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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간과 지지의 상조(相助)와 상극(相剋)에 관한 연구 (A Study on Mutual Aid and Mutual Contention of the Ten Celestial Stems and Twelve Earthly Branches)

  • 우연화;김만태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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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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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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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것처럼 만물이 가진 두 가지 측면을 음양(陰陽)이라 한다. 초기의 음양 개념은 단순히 자연현상을 나타내는 표현에 불과하였으나 점차 우주 만물의 생성변화를 설명하는 중심개념이 되었다. 명리학(命理學) 또한 음양론을 기초로 하여 하늘과 땅을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 나누어 이들의 상호관계를 살피는 것을 중요시한다. 본고는 주요 원전의 문헌연구를 통하여 천간과 지지의 상조(相助)와 상극(相剋) 관계에 관한 내용을 분석하여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하였다. 천간과 지지가 상조하는 개념에는 통근(通根)과 투간(透干)이 있다. 통근이란 천간에 있는 글자가 지지의 글자에 뿌리를 내렸다는 의미이며, 천간의 통근처(通根處)는 같은 오행의 삼합(三合)과 방합(方合)이 되는 지지이다. 통근력(通根力)을 보는 방법은 첫째, 통근한 자리로 보는데 일간(日干)은 월(月) > 일(日) >시(時> 년(年) 자리 순이며, 다른 천간은 월지>앉은 자리(천간의 바로 아래에 있는 지지 글자) > 가까운 자리(앉은 자리 좌우의 지지 글자) 순이다. 둘째, 통근한 지지 특성으로 보는데 록왕지(祿旺支)·장생지(長生支) > 여기(餘氣) >묘고(墓庫) 지지의 순이다. 투간(透干)은 통근과 그 주체가 바뀐 개념으로 지지의 기운이 천간에 발현된 것을 말하며, 지지에 감춰둔 오행이 밖으로 드러나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천간과 지지가 상극하는 개념에는 개두(蓋頭)와 절각(截脚)이 있다. 개두에 대하여 천간만을 위주로 보고 판단하는 시각과 천간이 지지를 극(剋)하는 관계로 보는 시각이 있어 다소 이견이 있지만 대다수는 천간이 지지를 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개두의 상대 개념인 절각은 지지가 천간을 극하여 천간의 기운을 약화시키는 것으로서, 이 둘은 조화롭지 못한 명조(命造)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일제강점기 덕수궁(德壽宮) 공원화에 따른 정원의 개조와 훼손 (Remodeling and Damage of the Garden According to the Park Project in Deoksugung Pala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오준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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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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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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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고는 일제강점기 덕수궁 공원화 준비 중 자행된 주요 정원의 변형 양상을 살펴보았다. 황궁으로 운용된 궁궐을 대중의 행락공간으로 개방하기 위해 1932년부터 1933년까지 공원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조경공사가 곳곳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석조전 전정(殿庭), 함녕전 일곽 후원(後園), 즉조당 일곽 후원을 위시한 주요 정원 역시 대대적으로 변형되어 당초와 상이한 모습으로 탈바꿈되었다. 1932년 시행된 제1기 공사 중 석조전 정원에는 수반(水盤)이 설치되어 최초의 수공간(水空間)이 탄생하였다. 석조전 정원에 도입된 수반은 본래 창덕궁 인정전 전정에 소재한 구조물이었다. 1909년 무렵 인정전 전정을 훼손하며 설치된 수반이 덕수궁 공원화 준비 중에 석조전 정원으로 이설되었다. 인정전 구역에서 이설된 수반은 석조전 정원의 중심구역을 수공간으로 변형시킨 요인이었으며, 이후 수반을 대신하여 설치된 분수대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함녕전 일곽의 후원 역시 제1기 공사 중에 새로운 모습으로 개조되었다. 본래 함유재와 함녕전 후원에는 화계(花階)로 불리는 계단식 화단이 존재했으며, 덕수궁 대화재 이후 시행된 중건공사에서 다시 정비되었다. 덕수궁 공원화 준비 중 정관헌 전면 공간에는 함유재와 함녕전 후원의 화계를 개조한 3단 축대가 신설되었다. 당시 조성된 축대는 덕수궁 개방 후 관람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모란원(牧丹園)'으로 활용되었고, 오늘날 '정관헌 화계'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즉조당 일곽의 후원은 1933년 제2기 공사에서 훼손된 사례이다. 함녕전 일곽의 후원처럼 당초 화계가 도입되었던 즉조당 일곽의 후원은 덕수궁 공원화 준비 중 일본식 정원으로 개조되었다. 화계가 철거된 자리는 별도의 지형 조작과 식재 공사가 병행되면서 축산(築山), 소로(小路), 경석(景石) 중심의 일본식 정원으로 치장되었다. 해방 이후 소소한 변화가 있었지만, 즉조당 일곽 후원의 현재 모습은 여전히 덕수궁 공원화 준비 중 조성된 일본식 정원에 근간을 두고 있다.

아라사국립애이미탑십박물관(俄羅斯國立艾爾米塔什博物館)·서북민족대학(西北民族大學)·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 편(編) 『아장구자예술품(俄藏龜玆藝術品)』,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 2018 (『러시아 소장 쿠차 예술품』) (The State Hermitage Museum·Northwest University for Nationalities·Shanghai Chinese Classics Publishing House Kuche Art Relics Collected in Russia Shanghai Chinese Classics Publishing House, 2018)

  • 민병훈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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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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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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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3층 맨 우측에는, 세계 유수의 실크로드 미술 컬렉션을 상설전시하는 "중앙아시아실"이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 초 실크로드를 학술조사한 러시아의 코즐로프(Pyotr Kozlov), 베레조프스키(Mikhail Berezovsky), 올덴부르그(Sergey Oldenburg) 등에 의해 수집된 고고 미술품 들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의 방대한 이들 유물은 그 대강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지역별로 분류하여 공개중이며, 이제까지 독일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한국, 일본 등에서 개최된 특별전시를 통해 그 일부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러시아 실크로드 탐험대의 성과물을 종합적으로 공개한 대형 기획전시 이 2008년에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개최됨으로써, 러시아의 실크로드 관련 유물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번에 간행된 『아장구자예술품(俄藏龜玆藝術品)』(2018)은 중국의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가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공동으로, 당관 소장 실크로드 유물 가운데 쿠차 지역의 예술품만을 선정하여 출판한 도록이다. 이 도록의 편집과 논고 및 유물 해설은 에르미타주 박물관 동양부(Oriental Department)의 시니어 큐레이터 키라 사모슉(Dr. Kira Samosyuk)이 담당하였다. 키라 박사는 하라호토(Khara-Khoto)와 서역(西域) 미술 전문가로, 그 이름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중앙아시아 불교미술 연구의 석학이다. 본서에는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의 쿠차 지역 출토 유물을 망라하여, 중앙아시아 불교미술에 있어서의 쿠차 지역의 특징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탐험대가 남긴 현장사진과 스케치 등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소개함으로써, 수집 유물 이외의 귀중한 정보도 아울러 제공하고 있다. 키라 사모슉 박사는 본서의 게재 논문 「The Art of the Kuche Buddhist Temples」에서, 러시아의 실크로드 탐험의 개요를 소개하고, 주로 불교시대 쿠차의 역사 전개 과정과 쿠차에 전래된 불교의 양상 그리고 석굴의 벽화 묘사와 그 연대 문제를 논한 후, 벽화의 주제와 소상(塑像), 석굴사원이 예배의 장으로서 어떻게 운용되고 있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키라 박사는 결론으로서, 쿠차 문화는 불교 전파의 역사 가운데 독립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유목세계의 여러 민족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간다라 미술, 헬레니즘, 고대 이란, 중국 문화와의 관련성 속에서 독자적인 성격을 구축하였음을 논하고 있다. 그리고 쿠차 지역에서 형성된 문화는 타림분지뿐만 아니라 돈황(敦煌)과 중원(中原) 지역의 석굴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으로 문장을 마감하고 있다. 키라 박사의 논고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쿠차 지역 석굴의 조성(造成) 연대(年代)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이제까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벽화의 조성 연대에 관한 견해를 소개하며, 벽화의 인물이 착용하고 있는 갑주(甲冑)의 도상(圖像) 특징 등을 소그드 미술 등 주변 지역에서 출토된 관련 자료와 비교하여, 키질의 조성 연대를 기존의 학설보다 백여 년 이상 소급해야 함을 주장하며, 5세기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쿠차 지역 석굴의 조성 시기의 문제는 석굴의 형식 문제를 비롯하여 불화(佛畫)의 주제(主題)와 양식(樣式), 안료(顔料)의 문제, 복식(服飾)이나 두발(頭髮), 제 장식(裝飾) 요소 등을 학제적(學際的) 연구 방법으로 재조명하고, 그 과정에 나타나는 주변 문화권과의 관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위에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등 과학적 방법을 보조 자료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제2차세계대전 때 베를린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벽화편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일반인에게는 물론 학계에서도 그 행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이들 벽화편이 최근에 보존처리를 마치고 일반에게 상설전시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본서 출판의 경위를 서술한 서언(序言)에는 이번 간행이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쿠차 예술품의 제1차 출판이라고 한 점으로 보아, 아마도 보존처리가 끝난 독일 컬렉션을 소개하는 도록의 편집도 예정되어 있는 듯하다. 아울러 투르판과 호탄 지역 문물을 소개하는 도록의 간행도 기대해본다. 현재 쿠차의 석굴사원에서 절취한 벽화편은 러시아와 독일, 한국 등 여러 국가에 분장되어 있다. 이번 도록 출판을 계기로 쿠차 현지의 키질 석굴을 비롯한 제 석굴사원의 잔존벽화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벽화를 함께 소개하여 이들 석굴사원 벽화의 원래 모습을 온전하게 소개하는 종합도록의 간행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동서의 문화가 혼합되어 있고 쿠차 지역 특유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석굴사원의 벽화류 등을 소개하는 도록에는, 각 유물에 대한 보다 상세한 해설이 요망된다. 그리고 미술사 이외에도 보존과학적 측면에서의 안료 분석 등 학제적 조사연구 성과도 포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작금의 중국 서부 개발 정책에 따라, 신장 지역의 오아시스에 인구가 과밀 거주함으로써 유발되는 기후변화 등으로 석굴사원의 벽화는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문화계뿐만 아니라 문화재 보존수복(保存修復)의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여러 국가들이 실크로드 석굴벽화의 보존수복을 위해 공동 노력하고 아울러 관련 인적자원 양성 등을 위해 보존과학센터를 운영하는 등 모두의 중지를 모아야할 때다. 본서는 20세기 초 서구 열강에 의해 추진된 실크로드의 고대 유적 조사 결과 가운데, 러시아 조사대가 쿠차 지역의 석굴사원을 중심으로 거둔 성과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출판물이지만, 향후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의 독일 컬렉션 벽화까지 전부 소개될 경우, 쿠차의 불교미술과 실크로드 연구에 크게 공헌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이제까지 축적되어 온 쿠차 지역에 대한 고고미술 연구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자 실크로드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서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실크로드 미술 연구의 성과물이자 새로운 편집 체계로서 학적 편의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실크로드 미술 연구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키라 사모슉 박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신뢰대상의 다차원적 접근법에 의한 신뢰와 재구매 의도와의 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Trust, Trustworthiness, and Repeat Purchase Intentions: A Multidimensional Approach)

  • 이수형;박미령
    • 마케팅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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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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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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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신뢰는 인간관계에서 동서고금을 통해 언제나 주목을 받아온 주제였으며, 신뢰의 중요성은 경영학 분야는 물론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이미 오랜 전부터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는 주로 개인 간의 신뢰인 종업원에 대한 신뢰에만 집중하는 단일 차원적 관점에서 연구되어 왔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이 지금까지 주로 단일차원으로 연구되어 온 신뢰 대상을 판매원, 제품/서비스, 그리고 기업의 3차원으로 다차원화하여 이들 신뢰 대상이 재구매 의도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였다. 서울, 대구 경북지역의 거주자로 백화점에서 구매 경험이 있는 남녀 고객을 대상으로 수집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존 연구들에서 주로 다루어진 판매원신뢰뿐만 아니라 기업신뢰와 제품/서비스신뢰 또한 고객신뢰의 중요한 대상으로 나타나, 신뢰 대상은 다차원적인 구성개념임이 밝혀졌다. 이들 3차원의 신뢰는 모두 재구매 의도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기업신뢰가 판매원신뢰와 제품/서비스신뢰보다 재구매 의도에 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매원신뢰와 제품/서비스신뢰의 영향요인으로 역량과 선의를, 기업신뢰의 영향요인으로 기업 평판과 물리적 환경을 설정하여 검증한 결과 역량과 선의는 판매원신뢰와 제품/서비스신뢰 모두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신뢰의 경우, 평판은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물리적환경은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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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장승의 현황 및 입지특성에 관한 연구 - 대전지역 돌장승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urrent Status and Location Characteristics of Stone Jangseung - Focusing on Doljangseung in Daejeon Area -)

  • 이동훈;허상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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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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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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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본 연구는 우리가 '장승'이라고 부르는 조형물들의 그 기원이나 역사, 또는 기능이 서로 달라 엄밀히 구별이 필요하다. 따라서 장승의 기원과 역사를 통해 이론적 고찰을 하였으며, 현제 전국적으로 장승이 많이 분포되어 있으나, 호남지방이 가장 많은 분포를 나타내며 전국 167개소 가운데 73개소가 충남지방에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전남은 54개소로 돌장승이 37개소 전북은 19개소에 돌장승이 남아 있으며, 특히 호남지방의 돌장승은 그 원형적인 형상이 잘 보존되어 있어 농업경제의 중심지로서 이 지방에서 장승문화가 성행하였고, 조선후기의 사회변혁 속에서 많은 돌장승이 대전지역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충남지역은 돌장승에 대한 문화가 그리 많지 않으나 돌장승이 가지는 마을의 의미나 의식은 있었으나, 여러 가지 부분에서 돌장승에 대한 연구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그 중 17~19세기에 세워진 돌장승의 형식은 중부지방에 많은 목주형(木柱型)장승과 대조적인 조형물(造形物)로 대전지역 순박한 민중의 심성을 꾸밈없이 보여주며, 더 나아가 그 장승을 통해 민족적(民族的) 미의식(美意識)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잠재적인 창조성(創造性)을 찾을 수 있었다. 따라서 대전지역의 돌장승에 대한 변화과정을 더듬어 이 구조물이 갖는 기능적인 측면을 조사하고 이에 기초하여 소위 돌장승에 다양한 현황 및 입지적 특성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또한 현재 장승으로 통칭되는 목인과 석상들은 각자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유로 세워진 것들이다. 대전을 중심으로 석물, 또는 석상으로 나오는 '돌장승'을 대표로 조사하여 도출하고, 입지적 특성과 제언을 통해 형태까지 제언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전통장승은 시대가 변화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만들어 세워지는 현대장승들은 신앙적인 요소는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전통의 상징적 표상물 또는 조형물로 사용된다. 마을신앙의 대상물로서의 전통적인 기능은 상실했지만, 마을입구나 행사장의 입구에서 이정표 또는 표지판의 기능을 하거나 특별한 장소에서는 전시의 기능을 한다. 현대장승은 한국 전통문화의 대표적 상징물로서 서민적이고 소박하며 자연미와 해학미를 표현해주는 예술적인 조형물로 새롭게 재창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를 통하여 장승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그 활용방안을 고려한 더 발전적인 모습으로 구체화 하여, 현재 존재하는 돌장승을 통해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함과 그에 따른 공간적으로 입구에 있는 것이 그 의미를 크게 볼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다양한 신격은 외래 종교의 세련성을 가지지 못한 채 민속신앙의 강한 특성을 살리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의 원시영역 유목초지, 그 부르칸(불함)이즘과 한국축산의 비전 (Burqanism from the Origin of the Pastoral Nomadic Koryo Region and the Vision of Korean Livestock Farming)

  • 주채혁
    • 한국초지조사료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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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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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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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Khori(高麗) refers to the Chaabog(reindeer) that live on lichens(蘚) on Mt. Soyon(鮮) in which pastures are the cold and dry plateau of North Eurasia. Thus, the origin region of the Khori or Koguryo that are the ancestors of the reindeer-herding pastoral nomads(馴鹿 遊牧民) can be said to be the Steppe-Taiga-Tundra pastoral areas of North Eurasia and North America. When the pastoral nomads moved on to the great mountain(大山) zone of the Jangbaek(長白) to the Baekdu(白頭) Mountains, they could have been in contact with pastoral farmers or agricultural farmers living there and they became the farmers remaining on agricultural farms. They were the Koryo people, the ancestors of Korea. Staying in one place, they gradually forgot the origin of their reindeer-herding pastoral nomadic history in the Northwest area of Mt. Soyon, the small mountain(小山) zone of the Steppe-Taiga-Tundra pastoral areas. In other words, they lost their identity as reindeer-herding pastoral nomads when they entered the agricultural area after leaving the pastoral area. However, since their basic genes had already formed when they lived on the cold and dry plateau of North Eurasia, it is possible to study their pastoral nomadic history focusing on 'the minority living in the broad area(廣域少數)', by utilizing highly advanced biotechnological science and focusing on genes and information technology innovation, and removing various past hindrances in research. Therefore, it is not so difficult to restore the reindeerherding pastoral nomadic history of the Koguryo(高句麗) people and secure their pastoral nomadic identity, of which the first steps have already been taken into their historical stages. The Eurasian continent and the Korean peninsula, especially the cold and dry plateau of North Eurasia and the Korean peninsula have been closely related to each other ecologically and historically. They can never be a separate space at all. The Eurasian continent lies horizontally east to west and thus, the continent forms an isothermal zone. Also, since the time of producing their own foods, it was relatively easy for people with their technology to move to other places owing to the pastoral nomadic characteristic of mobility. Unlike the Chungyen(中原) region, western Asia and the regions covering the Siberia-Manchu-Korean peninsula where food production revolution was first made were connected to the Mongolian lichens route(蘚苔之路: Ni, ukinii jam) and steppe roads. Although the ecological conditions of nature have changed a bit throughout a long history, it was natural for the many tribes in North Asia living on the largest Steppe-Taiga-Tundra area in the world to have believed 'the legends related to animals in relation to their founders and ancestors(獸祖傳說)'. Assuming that Siberian tigers and the tigers living on Mt. Baekdu were connected ecologically and genetically because of the ecological characteristics of the animals, and their migration from plateau to plateau, we would suspect that the Chosun(朝鮮) tribe living on Mt. Baekdu were ethnically and culturally more closely connected to the farther removed Ural-Altai tribes that lived on the cold and dry plateau region than to the Han(i14;) tribe who lived in Chungyen(中原) that was close to Mt. Baekdu. More evidence is the structure of the Korean language which has the form of 'Subject + Object + Verb', which is assumed to have originated from the speedy lifestyle of the reindeer-herding pastoral nomads. The structure is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the Han(漢) language, which is based on agricultural life. Also, it is natural for reindeer riding reindeerherding pastoral nomads or horse-riding sheep-herding pastoral nomads(騎馬, 羊遊牧民) to have held military and political power over the region and eventually to have established an ancient pastoral nomadic empire in the process of their conquest of agricultural regions. The stages for founding global empires in the history of mankind maybe largely divided into two, in terms of ecological conditions and occupations. They are the steppes and the oceans. Of course, the steppe-based empires were established based on the skills to deal with horses and the ability to shoot arrows while riding horses, along with the use of iron ware in the 8th century BC. The steppe-based empires became the foundation for an oceanic empire, which could have been established by the use of warships and warship guns since the 15th Century. Based on those facts, we know that Chosun, Puyo(夫餘), and Koguryo are the products of a developmental process of pastoral nomadic empires on the steppes. Maybe we can easily find the pastoral nomadic identity of the Koguryo more than we expected when we trace the origins and history of the Korean tribe living in the pastures located in the northwest area of Mt. Jangbaek by focusing on pastoral nomadic mobility and organization just as we have investigated the historic origins of Anglo-Saxons in America by focusing on the times before the 15th Century. In the process, we should keep in mind that English culture originated from the Industrial Revolution and was directly delivered to the American continent, although America was far from England and was not an intermediate point on long sojourns either. Further, American culture came back to England in a more advanced form later. The most important thing currently to be resolved is to cause Koreans to look back on their own history in a freer way of thinking and with diverse, profound, and sharp insight, taking away the old and existing conventional recognition that is entangled with complicated interests with Korean people and other countries. The meanings of Chosun, Khori, and Solongos have been interpreted arbitrarily without any historic evidence by the scholars who followed conventional tradition of fixed-minded aristocrats in an agricultural society. If the Siberian cultural properties of the stone age, the earthenware age, the bronze age, and the iron age are analyzed in such a way, archaeological discovery will never be able to contribute to the restoration of the Koguryo's pastoral nomadic identity. One should transcend the errors that tend to interpret the cultural properties discovered in the pastoral nomadic regions as not being differentiated from those of agricultural regions and just interpret them altogether from the agricultural point of view. A more careful intention is required in the interpretation of cultural properties of ancient Korean empires that seem to have been formed due to mutual interactions of pastoral nomadic and agricultural cultures. Also, it is required that the conventional recognition chain of 'reverse-genes' be severed, which has placed more weight on agricultural properties than pastoral nomadic ones, since their settlement on agricultural farms was made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ir ancient pastoral nomadic empires. There is no reason at all to place priority on stoneware, earthenware, bronze ware, and iron ware than on wooden ware(木器) and other ware which were made of animal skins(皮器), bones and horns(骨角器), in analyzing the history in the regions of reindeer or sheep pastures. Reading ancient Korean history from the perspective of pastoral nomadic history, one feels strongly the instinctive emotions to return to the natural 'mother place'. The reindeer-herding pastoral nomadic identity of the Koguryo people that has been accumulated in volumes in their genes and hidden deep inside and have interacted organically could be reborn with Burqanism(Burqan refers to 不咸 in Chinese), which was their religion by birth and symbolized as the red willow(紅柳=不咸). The mother place of the Koguryo's people is the endless vast green pastures of North Eurasia and North America, where we anticipated the development of Korean livestock farming following the inherent properties in the genes of the reindeer-herding pastoral nomads with Korean ancestors. We anticipate that the place would be the core resource that could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life of living creatures following the inherent properties of their genes and biotechnological factors. In other words, biotechnology used for a search for clues on the well-being of humans could be the fruit brought by Burqanism of the Koguryo people and the fruit of the globalization of Korean livestock farming. It is the Chosun farmer in China come from the vast nomadic reindeer pastures of North Eurasia that resolved the food problem of a billion Chinese people with lowland paddy rice seeds (水稻) by transforming Heilongjiang Province(黑龍江省) into an oceanic lowland paddy rice field(水田). Even Mao Tse-tung(毛擇東) could not resolve the food problem by his revolution campaigns for tens of years. Today is the very time that requires the development of special livestock farming following the inherent properties of the ancient Korean reindeer-herding pastoral nomads that respected the dignity of life on the cold and dry plateau of North Eurasia and the America continent. I suggest that research should be started from the pastures of the Dariganga Steppe in East Mongolia that was the homeland of Hanwoo(韓牛) and the central horse-herding steppe place(牧馬場) of Chingis Khan's Mongolia. The Dariganga Steppe is awash with an affluent natural environment for pastoral nomadic living however, the quality of life of the pastoral nomads there is still low. I suggest we Koreans, the descendents of the Koguryo, should take our first steps for our livestock farming business project and develop the Northern nomadic pastures, here at the pastures of the Dariganga Steppe, which is the Mongolian core place of state-of-the-art technology for military weap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