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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괘불(掛佛)의 새로운 도상(圖像) 전개 (The evolvement of new composition of painting in Gwaebul (Buddhist Ceremonial Painting) at late Joseon dynasty)

  • 이은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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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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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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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조선시대 말기인 1885년에서 1926년에 조성된 괘불은 18점이 현존하고 있는데, 그 중 12점이 서울 경기지역 사찰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초기의 능침사찰(陵寢寺刹)과 원찰(願刹)은 왕실의 후원을 받았으나 태종의 오교양종(五敎兩宗)의 혁파로 인해 불교의례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사찰도 피폐해졌다. 그러나 18세기 말부터 다시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존속해온 사찰은 다시 번창하게 되었다. 국내 외의 사회적인 혼란했던 이 시기는 국가 및 왕실의 안녕을 빌고 망자(亡者)의 극락왕생을 위한 대중적인 사상이 괘불에서는 새로운 경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괘불에 보이는 새로운 도상은 1853년 남호당 영기(南湖堂 永奇)(1820~1872)가 삼각산 내원암에서 판각 간행한 ${\ll}$아미타요해경(阿彌陀要解經)${\gg}$ 권수 판화에 그려진 아미타삼존도로부터 시작된다. 고려 말에 유행한 수월관음도의 재등장은 망자추선(亡者追善)과 제난구제(諸難救濟)의 역할과 허응당 보우의 〈수월도장공화불사여환빈주몽중문답(水月道場空華佛事如幻賓主夢中問答)〉이라는 도량의식의 '수월도양공화불사(水月道揚空華佛事)'의 허상과 망상이라는 도량의식,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만일회의 성행 등이 괘불 도상과 연관되면서 새로운 도상 출현은 조선 말기 괘불에 새로운 이슈로 나타난다는 점이 주목된다. 괘불의 화풍도 진하고 탁하고 채색과 음영법, 초본을 여러 번 활용한 동일한 도상에서 중앙집권적화된 화사계보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도 이 시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