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wei Perspektiven für die Kunst - Kants Ästhethik des Empfangenden und Nietzsches Physiologie der Kunst -

예술에 대한 두 가지 태도 - 칸트의 수용미학과 니체의 예술생리학 -

  • Received : 2014.04.05
  • Accepted : 2014.05.16
  • Published : 2014.06.30

Abstract

Der vorliegende Beitrag zielt darauft ab, zwei Perspektiven $f{\ddot{u}}r$ die Kunst bei Kant und Nietzsche und ihre Schlussfolgerungen zu $er{\ddot{o}}rtern$. Kants Kritik der Urteilskraft hat eine enorme Rolle in der Geschichte der ${\ddot{A}}sthetik$ gespielt. $F{\ddot{u}}r$ Kant sollen ${\ddot{a}}sthetische$ Urteile ebenso wie Erkenntnis- und Moralurteile $allgemeing{\ddot{u}}ltig$ sein, obwohl sie auf einem $pers{\ddot{o}}nlichen$ Geschmack beruhen. Die $Allgemeing{\ddot{u}}ltigkeit$ des $Sch{\ddot{o}}nen$ sei $m{\ddot{o}}glich$, weil sie nicht auf dem Gegenstand, sondern auf dem transzendentalen Subjekt basiere. Die $sch{\ddot{o}}ne$ Kunst als Kunst des Genies soll uns wie die $Natursch{\ddot{o}}nheit$ ohne Interesse wohlgefallen. Nietzsches Stellungnahme zu Kants ${\ddot{A}}sthetik$ ist sehr kritisch. Nietzsches erster Kritikpunkt richtet sich gegen das 'interesselose Wohlgefallen'. Gegen Kant behauptet Nietzsche, dass die $Sch{\ddot{o}}nheit$ sehr wohl mit Interesse verbunden ist. Grund $daf{\ddot{u}}r$ ist, dass das $Sch{\ddot{o}}ne$ wesentlich aus dem Willen zur Macht entspringt. Der zweite Kritikpunk Nietzsches liegt darin, dass in Kants ${\ddot{A}}sthetik$ die Moral im Vordergrund steht. Das $Sch{\ddot{o}}ne$ ist $f{\ddot{u}}r$ Kant durch die Moral gerechtfertigt. Nietzsche dreht diese Stellung der Moral zur Kunst um. Der dritte Kritikpunkt Nietzsches ist, dass Kant statt von der Erfahrung des $K{\ddot{u}}nstlers$ (Schaffenden) aus das ${\ddot{a}}sthetische$ Problem zu betrachten, allein vom Zuschauer (Empfangenden) aus ${\ddot{u}}ber$ die Kunst und das $Sch{\ddot{o}}ne$ nachgedacht habe. $F{\ddot{u}}r$ Nietzsche ist die Kunst $prim{\ddot{a}}r$ vom $K{\ddot{u}}nstler$ aus zu verstehen. Nietzsches Physiologie der Kunst ist mit dem Begriff 'Leib' $verkn{\ddot{u}}pft$, d.h. Nietzsche behauptet, dass physiologische und ${\ddot{a}}sthetische$ Prozesse wesentlich $zusammenh{\ddot{a}}ngen$. Die Schlussfolgerung der Physiologie der Kunst lautet: erstens, jeder Mensch ist $K{\ddot{u}}nstler$, sofern er schaffend ist, und zweitens, die Welt selbst ist nichts als Kunst. Nietzsches Physiologie der Kunst hat einen $gro{\ss}en$ Einfluss auf die $gegenw{\ddot{a}}rtige$ Kunst $ausge{\ddot{u}}bt$ und kein anderer Philosoph hat auf die $gegenw{\ddot{a}}rtige$ Kunst nachaltiger gewirkt.

이 논문은 칸트와 니체의 미학을 통해 두 철학자의 예술에 대한 상이한 태도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칸트의 미학은 흔히 '형식미학' 이나 '수용미학'으로 불린다. 그것은 칸트의 주요관심이 우리가 '아름답다'라고 말할 때 그것이 가지는 보편적 형식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미의 보편적 형식이야말로 그것이 자연미이든 창작된 작품과 관련된 미이든 수용자에게 보편적인 미적 쾌감을 주는 근거가 된다. 천재가 창작한 작품을 통해 한 송이 장미에서 얻는 미적 쾌감과 동일한 쾌감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은 천재가 작품에 보편적 형식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칸트의 미학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칸트가 미를 판단하는 근거를 주관의 보편적 형식에서 찾은 결과, 예술에서 보다 근본적인 미의 생산과정과 작품 등을 등한시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칸트의 미학은 예술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예술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크지 않다. 현대예술에서 작가와 작품 그리고 감상자의 경계는 급진적으로 해체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 감각기관과 재료에 따라 구분되던 장르의 경계도 불분명해지고 있으며, 감상자에게 미적 쾌감을 주기보다 오히려 혐오감이나 추를 추구하는 다원화된 예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조류를 칸트의 미학으로 이해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니체는 예술의 기원을 생리적 조건으로 환원시킨다. 그의 예술생리학은 몸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된다. 니체에 따르면 예술이 존재하기 위해 '도취'가 전재되어야 한다. 힘의 의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도취에서 우리는 자기고양의 느낌을 가지게 되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술가는 도취와의 놀이를 통해 예술을 발생시킨다. 니체에게 예술은 바로 도취의 활동이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니체에게 예술이 주체의 목적의식적 행위를 통해 성취된다는 전통적 관념은 전도된다. 니체는 자기를 조형하는 일체의 행위를 예술로 간주함으로써 확장된 예술을 주장한다. 그의 예술생리학은 현대예술가들에게 강령과 같은 역할을 했고, 그들의 다양한 예술적 실험에서 니체의 영향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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