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representation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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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폼므라와 장-끌로드 그룸베르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연출적 글쓰기 : 픽션의 정치 (The Directive Writing in the Works of Joël Pommerat and Jean-Claude Grumberg : "le politique" of Fiction)

  • 하형주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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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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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3-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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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논문은 포스트모던 연극/예술의 한계를 너머 새로운 글쓰기로서 '픽션'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 픽션은 관객들이 감정이입해야만 하는 환영적인 것이 아니라, 내용에 대한 형식의 무관심을 드러낸다. 이 픽션은 그래서 재현적 규범에 반대하며 말의 오래된 미메시스에 반대한다. 또한, 포스트모던 예술의 위기, 이미지의 종언에 대해 반박하면서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플라톤적 미메시스를 비틀어, 모방적 방식에 의해 유사성의 차용 가능함을 언급한다. 이 유사성을 차용한 이미지는, 그래서 내용에 대한 형식의 무관심을 드러내면서 의미작용의 상실과 함께 방황한다. 이 방황하는 말들은 마치 상형문자처럼, "화석들 또는 홈패인 돌들에 씌어진 역사를 담고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진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없는 해체라고 비판받은 포스트모던 연극의 대안으로서 새로이 소환되는 '픽션'은 현실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서 '어떤 실재성'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인간정신의 방식 자체를 유희하게 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유의 움직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산출하는 것과 산출되는 것 사이의 무매개적 관계를 위해 단순히 직접적인 반영을 해고하는 유사성을 차용하는 글쓰기를 행하는 두 작가, 조엘 폼므라와 장-끌로드 그룸베르그의 작품들을 살펴본다. 이들의 글쓰기는 기존의 픽션이 가지고 있었던 개념을 벗어나 새로운 미학적 글쓰기로서, 문학적 창작과 정치적인 것이 교차되어있는 방식일 뿐 아니라 사유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부여고적의 재해석과 고적관광의 성격 (A Study on Characteristics of Reinterpretation and Tourism on Historic Sites of Buyeo Region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 김종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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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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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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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일제는 일선동조론에 바탕을 둔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우리의 역사를 식민사관에 맞춰 재구성하는 한편 고고학적 조사와 고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이를 증명하려고 하였다. 경주, 부여 등 고도(古都)에 대한 고적조사 및 고적의 재해석 그리고 고적관광은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되었다. 특히, 부여지역의 경우 고적조사와 고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백제 사비기와 일본 고대 아스카(飛鳥)시기와의 밀접한 관련과 친연성을 강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고적을 식민지 조선인에게 보여주는 고적관광을 실시하였다.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부여지역에 대한 고적조사와 고적의 재해석 및 고적관광이 어떤 맥락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첫째, 부여지역의 고적조사는 1909년 세키노 다다시에 의해 처음 시도되어 일제강점기 동안 고분과 사지(寺址)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세키노는 부여의 고적조사 결과를 토대로 고대 중국(梁) 한국(百濟) 일본(倭)간의 문화적 관계와 영향을 설정하였고 사비시기의 백제문화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다시 일본에 전달하여 아스카 문화를 형성하게 했다는 문화 전달 자설을 역설하였다. 이는 우리문화의 고유성을 부인하고 백제문화를 중국문화의 아류 또는 단순 전파자 역할로 왜곡 해석한 것으로 이러한 세키노의 관점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둘째, 1915년에 발족한 부여고적보존회는 부여고적에 대한 탈맥락적 해석을 통하여 고대 일본과 백제와의 관계를 동화론적 관점에서 재정립하였다. 특히 낙화암, 고란사, 청마산성 등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일본과의 친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일제의 동화정책을 역사적 사실관계로 확정지으려고 하였다. 셋째, 부여지역의 고적관광은 부여고적보존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주된 관광대상과 코스는 고적의 재해석을 통해 재구성된 고적들이었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부여를 일본 고대문화의 원형 또는 본향으로 이념화된 공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부여의 고적조사와 고적에 대한 재해석 그리고 고적관광은 서로 밀접한 관련하에서 추진되었고 그 추진 주체가 조선총독부와 친일 관변단체였다는 점에서 타자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지고' '보여진' 것이었으며 그것은 식민지 표상공간으로서 부여의 재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