리고자 하였다. 『校注婦人良方』에 수록된 薛己의 569首 醫案을 분석한 결과 薛己는 부인의 질병을 다스림에 있어 肝經血虛, 脾胃氣虛 등 脾肝의 氣血이 虛한 증으로 辨證한 경우가 많았다. 邪氣로는 火와 熱을, 病因으로는 七情을 많이 언급하였다. 치료 처방으로는 補中益氣湯, 逍遙散, 歸脾湯을 다용하였다. 이는 薛己가 溫補학파의 창시자라는 기존의 평가보다는, 부인과 영역에 있어서는 月經, 姙娠, 出産을 늘 수행하는 부인 생리의 특수성을 깊이 인식했다는 데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는 결과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까닭은, 부인의 氣血을 생화하는 脾의 기능을 특히 중시하고 七情의 부조화로 쉬이 상하는 肝의 氣血鬱滯로부터 병의 근원을 인식한 경우가 많음에 비해, 命門・相火의 배양과 관련한 ‘腎虛’의 辨證이나 六味, 八味 같은 처방의 사용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薛己는 특히 『校注婦人良方』의 “愚按” 부분에 東垣의 학설을 자주 인용하였고, 醫案 분석 결과 그의 補中益氣湯 응용이 가장 많았음을 볼 때 金‧元代 易水학파의 內傷臟腑病機 학설을 계승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滋陰학파인 丹溪의 학설 역시 자주 인용하였으며 邪氣로는 寒이 아닌 火나 熱을 가장 많이 언급하였다. 또한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부인과 醫案들에서 부인의 命門・相火를 배양할 목적으로 補中益氣湯 등을 적용했다는 언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薛己가 다용했던 처방들은 현대의 한의사들이 처방구성과 효능‧주치를 잘 알고 자주 사용하는 처방들이다. 그러나 수많은 부인병에 다양하게 활용한 薛己의 醫案을 통해서 그 임상 적응증과 활용도가 매우 넓게 확장될 수 있음을 본다. 더불어 같은 증상이라 하더라도 여성의 질환이 남성의 질환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깊은 통찰을 주고 있다. 이러한 효과는 의학이론이나 분과지식이 아닌 실제 임상사례를 기록한 醫案연구로 부터 얻을 수 있는 긍정적 결과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한의학 고전에 수록된 의무기록(醫案)에 대하여 기존의 原典學적 및 의사학적 연구방법 외에 의료인류학적 접근과 수량‧통계 작업을 더함으로써 교육, 임상, 연구에 근거로서의 한의학 고전의 가치를 높이는 하나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였다.

감사의 글

“이 과제는 부산대학교 기본연구지원사업(2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참고문헌

  1. 旰江醫學硏究課題組. <<婦人大全良方>>與<<校注婦人良方>>. 江西中醫藥. 1994. 25(5).
  2. 김기욱 외 15인. 강좌 중국의학사. 고양. 대성의학사. 2006.
  3. 김동일, 오창영, 최민선. 校注婦人良方 역해. 서울. 도서출판 청담. 2011.
  4. 魯兆麟. 薛己醫案選析. 北京中醫雜誌. 1988. 1988(4).
  5. 동양의학대사전편찬위원회. 東洋醫學大辭典 4. 서울. 경희대학교출판국. 1999.
  6. 來雅庭. <<校注婦人良方>>幷不逈同<<婦人良方>>. 中醫藥學報. 1991. 1991(4).
  7. 馬繼興 著. 中醫文獻學. 上海. 上海科技出版社. 1990.
  8. 朴載正, 尹暢烈. 薛己의 生涯와 醫學思想에 관한 硏究.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2005. 18(2).
  9. 朴載正, 尹暢烈. 薛己의 生涯와 醫學著作에 관한 硏究.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2004. 17(3).
  10. 卞廷換. 完譯校註 婦人良方大全. 서울. 법문북스. 2014.
  11. 薛己. 校注婦人良方. 薛氏醫案. 中國中醫藥出版社. 北京. 1997.
  12. 오창영 외 6인. <<校注婦人良方>>에 수재된 의무기록(醫案)에 관한 연구. 대한한방부인과학회지. 2006. 19(2).
  13. 王咪咪. 淺析 <<婦人大全良方>>與<<校注婦人良方>>之異同. 湖北中醫雜誌. 1984. 1984(5).
  14. 王新智. 薛己婦科學術特點探析. 中國中醫基礎醫學雜誌. 2005. 11(2).
  15. 劉洋. 淸以前 <<婦人良方>> 版本考略. 中華醫史雜誌. 2004. 34(2).
  16. 李經緯, 林昭庚 主編. 中國醫學通史 古代卷. 北京. 人民衛生出版社. 2000.
  17. 曹炳章 原輯. 中國醫學大成七 婦科兒科分冊. 北京. 中國中醫藥出版社. 1997.
  18. 陳自明. 婦人大全良方. 倉聖脈 외 4인. 四庫全書742冊(中國醫學大系10). 臺灣. 商務印書館. 1983-1986.
  19. 薛己. 薛氏醫案(一). 倉聖脈 외 4인. 四庫全書763冊(中國醫學大系31). 臺灣. 商務印書館. 1983-1986.
  20. 陳自明 著. 薛立齋 註. 婦人良方大全. 文光圖書有限公司. 臺灣. 출판년도 미상.
  21. 陳自明 撰. 婦人大全良方. 北京. 人民衛生出版社. 1985.
  22. 胡菊英. 淺議明代醫家薛己調治婦科病臨床特色. 山西中醫學院學報. 2006. 7(2).
  23. 胡創北. <<校注婦人良方>> 的因時診治經驗探討. 山西中醫雜誌. 1987. 8(6).
  24. 洪元植 編著. 中國醫學史. 서울. 동양의학연구원. 1987.
  25. 黃曉紅. 薛立齋治療"足三陰虛損"的組方思想初探. 北京中醫藥大學學報. 2006. 29(8).
  26. 搜狗百科 SOGOU.COM '曹炳章'條. 2018. [cited on 29, January, 2019.]; Available from: ttps://baike.sogou.com/v74483143.htm
  27. 歷史百科 www.chezaiyi.cn '沈谧'條. 2018. [cited on 17, April, 2019.]; Available from: http://www.chezaiyi.cn/history/186044.html
  28. 中國醫學大成目錄 max.book118.com 2010-2013. [cited on 29, January, 2019.]; Available from: https://max.book118.com/html/2017/0105/80183909.s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