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he Office of Crown Proper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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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내장원의 위상 변화와 공문서 접수 (Receipt of Official Documents after the Status Change of the Office of Crown Properties in The Great Han Empire)

  • 박성준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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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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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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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대한제국기 내장원이 각종 국가 재원을 관할한 거대 재정기구로 확대되면서 공문서 양식도 변화되었다. 초기와 달리 1900년 2월부터 판심에는 궁내부가 삭제된 '내장원(內藏院)'이 찍힌 공문서 용지를 사용했다. 내장원경의 도장에 새겨진 명칭도 '내장원경지장(內藏院卿之章)'으로 변경되었다. 내장원이 거대 재정기구로 확대되면서 위상도 독자성을 갖는 기구로 높아졌던 것이며, 그 양상이 공문서 양식에도 반영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문서 유통 체계에서도 나타났다. 1897년까지 내장원이 각 군으로부터 받은 보고의 수신자는 대부분 궁내부대신이었으나 1899년부터는 수신자가 내장원인 보고서가 대부분이었다. 1899년 8월 이전에는 내장원이 각 군에 훈령을 내릴 수 없었으나, 1899년 8월 이후부터 내장원은 각 군에 훈령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내장원은 중앙기관과 대등한 위치에서 문서를 거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1900년 9월부터 내장원은 중앙기관과 대등한 위치에서, 지방 기관과는 상급 기관으로서 문서를 거래하게 되었고, 내장원에는 기록과가 설치되었다. 내장원은 궁내부 소속의 하급 기관에서 벗어나 독립된 기관으로서 각 기관과 문서를 거래하게 되었다. 1900년 9월 기록과가 설치된 이후부터 내장원은 독자적으로 문서 접수책을 작성했다. 1901년도 접수책과 1905 1906년도 접수책을 비교해 보면 1905년도 접수책부터 접수 호수가 등장하고 일부에서는 해당 문서의 담당 기관이 기록되었다. 1902년부터 1904년까지의 접수책이 없어 접수책에 언제부터 접수 호수가 기록되었는지 접수책을 통해서는 알 수 없지만, 1905년도 접수책에 기록된 접수 호수와 일자가 접수스탬프에 기입된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접수 호수가 기록된 시점은 접수스탬프를 찍기 시작한 1902년 7월 전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접수스탬프와 달리 접수책에는 업무 담당 기관인 과(課)가 먼저 기록되었다. 이는 내장원이 접수책을 과를 구분해서 작성했던 방식에서 과를 통합하여 작성하는 방식으로 전환했기 때문이었다. 내장원은 과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접수책에 접수한 순서대로 문서를 기록하면서 각 문서에 연속된 접수 호수를 부여하고, 해당 문서의 업무 담당 기관을 구분하기 위해 접수책 하단에 과를 기록했던 것이다. 1900년 9월 기록과가 설치된 이후 독자적으로 문서를 수발하게 된 내장원은 접수한 문서에 도장 '내장원영수증(內藏院領收證)'을 찍고, 문서접수 장부를 작성했다. 내장원은 과를 구분해서 접수책을 작성했던 초기의 방식에서 과를 통합해 하나의 접수책에 작성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접수책에는 접수 호수와 업무 담당 기관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접수한 문서에는 접수일자 호수로 구성된 접수스탬프를 찍어 점차 접수 체계가 정비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대한제국기 내장원의 공문서 편철과 분류 (The Classification and filing of the Official Documents of the Office of Crown Properties in the Great Han Empire)

  • 박성준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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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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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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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내장원은 1895년 4월 궁내부 소속 기관으로 왕실의 보물 및 세전장원(世傳莊園)과 기타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성립되고 황제권을 강화하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내장원은 역둔토(驛屯土) 해세(海稅) 인삼(人蔘) 광산(?山) 등 각종 재원을 관할하며 거대 재정기구로 확대되었다. 내장원의 관할 재원이 증대됨에 따라 하급기관도 증가해 장원과(莊園課), 종목과(種牧課), 삼정과(蔘政課) 등이 설치되었다. 내장원은 각종 재원을 관리하면서 각부부원청(各府部院廳) 지방기관 민들과 거래한 다양한 문서를 1단계로 과(課)를 단위로 분류하였다. 내장원의 대표적 문서철인 "훈령조회존안(訓令照會存案)", 13도 각군 보고 소장, "각부군래첩(各府郡來牒)"은 장원과, "내장원경리원각도각군보고존안(內藏院經理院各道各郡報告存案)", "훈령존안(訓令存案)"은 종목과, "통첩편안(通牒編案)", "궁내부훈령편안(宮內府訓令編案)"은 지응과에서 처리한 문서철이었다. 이들 문서철은 같은 시기에 내장원에서 처리한 문서들이지만, 각 문서철의 문서의 내용은 중복되지 않았다. 이는 내장원에서 과를 단위로 문서를 분류하여 편철하였기 때문이다. 내장원은 과 단위로 문서를 분류한 다음 문서의 수발신 여부를 문서의 편철 기준으로 삼았다. 내장원은 한 종류의 문서만을 편철한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종류의 문서를 함께 편철하기도 했다. 문서 종류는 문서 명칭을 통해 문서 성격과 거래 기관간의 위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서의 등급이 다른 조회와 훈령, 조회와 보고 같은 문서를 함께 편철했다는 것은 거래 기관의 위계가 문서 편철의 1차 기준은 아니었다는 것이고, 이는 문서 종류별로 문서를 편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장원은 서로 연관된 문서를 조응해서 편철하지도 않았다. 조회는 대등한 관리에게 보내는 문서이며, 이에 대해 답신하는 문서가 조복이다. 조회 조복은 각각 동일한 사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거래한 서로 조응하는 문서이다. 그러나 장원과와 종목과 모두 조회 조복을 따로 분리해서 각각 편철하였다. 문서 종류가 다른 훈령과 조회를 함께 편철하고, 서로 조응하는 조회 조복을 따로 분리하여 편철한 것은 해당 문서가 수신 문서인지, 발신 문서인지 문서의 수발신 여부를 편철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수발신 문서를 구분한 다음, 한 책 단위로 문서를 편철할 때는 지역이나 기관의 구분 없이 문서시기를 기준으로 삼았다. 거래 기관이나 지역의 구분 없이 편철된 다른 문서철과는 달리 1900년부터 13도 각군 보고 소장은 도를 단위로 구분한 다음 각 책을 문서 시기별로 구분하여 편철하였다. 13도 각군 보고 소장에 지역별 구분이 적용된 것은 내장원의 관할 재원이 증대되면서 지방과 맺는 관계 또한 확대되었기 때문에, 이들과 거래한 문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를 단위로 지역을 구분한 다음 문서 시기별로 문서를 나누어 편철하였던 것이다. 내장원은 1차적으로 과를 단위로 문서를 분류한 다음, 수발신을 기준으로 문서를 구분하고, 각 문서철은 문서시기를 단위로 편철하는 공문서 편철과 분류체계를 마련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