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All the text of housing in 1910s was conveyed in three; hygiene general readings, home economics texts saying women's responsibility of cleaning house, and Japanese's observation and criticizing Korean housing. It stressed sanitary conditions of housing and criticised Korean housing dirty, of which contents and logic were same with the housing discourse in 1900s but much simpler and smaller in amount. It was mainly written by those in medical treatment field like doctors for enlightenment of private hygiene practice to Koreans. Because Choson Government-General(朝鮮總督府) excluded Korean residental areas from urban sanitation project, they remained dirty in 1910s. The practice of housing sanitation remained just as a matter of private sanitary practice. These political and discoursive conditions insinuated a sense that Korean dirty housing was representation of Korean's uncivilized customs and manners and a reason for being colonized. This sense made many Koreans to insist their housings' reforming to sanitary states just for civilization during colonized period.
1910년대 주거담론은 위생론 일반을 다루는 글, 여성의 주택청결 관리를 계몽하는 글 그리고 일본인이 한국전통주택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글에서 등장한다. 1900년대의 그것과 비교하면 위생에 초점을 두는 점은 같지만 깊이와 양에서 매우 위축되어 있다. 담론의 주체와 맥락도 달라졌다. 1900년대 주거담론은 위생을 국가의 문명화와 부국강병을 위한 방법론으로 인식한 개화론자들이 주도했고 국가의 공중위생 책무를 강조하는 담론과 함께 전개되었다면, 1910년대는 여름철이나 환절기 전염병을 예방 차원에서 개인위생을 계몽하는 의사나 의료관료들을 통해 주로 개진되었다.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환경위생사업에서 식민지 조선인의 거주지와 주택은 제외되어 불결했고, 공중위생정책에서 차별받는 그들에게 주거의 청결은 개인의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주택의 불결은 민족적 미개함 열등함의 표상이 되었고 식민지지배의 당위성을 공고히 하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1920년대 주거개량 문제가 조선인의 인종적 개량과 문명화의 과제로서 논의되는 데 심리적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