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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분식 기포유동층 반응기에서 K-계열 건식흡수제의 주입수분농도 및 재생반응온도에 따른 CO2 흡수-재생 반응특성 연구 (Study of CO2 Carbonation-Regeneration Characteristics of Potassium-Based Dry Sorbents According to Water Vapor Contents of Inlet Gas and Regeneration Temperature in the Cycle Experiments of Bubbling Fluidized-Bed Reactor)

  • 박근우;박영성;박영철;조성호;이창근
    • Korean Chemical Engineering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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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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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49-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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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에서는 전력연구원으로부터 공급받은 K-계열 건식흡수제를 이용하여 회분식 기포유동층 반응기에서 흡수-재생 반복실험을 통한 $H_2O$ 주입농도 및 재생온도에 따른 반응 특성을 살펴보았다. K-계열 건식흡수제는 $CO_2$ 흡수를 위한 탄산칼륨과 내마모성과 기계적 강도를 위한 지지체로 구성되어 있다. 흡수반응과 재생반응 특성을 살펴보기 위해 처음 한 시간 동안 흡수반응을 수행하고 다음 한 시간 동안 재생반응을 수행하는 과정을 3차례 반복하여 실험하였다. $H_2O$ 농도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 흡수반응은 $70^{\circ}C$에서 $H_2O$ 농도를 7.3, 12.2, 19.7, 30.8%로 변화하여 실험을 수행하였으며 재생반응은 $N_2$ 기체를 유동화기체로 사용하여 $150^{\circ}C$에서 수행하였다. 재생온도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흡수반응에서의 $H_2O$ 농도를 12.2%에 고정한 상태에서 재생온도를 150, 200, 300, $400^{\circ}C$로 변화하여 실험을 수행하였다. 수분 함량이 $1.97\;mol\;H_2O/mol\;CO_2$인 경우 흡수반응에서 흡수율이 가장 우수함을 확인하였다. 또한 재생온도가 $400^{\circ}C$에서 가장 높은 재생율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였다. 재생온도가 $150^{\circ}C$에서 재생율은 대략 60% 정도였으며 실제 두개의 유동층 반응기를 가진 연속장치의 경우 부분적인 재생을 유지하면서 운전이 수행되기 때문에 재생온도는 $150^{\circ}C$ 이상이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실제 연속운전에서는 적절한 고체순환량을 결정하는 고체이용율과 재생에너지를 결정하는 재생온도 사이에 절충점이 존재하며 본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가 연속장치의 설계와 운전에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만성적 소음노출이 혈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코호트연구 (Cohort Study for the Effect of Chronic Noise Exposure on Blood Pressure among Male Workers)

  • 차태준;김장락;강위창;양승림;이충렬;유철인;이지호
    •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and Public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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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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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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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장기간의 소음노출에 의한 혈압상승 또는 고혈압의 발생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다양하고 논란이 많은 실정이다. 이에 연구자는 혈압에 대한 소음의 영향을 보다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 일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유사 노출군의 코호트를 구성하고 9년간의 추적조사를 실시하였다. 여기서 얻은 자료를 이용하여 소음노출수준별로 혈압의 연도별 변화경향을 파악하고, 혼란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도 혈압의 변화에 대해 소음노출이 영향을 미치는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부산지역의 일개 금속제품 제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530명의 남자 근로자를 1991년부터 1999년까지 혈압을 9년간 매년 계속 추적조사 하였으며, 조사 대상자들을 근무여건과 노출되는 소음수준(noise level category, 이하 NLC로 약함)에 따라 NLC-I (사무실 근로자, 60dB(A) 미만으로 노출, 155명), NLC-II(현장 기술지원자 및 검사원, 소음에 비정기적으로 노출, 75명), NLC-III (현장근로자, 85 dB(A)이하로 노출, 귀마개 또는 귀덮개를 착용, 167명), NLC-IV (현장근로자, 85 dB(A) 초과 노출, 귀마개와 귀덮개를 동시에 착용, 133명) 의 4군으로 구분하였다. 추적기간동안 소음수준별 혈압은 분산 분석을 이용하여 비교하였고, 혼합선형모형을 이용하여 추적기간동안(1992-1999년)의 보정된 통합평균혈압을 구하고 소음노출수준별로 비교하였다. 고려된 혼란변수는 기준연도(1991년)의 연령, 흡연여부, 음주량, 운동, 고혈압 가족력, 수축기 및 확장기 혈압과 체질량지수의 변화였다. 기준연도의 혈압과 혼란변수를 보정한 상태에서 각 연도별 혈압을 비교한 결과 수축기혈압은 9년째에서, 확장기 혈압은 2년째에서 대조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었으며, 대조군의 평균 혈압이 전반적으로 증가되었다. 추적기간동안 혼란변수를 보정한 통합수축기 혈압은 대조군인 NLC-I과의 차이가 NLC-II는 1.7 mmHg, NLC-III는 2.0 mmHg, NLC-IV는 3.8 mmHg이었고, NLC-IV의 경우 그 차이가 통계학적으로 유의하였다. 확장기혈압의 경우에는 소음노출수준별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본 연구는 남성근로자에서 장기간의 소음노출은 혈압의 상승에 독립적인 영향이 있음을 시사하였다.

전인적 지지간호중재가 두경부암 수술환자의 절망감, 자아존중감 및 자아개념에 미치는 효과 (Effect of Supportive Nursing Intervention on Hopelessness, Self-Esteem, Self-Concept of Operative Patient with Head and Neck Cancer)

  • 석정희;강은실;최화숙
    • Journal of Hospice and Palliative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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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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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9-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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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목적: 본 연구는 전인적 지지간호중재가 수술한 두경부암 환자의 절망감, 자아존중감, 자아개념에 미치는 효과를 규명하기 위한 비동등성 대조군 전 후 시차 유사실험 설계연구이다. 방법: 연구대상은 P시에 소재한 K 대학교 부속 병원에서 두경부암으로 진단 후 수술을 받은 입원환자로써 대조군 20명, 실험군 20명으로 총 40명이었다. 자료수집 기간은 대조군이 1999년 12월 1일부터 2000년 2월 19일까지였고, 실험군은 2000년 2월 17일부터 4월 11일까지였다. 연구도구는 실험도구로서 전인적 지지간호중재 protocol은 연구자가 문헌고찰을 중심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신체적, 정서적, 정보적, 영적중재로 구성되어 있다. 측정도구는 절망감을 측정하기 위해 Beck(1974)의 절망감 측정도구를[15]이 번역한 척도를 사용하였다. 자아존중감에 대한 측정도구는 [29]가 개발하고 [41]가 번역한 도구를, 자아개념에 대한 측정도구는 [20] 등이 사용한 것을 [21]이 수정보완한 도구를 사용하였다. 자료처리는 SPSS/PC 9.0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실수, 백분율, 평균, 평균평점, 표준편차, $x^2-test$, t-test로 분석하였다. 결과: 본 연구의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1. 제 1가설 '전인적 지지간호중재를 받은 실험군은 받지 않은 대조군보다 절망감 정도가 낮을 것이다' 는 지지되었다(t=4.550, P=.000). 2. 제 2가설 '전인적 지지간호중재를 받은 실험군은 받지 않은 대조군보다 자아존중감 정도가 높을 것이다' 는 지지되었다(t=-6.442, P=.000). 3. 제 3가설 '전인적 지지간호중재를 받은 실험군은 받지 않은 대조군보다 자아개념 정도가 높을 것이다'는 지지되었다(t=-6.065, P=.000) 결론: 전인적 지지간호중재는 두경부암 수술환자의 절망감 감소와 자아존중감, 자아개념의 증진시키는데 효과가 있으므로, 두경부암 환자의 삶의 질을 위해 임상실무에 전인적 지지간호중재 프로토콜을 적용할 필요가 있으리라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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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공동체신앙 전승과정 고찰 조선시대 각사(各司) 신당(神堂)의 존재양상과 변화를 중심으로 (A Study of the Transmission of Community Religion in Seoul Focussing on the Shrine of the Authorities and the Change)

  • 오문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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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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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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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서울 공동체 신앙은 조선시대 각 관서에 속한 신당의 제사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 각 관서(官署)의 부속공간으로 존재하던 신당의 제사 주체는 하급관리들이었다. 이러한 신당은 대개 부군당(府君堂)으로 불리웠다. 기록에 등장하는 부군당은 대개 1~3칸 정도의 규모이며, 내부에는 신앙의 대상인 부군을 그림으로 그려 봉안하였다. 역사기록에는 부군당의 제사대상이 최영장군이나 송씨부인으로 등장하는데, 실제 부군당의 제사대상은 각각 달랐다. 부군당의 제사 대상 가운데는 왕건, 단군, 남이장군, 제갈공명, 김유신, 임경업, 공민왕, 태조 이성계, 조선의 개국공신인 조반, 남한산성 일대의 지역에 전승되는 설화의 주인공인 홍씨대감과 처첩, 임진왜란 이후 신으로 모셔지기 시작했던 관우와 제갈공명 등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조선시대 각 관서 신당의 의례를 오늘날 서울지역 마을굿의 양상과 정확하게 비교해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 볼 때 굿과 고사의 형태가 공존하였음을 알 수 있다. 관서 신당 의례는 점차 민(民)의 공동체신앙으로 자리잡아, 서울의 문화적 변동 맥락 속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다. 본고는 조선시대 관서에 속한 신당의 존재양상을 살펴 보고, 관서 신당의 의례가 민간화되는 전승의 맥락을 장충동 관성묘, 방산동 성제묘, 서빙고 부군당의 사례를 통해 살펴 보았다. 방산동 성제묘가 민간화 되어가는 과정은, 군인들의 신으로 인식되던 신령 관우가 역사적 변화과정 속에 놓이게 되면서 군인들의 신에서 상인들의 신이 되었고, 이후 특정지역 상인들의 공동체적 신앙 대상이 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장충동 관성묘는 남영 군인들의 부군당으로서, 관성묘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영신사(永信社)라 불리는 제사집단에 의해 제사가 전승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구성원이 된 이 일대 마을의 공동체신앙으로의 전승이 자연스럽게 계승되었다. 서빙고 부군당의 민간화 과정은 조선 후기 장빙역(藏氷役)의 변화와 맞물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었다.

서산(瑞山) 보원사(普願寺)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 고찰(考察) (A Study on the Iron Seated Buddha at Bowonsa Temple in Seosan)

  • 강건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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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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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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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보원사(普願寺)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북쪽에 위치한 사찰로, 경내에는 나말여초에 조성된 문화재가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충청남도의 고적 조사를 계획했고, 1916년(대정 5) 보원사지에 가서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현지 조사 과정에서 소옥(小屋)에 안치된 철조여래좌상(무릎너비 7척, 두께 5척 5촌)을 확인했고, 이듬해에 경복궁으로 해당 철조여래좌상을 이운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보원사지에 2m가 넘는 대형 철조여래좌상 1구만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철조여래좌상은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900~975)이 955년에 조성하였을 것이다. 탄문은 광주 고봉의 유력가문 출신으로 태조의 보살핌 속에 화엄종의 중심인물로 성장했고, 연이어 혜종(惠宗)(재위기간 943~945)과 정종(定宗)(재위 945~949)대에도 왕실의 불교행사를 주관했다. 이후 탄문은 대목왕후(大穆王后) 황보씨(皇甫氏)(?~?)의 후원을 받은 균여(均如)(923~973)의 등장으로 개경에서 떨어진 보원사로 이주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충주 유씨의 후원을 받아 지지 세력의 결속을 다지고 한편으로는 광종(光宗)(재위 949~975)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대형의 철조여래좌상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탄문의 비문에 나오는 '주금상지삼존(鑄金像之三尊)'도 보원사에서 철조여래좌상이 주조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이다. 철조여래좌상의 원(原) 봉안처는 보원사지 내 '건물지3'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 결과 현재의 금당지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건물지로 드러났기 때문에, 철조여래좌상은 조성 당시 다른 장소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건물지3은 다른 건물지에 비해 고려시대 기와와 자기의 출토 빈도가 높고, 무엇보다도 정방형에 가까운 불단 유구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정이 가능하다. 철조여래좌상은 조성 당시 고려시대 전각인 건물지3에 봉안되었다가 조선시대 중창불사를 통해 지금의 금당지로 이운되었을 것이다.

e-스포츠의 다양한 속성이 유동(flow)과 동일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Various Attributes of E-Sport Influencing Flow and Identification)

  • 서문식;안진우;김은영;엄성원
    • 마케팅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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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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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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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과 온라인 사용이 급증함에 따라 e-스포츠와 같은 온라인 게임은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e-스포츠를 후원하는 기업의 효과를 검증하는 마케팅적 연구는 미진한 상태이다. 있다해도 단순히 온라인 게임과 관련한 연구가 대다수이다. 이에 본 연구는 e-스포츠 스폰서십을 통해 기업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코자 하였으며 시작단계에 있는 e-스포츠의 향후 연구에 기여하고자 하였다. 중요 변수들은 첫째, e-스포츠의 주요한 게임속성으로 상호작용성, 익명성, 내용확장성을 들고 온라인 상황에서 주요한 매개의 역할로 다루어지는 유동(flow)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둘째, e-스포츠의 주요한 게이머속성(스포츠 경기에서의 팀과 플레이어의 속성에서 수정)인 매력성, 유사성, 경기결과가 유동(flow)과 게이머동일시(온라인 게임상황에 맞게 기존 팀동일시를 게이머동일시로 차용)에 미치는 영향관계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유동(flow)과 게이머동일시와의 관계 그리고 게이머동일시와 기업동일시와의 관계를 최종적으로 점검하였다. 연구의 결과, 온라인의 기초적인 특성인 상호작용성은 유동(flow)에 유의한 영향이 있었고 게이머속성에서의 유사성과 경기결과도 유동(flow)에 유의한 영향이 있었다. 그리고 유사성은 게이머동일시에 정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유동(flow)은 게이머동일시에 그리고 게이머동일시는 기업동일시에 정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e-스포츠를 후원하는 기업의 경우 일반 유저들과 유사한 특성인 가진 실력있는 게이머를 후원한다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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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경제제재의 효과성과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고찰: 해상대북제재를 중심으로 (An Analysis on the Conditions for Successful Economic Sanctions on North Korea : Focusing on the Maritime Aspects of Economic Sanctions)

  • 김상훈
    • Strategy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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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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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9-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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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UNSC,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주도의 경제제재는 초창기 '포괄적 경제제재(comprehensive sanctions)' 모델에서 '스마트 경제제재(smart sanctions)'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직접적인 무력개입(military intervention)보다 규범적 비용(normative costs)과 부담이 덜한 경제제재를 통해 대상 국가의 손익계산법(cost-benefit calculation)을 바꿔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했으나, '포괄적 경제제재'에 따른 비용 대부분이 일반 대중에게 전가되면서, 인도적 위기(humanitarian crisis) 사태를 초래하고, 대상 국가의 내부 결속력을 강화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지도자와 정치 엘리트를 대상으로 자산을 동결(asset freeze)하거나 여행금지(travel ban) 조치 등을 집중적으로 하는 '스마트 제재'가 탄생하였다. 대북한 경제제재 또한 '스마트 경제제재' 모델로 점차 발전하여 그 효과성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최근의 결의안(resolutions)을 통해 석탄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원유 수입을 제한함에 따라 지표상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고, 2018년부터 한국, 미국과 평화협상에 나서면서 제재완화를 촉구하는 등, 위와 같은 '스마트' 대북제재가 북한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북제재의 효과성은 북한의 대외무역규모(total trade volume) 변화량을 통해 측정할 수 있는데, '포괄적 경제제재'의 성격에 가까운 초기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이후에는 북한 대외무역규모가 감소한 경우도 있지만 도리어 증대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석탄 수출 금지 및 원유 수입 제한 조치를 담은 2016, 2017년의 결의안 이후에는 북한 대외무역규모가 2016년 약 65억 달러에서 2017년 약 55억 달러로, 2018년에는 약 28억 달러로 대폭 감소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의 대외무역은 정권의 자금줄과 같기 때문에 대외무역규모의 감소는 곧 '스마트 제재'의 효과와 같다. 대북경제제재의 효과성에 영향을 미치는 두 번째 조건은 중국의 대북제재 레짐(sanctions regime)에의 참여 여부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고, 이는 지표상으로도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그 동안 북한의 지정학적인 가치 및 급변 사태 시 북-중 국경에서의 대규모 난민 발생 우려 등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북한을 지지해왔지만, 북한 핵능력의 고도화에 따른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핵확산(nuclear proliferation) 우려,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여파 등으로 대북제재 레짐에 성실히 참여할 것을 밝혔다. 실제로 중국의 대북한 석유 수출량이 감소하고, 북-중간 대외무역 총량 또한 2016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대북경제제재에 중국의 참여가 제재 성공의 중요한 변수임을 증명했다. 효과적인 대북제재를 위한 마지막 요건은 북한의 경제제재 회피 노력 방지(prevention of North Korea's economic sanctions evasion efforts)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석탄 수출과 원유 수입은 북한 정권의 자금줄이자 핵무력 고도화를 위한 필수 에너지원이다. 중국이 대북제재 레짐에의 참여를 선언한 상태에서 중국으로부터의 원유 수입량이 급감함에 따라 중동지역 등지로부터 바닷길을 통해 원유를 수입해야 하는데, 원유 수입량 제한에 따라 동중국해(East China Sea) 및 공해(high seas)상에서 선박 대 선박간 불법 환적(ship-to-ship illegal transshipment)을 실시하면서 대북제재를 무력화하고 있다. 유엔 대북제재위 산하 전문가 패널(Panel of Experts), 미 국무부(U.S. Department of State), 미 재무부 외부자산통제국(U.S. Department of the Treasury's 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 OFAC) 등은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해상 불법 환적 실태를 상세히 밝히고 있는데, 자동 선박 식별 장치(AI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의 허위 신호 송출(false signaling), 선박 등록 문서 위조(false certificate of registry)와 같은 방식으로 감시 및 단속을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마트'한 대북제재 설계 및 중국의 참여로 대북제재가 북한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이 확인되었지만, 국제사회의 눈을 피해 해상에서 만연하고 있는 불법 환적과 같은 행위는 효과적인 대북제재 실행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해상에서의 불법 환적 행위를 막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정책적 함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 첫 번째는 가장 강력한 조치라고 할 수 있는 해상봉쇄(maritime blockade)에 대한 고려다. 전세계 물동량의 40%가 지나가는 말라카 해협(Malacca Strait)은 북한에게도 중요한 해상 교통로이다. 북한이 계속해서 결의안을 위반하고 공해상에서 불법 환적 행위를 자행할 경우, 말라카 해협에서 북한과 연계된 의심 선박을 검문 검색하고 차단(interdiction)하여 강제적인 방식으로 북한의 제재 회피 노력을 근절할 수 있다. 남중국해(South China Sea)에서 중국과 미국 간, 중국과 주변국 간 갈등이 격화됨에 따라 다국적군의 말라카 해협 봉쇄는 중국에게 달갑지 않겠지만,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에 명시되어 있는 의심 선박에 대한 검문 검색 행위임을 명백히 함과 동시에 다자간의 협조를 바탕으로 하여 규범적 정당성(normative justification)을 높인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방안이다. 두 번째는 공해상에서의 불법 해상 환적에 대한 감시 강화와 증거 수집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대한민국의 다국적 해상 감시 활동에의 참여다. 북한의 대북제재 이행 여부는 한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대북제재의 최종 목표는 북한 비핵화에 있고, 협상 테이블에 북한을 이끌어내는 데 제재가 효과적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핵 위협의 당사자인 대한민국 또한 효과적인 제재 이행 여부 감시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정릉(貞陵) 이장과 광통교(廣通橋) 개수를 통해 본 조선 초기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립 (Collision of New and Old Control Ideologies, Witnessed through the Moving of Jeong-regun (Tomb of Queen Sindeok) and Repair of Gwangtong-gyo)

  • 남호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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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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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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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정릉(신덕왕후릉)의 축조와 이장에 얽힌 논란은 조선 초기, 신구(新舊)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의 충돌이 잘 드러난 사례이다. 태조의 경처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은 도성 안에 조성되지만 태조 사후, 태종에 의해 도성 밖으로 이장되고 그곳에 남아 있던 석물들은 청계천의 광통교를 보수하는데 쓰인다. 야사에서는 태종이 강씨를 저주하기 위해 도성 밖으로 능을 옮기고 남은 석물들로 광통교를 만들어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했다고 전한다. 태조 말년, 강씨와 태종은 대립하던 관계였으나 태조가 왕으로 옹립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정치적 동반자에 가까웠다. 정릉이나 광통교와 관련된 실록의 기록은 더 담백하다. 정릉의 천장은 능묘가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정부의 상언을 따른 것이다. 광통교 개수를 위해 정릉을 격하하고 이장시켰다는 주장에는 사실 관계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논자는 광통교 개수에 정릉의 석물이 재사용된 것에 대해 당시 도성 안팎에서 건축자재소요량이 급증하여 효율적인 조달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가능성을 상정하였다. 정릉이 도성 안에 조성되었다가 다시 도성 바깥으로 이장된 원인은 태조와 태종이 가졌던 사상적 배경의 이질성에서 찾았다. 태조는 유교국가의 통치자였으나 죽은 왕비를 위해 도성 내에 원찰과 무덤을 조성한다. 여기에는 불교의 힘을 빌려 죽은 신덕왕후의 권위를 위의하고 지지세력을 규합하고자 한 노림수가 있었다. 원의 다루가치 집안에서 태어나 지방군벌로 성장한 이성계는 높은 유학적 소양을 가지지는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호불적 성향을 띄는 구체제의 인물이었다. 반면 태종 이방원은 고려 말 과거시험에 급제했던 엘리트 유생이었으며 주자학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유교국가에서 도성이 가지는 상징성에 대한 이해가 더 깊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시대 이후, 율령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 시스템이 정립된 이래로 도성 바깥에 무덤을 만드는 경외매장의 원칙은 거의 예외 없이 지켜져 왔다. 정릉은 태조 개인의 강한 의지로 도성 내부에 조성되지만 왕 이전에 유학자였던 태종에게 이러한 모습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태종은 즉위 후, 주도적으로 도성 재정비를 추진하는데 이는 '예치'를 강조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한양도성의 경관에 명확하게 구현하고자 한 의지의 발현으로 보여진다. 정릉의 이장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진행되었던 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