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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큐[平安宮]·헤이안쿄[平安京]의 구조와 변모 - 고대도성에서 중세 도시로 -

  • Received : 2012.07.01
  • Accepted : 2012.08.30
  • Published : 2013.03.30

Abstract

도성은 왕권이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왕권을 지지하는 지배계층이 모여 거주하는 곳이다. 그리고 중앙집권적 통일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 의례의 장으로서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에 공통적으로 건설되었다. 그 기원은 중국에서 유래하며, 일본은 율령제(律令制)를 바탕으로 하는 천황제 고대국가가 실현되는 7세기 말 '藤原京(후지와라쿄)'에서 처음으로 지상에 출현한다. 7세기 말부터 거의 1세기 간 복도제(複都制)가 채택되었기에 '등원경(藤原京)' 이후 도성은 여러 곳에 건설되었고, 때로는 천도되었다. 그러나 8세기 말 '長岡京(나가오카쿄)'에서는 복도제(複都制)를 지양했고, '平安京(헤이안쿄)'에 도읍을 정한 이후, 중세 근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헤이안쿄-교토에는 1100년에 걸쳐 왕권이 지속적으로 존재하여 지금의 '京都市'(교토시)에 이르게 된다. '등원경(藤原京)'가 고대 일본 최초의 도성이었다면, '평안경(平安京)'는 마지막 도성임과 동시에 중세 도시로 변모해 가는 전환점에 위치하고 있다. '등원경(藤原京)'이래 남북축선에 대한 선대칭 구조를 의식해 도성이 축조 되었고, '평안경(平安京)'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가장 강하게 표현되었지만, 9세기 초 천황과 관인들의 의식 정무의 동선이나 좌석 배치에 있어서 동서방향이 채용되게 되었고, 이에 더해 9세기 말에는 천황의 거소가 도성의 축선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10세기 중반 경 '平安宮(헤이안큐)'에서는 '內裏(다이리)'를 중심으로 한 잦은 화재가 발생해 천황은 궁외로 거소를 옮기게 되었다. 이후 천황이 궁 바깥에 거주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고, '평안궁(平安宮)'는 의식을 행하는 장소로서 한정적으로 유지 수리가 될 뿐이었으나 결국에는 그것마저 어려워져 폐쇄에 이르게 된다. 한편 귀족의 저택도 7세기 이래의 남북축선에 대해서 동서의 선대칭 구조로 부터, '寢殿造(신덴즈쿠리)'라고 불리는 건물배치도 공간구성도 비대칭인 건물양식이 주류를 이루어 갔다. 이상과 같이 일본의 고대 도성의 특징을 잘 가지고 있었던 최후의 도성 '평안경(平安京)'는 남북을 축선으로 하는 선대칭 구조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으나, 9세기 '평안궁(平安宮)'의 변화를 시작으로 11~12세기에 크게 변모해갔다. 이처럼 고대국가의 도성이 가지고 있었던 남북을 축으로 하는 구조를 버리고 동서방향으로 동선을 취한 움직임은 고대국가의 이념을 탈피하여 다음 시대로 전환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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