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orthodox Neo-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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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紹修書院) 건립의 문화적 토대 연구 - 회헌(晦軒) 안향(安珦)의 선비정신을 중심으로 - (A Study of the foundations of culture established the Sosu Seowon)

  • 이정화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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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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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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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회헌(晦軒) 안향(安珦)은 우리나라 선비들이 성현(聖賢)의 학문을 잘 실천하여 수기(修己)의 공을 이룰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선지자(先知者)였다.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은 선비의 학문을 좋아하여 오래도록 배움과 교육에 힘썼는데, 특히 백운동서원을 건립하여 선비들의 마음을 학문으로 진작(振作)시켰다는 점에서 학자의 소임에 충실하였다. 또한 서원 교육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조정에 상소를 올림으로써 백운동서원의 입지를 최초의 사액(賜額) 서원인 소수서원으로 재정립한 퇴계(退溪) 이황(李滉) 역시 학자의 소임에 충실하였다. 회헌은 생전에 왕명에 의해 초상화를 갖게 되는데, 가문에서 소장해오다가 백운동서원이 건립되면서 이곳에 봉안하게 된다. 후학들이 영정에 찬문(贊文)과 시를 헌정(獻呈)하기 시작하면서 회헌의 학문정신을 근간으로 한 소수서원의 선비문화가 구축된다. 회헌의 시대는 장기간의 무인(武人) 집권과 몽고군의 침입 등으로 인하여 국운이 쇠망하고 있었다. 태평성세를 간절히 염원하였던 회헌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힘겨운 삶에 주목하게 된다. 궁핍한 백성들이 오가는 사찰이 황금과 보석 등으로 치장한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형상화한 것이 회헌시에 나타난 사실주의적 기법이다. 회헌은 백성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이것이 곧 주자학을 국내에 수입한 까닭이다.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염려한 회헌의 충심(忠心)이야말로 실천하는 선비상(像)의 발로였다. 회헌은 우리나라 지성사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가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의 임무를 띠고 합포에서 공무를 수행할 때 조정에서 지공거(知貢擧)를 맡으라는 명이 내려진다. 회헌의 염원은 태평성세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빼어난 자질과 학문을 갖춘 선비들을 기르는 것도 태평성세를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이로써 보면 회헌에게 있어 '교학(敎學)이란 인재를 기르는 힘의 원천이며 백성들을 구제하여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원동력이다.

Confucianism in Vietnam: A Hauntology-based Analysis of Political Discourse

  • LINH Trinh Ngoc
    • 대순사상과 동아시아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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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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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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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From the time it was propagated to Vietnam until it was forced to relinquish its leadership position in both politics and philosophy, Confucianism in Vietnam was never orthodox Confucianism. This study employs the theory of invented tradition to examine how Confucianism penetrated the ethnic Vietnamese community at the turn of the first millennium and points out its vital requirement: the construction of a Chinese-style centralized administrative government based on Neo-Confucianism. This requirement unfolded during the Le So Dynasty in the fifteenth century. Moreover, the theory of invented tradition can also be applied to discover the motivation behind Neo-Confucianism's process of manufacturing orthodoxy to speed up the goal of Sinicization. Somehow, the launching of the imperial examination system, meant to fulfill a system of bureaucracy, ended up resolving one of the greatest challenges of medieval times. It is to seek the ruler's uncritical submission to the ruled. This article applies hauntology to analyze two forms of Confucianism discourse in Vietnam. In doing so, this study determined that Confucianism evolved into its own unique system of thought in Vietnam and in the end, was not even recognizable as Confucianism. Throughout Vietnam's turbulent history, Confucianism shifted from a symbol of progress to one of backwardness. This culminated Vietnam's preoccupation with the de-Sinicization during the early twenty-first century.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경국제세, 그리고 전쟁관리 (Scholarship, Statecraft, and War Management of Ryu Seongryong)

  • 최연식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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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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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7-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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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유교 지식인 류성룡과 정치가 류성룡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유교 지식인의 학문은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실천을 지향하고, 역사의 선례와 현장에 대한 치밀한 연구는 정치가의 성패를 좌우한다. 류성룡이 위기에 처한 조선의 실질적인 구원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이론과 현장을 구분하지 않고 양자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성룡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은 이러한 점들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먼저 류성룡이 주자 성리학에 안주하지 않고 양명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그가 정통 주자학자들과는 다른 실용주의적 경세관을 지니고 있었고, 그 결과 임진왜란이라는 사상 초유의 국란을 맞았을 때도 현실주의적 위기 대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요컨대 이 글은 학문과 실천의 균형을 추구한 류성룡의 삶을 실용주의와 현실주의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