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예비평연구
- Issue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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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ges.25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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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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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6-7627(pIS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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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Context and Meaning of The Criticism on Art for Art's Sake in The Early 1920’s.
1920년대 초기 예술지상주의 비판의 맥락과 의미
Abstract
This paper aimed to considering the context and meaning of thecriticism on art for art’s sake in the early 1920’s. In the early 1920’s, itcould be investigated in two drections. The one is that presented byLee, Kwang-soo who was thoroughly enlightening intellectual. Theother is that presented by socialist intellectual who participated insocialist journal. The reason why it needed to be explored is that itcould be confirmed the moments of literary change after that time.The criticism by Lee, Kwang-soo was sharing the context ofmovement for new-culture construction with 1920’s coterie magazine butit missed the focus of their literary theory. Therefore it only couldenforced isolation of the writers of coterie magazine. In contrast, thecriticism by socialist intellectuals was more profound than it. I was notonly sharing the emphasis of literary emotion with them but alsoincluding the dimension of their isolation tendency and connotation ofthe notion of emotion. They claimed that literature need to deal withsocially significant emotion, in other words sympathy, because theywere recognizing that literature or art is the system of socialcommunication. These are enough to weakening the ground of coteriemagazine.By the way, it was the different point of reader or people that making the difference between Lee, Kwang-soo and socialistintellectuals. While Lee, Kwang-soo was not admitted the voluntaryability of people, the socialist intellectuals were not so. They positivelybelieved what people have the possibility of themselves. So they couldbelieve that it is possible to enlightenment of people through the literaryautonomy.
이 글은 1920년대 초기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의 맥락을 재구하고 그 의미를 살피기 위한 것이다. 1920년대 초기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광수로 대표되는 계몽적 지식인에 의한 비판과 주로 종합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사회주의경향 지식인들에 의한 비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시기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의 맥락을 자세히 살필 필요는 이후 문학사적 전개의 동력을 확인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동인지 문단의 가장 주요한 특징이 예술지상주의로 인식되고 있었다면, 그리고 1920년대 중반 이루어진 문단의 새로운 재편이 동인지 문단의 붕괴와 해체를 통해 가능했다면,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의 맥락을 살피는 것은 그런 붕괴와 해체의 추동력을 살피는 것과 연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광수의 예술지상주의 비판은 조선의 신문화 건설이라는 계몽적 맥락을 동인지와 공유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동인지가 근거하고 있었던 문예론에 접근할 논리를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비판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 즉 이광수는 동인지 문단이 근거하고 있었던 개인의 자유로운 감정 표현을 통한 신문예 건설이라는 부분을 간과한 채, 몇몇 동인들의 개인적인 일탈을 극단적인 언사로 비난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비판은 동인지 문단의 사회적 고립을 강화하는 하나의 계기 정도로 작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반면 1920년대 초기 사회주의경향 지식인들에 의한 예술지상주의 비판은 이광수의 그것보다도 훨씬 근본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이들이 동인지 문단이 근거하고 있었던 예술의 근본 원리를 공유한 상태에서, 동인지 문단의 사회적 고립성과 문예의 구체적인 내용으로서의 감정 문제까지 그 비판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예술 혹은 문예를 사회적인 소통 체계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런 인식 아래 사회적으로 공유될 만한 가치가 있는 감정을 문예가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사회주의경향 지식인의 비판은 동인지의 내적 붕괴를 추동할 수 있는 논리였다. 그런데 이광수와 사회주의경향 지식인들의 예술지상주의 비판의 차이는 문예의 사회적 소통 체계를 구성하는 한 축인 독자 혹은 대중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한 바가 컸다. 이광수는 당대의 독자나 대중을 ‘소아’나 ‘병인’으로 보아 그들의 자발성이나 적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그는 사회적 소통 체계로서의 문예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반면 1920년대 초기 사회주의경향의 지식인들은 문예를 기본적으로 사회적 소통 체계로 보고 있었는데, 그 바탕에는 독자 혹은 대중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었다. 그들은 인간 개개인이 부조리한 사회 구조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개성을 발휘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희망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대중의 능동성과 자발성을 믿었다. 이런 독자 혹은 대중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 이들은 문예의 자율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문화적 교화’가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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