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preservation of art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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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화경제전략과 미술품 유동성 활성화에 관한 연구 - 문화청의 선진미술관 정책 추진을 중심으로 - (Research on the revitalization of Japanese artworks: Focus on Japan Advanced Art Museum Policy)

  • 추민희
    • 예술경영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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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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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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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최근 일본 문화청은 미술관의 지속 가능성과 경제성 강화를 통한 산업증진 등을 위하여 리딩 뮤지엄(선진미술관)으로 대표되는 예술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인구감소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인구절벽과 지역사회 공동화 등은 큰 사회적 문제이다. 문화의 향유자와 창조자 모두 급감하여 문화 기반 자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 분야의 지원 예산이 현안에 밀려 우선순위가 낮아지면 현재의 문화 지원의 수준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일본 국민의 자산 수준이 국제적으로 보아도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미술산업 시장은 미국, 중국 등에 비하여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의 해결방안으로 미술품의 유동성을 높여 미술산업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문화청은 일본 내 미술관의 일부를 미술 시장 활성화를 위한 선진미술관으로 지정하여 예산 지원과 학예사 인력을 증원과 체질을 강화한 후 소장 미술품 등의 가치를 평가하여 수장품의 보존 여부를 판단 후 투자유치를 위하여 소장품을 시장에 매각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정책 발표와 함께 일본의 문화계와 비평계가 찬반으로 나뉘어 큰 갈등에 휩싸였고 반대 여론이 높아져 현재 정책 추진이 잠정 유보된 상황이다. 반대 이유로는 보존과 전승이라는 박물관의 고유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상업주의가 예술계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고 찬성 이유는 일본의 예술사회는 미술관과 박물관 이외에도 비영리단체, 예술제의 운영조직, 지원인력, 자원봉사자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조금 편향성이 높다 보니 실질 인건비도 지급하지 못하여 사실상 방치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사회 변화에 따라 보조금 의존도를 줄여야 예술사회 자체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각심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보니 우리나라 역시 미술품 유동성 활성화를 위한 미술품 감정·평가기능 수행하는 국립미술은행의 신설이나 미술품 담보대출, 미술품 신탁 등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이 현실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보조금만으로 현실적 문제를 타개하기 어려우므로 우리 역시 문화에 대한 투자를 확충시켜 문화와 경제가 일원적·연쇄적으로 운용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간송미술관 소장 《삼청첩(三淸帖)》의 역사성에 대한 고찰 (A Study on Historicity of 《Three Purities Album (三淸帖)》 in the Kansong Art Museum)

  • 백인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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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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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6-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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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간송미술관 소장 ${\ll}$삼청첩${\gg}$은 조선 중기 문인 화가인 탄은(灘隱) 이정(李霆)이 매화, 난초, 대나무를 그리고, 시를 지어 함께 장첩한 시화첩(詩畵帖)이다. 조선 묵죽화의 전범(典範)을 세운 화가로 평가받는 이정의 시화(詩畵)를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ll}$삼청첩${\gg}$의 미술사적 가치는 매우 높다. 그러나 ${\ll}$삼청첩${\gg}$의 가치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ll}$삼청첩${\gg}$의 이력(履歷)이라 할 수 있는 제작배경, 성첩(成帖)과정, 전래시말 등에는 제작 당시의 시대상은 물론, 통시대적인 다양한 역사상들이 투영되어 있다. ${\ll}$삼청첩${\gg}$은 이정이 임진왜란시 왜적에게 칼을 맞는 수난을 겪은 후, 필생의 역작을 남기려는 의도 하에 만들어졌다. 이후 최립(崔?), 차천로(車天輅), 한호(韓濩) 등 시서(詩書) 각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성가를 구가하던 문인들이 동참하여 성첩되었다. 그리고 유근(柳根), 이안눌(李安訥), 유몽인(柳夢寅) 등이 찬문과 제시를 지어 상찬하였다. 그야말로 '일대교유지사(一代交遊之士)'가 동참하여 만들어낸 '일세지보(一世之寶)'였던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ll}$삼청첩${\gg}$은 이정 개인의 작품을 넘어 조선 중기 문예의 지향과 역량이 한 자리에 모인 종합예술품이며, 조선 중기 문화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ll}$삼청첩${\gg}$은 이정이 세상을 뜬 후, 선조의 부마인 홍주원(洪柱元)에게 넘어갔고, 병자호란 시 소실(燒失)될 위기를 겪는다. 현재까지도 그때의 화흔(火痕)이 역력하게 남아 있어,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호란이 끝나고 홍주원은 동서(同壻)인 윤신지(尹新之)의 도움으로 훼손된 일부 제발문(題跋文)들을 복원하였고, 이후 풍산 홍씨(豊山洪氏) 집안에서 7대를 이어가며 가보(家寶)로 전해진다. 홍중기(洪重?)의 요청에 의해 쓰여진 송시열(宋時烈)의 발문과 홍상한(洪象漢)의 요청에 의해 쓰여진 어유봉(魚有鳳)의 발문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정 생존시 문인들이 이정과 ${\ll}$삼청첩${\gg}$의 지닌 작품성에 대해 상찬한 것과는 달리 후대 문인들의 글은 ${\ll}$삼청첩${\gg}$의 전래과정과 그와 관련된 인물들에 초점을 두고 있어 대조적이다. 후대의 문인들은 ${\ll}$삼청첩${\gg}$ 자체의 작품성보다는 그에 얽힌 일화와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흥미를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ll}$삼청첩${\gg}$을 다시 복원한 홍주원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는 ${\ll}$삼청첩${\gg}$의 소장자로 글을 부탁한 홍주원의 후손들인 홍중기, 홍상한 등의 정치적, 사회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고자 하는 의도가 없지 않을 것이다. 홍주원의 후손들에게는 ${\ll}$삼청첩${\gg}$이 가문의 조상을 추숭(追崇)하는 기재인 동시에, 정치적 정통성과 가격(家格)을 담보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술품의 미적 가치 못지않게 그 안에 내재된 역사성을 중시했던 동아시아 특유의 예술 인식의 근인(根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ll}$삼청첩${\gg}$은 조선 말기 외세 침탈의 와중에서 일본인 츠보이 코우소(坪井航三)에게 넘어가는 비운을 맞게 된다. 다행히도 일제시기 심혈을 기울여 우리 문화재를 수호했던 전형필(全鎣弼)이 이를 되찾아왔고, 현재 간송미술관에 수장되어 전해오고 있다. ${\ll}$삼청첩${\gg}$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 침탈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국난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우리 문화재의 수난과 보존의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를 통해 하나의 미술품이 유전과정에서 또 다른 역사성을 지속적으로 축적하며 그 의미와 가치를 강화시켜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중층적인 시의성(時宜性)과 지속적인 역사성(歷史性)을 지닌 ${\ll}$삼청첩${\gg}$은 미술품이 미적 가치와 더불어 사료적 가치를 얼마나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 생각된다. 이를 계기로 향후 미술품의 이력과 그 역사적 의미를 찾는 고찰들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