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 QR코드

DOI QR Code

Basic Study on the Building Principles of Structure in Mireuksaji Stone Pagoda

미륵사지서탑 축조의 구조 원리에 관한 기초 연구 6~7세기 전반 목탑과의 비교분석을 중심으로

  • Cho, Eun Kyung (Architectural Research Division,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 조은경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 Received : 2009.05.19
  • Accepted : 2009.06.09
  • Published : 2009.06.30

Abstract

Mireuksa Temple was founded during the reign of King Mu of Baekje(AD 600-641). The circumstance of the construction of this temple is documented in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Samgukyusa)". The pagoda named stone pagoda at Mireuksaji temple stands outside the main sanctuary of the western area. The south and west sides of the stone pagoda have completely collapsed, leaving only the eastern facade of six of its levels intact. Through the recent discovery of sarira reliquary we can see that the erection of this pagoda was in 639. So owing to accumulation of excavation results about Baekje temple site and vigorous academic exchange, it is possible that architecture of western pagoda at Mireuksaji temple can be understood in connection with the architectural development of wooden pagoda from 6th to early 7th century in East Asia. So this study is on the consideration of building of this pagoda putting first structure of upper part and cross-shaped space in 1st floor. It was considered that the material characteristics as stone could be applied to the temple pagoda architecture of large scale.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it had been built in recognition that the outer and inner part of pagoda should be separated. As it is the expression of structural system in temple pagoda architecture of large scale at that time. In pagoda there was a self-erected structure and the members of outer part of it were constructed additionally. Second, in Mireuksaji stone pagoda there is central column with stones. With inner part of pagoda it can be regarded as mixed structural system that constitutes central contral column and inner structural part. And it could be a kind of middle step to more developed structure of whole as wooden pagodas in Japan. Third, as the sarira reliquary was in central column on the first floor, the cross-shaped space could be made. The formation of this space was so on the natural meaning of sarira that the concept as memorial service of graves could be apllied to the pagoda. The style of tomb in Baekje was expressed to the space of 1st floor in pagoda where Sarira had been mstalled. That was not only effective presentation of symbolic space but also easier method in the use of same material.

미륵사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이 창건한 사찰로 이와 관련한 창건 기록이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이(第二) 무왕조(武王條)에 언급되어 있다. 서원의 미륵사지서탑은 해체 전 6층까지의 일부가 남아있었으며 미륵사지 내의 유일한 현존 건축물로서 최근 사리장엄 발견으로 639년이라는 건립연대가 밝혀졌다. 또한 백제 사찰의 발굴조사 자료가 축적되고 동아시아의 학술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미륵사지서탑의 조영을 당시 불탑 건축의 발전 과정과 연관시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미륵사지서탑의 축조에 적용된 구조원리와 1층 평면의 형성을 중심으로 6~7세기 불탑 건축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대형의 불탑건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기초적 연구를 시도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륵사지서탑은 내부와 외부가 독립적인 개념으로 축조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고층 불탑건축에서 나타나는 구조원리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영녕사 목탑지에서 확인된 탑실심체와 같이 내부의 구조체를 형성하는 개념과 유사하게 내부 적심을 형성하고 외부 부재를 부가하는 방식으로 축조된 것이라 판단된다. 둘째, 미륵사지서탑에서는 상부의 적심부와 동시에 심주석이 동시에 존재하는 혼합 구조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영녕사 목탑과 같은 실심체의 구조보다 발전된 것으로 조팽성 불사의 심초석과 항토 실심체의 구조와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혼합 구조는 황룡사 목탑이나 일본의 목탑과 같이 내외진을 전부 목구조로 형성하고 심주가 독립적으로 지지되는 구조 방식보다 선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미륵사지서탑의 경우 1층에 십자형의 공간이 형성된 것은 심주석에 위치한 사리 봉안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심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4방향의 구심적 공간이며 사리의 본질적 의미에 기인하여 백제 6~7세기의 횡혈식 석실분과 유사한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횡혈식 석실분의 축조기법은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상징적 공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인 동시에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된 서탑에 있어서 재료적 동일성으로 인하여 수용이 더욱 용이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