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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성 기반의 엣지 캐싱 및 사용자 연결 알고리즘 연구 (A Study on Mobility-Aware Edge Caching and User Association Algorithm)

  • 이태윤;이수경
    • 정보처리학회논문지:컴퓨터 및 통신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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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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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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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최근 스마트 디바이스 및 스트리밍 서비스의 수요 증가에 따른 네트워크 트래픽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Mobile Edge Computing(MEC)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MEC는 Base Station(BS)과 같은 네트워크 엣지에 캐시를 설치함으로써 사용자에게 보다 가까운 곳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낮은 지연시간을 제공하고, 네트워크 부하를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엣지 네트워크에서 사용자는 가장 가까운 BS와 연결되는 것보다 요청된 콘텐츠가 캐싱되어 있는 BS와 연결하는 것이 서비스 지연시간 감소에 유리하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캐시 적중률 향상을 위한 이동성 기반 캐싱 및 사용자 연결(user association)알고리즘을 제안한다. 제안 알고리즘은 체류시간과 콘텐츠 요청 유사도를 토대로 사용자 연결을 결정하고 콘텐츠를 캐싱한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존 연구 대비 제안 알고리즘의 향상된 캐시 적중률과 감소된 지연시간을 확인한다.

가역적상호대사과정 모델을 이용한 Prednisolone과 Prednisone의 약동학적 분석 (Pharmacokinetic Modeling of Reversible Interconversion between Prednisolone and Prednisone)

  • 신재국;윤영란;차인준;장인진;이경훈;신상구
    • 대한약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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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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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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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Pharmacokinetics of prednisolone and prednisone undergoing reversible interconversion were analyzed from the model including this metabolic process. Blood samples were drawn serially upto 12 hours after I,V. bolus injection of 1 mg/kg prednisolone sodium phosphate and prednisone into 8 dogs as a crossover manner. Plasma concentrations of those two steroids were simultaneously measured with the method of HPLC. After injection, plasma concentrations of administered prednisolone and prednisone were declined with a biexponential pattern and their metabolic partner was rapidly formed. Plasma concentrations of those metaboite were decayed in parallel with their parent steroids throught the elimination phase. Apparent clearances of prednisolone and prednisone were $11.1{\pm}2.0\;ml/min/kg$ and $45.9{\pm}6.4\;ml/min/kg$, and they were underestimated by 29.4% and 33.6% compared to their real clearances$(15.7{\pm}4.4\;and\;69.2{\pm}17.7\;ml/min/kg)$ estimated using reversible interconversion model. Apparent volume of distribution of prednisolone$(1.32{\pm}0.43\;L/kg)$ and prednisone$(4.81{\pm}2.75\;L/kg)$ were overestimated by 53.5 and 52.7% and were compared to the real volumes $(0.86{\pm}0.30\;and\;3.15{\pm}2.13\;L/kg)$. Mean residence time of prednisolone$(2.0{\pm}0.61\;h)$ and prednisone$(1.74{\pm}0.74\;h)$ were much longer than the real sojourn time$(0.93{\pm}0.26\;and\;0.88{\pm}0.54\;h)$. Essential clearances In the reversible interconversion were greater as following orders: $Cl_{21}$(44.3 ml/min/kg) > $Cl_{20}$(24.2 ml/min/kg) > $Cl_{12}$ (7.9 ml/min/kg) > $Cl_{10}$(7.8 ml/min/kg). Estimated mean values of RF, EE, $%X^1_{ss}$ and $RHO^2_1$ were $0.31{\pm}0.10$, $1.49{\pm}0.23$, $69.3{\pm}16.7%$ and $0.65{\pm}0.10$, respectively. These results suggested that true pharmacokinetic parameters estimated from the model including reversible interconversion were significantly different from the apparent parameters estimated from the conventional mamillary model, and disposition of these two steroids seemed to be well explained by the model including reversible intercon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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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경(聞慶)에서의 강학활동 (Ganjae's lecture activities in Mungyeong)

  • 임옥균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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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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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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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글에서는 간재가 문경지역에 거주할 때의 강학활동을 살펴봄으로써 40대 중반 왕성하게 학문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해가던 젊은 간재의 모습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문경의 심원사에서 강학활동을 하면서 간재는 "강규"를 세워, 선생과 제자 사이의 예를 엄격히 하였고, 부부 사이에는 반드시 서로 공경히 대할 것을 가르쳤다. 이를 통해서 자신의 학단 안에서라도 옛 예를 회복할 것을 기대하였다. 1884년에는 청화산 시동에서 강학활동을 하였는데, "시동서사의"를 지어, 뜻을 크게 세울 것, "소학"을 행동준칙으로 삼을 것, 공부하는 과정에서 성(性)을 위주로 삼을 것을 주장하였다. 성(性)을 위주로 삼을 것을 주장한 것은 성사심제설의 단초를 보여주는 것이다. 문경 지역에서 간재는 송병화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학문을 논하기도 하였고, 문경 지역과 관련 있는 학자들과 교류하기도 하였다. 송병화와 예를 논하면서 간재는 할아버지 상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를 대신하여 할아버지의 삼년상을 마치는 것이 인정상 맞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송병화가 심이 체용을 갖추고 있다는 설을 주장한 것에 대해 그것을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심의 주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성체심용(性體心用)이라고 하여 어디까지 성을 앞세워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간재는 문경 지역에 거주하면서 문경 지역과 관련이 있는 학자들과도 교류하였는데, 의당 박세화와 지암 김재경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박세화는 홍직필의 재전제자라는 점에서 간재와 공통점이 있었다. 박세화는 문경에서 의병활동을 도모하다가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 단식으로 순국하였다. 간재와 의당은 당시 기울어져가던 나라의 운명, 중화와 이적, 거의(擧義)와 자정(自靖)에 대해 논의하였다. 김재경은 의성 사람으로 간재가 문경에 머물 때 교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에도 상호 방문하고 서신을 교류하는 등 관계를 지속하였다. 간재가 문경에 머무르던 시기에 국가적으로 큰 사건들도 몇 가지 있었다. 간재가 심원사에서 강학을 시작하기 1년 전인 1882년에는 임오군란이 있었고, 1884년에는 의복제도를 좁은 소매로 바꾼다는 조정의 명령이 있었다. 간재는 이러한 조정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옛 제도를 고수하도록 제자들에게 지시하였다.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되느냐는 의문에 대해서 간재는 의리상 불가한 것은 임금의 명령이라도 따르지 않을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1884년에는 또한 갑신정변이 있었는데, 간재는 외세를 배격하고 예를 지킴으로써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상으로 볼 때, 간재가 문경에서 강학하던 시기는 개인적으로는 간재의 핵심적인 사상인 성사심제설을 정립할 단초를 마련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나라를 지킬 것이냐가 문제가 되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간재는 이에 대해서 문화의 표지인 예를 굳건히 지킴으로써 나라도 지킬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