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discourse stru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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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선언문과 폐정 개혁문의 모달리떼와 그 상징성 (The modality and the symbol of the reform in donghak and the declaration in K. Marx)

  • 선미라
    • 기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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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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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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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논문은 칼 맑스의 선언문과 폐정 개혁문의 모달리떼와 그 상징성에 대한 연구이다. 이를 위한 텍스트로는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 동맹 선언문과 동학 농민군의 폐정 개혁안을 채택했다. 이 선언문과 개혁문은 이 논문에서 1800년대의 철학적 실천담론을 모달리떼 양상으로 전개하며 기호학적 의미에서 그 공통의 상징성을 도출하고, 소유와 소외 그리고 계급에서 자유로워지는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하는 사상적 흐름에 그 촛점을 맞추고 있다. 궁극적으로 동시대의 숨결 속에서 발표된 이 두 선언문은 감시와 처벌이라는 비인륜적 정책에 대한 고발장이다. 1일 2회 교회에서의 공간이 공장으로 바뀌고, 자본과 노동으로 2분법적 사고로 갈라치기 해서 이 범주 안으로 몰아넣는 행위가 마치 사회 윤리인 냥 치장되었으며, 사냥하는 식의 강요는 처벌 방식으로 이루어져 더 이상 사람이 존재하기 힘든 구조가 제도화 되어버린 현상에 대한 대항이다. 이 사냥의 틀을 깨부수려는 혁명운동이 바로 위 두 선언문으로 나타나며 칼 맑스는 자신의 존재를 '영원한 난민'의 위치에 둠으로서 공산동맹 선언을 통해 이루고자 한 유토피아의 절정을 완성하며, 동학농민군은 전봉준의 재판 취조과정에서 전개되는 그의 자유함에서 죽음을 택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민중의 혁명정신을 완성한다. 동서양에서 동시에 폭발한 억압의 형태는 지배와 통치의 자본에 대한 철퇴이며, 이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사람이 가장 큰 자본이다'로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인 철학적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그 의의를 ?고 있다.

<이춘풍 난봉기>와 <열하일기만보>를 통해 본 손진책의 '마당미학' (Sohn Jin-Chaek's 'Madang' Aesthetics in Playboy Lee Chunpoongjeun and Yulha Ilgyee Manbo)

  • 최영주
    • 한국연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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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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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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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Son Jinchaek got into his directing career since 1976 when he founded the theatre group Minye with Huhgyu and others. His experience in Minye was the turnaround of his life; Huhgyu was a teacher in his artist's life whereas Brecht was a teacher for his ideology to make 'Korean Theatre'. From these two teachers, he learned how and why Korean Theatre should be made. Since then, Korean theatre was his calling for 40 years of his directing career. As he established Michoo in 1986, it served a turning point in his art. His focus was on intrinsic attributes of Korean Theatre with Madang Jungshin. With Madang Jungshin, he tried to get over the former generation's fixation on external materials of Korean traditional theatre and folk culture to make Korean Theatre. Rather, he believed Korean Theatre could be realized when it grafted Korean social reality onto the stage, while the form was subsequent. He advocated Korean Theatre should mirror present social reality and circulate social energy. Also, he did not give up aesthetics. On the contrary, his aesthetic style was conspicuously evident in his productions. In spite of his life long career with noteworthy works, the critical discourses are strikingly scarce especially when compared with other senior and peer directors such as Hugh Gyu, Ahn Minsoo, Oh Taesok, and Lee Yoontaek. During his career he has crossed into various genres from Changeuk, Madangnori, and to theatres, which were too versatile to thread them into a discourse and caused a lack of theoretical greeting. Madangnori has anchored its artistic structure on its polished aesthetics which were acclaimed by the general audience for 30 years. For theatre, he concentrated on one production per year to grasp its own style. Theatre works also had revealed his own style of being opened and of being emptied which was certainly different from Madangnori, but had same aesthetic principle within it. This paper attempts to recompose his stylistic features with 'Madang aesthetics' which were based on open space, open acting style, and graphic ensemble. This paper tries to demonstrate how his 'Madang aesthetics' has refined his productions in scenography, acting style, and in more like metaphoric and metonymic symbolic expression of the graphic ensemble. To do this, two productions were explored: eLee Chunpoongjeun and Yulha Ilgyee Manbo. Madangnori was sorely explored by Son Jinchaek with his artistic colleagues Yoon Munshik, Kim Jongyeup, Kim Sungnyu, music designer Park Buhmhoon, and choreographer Guk Sooho. Though it has been ignored for its popular appeal by the doctrinaire theoretical opinions, it started to pull academic attention recently. His theatres are also getting sharp with his 'Madang aesthetics' as well as minimalistic expression in scenography, acting style, and graphic ensemble. Madang Jungshin is the soul and Madang aesthetics is the body in his artistic works. The Madang Jungshin animates the Madang aesthetics, so they become alive in his theatre.

콘크리트 건축물의 모놀리스적 표현특성에 관한 연구 단열경량골재콘크리트를 중심으로 (A Study on Monolithic Expression Characteristics of Concrete Buildings With focus on insulated lightweight aggregate concrete)

  • 원경섭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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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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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3-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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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오늘날 다변화된 사회에서 어떤 스타일의 건물이 동시대를 대표하는 건축적 양식인지 알기 어렵다. 그 중에서 모놀리스적 스타일의 건물에서 드러나는 단순함은 현대의 지극히 복잡한 사회구조와 대칭점을 이루며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21세기 초반 단열경량골재콘크리트가 사용된 건물의 분석을 통해서 모놀리스적 표현에 대한 개념정의와 그 특징들이 공간 및 형태 그리고 건축구법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였다. 여러 재료가 층을 이루어 구성되는 다층적 방식의 외벽시스템과는 달리, 단열경량골재콘크리트에 의한 외벽은 단일재료로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거푸집을 빈틈없이 채워서 만들어진 덩어리 형태이며 그 자체로 모놀리스적이다. 이러한 점은 동일한 재료에 의한 내외부공간의 동질성, 고형(固形)으로서 표면의 연속성, 스테레오토믹적(stereotomic) 구축방식의 공간적 특성, 노출콘크리트사용에 의한 물질성의 표현, 덩어리와 공간 사이의 대비적 특성을 가진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현대건축의 다층적 외벽 방식의 모놀리스적 건축에 대한 담론을 외부로 드러나는 형상적 특징과 더불어 구조와 재료, 그리고 그것이 공간에 끼치는 영향에 까지 논의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스토리텔링을 적용한 화예전시에 관한 연구 (A Study on Floral Art Exhibition Applying Storytelling)

  • 안현정
    • 한국화예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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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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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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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고의 목적은 현재 국내에서 열리고 있는 화예디자인의 단선적인 전시구성 방식을 탈피하여,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기획전시를 제안함으로써 형식 중심주의를 가로지른 화예디자인의 새로운 전시형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여기서 스토리텔링이란 기·승·전·결의 4단계 구성법 혹은 처음·중간·끝의 3단계 구성법 등의 활용을 통해 이해가 쉬운 전시를 구성하는 것으로, 이를 공간디자인의 전시구획에 활용하고 이를 통해 창작자와 감상자의 상호소통을 효율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화예디자인의 다각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밀레니얼 이후 불고 있는 융합적 시야를 확보하여 타 분야와의 콜라보 혹은 스토리텔링을 반영한 전시기획을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의 주요 기능은 대중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데 있다. 본 연구에서는 스토리텔링을 적용한 기획전시에 주목하여 2017년 성균관대학교박물관에서 열린 '화왕계(花王戒)' 사례를 통해 화예 전시가 취해야할 전시구조와 실행 방향에 대해 제안하고자 한다. 나아가 언택트 시대의 최대 화두인 유튜브 및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SNS중심의 온라인플랫폼과의 연동까지 조망한다. 이 연구를 통해 화예분야의 담론이 확장되고, 스토리텔링을 갖춘 미학적 제언 및 화예디자인의 다양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단편애니메이션의 실험적 영상연출 연구 -<탱고>와 <페스트 필름>을 중심으로 (A Study of Experimental Image Direction for Short Animation Movies -focusing in short film and )

  • 최돈일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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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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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5-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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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애니메이션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프레임을 구성하는 조형언어와 컷을 구성하는 프레임을 그려내는 비실사동영상예술이다. 따라서 영상을 표현함에 있어 프레임 내에서는 미술의 표현어법과 조형공간장치들을, 컷은 프레임과 프레임사이의 영상 어법을 충실하게 갖추어야한다. 단편애니메이션은 작가의 주관적 담론을 표현하기 위한 서사보다는 독특한 이미지표현과 다양한 영상 실험에 의해 제작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독창적인 영상을 구성하는 이미지스타일이나 다양한 영상연출 등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번연구에서는 필름조작에 의한 제작방식을 보여준 <탱고>와 <페스트 필름>의 실험적 영상 연출의 특징을 상호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제작기법에서는 <탱고>는 라이브 영상에서 얻어낸 이미지를 셀매트에 직접 페인팅과 많은 옵티컬 노출공정을 통해 제작한 픽실레이션인 반면 <페스트 필름>은 수백편의 액션영화의 장면을 선별하여 찢기, 오리기, 붙이기, 접기 등의 다양한 콜라주기법으로 제작되었다. 둘째, 화면공간연출로는 <탱고>는 일반적인 화면전환을 거부하고 고정된 카메라앵글로 인물들의 비 인과관계를 반복된 행위와 순환적 영상구조로 표현한 반면 <페스트 필름>은 인물간의 상호 대립관계를 다양한 카메라앵글과 독특한 이미지의 화면전환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전진구조를 갖고 있었다. 셋째, 편집에서는 <탱고>는 다양한 인물의 등장으로 여러 개의 장면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전체의 영상이 하나의 쇼트로 이루어진 롱 테이크 쇼트로 표현되었다. 반면 <페스트 필름>은 수백 개의 다양한 쇼트에 의한 영상재구성으로 시각적 재미와 몰입 도를 극대화하고 있다. 즉 두 작품 모두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제작방식과는 차별화된 필름조작을 통해 애니메이션영상표현의 확장성을 보여준 실험적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탱고>가 뚜렷한 내러티브 없이 다양한 인간들의 반복일상을 재 개념화된 공간의 영상미로 전달한 반면 <페스트 필름>은 이항대립의 구조로 설정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와 콜라주에 의한 이미지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영상공간으로 풀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쇄극의 정체성 논의 - 총체예술론적 관점에서 - (A Study On The Identity Of Yeonsegeuk(Kino-Drama))

  • 김수남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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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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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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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한국에 영화가 전래된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1903년 6월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한국영화의 효시에 대한 논쟁은 김도산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1919년)를 영화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연극으로 인정하느냐의 문제이었다. 조선에 연쇄극이 처음 들어 온 것은 일본 세토나이카이 일행의 <선장의 처>로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설은 1915년 10월 16일 대한매일신문의 연재소설을 무대화한 미쯔노 강게쓰 일행의 <짝사랑>이 부산의 부산좌에서 공연된 것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서울에서는 1917년 3월 14일부터 황금관에서 <운명의 복수>가 무대에 올랐다. 연쇄극은 우리의 독창적인 공연형식이 아니다. 연쇄극이 조선연극계에서 전성을 누렸던 시기는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공연된 김도산의 <의리적구토>부터 3년 정도에 불과하다. 연쇄극의 공연형식은 연극이 진행 되는 중에 영화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특별한 극형식이다. 연극이 기존의 예술을 종합한 종합예술이라면 연쇄극은 새로운 매체인 영화까지 무대에 도입한 새로운 종합예술(총체예술)로서 확대연극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마디로 연쇄극의 영상 도입은 영화적 행위의 삽입이며 연극적 표현의 확대기능으로서 새로운 공연예술로서 총체예술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현재 연쇄극의 학술적 연구가 미미한 상황에서 연극으로서 연쇄극인가 또는 영화로서 연쇄극인가의 개념 정의는 우선 연쇄극의 정체성과 그 미학적 확립이 요구된다. 조선영화 비평가, 임화는 연쇄극 필름을 영화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활동사진을 영화라고 부르지 못한 것 이상이다. 라고 연쇄극의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연쇄극이 활동사진만치 독립된 작품도 아니고 연극의 보조수단에 불과한 영화의 한 태생에 그치는 것이라고 연쇄극을 연극으로 결론 내렸다. 조선영화 초창기의 대표적 감독인 안종화 역시 연쇄극이 무대에서는 도저히 실연할 수 없는 야외활극 같은 것을 촬영해서 연극 장면에 적당히 섞어서 상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당시 연쇄극이란 연극과 활동사진이 결합된 형식의 공연물로 영화는 연극의 보조수단으로 보았다. 공간이 제한된 연극무대로는 표현하기 곤란한 정경이나 극적인 장면들을 야외에서 촬영하였다가 무대공연시 필요한 대목에 극장 내의 불을 끄고 백포장에 영사하다가 다시 불을 켜고 무대공연을 계속하는 식의 공연양식이었다. 연쇄극은 작품에 있어서도 진지한 연구가 없이 일본 연쇄극의 제작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그 내용에서도 신파극의 잔재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당시 일간지 지상에서는 연쇄극이란 개량신파극의 모방이므로 약식있는 연극인들이 가질 무대가 아니라는 혹평을 연일 게재하였다. 본 논문의 연구목적은 연극이냐 영화이냐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연쇄극의 형식미학을 논의하고자 한다. 논의 과정으로서 연쇄극의 등장 배경과 공연형식 그리고 새로운 공연 예술로서 연쇄극을 총체예술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그 결과 연쇄극은 영화가 아닌 확대 연극의 개념으로 규명하고 새로운 공연예술로서 재평가하고자 한다.

유영국(劉永國)의 초기 구성주의: <랩소디>(1937)에 나타난 유토피아니즘 (Yoo Young-kuk's Early Constructivism: Utopianism in (1937))

  • 유영아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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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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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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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is study is about Yoo Young-kuk's early works which show constructivism, especially focus on his debut painting, for the 7th Dokuritsu Bijutsu Kyokai(獨立美術協會, the Independent Fine Arts Association) in Tokyo in 1937. The work was painted 2 years after he had started his study in Japan in 1935. It was the first painting that applied Constructivism. played an important role for Constructivism to be a leading art in his abstraction. After this picture, Yoo was soon devoted to the principles of Constructivism-- Faktura(material), Tektonika (tectonics), Tekhnika(technique), space, construction-- in his painterly reliefs. This article examined why Yoo concentrated on Constructivism for , what the characteristics were, and what influences were on other works from 1935 to 1949. In addition, I investigated in which period was painted and how Constructivism was spread in 1930s and early 1940s in chapter 2. I scrutinized Rhapsody in chapter 3. When Yoo created Japan was under the Fifteen Years War(1931-1945), and a major discourse was the Japanese Spirit at that time. It was connected with construction of an ideal nation which the Japanese ultra-national fascism pursued. This ideological pursuit was intended to unite the Japanese people for total war system and to restore a national dignity which had been fallen down due to Manchurian Incident(1931). Thus, on the hand, Kokusai Bunka Shinkokai(國際文化振興, The Society for International Cultural Relations) and the Nippon Kosaku Bunka Renmei(日本工作文化連盟, Japanese Werkbund) were supported financially by the Japanese government. On the other hand, the government enacted regulations to opposing parties which would distract Japanese people's unification. As for the Japanese art world, the merge of art groups was carried out through remodeling of Teikoku Bijutsuin(帝國美術院, The Imperial Fine Arts Academy) in 1935. This brought out continuous dispute and disorder. Young artists who felt difficulty of entering an entry of Imperial Fine Arts Exhibition repeatedly grouped and disbanded for small art groups to build their standing, which they pursued Surrealism and Abstract art. Among them Constructivism was considered as the latest trend and was popular in craft, design, architecture as well as fine arts. In the year before he painted , Avant-garde theatres including Constructivism theatre were introduced in a feature article of September, 1936 in Atelier, which was dealing with mainly avant-garde arts. Books related with Constructivism were translated into Japanese, and Gestaltung Education had become active since the publication of A Compendium of Gestaltung Education("構成敎育大系"(1934)), Salvador Dali(1904-1989) was also introduced, so Surrealism was drawn more attention by young artists. reflected popular trends. Yoo analyzed the Japanese avant-gardists' archaic taste in the Independent Art Association that he submitted his painting to. And then he entitled 'Rhapsody' which derives from Ancient Greek's epic poetry and deliberately set up images in a scene. In chapter 3, I examined a theme which was planned carefully by sorting favorite images from the Japanese Surrealism. was a result that Yoo Young-kuk observed objectively the phenomenon that young artists dreamt of Utopia or longed for Nostalgia passively and lethargically under wars. And then he otherized himself from that circumstance. First of all, for he used the typical icons of Japanese Surrealism such as the horizon, flowing clouds, and vast plain that were considered stereotypes of Arcadia. He, however distinguished himself form those Japanese Surrealists. He made his own vision about Utopia by referring Lyubov Popova(1889-1924)'s stage design. His objective point of view was expressed by positive and dynamic images of structure and human's actions. Constructivism which was attempted in had an effect on other early constructive works, and the principles of Constructivism were sought hard in reliefs, paintings, and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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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의 영화적 기억과 크로노폴리틱스 (Chronopolitics in the Cinematic Representations of "Comfort Women")

  • 박현선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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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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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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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논문은 일본군 '위안부'의 영화적 재현이 어떻게 일상의 영역에서, 그리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 '상상력'을 촉발하고 공통의 감각과 정동을 불러일으키는가 살펴보자 한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는 오랫동안 망각되었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야 공공 기억의 장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러한 전환에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담론화를 가능하게 만든 국내외적 크로노폴리틱스(chronopolitics)가 존재한다. 이는 '시간의 정치학'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독특한 위상을 보여주는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영화적 재현은 역사적 크로노폴리틱스와 연속적이면서도 단절적인 이중성을 보여주며 새로운 시각적 크로노폴리틱스를 드러낸다. 한국영화사의 맥락에서 일본군 '위안부' 재현의 크로노토프는 크게 4가지 국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1990년대 이전 일본군 '위안부'의 극적 재현들, 둘째, 증언과 역사쓰기로서 1990년대 후반 다큐멘터리, 셋째, 2000년대 들어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을 이끌어낸 극영화들, 넷째, 애니메이션 및 기타 장르를 포함하는 매체의 확산이다. 이들 중에서 '위안부' 문제를 대중적 극영화(fiction film)의 범주에서 표상하고 있는 첫 번째 국면과 세 번째 국면에 집중해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1990년 이전의 '위안부' 극영화들이 철저히 상업영화와 대중장르의 틀을 고수하며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성애화를 추구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영화들은 대중영화의 양식 속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실험해보고 있다. 특히, <귀향>, <아이 캔 스피크>, <허스토리> 등과 같은 2000년대 '위안부' 극영화들의 등장은 우리가 그간 생존자들의 증언과 일본군 '위안부' 운동 등을 통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이슈에 대하여 과연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이에 대한 '문화적 재현은 어떻게 가능한지' 등의 여러 문제를 제기해주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2000년대 영화적 재현의 전략들에 주목하면서, 이 글은 멜로드라마의 대중 정치학, 피해자성과 폭력의 재현, 메타기억으로서의 일본군 '위안부' 극영화 등을 논의하고자 한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멜로드라마적 상상이자 메타기억으로서, '위안부' 극영화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통과해야 할 역사적, 정치적, 미학적 관문들을 보여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최근의 극영화들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의 관계를 넘어서, 오래된 식민 구조를 해체하고자 하는 탈식민주의적 과제이자 여성운동과 인권운동이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트랜스내셔널한 프로젝트로 거듭나는 방식에 이 글은 주목한다.

20세기 회화공간에서 시지각과 신체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interaction between visual perception and the body in contemporary painting space)

  • 이금희
    • 조형예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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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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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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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20세기 미니멀리즘으로부터 시작된 후기미술은 그린버그적인 시각의 순수성과 자율성에 대한 비판으로 시각예술에서 재현과 시각 중심주의에서 비롯된 형식논리를 문제시하게 되고, 시각을 다른 감각들이나 신체, 삶 현실, 역사 등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 연구는 시각(Vision) 혹은 시지각(Visuality)을 신체와 결부시켜 시각의 신체성의 가능성을 회화 공간 속에서 드러난 표현을 통해 구체적으로 찾아보고, 시지각과 신체의 상호작용성을 검토하여 지각과 그 회화적 표현에 있어서의 신체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신체성은 남성적 시각중심주의에 대해 페미니즘에서는 여성적 신체성, 즉 물질성, 촉각성 등의 공감각적 감각의 세계를 강조하며, 후기 미술의 파편적 특성은 통일성과 게슈탈트를 지향하는 시각중심주의에 대한 해체를 지향하고 있고, 참조와 파스티쉬 역시 시각의 순수성과 통일성을 부인하는 경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과정을 중시하는 프로세스 아트가 성행한다든지, 무정형 (formless), 혹은 앱젝트 미술(Abject Art)이 등장한다든지 하는 것은 바로 시각중심주의를 허물고 거기에 신체성, 즉 행위와 물질성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지미술이나 설치미술 등은 적극적으로 관람자의 신체의 개입을 요구하게 되고, 실제적 공간과 환경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지각을 경험하게 한다. 이렇듯 현대미술은 의식적 공간보다는 실제 공간으로, 순수기호적인 공간보디는 신체적 느낌의 공간으로, 눈이 만들어낸 공간보다는 손의 행위와 물질이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통일적 공간보다는 혼연하며 애매한 공간으로, 혹은 시각적으로 거리를 두는 공간보다는 신체적으로 상호 얽히는 공간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지각과 신체에 관한 이론적인 배경을 제공해 준 사람은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이며, 구체적인 작업으로 길을 예시한 사람들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다. 메를로 퐁티는 후설과는 다르게 세계인식의 근원적 토대로써 명증한 의식보다는 혼연하며 애매한 지각과 그 배경으로서 신체를 내세웠는데, 이는 할 포스터 등이 말하듯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배경이 되면서 또한 모더니즘의 논리에 반기를 드는 후기미술에 적합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해 준다. 메를로 퐁티의 $\ulcorner$지각의 현상학$\lrcorner$은 지각의 근원성과 그 신체적 배경에 관한 중요한 이론으로 지각에 있어서 신체의 작용과 특징에 대한 논의는 시각예술에 적용될 때 지각의 신체론의 회화적 함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또한 메를로 퐁티의 존재론적 회화론은 신체적 표현성과 화가의 회화적 표현에 대한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목되었으며, 그는 세잔의 회화를 살의 존재론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회화의 신체적 존재론적 측면 역시 검토될 것이다. 스텔라의 경우, 70년대 이후의 작품들이 전기 작업과는 다른 경향을 보여주는 것, 이를테면 틀의 해체, 탈중심적 공간표현, 역동적이며 혼합적인 표현, 중첩에 의한 실재 공간의 허용 등이 지각의 신체성을 용인하는 쪽으로의 전향이라고 판단되었으며, 베이컨의 경우, 회화적 구조, 즉 형상(figure), 삼변화, 아플라, 우연에 의한 제작방식 등이 메를로 퐁티의 살(la chair)적인 상호교착(chiasme)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고 이해되었다. 본 연구는 먼저 현대 미술의 흐름에서 시지각과 신체의 상호작용, 혹은 신체성의 개입에 대한 변화를 확언하기 위하여 지각과 신체의 위치를 모더니즘, 미니멀리즘, 후기미니멀리즘, 그 이후의 미술이라는 사적인 흐름의 큰 틀 속에서 살펴보았으며, 이를 지각과 신체에 관한 담론과 연결시켰다. 이에 대한 근거로 지각에 관한 이론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았는데, 지각심리학 중에서도 지각의 신체성에 대한 과학적인 논의를 제공해주는 형태심리학적 논의들을 다루고, 이어 형태심리학을 주로 시각예술의 차원에서 예시해 보여주었던 루돌프 아른하임의 논의를 다루었다. 또한 신체와 시지각의 상호작용 분석을 위한 사례로, 신체지각적인 요소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 후기 스텔라와 베이컨의 회화를 중심으로 시각의 신체성의 문제를 예시하며 해석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는 신체성과 관련하여 봄의 문제를 규정지으려는 작업들, 신체의 축적으로서의 신체의 역할, 신체의 배경으로서의 현실적, 일상적 삶과의 결부로부터 회화적 표현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 위상변화를 확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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