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국 박사의 회고록 ⑧ - 양계박람회(2)

  • Published : 2016.08.01

Abstract

본고는 양계와 한평생을 함께 한 오봉국 교수(서울대 명예교수)가 그 동안의 인생여정을 정리하여 출간한 '축산의 비전을 심으며 살아온 나의 인생여정' 자서전 내용 중 '양계와 함께 걸어온 나의 회고' 내용을 발췌, 게재한 것이다. 오봉국 교수는 1925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대학교 축산과에서 농학석사과정을 거친 후 미국 미네소타대학과 호주 시드니 대학에서 석, 박사과정을 마친후 서울대학교에서 후학양성은 물론 양계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다. 1969년에는 (사)한국가금협회장(대한양계협회 전신)을 역임하고 현재까지 대한양계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1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한 바 있으며, 현대가금학 등 16편의 주옥같은 저서를 남겼다.

Keywords

우선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 받는 일이 급선무였다. 정부를 설득하는 데 왜 양계분야 박람회가 필요한가 하는 명분과 당위성을 내세워 박람회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이었다. 정부에서는 매 2년마다 교대로 축협주최로 한우챔피온대회와 가축품평회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는 양계분야만 제외되어 있었다. 그리고 축산업 중에는 양계분야가 가장 먼저 규모화와 전업화 되고 있었고 계사의 구조와 시설이 자동화되어가고 있어서 시설양계 내지는 장치산업 축산으로 근대화가 제일먼저 이루어지고 있는 양계업이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과 고가의 시설 그리고 기술투자가 요구되고 있었다.

따라서 외국의 선진화된 기술과 시설투자에 필요한「노·하우」가 요구되고 있어서 이 두 가지 명분을 내세워 양계박람회 개최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정부 관계관을 방문하여 대학교수가 마지막으로 하고자 하는 사업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시 박람회 담당 부서인 축산경영과장으로는 이인형 교수(현 연암축산·원예대학교수)가 본 사업을 검토하고 적극 협조하여 주었으며 이인형 과장의 뒷받침이 컸다.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이다. 당시 축산국장은 고 김정용 씨였는데 처음에는 박람회에 대하여 비판적이었으나 축산인들의 긍정적인 의견을 수용하여 결국 김정용 국장도 박람회사업에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주었다.

1991년 5월 농림부로부터 양계박람회사업이 승인되고 보조금 예산도 예비비에서 5,300만원으로 사업비가 확정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정부사업승인과 보조금예산이 확정됨으로써 박람회사업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우선 축협중앙회 명의식 회장과 사료협회 김주호 회장, 동물약품협회 윤병성 회장, 한국마사회 유승국 회장, 그리고 축산관련 신문사 사장, 축산, 양계업계 원로와 유력한 인사를 비롯하여 양계산업과 관련 있는 각 단체장들을 만나 양계박람회에 대하여 적극적인 협조와 후원을 부탁한 보람이 있어 양계박람회가 계획했던 예산은 어느 정도 확보 되었다. 그러나 박람회 장소 선정과 전시업체의 참여가 부진하여 큰 걱정이었다. 박람회 장소 선정에 있어서 비용이 적게 드는 장소로 여의도 전시장과 어린이 대공원 야외 전시장을 고려해보았으나 양계산업은 일종의 장치산업으로 전환되어 각종 전시 기계, 기구, 시설 등은 간단한 농기계와 달리 야외 전시장에서 시범을 보이는 기계가 아니고 막대한 전력과 수도, 가스, 압축 공기 등이 필요하였다. 훌륭한 전시장으로는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한국무역센터에서 경영하는 전용전시장이 있었으나 이미 전시장 예약이 마감되고 전시장 임대료가 대단히 비싸서 양계박람회가 이러한 전시장을 이용하기에는 예산상 허락하지 않았다.

백방으로 전시장을 물색한 결과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펜싱경기장(제2체육관)과 역도경기장(제3체육관)을 임대하기로 하였다. 올림픽 실내경기장을 빌리는 데는 당시 양계협회 최준구 부회장이 경기장 운영 책임을 맡은 전무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옥내 전시장 면적은 911평이고, 부대시설로 경기장 주변 공간에 야외전시장으로 쓸 수 있는 장소가 약 400평 정도가 있고, 주차공간이 많아서 대단히 유리한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었으며 임대료도 삼성동「코엑스」전시장의 2분의 1정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대신 여러가지 불리한 점도 많았다. 우선 전용 전시장이 아니고 체육관 건물이기 때문에 바닥이 마룻바닥이라 전시물 설치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으며 마룻바닥에 손상이 생기면 손해배상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바닥 전체를 카펫으로 깔아야하는 경비손실과 전력이 부족하여 대형발전기를 임대 설치하는 문제, 수도, 가스, 압축공기 등 부대시설에 소요되는 작업과 예산비용이 상당 액수 소요되었다.

1991년 10월 10일에서 10월 12일까지 3일간 축산분야에서는 처음으로「’91한국양계박람회」가 개최되었으며 박람회주제는「미래를 향한 양계산업」으로 정하고 개관식에는 주최기관인 대한양계협회 신홍종 회장, 박람회 추진위원장 오봉국 교수와 농림부장관, 국회농수산위원장, 축협중앙회장과 축산관련 단체장 여러 내빈 등이 다수 참가하여 성대한 개관식을 가졌다.

▲ 91한국양계박람회

박람회 행사로는 양계분야의 각종 축사시설, 기구, 기계, 재래닭 전시 등 전시행사와 닭과, 계란요리 솜씨대회와 계산물의 우수성 홍보생사, 그리고 양계인 대회와 우수 양계인 선발 시상, 세미나 등 행사가 진행되어 매우 다양하고 볼거리, 먹거리가 있는 행사가 되었다.

한 가지 특기할 사항은 1980년대 후분부터 정부에서는 국제경쟁력을 배양하는 차원에서 축산업의 규모화와 전업화 시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어서 양계산업에 있어서는 시설의 자동화시스템이 도입되고 있었다. 때마침 양계박람회가 개최되면서 선진외국의 자동화시설이 전시되고 외국 업체들도 많이 참가하였으며 우리나라 양계인들은 외국에 가지 않고도 외국의 여러가지 자동화시설을 비교분석하고 한국말로 주문 상담을 할 수 있어서 박람회가 대단히 유익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올림픽공원시설 관리 직원들 말에 의하여 양계박람회를 개최한다기에 닭이 전시되고 계란과 닭고기에 관한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공하는 전시회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닭을 기르는데 웬 철근과 철사로 만든 고층 케이지와 집채만 한 부란기, 그리고 각종기계, 사료, 약품, 환풍기, 온열기 등 다양한 정밀기계가 전시되어 양계산업을 다시 평가하게 되고 놀랍다는 표정 들이었다.

양계박람회의 주된 목적은 박람회를 통하여 선진양계분야의 정보 수집과 교류, 닭 사육기술 등 선진화된 기술도입으로 생산성을 제고하여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며 닭고기, 계란 등 양계생산물의 우수성 홍보로 소비촉진을 유도하는데 있었다. 또한 이 기회를 통하여 양계인 및 양계관련업계의 유대 강화를 도모하는데 그 의의를 찾아볼 수가 있었다.

제1회「’91 양계박람회」는 양계협회 회장단을 비롯한 이사진, 임직원 여러분과 전국의 양계인, 양계관련 단체, 양계관련 업계 여러분의 따뜻한 성원과 협조, 그리고 박람회 추진위원회 요원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과 협조에 의하여 성황리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박람회를 끝내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데 가장 궁금하고 걱정되었던 사항은 금전출납과 예산·결산이었다. 박람회는 무사히 잘 치러졌다고는 하나 만일 적자를 기록한다면 결국 추진위원장인 내가 책임지고 결손부분의 상당액을 변상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박람회가 끝나고 약 한 달 후 박람회 수지예산 결산결과를 보고 받았는데 다행히도 흑자를 보게 되었으며 내 기억으로는 약 2,000만 원정도의 잉여금이 생기게 되었다. 이 돈은 물론 추진위원회에 관여한 여러 요원과 양계협회 임직원 여러분의 정성어린 노력과 절약으로 발생한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관련단체, 업계의 따뜻한 찬조와 협조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생긴 소산인 것이었다.

박람회 잉여금 처리에 관하여 양계박람회는 ’91년도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므로 2년마다 개최하기로 되어 있으니 박람회 준비금으로 적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박람회 추진위원회는 상설기구가 아닌 임시조직과 같은 체제로 되어 있어서 추진위원회 이름으로 적립한다는 것도 명분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잉여금 전액을 주최단체인 대한양계협회에 잉여금을 기부하기로 결정하였다.

양계박람회는 ’91년 이후 매 2년마다 성황리에 개최되었으며 양계박람회를 통하여 양계협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협회와 회원간의 유대가 강화되는 한편 관련업계와도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1999년도부터는 한국양계박람회가 전 축산업계가 참여하는 한국국제축산박람회로 발전적으로 확대되고 제1회 축산박람회 추진위원장으로서 박람회에 대한 소감의 일단을 피력한다면 앞으로 한국국제축산박람회가 매 2년마다 계속 개최된다면 보다 알차고 발전적인 박람회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박람회추진위원회는 상설기구로 존치하고, 운영요원을 정식직원으로 채용하여 운영함으로써 한국축산박람회는 보다 효율적이며 발전적으로 수행될 것으로 생각한다.

▲ 저자(오봉국 명예교수, 왼쪽에서 4번째)가 ’97 한국양계박람회에서 운영위원장을 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