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ataloguing principle

검색결과 4건 처리시간 0.019초

Lubetzky의 목록법 사상 연구 (A Study on Cataloguing Thought of Lubetzky)

  • 이강산다정
    • 정보관리학회지
    • /
    • 제32권3호
    • /
    • pp.155-182
    • /
    • 2015
  • 본 논문은 현대목록법의 기초를 세운 Seymour Lubetzky의 생애 및 저술분석을 통하여 도서관 사상 및 목록법 이론을 도출하였다. 문헌조사와 역사연구방법을 적용하여 시대적인 사회적, 사상적, 문화적 배경을 조사하였다. 국내 외 단편적인 연구결과를 토대로 종합적인 연구를 지향하였으며, Lubetzky의 목록법 사상의 영향관계를 분석하였다. 그리하여 Lubetzky의 도서관 및 목록법 사상을 도출하였다. Lubetzky의 목록법 이론은 목록원칙의 설계 및 서지적 관계 정립이다. 먼저 기술목록법의 원칙은 필요성, 단순성, 통일성, 일관성, 목적성, 상호연관성의 특성을 포함해야 하며, 목록의 목적을 명시해야 한다. 서지적 관계는 지적 생산물인 저작과 구체적인 실체인 저서로 구분하는 것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또한 기본저록을 저자명 기준으로 기입하여 저작의 집중을 도모하였고, 저자명에 단체명과 무저자명을 포함시켜 저자의 개념을 확장하였다.

독일목록규칙에서의 단체기입의 전개과정 (Development of the Corporate Entry In German Cataloging Rules)

  • 김태수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 /
    • 제19권
    • /
    • pp.113-149
    • /
    • 1990
  • The RAK has in general adopted the provisions of the paris principles to a far greater extent than many other cataloguing codes. And the analyses confirm that the determination of the main entries in German cataloging rules is a rather complex process and one which can result in inconsistent, arbitrary decisions. And the selection of the main entry requires a considerable amount of decision making which is time-consuming and costly. From the point of view of computers, all entries are equal as points of retrieval. In light of the above considerations the most important recommendation to be made is that the main entry principle be abandoned from cataloging theory and practice and be replaced by the title entry. It would eliminate the need for personal judgments required by the present rule. In so doing, it would bring uniformity and Standardization to cataloging practice. Use of the title entry would reduce the time and effort spent on the selection of the main entry which serves no important purpose in the catalog. Therefore title entry is more developed finding device than author entry in direct approach for document retrieval.

  • PDF

영화 기록의 기술에 관한 연구 (A Study on Description about Archival Materials in Film Archives)

  • 김진성
    • 기록학연구
    • /
    • 제30호
    • /
    • pp.89-123
    • /
    • 2011
  • 영화 기록은 인간의 문화 활동에서 만들어지고 그에 관련된 정보를 장기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류의 기억이며 기록이다. 다만, 영화 기록의 주된 생성목적이 공공 업무활동의 사실적인 내용을 증거하는데 있다기 보다는 민간의 문화적인 창작 내용을 재현하는데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공공분야의 시청각기록과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영화 기록 특유의 물리적 지적 특성을 반영하여 기술 원칙과 규정을 제정해야 한다. 기술 업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목적과 규칙에 기반한 문서화된 규칙이 필요하므로 더블린 코어, ISAD(G), FIAF Rules라는 관련 국제 기술 규칙들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영화 아카이브의 기록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영역과 요소의 구성에 중대한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본 연구의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화 기록을 작품과 개별 자료라는 관념적인 존재와 실제적인 존재로 구분 하는 것이다. 둘째, 영화 기록의 내용, 맥락, 구조를 이해하고 반영하는 것이다. 셋째, 영화 기록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영역과 요소를 설정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제안된 영역 및 요소는 2개 부분에서 각각 6개 및 8개 영역, 22개 및 25개 요소이다. 이 영역 및 요소(안)은 특정 영화 아카이브의 현황이나 정책을 참고하여 작성된 것이 아닌 일반형이기에 해당 영화 아카이브별로 특정한 요소나 하위 요소를 설정할 수 있다.

혁명시기 중국공산당의 문서당안관리 (Chinese Communist Party's Management of Records & Archives during the Chinese Revolution Period)

  • 이원규
    • 기록학연구
    • /
    • 제22호
    • /
    • pp.157-199
    • /
    • 2009
  • 중국공산당의 창당과 함께 문서와 당안 관리 조직이 출현한 것은 아니었다. 1926년 중앙 비서처가 설립된 이후 문서과와 그 소속 문건열람처, 문건보관처 등이 설립됨으로써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1930년대 초 비서조직의 업무개선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는데, 비판의 핵심은 정치적 역할을 자각하지 못한 채 단순히 "기능적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었고, 이의 해결 방안은 곧 "비서처 업무의 정치화"였다. 나아가 1940년대에는 "정풍운동"의 영향으로 문서만이 아니라 각종 주요 정보자료를 수집하여 정리, 제공하는 재료과의 임무가 강조되었다. 한편, 문서의 작성에 있어서 인물이나 기관의 명칭을 다르게 표기한다든가 약물을 사용하여 문서를 작성하는 등 보안의 유지가 줄곧 강조되었으며, 또한 업무활동과 지역의 상황에 대한 정기보고를 통해 중앙과 지방간의 소통이 강조되었다. 비서장은 중요 공문의 초안을 작성하는 것은 물론, 모든 문건의 열람과 심사를 담당하여 문서처리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문서의 처리가 끝나면 당안이라고 불리우며 보관되었는데, 중앙 비서처 문서과의 "문건보관처"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중앙문고"라고 불리기도 한 문건보관처는 1930년대 초부터 더 이상 당안을 이관받을 수 없었지만, 1940년대에는 재료과가 문서와 간행재료를 보존하고 제공하는 역할을 강화해갔다. 특히 조사연구를 위한 재료의 수집이 실행되었고, 일본의 통치 아래에 있던 지역을 회복하면서 대량의 당안과 문헌 자료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1931년 당안의 분류방법과 목록작성방법이 규정된 이후 특히 1940년대에 본격적으로 제도화되었는데, 기본적으로는 주제분류법이 유지되었고 기초적인 목록표기법이 채택되었다. "중요성"과 "기밀성"을 관리의 기준으로 삼는 원칙은 비교적 초기부터 나타났지만, 문서의 보존과 폐기를 구분하는 평가의 개념이나 절차는 명확치 않았다. 비밀의 보안관리와 접근제한의 제도를 실행하는 한편, "보존과 이용의 통일"이라는 구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안재료의 이용제공에 대한 문제의식은 매우 강렬하였다. 혁명운동과 전쟁의 와중에서도 중국공산당은 문서당안의 관리와 보존을 강화해가는 노력을 지속했다. 그 성과가 항상 바람직한 것도 아니었고, 그 경험을 안정적으로 발전시켜갈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필경 중국공산당이 처해 있던 역사적 여건에서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성은 단지 기능적인 수준에서 문서당안관리의 효율화를 추진했던 것이 아니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공산당의 혁명운동에 미치는 정치적 의의에 대한 자각을 강화해가며, 혁명 정책 연구의 실증적 근거이자 또한 중국공산당 역사의 증거로서 당안재료가 갖는 가치에 주목하였던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