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he Era of Unified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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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왕실호위제도의 사적 고찰 (Historical Review on the Security Service for the Royal Household in the "Goryeo" Era)

  • 이성진;김의영;이종환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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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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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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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고려시대의 왕실 호위라 함은 오늘날로 보면 국가원수에 대한 경호에 해당한다. 고려시대의 독특한 정치제도가 완성되기까지는 신라시대나 태봉국의 제도를 답습하여 왕의 신변을 중심으로 경호가 실행되었다. 고려의 중앙군은 2군과 6위라는 8개의 부대로 편성되었다. 2군은 6위보다 위였으며 이는 응양군(鷹揚軍)과 용호군(龍虎軍)으로서 이를 근장(近仗)이라고 불렀다. 이를 오늘날의 공경호와 관련을 지어보면 근접경호에 해당된다. 고려 귀족 사회의 안정기에 귀족문화의 전성기를 누렸으나 그 뒤로 귀족분열과 상극대립으로 중앙통제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무신란이 일어나고 무신들이 집권함으로서 왕의 신변은 안정되지 못하였다. 최씨 무인집권시대에 이르러 무인집권의 안전을 위하여 도방을 설치했고 최우 시대에는 그의 문객들을 모아 사병들뿐만 아니라 정방, 서방, 등의 문신을 거느려 인사행정을 담당케 했다. 몽고에 항쟁하던 시대에는 무신통치의 군사적 기반이었던 삼별초를 중심으로 항쟁했다. 최씨 정권시대의 그들 나름의 국가관과 국가 호위의 정신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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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소장 청동유물의 납동위원소비 데이터베이스 구축(II) (Lead Isotope Ratio Data Base for Bronze Objects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I))

  • 강형태;안주영;전효수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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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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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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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팀에서는 금속 유물의 보존처리 과정에서 얻은 청동 녹의 과학적 연구로서 납동위원소비 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로부터 청동기 원료의 산지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청동 녹의 납동위원소비 분석을 위한 분석 장비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열이온화질량분석(Thermal ionization mass spectromer ; TIMS)를 활용하였다. 본 연구의 일환으로 2차 년도인 2008년에는 백제시대의 금동환형좌금 2점, 낙랑시대의 동전두 2점, 통일신라시대의 청동제화형접시 10점, 원풍통보(元豊通寶)(1078년-북송)의 청동기 4점(1점은 시대미상)등 총 18점의 납동위원소비를 분석하였다.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의 손상특성 및 안정성 평가 (Evaluation of Stability and Deterioration Characteristics for the Rock-carved Standing Buddha Triad in Gyeongju Seoak-dong, Korea)

  • 이찬희;최명주
    • 자원환경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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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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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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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은 경주 선도산 정상부의 동남향에 조성된 통일신라시대의 거석불로 입지적 중요성과 함께 힘찬 아미타불상과 부드러운 협시보살의 조각수법이 매우 특징적이다. 특히 안산암질 암반에 불신을 새기고 흑운모화강암을 대좌로 장식한 아미타불상과 좌우 병렬식으로 배치된 알칼리 화강암으로 조성된 협시불은 석재의 색상 및 질감을 통해 석불의 위엄을 잘 표현하였다. 아미타불상은 암반에 형성된 절리로 인한 불연속면의 발달과 사면의 불안정성, 최상부에서 발생하는 식물의 근압에 의한 암반의 이완현상이 결부되어 손상이 가속되고 있다. 또한 절리와 균열 및 박리 등 불연속면의 증가로 인해 물성이 크게 저하되었으며 조류 및 지의류의 피복도가 높은 상태이다. 따라서 마애여래삼존입상에 발생한 손상정도는 아미타불상이 마애불로 조성되면서 나타난 물리적 풍화특성과 다양한 생물침해에 의해 손상이 가속화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막새의 동범와(同范瓦)에 대한 검토 - 월성해자 출토 단판연화문 수막새를 중심으로 - (An Examination on Dongbeomwas if Convex Roofing Tiles)

  • 이선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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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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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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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경주 월성은 파사니 사금(婆裟尼師今)때 축조된 신라의 왕성으로서 정치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유적이다. 그러한 월성을 에워싸고 있는 월성해자는 전시(戰時)에는 적으로부터 성을 보호하는 방어적 역할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조경의 역할을 담당한 시설물이다. 월성해자 유적의 발굴은 1985년부터 시작되어 현재 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다량 다종의 수막새들은 신라 초기부터 통일기를 거쳐 그 이후 시기까지 신라시대 막새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그 가치는 매우 높다 할 수 있다. 기와는 왕궁(王宮), 사찰(寺刹), 산성(山城) 등 국가적인 사업으로 이루어진 건물에서부터 일반적인 기타 건물지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었으며, 수량에서도 다른 유물들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는 가장 취약한 분야로 남아있으며,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과제들이 무궁하게 남아있는 분야라 할 수 있다. 최근 수많은 발굴을 통한 기와 수량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일반적인 문양의 계보와 제작과정 등에 한정되어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여기서는 월성해자 출토 단판연화문 수막새를 대상으로 동범와에 관한 판별을 하고자한다. 그 동안 유사와(類似瓦), 동형와(同形瓦)등으로만 판단되었던 막새들의 세부적 특징을 비교해 "동범와"임을 정확히 확인하고자 한다. 동범와에 관한 정확한 판단방법, 동범와로 묶인 형식의 시간적 순서 배열과 동범와가 출토되는 위치 등을 파악함으로써 동범와 판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 결과 다종의 수막새에서 하나의 범(范)으로 찍어낸 막새, 즉 동범와를 판별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동범와들은 출토위치에서 다시 하나로 묶이는 공통점이 확인된다. 동범와의 출토위치를 통해 월성해자의 시기적인 변천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와 주변유적인 안압지와의 연관성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와범이 확인되지 않아 역으로 막새들의 세부적 특징을 비교해 동범와를 파악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 다. 하지만 여기서는 동범와라는 용어사용에 있어 동범요소의 정확한 확인 후에 사용되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월성해자 동범와를 통해 월성해자의 지역별 시기를 알아보았다.

조선시대 칠도막 분석연구 (Studies on Analysis of Joseon Lacquer Layer)

  • 최석찬;김선덕;이용희;고수린;함승욱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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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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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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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시대 옻칠도막에 사용된 재료의 특성과 구조를 알아보기 위하여 모두 6종류 7가지의 시료에 대하여 광학현미경, 편광현미경 관찰 및 SEM-EDS분석, TOF-SIMS분석을 통하여 칠층의 구조와 바탕칠층의 구성성분에 대하여 알아보았으며, FT-IT분석을 통하여 표면의 칠층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투명칠을 두 차례 한 GD-3을 제외한 나머지 시료는 한 차례의 투명칠을 하였다. FT-IR분석을 통하여 표면의 옻칠에 대한 분석을 실시하여 선행연구의 결과와 비교하여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시험적으로 TOF-SIMS분석을 실시하여 미량의 시료로 바탕칠의 광물들의 성분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조선시대의 옻칠도막 분석결과 많은 시료의 분석은 아니었지만, 조선시대 이전 시기의 유물에 비하여 바탕칠 층이 두껍고 투명칠 층이 비교적 단순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칠기 사용의 저변확대에 따른 칠 공정의 변화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산(瑞山) 보원사(普願寺)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 고찰(考察) (A Study on the Iron Seated Buddha at Bowonsa Temple in Seosan)

  • 강건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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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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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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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보원사(普願寺)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북쪽에 위치한 사찰로, 경내에는 나말여초에 조성된 문화재가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충청남도의 고적 조사를 계획했고, 1916년(대정 5) 보원사지에 가서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현지 조사 과정에서 소옥(小屋)에 안치된 철조여래좌상(무릎너비 7척, 두께 5척 5촌)을 확인했고, 이듬해에 경복궁으로 해당 철조여래좌상을 이운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보원사지에 2m가 넘는 대형 철조여래좌상 1구만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철조여래좌상은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900~975)이 955년에 조성하였을 것이다. 탄문은 광주 고봉의 유력가문 출신으로 태조의 보살핌 속에 화엄종의 중심인물로 성장했고, 연이어 혜종(惠宗)(재위기간 943~945)과 정종(定宗)(재위 945~949)대에도 왕실의 불교행사를 주관했다. 이후 탄문은 대목왕후(大穆王后) 황보씨(皇甫氏)(?~?)의 후원을 받은 균여(均如)(923~973)의 등장으로 개경에서 떨어진 보원사로 이주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충주 유씨의 후원을 받아 지지 세력의 결속을 다지고 한편으로는 광종(光宗)(재위 949~975)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대형의 철조여래좌상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탄문의 비문에 나오는 '주금상지삼존(鑄金像之三尊)'도 보원사에서 철조여래좌상이 주조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이다. 철조여래좌상의 원(原) 봉안처는 보원사지 내 '건물지3'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 결과 현재의 금당지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건물지로 드러났기 때문에, 철조여래좌상은 조성 당시 다른 장소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건물지3은 다른 건물지에 비해 고려시대 기와와 자기의 출토 빈도가 높고, 무엇보다도 정방형에 가까운 불단 유구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정이 가능하다. 철조여래좌상은 조성 당시 고려시대 전각인 건물지3에 봉안되었다가 조선시대 중창불사를 통해 지금의 금당지로 이운되었을 것이다.

청국장의 역사 (The History of Chongkukjang)

  • 정경란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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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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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7-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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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혹자는 청국장(淸麴醬)은 전시(戰時)에 단기숙성으로 단시일 내에 제조하여 먹을 수 있게 만든 장이라하여 전국장(戰國醬), 또는 청나라에서 배워온 것이라 하여 청국장(淸國醬)이라고도 하며 전시장(煎?醬)이라고도 하였다 하고, 청국장이 우리나라 문헌에 처음 보인 것은 1760년(영조 36) 유중임(柳重臨)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부터라고들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청국장과 메주를 뜻하는 '시(?)'가 삼국사기에 나오므로, 청국장은 삼국시대부터라고도 한다. 이처럼 청국장의 역사는 청나라(1600년대)부터인지 고구려, 신라시대부터인지 분명하게 전해지지 않아, 혼란스럽고 그 틈을 타서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돌고 있다. 이 글에서는 고문헌 기록을 통해 청국장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재조명하였다. 문헌기록을 통해 본 결과 고구려, 신라시대에 이미 청국장(?)이 있었다. 청국장은 젼국, 쳔국, ?국으로 불리었으며, 한자로 '시(?)'로 썼고, 어느 시기부터 청국장도 된장, 간장, 고추장과 같이 장(醬)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전시장(煎?醬), 전국장(戰國醬),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쓰다가 지금은 청국장(淸麴醬)으로 통일되었다. 시(?)의 의미도 1500년대까지 청국장을 의미했고, 1600년대 이후에는 청국장이 한자로 장(醬)이 붙은 전시장(煎?醬), 전국장(戰國醬),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굳어지니까 시(?)의 의미도 메주, 된장을 국한지어 의미하게 되어 가는 경향이 있었다. 청국장은 전쟁과 관련이 있거나 청나라와 관련이 있는 음식이 전혀 아니며, 청국장은 문헌 기록상으로 보아 22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으나, 기록 이전에 사물이 먼저 있었을 것이므로, 이보다 훨씬 이전인 수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선암사에서 발견되는 일본정원요소와 작정기법연구 (Japanese Landscape Elements Found and Building Methodology of Sunam Temple)

  • 홍광표;김인혜;이경복;이혁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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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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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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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전라남도의 선암사는 통일신라말에 창건된 이래 오늘날까지 호남의 대표적인 사찰로서 그 법통을 이어가고 있으나, 거듭되는 변화와 발전과정 속에서 전통사찰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경관적 정체성이 상당부분 훼손되었으며, 특히 일본양식이 도입되어 있어 경관의 원형상에 대한 회복이 시급한 상황이다. 실제로 선암사의 경우에는 한국전통사찰에서 나타나는 전통성있는 식재경관과는 상이하며, 정원요소들도 일본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선암사의 원형경관이 변형된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변화와 1976년도에 있었던 조경사업으로 인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경관적 변화를 파악하고, 일본식 정원요소와 작정기법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파악함으로써, 선암사의 경관적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연구의 주 목적이다. 연구의 방법으로는 문헌조사, 현장조사, 스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선암사는 일본의 조경양식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이 파악되었으며, 이러한 요소를 감추려다 오히려 더 일본식 경관이 연출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한·몽 말 문화 연구 시론 -한국과 몽골의 말과 관련된 세시풍속을 중심으로- (A Research on Comparison of Cultural Idea of Horse Between Korea and Mongolia - In view of customs related to horse in Korea and Mongolia)

  • 윤은숙
    • 한국초지조사료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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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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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7-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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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유목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몽골에서 말은 중요한 이동수단으로서 목축민들의 특별한 애정과 존중을 받아온 몽골을 대표하는 가축이다. 몽골에서 말은 가축을 흩어짐 없이 사육하고 새로운 초지를 찾아 유목하거나 장거리 이동시 주요한 교통수단으로 사용 되였다. 따라서 말은 몽골의 목축생활 양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도 말은 교통수단과 군사용 등으로 사용된 중요한 가축이었다. 한국과 몽골의 문화에 등장하는 말은 신승물, 신성성, 의리를 지키고, 충성을 다하는 존재, 재앙을 예시하는 존재, 민중의 이상과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존재, 정력과 지혜로움, 도약 등의 상징성을 지닌 동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말은 신과 교감하는 천마이며, 신에게 바쳐지는 성물인 헌마로서 존중되었고, 그리고 신성한 존재인 마신으로까지 추앙받는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몽골에서 말과 관련된 세시풍속은 말이 출산하는 여름의 첫 달인 인일 '암말의 씨를 내는 의례'에서 시작해서 가을 술일에 '암말을 놓는 의례'로 끝이 난다. 암말의 씨를 내는 의례에서 암말을 놓는 의례에 이르기까지 말과 관련된 몽골의 세시풍속은 가축의 젖과 연관되어 있다. 암말의 씨를 내는 의례는 말이 새끼를 얻는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이때는 각종 가축의 젖과 유제품이 흔해지는 풍요로운 시기이다. 몽골인들은 가축의 출산을 알리고 축원할 때 주로 가축의 젖을 바치는 풍속을 행한다. 즉, 말이 새끼를 낳는 초여름 새끼가 건강하게 자라서 수가 증가하기를 기원하고, 이와 더불어 유제품이 더 풍부해지기를 기원하면서 길상을 의미하는 흰색 젖의 특상품을 하늘, 대지 그리고 물의 신에게 뿌리는 차찰의식을 거행한다. 차찰의식을 통해 몽골인들은 초원의 풀이 잘 자라고 가축의 수가 증가하여 삶이 풍요로워 지기를 기원하였다. 가을의 '암말을 놓는 의례' 역시 말 젖짜기를 그치면서 다음 해 새끼말들이 많이 태어나서 더 많은 젖과 아이락을 얻기를 기원하는 축제임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국가가 주도하는 마제가 개최되었는데, 마조제는 중춘, 선목제는, 중하, 마사제는 중추 등 각각 길일을 택하여 말에게 제사하였다. 이들 제사는 말의 무병과 성장 번식을 기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목축의례인 백중제 역시 그 해의 목축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제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정월의 첫 말일인 상오일에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전해진다. 첫 말날 장을 담그면 장맛이 좋다고 하는 것은 말이 콩을 좋아하므로 콩을 원료로 하는 장을 담그는 것이고, 말날에 담근 장은 말피처럼 빛깔이 진하고 맛이 있다는 것이다. 말은 기가 왕성하므로 말날은 먼 길을 나서기에 좋은 날로 믿고 있다. 한국과 몽골의 말과 관련된 세시풍속은 말의 출산과 관련하여 다산과 풍요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에게 기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몽골인들이 말 젖을 하늘과 땅에 뿌리는 차찰 의식을 통해 말의 번식과 흰색의 유제품이 풍부해지길 기원하였다면, 한국의 세시풍속은 제천의식을 통해 말의 번식과 무병을 기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북아시아 유목적 태반을 공유하고 있는 몽골과 한국의 목축 관행의 상사 및 상이점, 스텝과 농경지대라는 목축 환경의 상이성과 그를 기반으로 전개되어 온 목축 관행의 역사적인 변용들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밝혀가는 본격적인 연구과제는 시론 차원의 이 논문에서는 일단 문제로만 제기해 두려 한다.

라이다(LiDAR) 측량기법을 활용한 고분분포현황 조사 (Survey on the distribution of ancient tombs using LiDAR measurement method)

  • 심현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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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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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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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라이다(LiDAR) 측량을 활용한 문화재 조사·연구는 해외에서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라이다 측량의 장점과 활용도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문화재 조사에 활용한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다만, 주로 산성 조사에 한정되었고, 아직 고분 조사에는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다. 이에 대체로 산지에 분포하여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물론이고 복원, 정비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삼국~통일신라시대의 고분군에 대해 라이다 측량을 통한 기초 데이터의 확보가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경주 서악동 장산고분군과 충효동고분군 일대에 대한 라이다 측량을 실시하여 고분의 분포현황과 입지 양상 등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이미 정밀지표(측량)조사가 실시된 장산고분군에서는 기존 보고서의 지형도에 표기된 배치도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세밀한 지형정보와 분포양상을 추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10기가 발굴된 이후 추가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는 충효동고분군에서는 기존 발굴 고분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였고, 조사되지 않은 고분의 현황과 잔존 양상 등 새로운 정보를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정보들은 고분군 자체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물론이고, 향후 고분군의 보존과 정비 부분에도 기초자료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산림지대라 접근이 쉽지 않거나, 관찰이 힘든 산지 고분군의 양상을 파악하는데 라이다 측량은 가장 효과적이다. 지표조사와 같은 실질적인 현지조사에 앞서 실시하여 사전조사 또는 예비조사로써 활용도 높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고분 조사는 라이다 측량을 통해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사와 정비·활용 계획을 수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는 보통 산지에 위치하는 고분군에 대한 조사·연구 및 보존·정비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고분분포도 작성을 위한 정밀지표조사가 먼저 실시되는데, 이에 앞서 라이다 측량 데이터를 확보하여 활용한다면 더욱 효과적이고 정확도 높은 분포도 작성과 현황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넓은 지역에 대한 현장 조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누락이나 오류도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고분 조사에 있어 라이다 측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기초 데이터를 축적해 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