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 혼돈시대
1. 큰 닭과 작은 닭
OECD 가입국 중 닭을 1.5kg 내외로 사육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는 것 같다. 유럽의 몇 나라는 이미 3kg 이상을 사육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표 1>보다는 사육환경 및 사육 기술이 발전하여 사육일수가 짧아지긴 했지만 출하중량은 아직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우리도 옛날에는 다른 나라들처럼 크게 키워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을 뿐.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 우리 국민은 중량이 작은 닭을 상대적으로 비싸게 먹고 있는 셈이다. 3kg의 닭도 병아리 한 마리, 1.5kg의 닭도 병아리 한 마리이기에 시작에서부터 우리는 경쟁력을 잃었다<도표 1, 2>. 설상가상 최근 육가공산업의 발달로 시중에 가공육이 넘쳐나는데 작은 닭고기로는 전단력(剪斷力)이 약하여 원재료로 사용할 수 없고, 수입육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수입닭고기의 점유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FTA협약에 따른 수입관세가 갈수록 낮아져 결국 국내 시장을 잠식할 날도 머지않았는데도. 그때 우리는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 국수나 라면의 밀가루가 수입산 또는 국산인지 따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잊혀진 단어가 되었고, 이러한 현상이 닭고기에서 발생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한 수 더 떠서 이젠 두 마리로 한 마리를 대신하는 시장구조 속에서 조금 더 지나면 부화장에서 막 태어난 병아리를 섭생할 분위기에 놓여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일본의 어느 양계 분야의 원로는 “현재 한국사람들은 닭고기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큰 병아리를 먹고 있다”고 비아냥거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양심적인 말을 못하고 영계(軟鷄를 young계로 표현)가 맛있다고 홍보하고 있으니 실속을 들여다보면 배꼽 잡고 뒤집 어질 일이다.
표 1. 육계 출하체중별 1kg당 생산비 변화
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도표 1> 나라별 육계출하중량(kg) 및 사육일수
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도표2> 나라별 육계 생체 비중 초생추 대비율
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2. 사육농가들의 미래 진로는?
앞이 캄캄할 뿐이다. 육계 사육농장의 90% 이상이 이미 계열화에 묶여 있고, 닭고기의 시장 가격이 떨어지거나 판매량이 저조하여 계열업체에서 병아리 입추를 지연시키면 하늘만 쳐다봐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계열업체도 영업이 원만해야 사육비도 제대로 주고 닭도 키우라고 할 텐데 반복되는 적자를 나 몰라라 하고 농가 입장에서도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니 안타깝기는 매 한가지이다. 더구나 최근 오리나 산란계 농장에 집중적으로 발병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는 나라를 온통 뒤집어 놓았다. 발병 농장에서의 매몰은 물론 인근 농장까지 입추와 출하를 규제당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연료비, 깔짚비, 전기비, 인건비 등 독촉을 받는 곳은 많은데 농장은 텅 비어있으니 돈 받으러 오는 업체에게 마냥 기다려달라고도 못하는 속 터지는 일이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과연 누구를 탓하랴! 이러한 혼란이 가중되는 과정에서 수입닭고기까지 가세하여 들쑤시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아도 탈진된 자에게서 물그릇조차 빼앗아 가는 것 같아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경계하거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모두 눈과 입을 닫고 있으니 속은 더 타 들어간다. 종국에 가서는 너도나도 양계장 문을 닫고 전업을 하거나 빚더미에 올라앉아야 하고 관련 업계나 공직자들은 실업자가 될 뿐임을 왜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 세계의 농업시장 <표 2>은 물론 국내에서 조차 농업에서 차지하는 축산업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 <표 3>에도 불구하고 축산공무원의 숫자는 오히려 과거보다 줄고 있는 것을 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데도 말이다.
표 2. 2013년도 가격기준 세계에서 생산되는 15대 식량
자료 : 유엔식량농업기구 FAO
표 3. 우리나라 농림업생산액
자료 :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업생산액 및 생산지수
표 4. 닭고기 생산비 비중
수입닭고기에 만신창이가 되고서야 깨달으면 무엇을 할 것이며, 그때서야 해법이라고 내놓은들 약발이나 받겠는가? 우리 농가들 역시 깨어나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1년에 고작 1.5kg 내외로 6회전을 사육하며 생활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을 돌이켜보면 1년에 절반은 닭을 사육하고 절반은 노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실제 유럽의 많은 육계농장들은 2.6kg 이상으로 7회전 이상을 사육한다. 심지어 필자가 방문했던 네덜란드의 한 육계농장은 닭을 출하하고 입추하는 휴지기가 정확히 7일로 요일별 주간 관리 일정이 변동 없이 짜여있어 평체 2.6kg을 연간 7.7회전을 사육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논리적으로 보면 선진국의 축산물 가격이 인건비나 원재료비 등을 보면 우리보다 높아야 맞다. 과연 그럴까? 최근에 발표된 자료를 보면 소, 돼지, 닭 할 것 없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수입축산물은 브라질, 태국 등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우리보다 개인소득이 높고 또한 1인당 닭고기 소비량도 높은 나라들 <표 5>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좋은 시장이라 생각하며 지속적으로 들쑤시는 이유를 우리 자신이 곱씹어 볼 일이다. 이러한 총체적인 배경 뒤에는 규모화된 농장에서 위생적으로 큰 닭을 사육하는 것이 아닐까?
표 5. 주요 국가의 1인당 육류 소비량
자료 : OECD Data(https://data.oecd.org), The World (https://data.worldbank.org)
3. 주변국들의 동향
최근 세계시장은 자국 보호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특히 먹거리는 21세기에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으며 수입에 의존하던 국가들도 이젠 발 벗고 나서며 자가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의 주변국인 중국, 일본, 러시아는 물론 심지어 북한, 동남아까지도. 최근 필자는 우리보다 소득이 낮은 동남아 국가에서 고상식 계사 <사진 1>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상당량의 수주를 받았다.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니 각국의 동물성 단백질 수요가 급속도로 늘고 있고 그 중심에 백육(白肉) 이 절대적임을 알 수 있었다.
<사진1> 고상식 계사
특히 주지하다시피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소, 돼지고기를 섭취하지 않는 상황에서 닭고기는 절대적인 식품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인터넷의 세계화가 음식의 세계화를 유발한 셈이며 어느 나라에서나 통용으로 소비되는 닭고기는 가히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다만 불행한 것은 우리의 주변국인 러시아, 중국, 일본이 세계에서 닭고기 수입국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러한 근접 국가에 수출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속내는 역시 그들의 절대 소비량이 큰 닭(2.6kg 이상)이라는 사실이다. 동남아 국가는 외기온도와 축사환경이 열악하여 큰 닭으로 키우지 않을 뿐이지 결코 덜 자란 닭이 맛이나 영양가에서 앞서서 그러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과거와는 달리 축사환경이 많이 달라졌고, 투자의 원칙도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공부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국내의 양돈장이나 산란계 농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 같으면 어찌 우리가 한 농장에서 돼지 몇 만 두를 키우고, 또한 12층 케이지를 설치하여 몇십 만수의 산란계를 사육할 수 있었겠는가! 이렇듯 우리 축산환경도 양돈이나 산란계에서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진일보하였으나 아직 육계나 오리농장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는 결국 불량한 생산지수로 이어지고, 거의 매년 고병원성 조류일플루엔자(HPAI)와 사투를 벌이며 시름을 앓고 있음에도 마치 축산인이 공공의 적이라도 되는 양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이러한 틈을 노려 선진국들의 닭고기 물량공세는 지속되고 있다. 설상가상 맛이나 영양은 물론 우리가 즐기는 닭고기의 쫄깃한 맛, 즉 전단력 등에서도 작은 닭에 비하여 큰 닭이 더 우수하다는 것은 국내외 논문을 통하여 이미 밝혀진 사실이며, 이러한 근거에 따라 우리가 원종계를 수입하는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우리보다 닭을 크게 키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큰 닭이 맛없다”는 것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큰 닭은 노계(老鷄)를 염두에 둔 표현일 뿐이지 육계를 크게 키우면 맛과 영양에서 앞선다는 사실은 자명한 사실이다 <표 6>.
<도표 3> 선진국(북미)의 육류 소비현황
표 6. 닭고기의 맛을 내는 인자 차이
(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4. 미래시장
당연히 미래의 닭고기시장은 생 닭고기보다 가공육이 늘어날 것이다. 과거 전력이나 냉장고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는 변질 염려 때문에 싱싱한 닭고기를 바로 조리해 먹어야 했다면 이제는 핵가족 시대로 편리한 조리를 통하여 간편하게 먹는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한 닭고기도 소고기나 돼지고기처럼 선호부위를 부분 육으로 소량씩 구매하는 알뜰 구매 형태로 변모해갈 것이다.
그런 까닭에 현재의 작은 닭은 통닭으로서 밖에 그 구실을 못한다. 닭이 작으니 부분육을 만들지 못하고, 가공육으로는 더더구나 사용할 수가 없다. 때문에 기껏해야 닭도리탕이나 튀김닭으로 밖에 유통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이 몇 년째 정체되어 있을 뿐이다. 설령 소비량이 늘어난다 해도 그것은 수입 닭고기가 늘어날 뿐이지 국내산은 정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모든 책임은 닭을 작게 키운 농가의 몫이요, 업계의 잘못이다.
똑같은 품종의 병아리, 사료로 작게 키워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고, 닭을 작게 키우는 것은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절대적인 손실이요 국가적인 낭비이다 <표 7, 8>.
표 7. 육계의 중량별 수율변화
자료 :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표 8. 일반육계와 대형육계의 부분육 생산량 비교
이제라도 관련 업계의 모든 종사자들이 큰 닭으로의 생각만 바꾸면 된다. 그 결과는 수입닭고기에 대한 방어력이 형성되고, 농장에서는 연일 닭이 사육되어 웃음꽃이 피고, 그 여파는 관련 업계의 활력으로 이어져 모두가 생명력을 찾을 수 있다. 더 나아가 국가적으로는 외화낭비를 줄이며 애국하는 길이 열린다. 전쟁을 겪으면서도 세계의 우등 국가로 우뚝 선 우리가 못할 것은 없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안 했을 뿐이다. 업계의 생존권은 자율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최선이지 환경 탓, 하늘 탓해봐야 누워서 침 뱉기 격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특히 소비자는 우리의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인이 닭고기를 구매할 때 신선도, 가격, 맛의 순위로 우선 시 하는 것과 비슷하게 우리도 맛을 중시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해 준다 <표 9>.
표 9. 닭고기 배달 선택기준
자료 : 2014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 고상식 계사 3.5kg 닭
경험해보지 않아 서로가 몰랐을 뿐이지 이제까지의 과정은 어느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과실이라 하기에는 골이 너무 깊었다. 이제라도 바꾸면 된다. 이것이 창조적인 혁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한 준비를 마치면 우리는 주변국까지 진출하여 우리의 닭고기 맛을 선사하는 나눔의 국가가 될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기회이니 우리 모두 자성의 깃발을 높이 들고 큰 닭을 위한 미래로 나아가자!
차단방역을 예로 들어보자면, ‘내가 소독을 하지 않아도 남이 알아서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농가가 있을 경우,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차단방역에는 너와 내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