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ournal of Social Welfare (한국사회복지학)
- Volume 66 Issu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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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ges.25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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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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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9-5132(pISSN)
Study on Jinminso as an Indoor Relief Institution
구한말 민간 빈민구제시설 진민소[賑民所]에 관한 연구
- Yang, Okkyung (Ewha Womans University)
- 양옥경 (이화여자대학교)
- Received : 2014.09.30
- Accepted : 2014.11.07
- Published : 2014.11.30
Abstract
This is a study of Jinminso.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search and analyze the documents about Jinminso. The data is composed with the first hand historical documents both government documents and civil newspapers which are searched by internet. Based on the documents found, it is safe to say that Jinminso has existed and functioned as an indoor almshouse for the poor. It was established in June 25, 1898 by civil people with donated money in order to reduce the burden of Emperor and to share the love and care for their people with a brotherhood mind. The Jinminso resident were the poor, the sick, the orphans, widows, elderly living alone, and the disabled. They received food, clothes, and shelter. However, Emperor Gojong ordered to shut down Jinminso, and it was closed in Sept. 25, in 1898. The main reason was inappropriate collection of money for the agency operation from the merchants. When Jinminso was closed, all the inmates became homeless. The founders asked to reopen it, and it was accepted but this time was opened as a government agency in 1899. Jinminso imposes great meanings. One, Jinminso was not just an office but a direct service agency housing hundreds of poor people; two, poverty was understood as social problem not just a local district problem; three, rules and regulations were prepared to set up a system of modern age social welfare. The findings provide a clue how the government and society perceived poverty and the poor during the time of late 1800s to early 1900s. The existence of Jinminso will pose many new question.
본 연구는 구한말 민간 빈민구제시설로 보이는 진민소에 관한 연구이다. 연구의 목적은 진민소 관련 사료의 발굴과 발굴된 사료의 객관적인 분석 및 해석이다. 연구를 위해 진민소로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사료들을 검색했으며, 관찬사료 11개와 민간사료 40개를 찾았다. 분석결과 진민소는 민간에서 민간의 자본으로 조선사람들이 스스로 설립한 민간 구빈 시설이었다. 전 승지였던 고운정과 교원 윤태진 등 16명이 1898년 6월 25일 서소문 전 선혜청 자리에 설립하였다. 설립비용은 16명이 추렴한 각 2만냥과 시골부인들의 의조금 10만냥으로 총 42만냥의 민간자금이었다. 설립취지는 곤궁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황제의 구휼부담의 분담이었으며, 백성들이 유망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는 동포의 의리로 볼 때 빈부가 비록 다르더라도 사랑하고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약 300명에게 밥과 옷을 지급하고, 치료 및 장례를 진행하였다. 그러다 같은 해 10월 27일 고종황제로부터 혁파의 명을 받아 폐쇄되었다. 이후 1899년 3월 20일경 재설치되었는데, 고운정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운영은 정부에서 하였다. 장소는 종로 전 감옥의 자리였다. 진민소는 비록 짧은 기간동안 존재했었지만, 빈민구제가 주로 정부의 역할이었던 때 정부 진휼기관인 진휼청이 폐지된 상태에서 민간이 설립, 운영한 시설이다. 갑오개혁으로 진휼청이 폐쇄되면서 정부가 해야 할 진휼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기민구휼이 문제였던 시점에 세워진 진민소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회복지역사에 있어 큰 의의를 갖는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