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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승패와 조직력 변화 (The success and failure of non-regular workers' struggles and their effects on organizational strength)

  • 조돈문
    • 산업노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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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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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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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민주노조운동과 노동계급 형성의 후퇴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과 함께 새로운 계급형성의 잠재적 주체로 등장했다. 하지만 주체 형성의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투쟁은 성과를 내지 못했는가? 어떤 변인들과 인과적 메커니즘을 통해 투쟁의 성과가 결정되는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변을 구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정규직 투쟁에 비해 비정규직 투쟁은 자본의 공세에 대응하는 수세적 방어적 성격이 짙고, 생산현장 접근성 제약으로 파업 투쟁 이외의 방식에 의존하며, 사측의 비타협성으로 인해 장기화되고,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극단적 투쟁 방식에 호소하며, 정규직 연대 확보가 어려워 외부연대에 크게 의존하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은 승리보다는 패배, 조직력 강화보다는 약화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하다. 패배 경향성을 상쇄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주체들의 조직 동원 역량과 정규직 노조의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며, 강력한 사회적 연대나 위치적 권력은 정규직 연대의 대체재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투쟁이 조직력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투쟁의 승리가 필요하지만 투쟁의 승리로 쟁취한 정규직화가 승리의 덫이 될 수도 있다. 정규직 노조의 연대와 투쟁 주체의 내적 통합은 비정규직 투쟁이 승리하고 조직력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쟁을 전개하는 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운데 조직력이 가장 강한 부분인데 이들이 투쟁 과정에서 조직력 위축 혹은 조직 와해를 겪으면서 비정규직 주체 형성을 어렵게 한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투쟁이 없었더라면 자본의 공세가 그대로 관철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비정규직 투쟁은 적어도 자본의 공세를 약화 혹은 지연시킨 효과는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형 설정자 역할의 부담 속에서 강경투쟁 전략과 양보타협 전략 사이의 투쟁 전략 딜레마는 투쟁 주체의 분열을 심화하여 투쟁의 승패와 조직력 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정규직 투쟁의 실천적 함의는 비정규직 투쟁의 궁극적 목표를 노동계급 형성을 위한 주체형성으로 재정의한다면 비정규직 투쟁의 전략적 목표는 당면 요구조건의 완전한 쟁취보다 조직의 보전 강화에 두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벼멸구 발생의 장기예찰을 위한 기초적 연구 (Study on the Long-term Forecasting of Brown Planthopper Outbreaks)

  • 백운하;백현준
    • 한국응용곤충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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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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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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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
  • 1975년의 벼멸구 대발생에 의한 극심한 피해에 감하여 그 발생을 예찰할 수 있다면 정부의 이에 대한 방제대책 및 살충제의 약종$\cdot$제제형태를 결정해야 할 농약수급계획 수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예찰방법은 전국 47개소의 예찰소에서 채집된 벼멸구를 유일한 자료로 삼고 있다. 벼멸구 발생의 신빙할만한 기록은 수원에 권업모범장이 설립된 1905년부터 볼 수 있고 그 이전의 해충기록은 삼국사기, 고려사, 문헌비고 등에 "황", "황충", "비황", "충" 등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들 해충에 대해 일본인 학자를 사이에 상반되는 견해가 발표되었는데 Muramatsu, S.(촌송 무)는 고문헌에 나타난 "황"은 풀무치(비황, Locusta migratoria)라고 주장하였고 Okamoto, H.(강본반차랑)는 멸구류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주로 문헌비고에 근거를 둔 것 같다. 설사 삼국사기, 고려사 등을 참고했다 하더라도 이들 문헌은 문헌비고나 다름없이 해충에 대한 기술이 극히 간략하다. 예를 들면 "7월 황", "추구월황해곡", "오월유항충"등으로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이것만으로 해당해충의 정확한 이름을 알아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1967년에 벼멸구의 대발생이 태양흑점 활동최소기와 상관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양자간의 상관관계를 논하기에는 자료의 량이 충분치 못한 감도 있어 이를 보충하기 위해 벼멸구의 발생기록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기로 하고 아울러 삼국사기, 고려사, 문헌비고 등에 나타난 해충기록들을 분석해 보았다. 고기록의 해충명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선결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분석의 결과 밝혀진 해충은 1. 솔나방(Dendrolimus spectabils) 2. 멸강나방(Mythimna separata) 3. 벼멸구(Nilapavata lugens) 4. 흰등멸구(Sogatella furcifera) 5. 풀무치(Locusta migratoria) 6. 이화명나방(Chilo suppressalis) 7. 땅강아지(Cryllotalpa africana) 8. 벼뿌리바구미(Echinocnemus squameus) 9. 거세미나방(뗘탬 segetum) 10. 뽕나무명나방(Margaronia pyloalis)의 10종이었고, 종명 미군종이 19건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벼멸구가 조선와조실록중에 기록된건수는 놀랍게도 겨우 5건에 불과하며 그 발생년도 또한 서기 1458년, 1468년, 1489년, 1536년, 1587년로서 태양흑점의 관측이 근대적 방법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1719년대 이전의 사실이었다. 따라서 양자간의 상관관계를 밝히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기간 중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 해 주는 중요한 새로운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즉 1946년에 흰둥멸구의 대발생으로 충남, 전남지방에 피해가 심했으며 그중 피해액이 밝혀진 곳은 라주군에서 16만석, 서산군에서 19만석이었다. (당시 농사시험장 곤충담당관 이봉우씨 담, 현재선 교수 전) 1910년 이후의 우리나라에서의 벼멸구 생기록을 보면 항상 흰등멸구와 함께 발생하고 있으며 최근의 예찰등성적을 보아도 함께 나타나 있고, 해에 따라 1975년도와 같이 벼멸구가 대발생하는 수도 있고 1977년도와 같이 흰등멸구가 대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벼멸구와 흰등멸구는 모두 우리나라 재래의 해충이 아니며 해마다 중국본사에서 비래하는 곤충이다. 한편 태양흑점이 실측되기 시작한 171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그 활동이 11.2년의 주기성을 보여주지만 그 이전에 있어서는 그 활동이 극히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불규칙하다는 것이 Schneider와 Mass(1975)에 의해 밝혀졌다. 결국 1710년대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있어서 벼멸구와 흰등멸구의 대발생 연도는 1910년, 1921-23년, 1946, 1967-8년, 1975-7년의 5회가 되며 이들 대발생 연도는 모두 태양흑점 활동최소기와 일치되어 필자의 주장의 신빙성이 더해졌다. 따라서 앞으로 태양흑점의 활동이 현재와 같은 주기로 계속되는 동안은 그 활동최소기에 임해서는 벼멸구와 흰등멸구에 대해 특별한 경계가 필요하며 만전의 방제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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