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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학교논쟁'(1905)의 기독교교육 갈등요인에 관한 영향사 연구 (A Study on Conflict-factors and Influence of the Bremen Controversy of 1905)

  • 안정도
    • 기독교교육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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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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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7-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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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연구 목적 : 본 연구는 1905년 브레멘에서 일어난 교사들의 학교에서의 종교수업 폐지 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건 문헌 연구다. 한국 기독교학회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독일 종교교육사의 한 사건을 조망하면서, 이 사건 안에 얽혀있는 통시적·공시적 영향력을 확인하고자 한다. 연구 내용 및 방법 : 1905년 독일 브레멘을 중심으로 일어난 학교 종교수업에 대한 논쟁은 학교종교교육 역사에서 중립적 종교수업으로의 개혁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최초의 사건이다. 그 배경에는 19세기 시민 사회의 성장, 과학과 학문의 발전, 사회민주주의 정치적 발달, 루터교회와 개혁교회의 갈등과 같은 다양한 촉발 요인이 존재한다. 이 논쟁의 공식 결과물인 '브레멘 문서'에서 교사들은 종교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는 논리로 학교와 교회, 종교와 교육이 분리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가치중립적인 도덕교육을 지향하며 객관적 '성서 역사 수업'을 제안한다. 1905년 브레멘 학교논쟁은 이후 1948년 브레멘 주 헌법, 1949년 독일 기본법의 종교교육 관련 법 조문에 영향을 미쳤다. 기본법 제 141조는 '브레멘 조항'이라고 불리며, 브레멘 종교수업에 교회가 관여할 수 없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브레멘 문서'에서 요구된 성서 역사 수업은 오늘날 브레멘 종교교육 과정의 특징인 '성서역사수업'(BGU)의 모태가 된다. 결론 및 제언 : 1905년 브레멘 학교논쟁은 학교에서의 종교 중립적인 수업에 대한 최초 논의이다. '브레멘 학교 논쟁'의 배경, 내용, 영향을 살펴보면 오늘날 한국 기독교 학교교육의 논의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기독교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국내 엔젤투자 연구의 특징과 향후 방향은 무엇인가? (What are the Characteristics and Future Directions of Domestic Angel Investment Research?)

  • 김민;최병철;이우진
    • 벤처창업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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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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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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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는 1997년 이후부터 2022년까지 한국연구재단에 등재된 학술문헌을 '엔젤투자' 와 '엔젤투자자' 그리고 '엔젤투자유치' 의 키워드로 검색하여 조사된 문헌들을 연도, 연구주제, 연구방식, 연구대상, 연구방법의 분류를 통해 국내 엔젤투자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국내에서 엔젤투자를 주제로 한 연구현황을 분석하여 해외연구대비 상대적으로 부족한 분야의 주제를 제시하였다. 또한, 엔젤투자 연구의 체계적 확장을 위한 연구방향과 관련한 사회과학적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엔젤투자 분야의 연구 활성화를 위해 어떤 부분들이 필요할지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로 수집된 문헌들을 분석한 결과 국내의 엔젤투자 관련 연구주제는 엔젤투자자의 특성, 벤처창업기업, 제도 및 정책, 엔젤투자의사, 엔젤투자 유형 등에 초점을 두고 있었으며, 향후 연구에서는 엔젤투자 성과분석, 엔젤투자의 사례연구, 그리고 국내 엔젤투자 규모의 성장과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연구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또한, 벤처창업기업, 엔젤투자 유형, 엑설러레이터, 벤처캐피탈, 제도 및 정책 등 특정 변수에 초점을 둔 연구에서 벗어나 크라우드펀딩, 투자수익률 등 엔젤투자에 관련된 다양한 변수관계를 연구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앞으로 엔젤투자 성과를 예측하고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양한 독립변수들과의 관계를 더 자세히 탐구하는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 또한, 엔젤투자와 투자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에 대한 이론적 구조를 분석하여 이러한 구조에 대한 질적 및 양적연구가 다방면으로 활성화 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를 통해 향후 엔젤투자 분야에서 보다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길 기대하며,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국내 엔젤투자의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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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대(代)의 종교지형 변동 -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양상을 중심으로 - (Changes in the Religious Topography of the Great Gwanghaegun: Policies towards Buddhism and the Affected Buddhist Community)

  • 이종우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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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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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7-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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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논문의 목적은 광해군 대(代)의 불교정책과 이것의 영향을 받는 불교계의 양상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통해 조선불교를 "숭유억불"이라고 규정지음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았던 광해군 대의 불교가 가진 나름의 영향력과 역동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에 불교는 성리학의 벽이단을 내세운 지배층에 의하여 배척되어야 했고, 이것은 광해군 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배층이 이중적 불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지배층의 이중적 불교관은 광해군 대의 불교계의 상황에 영향을 끼쳤다. 임진왜란에서의 전공으로 지배층은 불교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조선에서 불교의 위상이 일정부분 상승했다. 상승한 위상과 임진왜란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불교계는 보사(報謝)와 구호 활동에 종사했다. 그 결과, 승려의 수는 증가했고, 사찰과 승려의 토지 소유가 허가됨으로써 경제적 상황도 좋아졌다. 이 과정에서 임진왜란은 광해군 대의 불교정책을 좌우하고 불교지형을 변동시킨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광해군 대에 지배층은 불교를 이단으로 간주하면서도, 임진왜란에 공이 있는 승려들에게 시호를 하사했고, 승려에게 관직을 제수하는 등 일부 승려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폈다. 또한, 승려들은 국방, 건축 등 조직력과 물리적 힘을 요구하는 역을 부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광해군 대까지는 승려들이 부담하는 역에 대하여 일정 부분 보상해서, 승려가 역을 부담하는 것이 불교에 대한 탄압의 면보다는 불교에 대한 용인의 측면이 강했다. 불교정책에 대하여 불교계는 지배층과의 유착과 사찰의 창·재건, 그리고 불교 예술품 제작이라는 양상을 보인다. 지배층과의 유착을 통해 불교계는 광해군 대 불교정책에 적극 호응했고, 이것을 통해 교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이러한 모습 속에서 부휴 선수(浮休 善修)와 제자인 벽암 각성(碧巖 覺性)의 부휴계가 불교계에서 주도권을 가지기 시작했음도 확인된다. 광해군 대의 불교정책은 지배층의 이중적 불교관과 좋아진 측면과 악화된 측면이 공존하는 불교계의 상황을 배경으로 시행되었다. 지배층은 불교의 조직력을 전후(戰後) 복구와 국방, 토목 공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이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시행했다. 불교계 역시 지배층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불교정책에 호응하였고, 사찰과 예술품을 보수하고 제작하였다. 광해군 대의 불교정책과 대응을 살펴보면, 조선 불교에 대한 일반적 묘사인 "숭유억불"로 설명할 수 없는 불교의 조직력과 영향력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