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간 "산수서" 와 "구장산술" 의 비교

  • Published : 2003.01.23

Abstract

1983년 말 중국 형주시 소재 강릉장가산 247호 묘에서 죽간의 형태로 출토된 ${\ulcorner}$산수소${\lrcorner}$ 는 그것이 엮어진 시점이 유휘의 ${\ulcorner}$구장산술${\lrcorner}$ 보아 최소한 450년 가량이나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동야수학사의 기원을 크게 앞당기게 하는 막중한 의의를 지니는 문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석문 자체가 최근 들어와서야 겨우 공개되었을 뿐, 현재로서는 자료에 대한 평가와 내용 분석은 물론, 변역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이 글은 ${\ulcorner}$산수서${\lrcorner}$${\ulcorner}$구장산술${\lrcorner}$ 의 내용을 배교하여 ${\ulcorner}$산수서${\lrcorner}$ 의 특징을 밝히는 동시에 동양수학의 초창기 발달의 궤적을 더듬어 보려는 시도이다. ${\ulcorner}$산수서${\lrcorner}$ 는 '상승(相乘)'에서 '이전(里田)'까지 이어지는 70개 제명(題名)하에 서술되어 있는데, 제명들은 주제를 나타내는 것과 산법을 나타내는 것을 혼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내용 가운데에는 '여직(女織)', '우시(羽矢)', '소광(少廣)' 등이 문제처럼 ${\ulcorner}$구장산술${\lrcorner}$ 의 그것들과 기본적으로 같거나 유사한 것들이 다수 발견되어 고대수학 전통의 연속성을 엿볼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의료수가 문제인 '의(醫)'처럼 ${\ulcorner}$산수서${\lrcorner}$에서만 발견되는 것들도 더러 눈에 띈다. ${\ulcorner}$산수서${\lrcorner}$${\ulcorner}$구장산술${\lrcorner}$ 사이에 이루어진 수학 발달은, 이를테면, 제급근 사이에 있어서 전자의 경우에는 $\sqrt{240}$$15\frac{15}{31}$로 계산한 데서도 드러나듯이 보간법에 의존한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온답을 제시하는 데 하등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차에서도 확인된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