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Communication and Politics : Yulgok's Thinking on Reform of Obnoxious Politics

법과 소통 그리고 정치 - 율곡의 폐정개혁론을 중심으로 -

  • 최진홍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 Received : 2009.08.28
  • Accepted : 2009.09.23
  • Published : 2009.09.30

Abstract

The 16 century Yulgok had lived have been evaluated as the golden age of Seonglihak(性理學) in Korea. However, on the contrary, excessively desperate was the real social and political situation which Yulgok had descirbed. Therefore, eventhhough the Seonglihak centered-reseach is meaningful, this research had the limitation in analyzing the politics in those times. In studying Yulgok's thought, the established researches had focused on philosophic theory centered-orientation. However escaping from that orientation, in this essay I try to restructure Yulgok's enlivened political experience that he had worldly seen, felt, heard and performed in 16th's real politics. While the established researches had absorbed in Kyeonghak(經學, the interpretaion of Confucian Cannon), I try to restore Kyeongse(經世, governing and managing the state) based on Yulgok's worldly political experience. The major concept on which I have focused is Pye(弊, the abnoxious custiom in political and official sphere). Yulgok's offical life had begun with the problematic of how to overcome Pye inherited by Kwongan(權奸, a politically villainous retainer). In the process, he had focused on the worldly performable issue, Minsaeng(民生, the livelihood of the people), not on the abstract and theoritical concept, Min(民, the people). He recognized the cause of desperate situation had resulted from Pyebeob(弊法, the obnoxious law, its system and its execution), and tried to reform Pyebeob in the various way. The next concern of Yulgok came to Pyejeong(弊政, the obnoxious politics, its system and its execution), which interrupted not to reform Pyebeob. According to Yulgok, Pyejeong resulted from the wrong fulfilment of official-scholar elite in government, and the distorted public opinion in governemt. This fact demonstrates two elements mentioned above had common root of the absence of communication of public opinion. Yulgok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Ui(議, the discussion) than of Ron(論, the dabate) and then reviving Ui, Yulgok had tried to arrange the foundation for the communication of public opinion in political sphere.

우리 학계에서 율곡이 살았던 16 세기는 흔히 성리학의 전성기로 평가된다. 그런데 율곡을 통해 본 당시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학문적으로는 성리학이 꽃을 피웠지만 정치적으로는 쇠락의 길로 치닫고 있었다. 따라서 성리학 중심의 연구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정치를 분석하기에는 한계를 갖는다. 율곡을 다룬 기존 연구들은 주로 철학적 이론중심에 맞추어 설명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 논문은 이와 달리 율곡이 현실정치에서 실제로 보고 듣고 느낀 다양한 정치적 경험들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한다. 기존의 연구가 주로 율곡의 철학을 다룬 '경학론' 중심이었다면, 이 책은 율곡의 정치적 경험에 근거한 '정치적 사고'에 주목하여 그의 '경세론'을 복원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필자가 율곡에게서 가장 주목한 용어는 폐(弊)였다. 율곡의 관직생활은 전(前)시대의 권간들이 남긴 유폐(遺弊)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으로 시작되었다. 율곡이 주목한 것은 '백성[民]'이 아니라,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인 '민생(民生)'이었다. 율곡은 당시 처참한 민생의 원인이 바로 '폐법(弊法)'에 있음을 인식하고, 폐법을 개혁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벌인다. 율곡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의 차원이 아닌, 백성이 편안한 안민(安民)에 초점을 두게 된다. 이후 율곡의 관심은 '폐정(弊政)'이라는 문제로 옮겨가게 된다. 율곡은 폐법이 개혁되지 못하는 이유를 폐정에서 찾고 있었다. 율곡이 지목한 폐정은 첫째는 잘못된 인사문제였고, 둘째는 왜곡된 공론문제였다. 율곡은 인사문제와 공론문제는 모두 '소통의 부재'라는 요소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인식한다. 율곡은 여기서 논(論)보다 의(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의(議)를 살려냄으로써 정치의 장에서 소통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한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