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landowner′s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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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안』 분석을 통해 본 개화기 경상남도의 가옥형태와 구조 (House Type and Household Structures of South Kyongsang Province in the Enlightenment Period)

  • 최영준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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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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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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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1904년 대한제국 정부에서 간행한 $\boxDr$경상남도가호안$\boxUl$은 총 31개군 가운데 11개군의 자료가 현전하는데, 이 자료는 당시 이 지방의 민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논문은 제1차자료인 가호안의 분석을 통하여 동ㆍ면ㆍ군별 가좌의 토지등급ㆍ가옥의 규모, 가좌와 가옥의 소유관계, 초ㆍ와가의 분포 등을 파악한 연구이다. 가호안의 분석결과 전체 가호의 약 20%는 사유지 또는 국공유지를 임대한 가좌에 지어졌다. 또한 가옥의 90%는 방 한칸 또는 두칸에 부엌이 딸린 집이었으므로 지역의 가옥규모는 2.75칸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면 100년전 경상남도의 가옥규모는 조선시대의 이상 가옥형인 삼간초옥에도 못미쳤던 것이다. 이러한 열악한 주거조건 때문에 1인당 점유공간이 2-4평방미터에 불과하며 결과적으로 수용가능한 가족의 수도 4인 내외로 한정되었다.

개항기 인천 근대정원의 조영특성에 관한 기초연구 - 리키다케 별장을 중심으로 - (A Basic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Modern Garden in Incheon During the Opening Period - Focused on Rikidake's Villa -)

  • 진혜영;신현실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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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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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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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근대정원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인천 제물포의 조계지 형성 및 변화과정을 분석하고 이곳에 조성된 근대정원의 조영 내용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인천 조계지의 형성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과거 제물포는 황량한 어촌이었으나 1881년 개항 이후 일본 조계지와 청국전관조계 및 각국공동조계가 형성되었다. 이후 일본은 남쪽 갯벌지대를 매립하여 조계지를 확장했고, 조선지계(현신흥동 일대)로 진출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전관조계를 중심으로 일본의 근대도시경관을 이식하였으며, 조계지의 중심가 주변지역에 근대정원들이 분포하고 있다. 둘째, 리키다케 별장을 대상으로 정원의 조성과정을 살펴본 결과, 일본인 리키다케가 인천의 대지주였던 우리탕의 과수원 부지를 매입하여 정원을 조성하였다. 리키다케의 거주 당시에는 정원공간만 약 3,000평으로 매우 큰 규모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인천시에서 인수하여 율목어린이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개항 당시 부촌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율목동 일대 가장 높은 곳에 정원이 위치하여 인천항 일대의 조망이 용이했다. 또한 리키다케의 정미소와 직선거리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점 또한 입지선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셋째, 오늘날 리키다케 별장의 정원은 석축을 쌓은 사다리꼴 형태의 부지에 복층의 일본식 가옥이 위치하고, 남측에 약 990㎡ 규모의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현재 남쪽에서의 진입과 북쪽 율목 어린이공원에서의 진입이 가능하나 과거에는 인천항과 조계지, 그리고 리키다케 정미소를 조망할 수 있는 방향이 가옥의 주 향이었을 것으로 보아 정원을 앞에 두고 가옥이 위치했을 것이다. 정원은 원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석등과 비석, 정원석, 수목 등을 배치한 다정양식에 해당하며, 주변에 주목, 스트로브잣나무, 단풍나무 등의 수목식재와 둥글게 전정한 철쭉과 영산홍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옥 주변에는 관목 중심의 식재를 통해 가옥 내부에서의 조망을 확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