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tandard fire

검색결과 852건 처리시간 0.019초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보존 현황 및 과제 (Preservation of World Records Heritage in Korea and Further Registry)

  • 김성수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 /
    • 제5권2호
    • /
    • pp.27-48
    • /
    • 2005
  • 이 논문은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에 대하여 먼저 그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하고, 이들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보존 관리 및 그 현황을 조사하며, 한국의 기록유산을 디지털화 하는데 있어서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모색하고, 추후 한국의 기록유산 중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기를 희망하는 4종의 기록물들에 대한 가치와 의의를 고찰한 연구이다. 본 연구의 상세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2장에서는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가치와 의의를 고찰하였다. 먼저 세계기록유산의 선정기준과 절차 등을 먼저 파악하고,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직지(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에 대하여 각각 그 가치와 의미를 분석하였다. 둘째, 제3장에서는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보존 관리 현황'에서는 세계기록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가기록원 부산기록정보센터> <간송미술관>의 기관별로 그 보존 관리 현황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이 3기관 모두 세계기록유산 보존 관리 현황은 '매우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즉, 1)그 세부적인 보안대책이 완벽하다. 2)그 보존방법에 있어서도 항온 항습의 특별한 서고를 별도로 마련하고, 이 서고 내에서 다시 '오동나무 상자 서장(書欌)'을 설치한 후, 이들 상자와 서장 속에 세계기록유산을 납입하여 보존하고 있다. 3)방화장치와 서고조명 및 소독 등에도 철저를 기하고 있음 등을 파악하였다. 셋째, 제4장에서는 '한국의 기록유산 디지털화 과제'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고찰하였다. 그 결과, 한국 기록유산의 디지털작업 및 DB구축에서 '디지털화 표준'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디지털화(Digitization)에 대한 총체적이고 표준적인 시스템의 개발이 시급함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국가기록관리시스템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국가기록원>과 한국학 고기록물의 디지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진 <문화재청>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한국학 관련 기록유산의 디지타이제이션(Digitization)에 대한 총체적이고 표준적인 시스템의 개발이 요구됨을 파악하였다. 넷째, 제5장 '세계기록유산 등록을 추후 희망하는 한국의 기록유산'에서는 한민족의 기록유산 중에서 차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를 희망하는 4종 즉, 1)<해인사 고려대장경 경판>, 2)"동의보감", 3)"삼국유사", 4)"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기록물에 국한하여, 그 어떤 의미에서 세계적인 가치와 의의가 있는가를 고찰하였다.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지리인식(地理認識)과 문인(門人)들의 지지편찬(地誌編纂) 의의 (Yeoheon's Recognition of Geography and the Significance of the Compilation of Geographical Records by His Disciples)

  • 최원석
    • 동양고전연구
    • /
    • 제49호
    • /
    • pp.73-107
    • /
    • 2012
  • 여헌 장현광(1554-1637)은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유학자이면서 우주론과 자연학을 가장 체계적으로 저술한 사람이다. 조선조 유학의 지리적인 학맥에서 여헌은 남명 조식과 한강 정구의 학풍을 이어받으면서 풍수와 지지편찬을 계승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여헌은 주자학에 영향을 받았지만 역학(易學)의 기틀을 견지하였으며, 사변적인 공리공론에 머무르지 않고 실용적 경세학(經世學)으로서의 지리를 인식하였다. 여헌의 지리인식 방법은 역학(易學)의 체계와 구도 상에서 이루어졌다. 여헌은 자연에 대한 인간 본위(本位)의 인식태도를 드러내며, 따라서 인사의 공능이 지리의 조건보다 우선되는 준칙이었다. 여헌에게 산수와 자연은 비덕(比德)의 공부대상이었고, 자연공부 방법은 대상물의 관찰을 통해 생명의 이치를 자득하고, 무심한 경지를 통해 천지의 마음에 이르는 것이었다. 유학의 가르침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던 여헌에게 있어서 낙토(樂土)는 안분자족(安分自足)함에서 얻어지는 것이었다. 여헌에게 지리인식의 의의는 생활의 실용적인 이익 됨에 목적을 둔 필수적인 지식정보였다. 여헌은 은거지의 생활현장에 자신이 견지한 유학적 우주관과 세계관을 '우주사업'의 일환으로 구현하였다. 이러한 의식과 태도는 주거지의 장소경관과 자연경물(自然景物)을 북극성과 주위 28수의 별자리로 상징화하여 명명하고 우주적 중심 공간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 경영에서 비롯된 유학자들의 동천구곡(洞天九曲) 전통은 조선시대에 유행되었지만, 여헌의 장소 구성 체계는 여타의 형태와 방식을 뛰어넘은 우주적 구도의 독창성이 있다. 여헌의 장소 명명 의식에는 선현을 본받고자하는 태도, 자연물의 형용과 성정에 대한 비덕(比德), 그리고 은거(隱居) 의식의 반영이 나타난다. 여헌의 국토관 및 국토이해는 지형개관, 산수이해, 도읍입지, 지역이해, 풍토론, 현실인식의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드러나고 중국의 지리적 조건과도 비교되어 파악되었다. 그의 국토인식과 이해방식은, 국토의 유기체적인 인식, 주자학의 자연관이 반영된 기적(氣的)인 국토인식, 산천 인식과 도읍 입지의 풍수적 이해, 지역구분을 통한 비교론적 이해, 인물과 풍속에 대한 풍토론적 이해 방식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헌은 역의 포괄적인 사상체계 범주에서 풍수도 수용하였다. 그가 풍수를 수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명과 한강을 계승하는 학풍에서 연유되는 바가 있었다. 여헌은 풍수지식을 활용하여 주거지의 입지를 정하기도 하였고, 고향 연고지의 여러 곳에 대해 풍수적 견지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풍수관을 보면, 묘지풍수에서 형세론적 이치는 수긍하고 있지만 장례기일을 미루는 발복 목적의 행위는 비판하였다. 그리고 고을의 풍수에서 숲의 조성을 통한 비보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풍수관은 문도(門徒)들의 지지편찬에도 일정하게 반영되었다. 여헌 학풍에서 주목할 만한 지리학적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지지(地誌)의 편찬이다. 이것은 남명과 한강의 치용(治用) 정신과 경세적(經世的) 실천을 계승한 학풍이기도 했다. 여헌은 지지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면서 문인들에게 편찬을 독려하였다. 고을의 통치자나 지식인으로서 지역의 역사와 옛 일을 잘 알아야하고, 권면하고 징계하는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헌의 견해는 이후 문인들의 지지편찬 취지와 내용 구성에 지침이 되었다. 이 연구는 여헌의 지리인식에 관한 사실적인 면모의 정리와 지리적 학풍의 계승 맥락에 관한 고찰에 그친 한계가 있다. 다음에는 여헌 전후 유학자들의 지리인식과 지지편찬 전통이 어떻게 전승되면서 전개 발전되었고 질적으로 변천해 나갔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는 학계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는 조선 초 중기 유교지식인의 지리학사를 정립하는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