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Seon Je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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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피적 척추 성형술에서 혈액 혼합 시멘트의 특성 (Characteristics of Blood Mixed Cement in Percutaneous Vertebroplasty)

  • 서진혁;우영하;정주선;김도훈;김옥걸;이상욱;박찬호
    • 대한정형외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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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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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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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목적: 골다공증성 척추 압박골절을 가진 환자에서 혈액을 혼합한 시멘트를 사용함으로써 기존 시멘트를 이용하여 경피적 척추 성형술을 시행했을 경우 나타나는 합병증을 줄이는 데 적합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대상 및 방법: 2016년 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80명을 대상으로 후향적으로 진행되었다. 각 군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시멘트 20 g에 혈액을 각각 2, 4, 6 ml를 섞어서 다공성 시멘트를 생성하였다. 지름 2.8 mm, 길이 215 mm의 튜브를 이용하였고 중합온도, 응결 시간, 적절한 통과시간을 측정하여 기존의 시멘트만 사용하던 것과 비교하였다. 방사선적으로 컴퓨터 단층촬영 및 X-ray를 통하여 결과를 평가하여 비교하였다. 결과: 중합온도는 기존의 시멘트(R), 2 ml (B2), 4 ml (B4), 6 ml (B6) 군에서 각각 70.3℃, 55.3℃, 52.7℃, 45.5℃였으며, 응결시간은 960초(R)에서 558초(B2), 533초(B4), 500초(B6)로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통과시간은 각각 73초(R)에서 45초(B2), 60초(B4), 78초(B6)를 보였으며, 혈액의 양이 증가할수록 기존의 시멘트 통과시간과 유사하였다. 방사선적 결과 분석에서 추체 재건율과 추체 재함몰률은 4군 간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인접 추체 골절은 R군에서 2건, B2, B4 군에서 1건씩 나타났으며, 시멘트 누출률은 기존 시멘트 군에서 약 2배 높게 측정되었다. 결론: 기존의 경피적 척추 성형술 시 본인 자가 혈액을 시멘트와 혼합하여 사용하는 술식은 중합온도의 감소, 응결시간의 단축을 보이며 시멘트 누출 발생률이 적었다. 이러한 물성은 기존의 시멘트만 사용하는 경우보다 합병증을 줄일 수 있는 더 적합한 기계적 특성에 도움일 될 것으로 판단된다.

대한구순구개열학회의 글로벌 자선 수술 활동 : 케냐에서의 자선 수술 활동 (Global Charity Operations of Cleft Lip and Palate by Korean Cleft Lip and Palate Association ; Charity Operations in Kenya, east Africa)

  • 정필훈;박주영;박주용;안강민;백진우;조일환;최철민;최선휴;정일혁;고은봉;홍종락;현승돈;장현석;전상호;정성욱;강나라;강영호;김병렬;김동현;김은석;김호성;김인수;김지혁;김종렬;김중민;김명진;김성민;고봉화;고성희;이부규;이의석;이종호;이의룡;이원;이원덕;민병일;남일우;팽준영;박종철;박정석;박성희;박영욱;표성운;임채홍;임재석;서병무;서제덕;윤정호;윤정주;윤형진
    • 대한구순구개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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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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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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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Korean Cleft Lip and Palate Association (KCLPA) was founded in 1996. The first overseas charity operation was in Karachi, Pakistan, 2002 and our association has visited fourteen times in six countries for the free cleft surgery: Pakistan, Egypt, Kenya, Morocco, Jordan and Vietnam. The cumulated number of operated patients reaches to 280. Before our association, many Korean oral and maxillofacial surgeons have performed charity operations individually since 1964. It was started from Vietnam but the activity is now carried on in Africa, middle-east Asia, south-east Asia, China, and Korea as an official team. LG electronics, a Korean company helped to propagate our team's activity to middle-east Asia to Africa. This paper is a report concerning about the results of our association's charity activities especially in Kenya, east Africa. We provided free cleft surgery for 30 patients in 2004 and 27 patients in 2005, in Nairobi. As the blood test for HIV of the cleft patients was not allowed before and during surgery, our surgeons and nurses were cautious about every movement during the surgeries. Thus the operation time for each patient was longer than any other time. The attitude of the local hospital and the doctors seemed to be accustomed to this situation. They helped us in case of needle injuries. Safety of medical staff and patients is more important than the number of the patients operated in charity operation. This belief should be approached being parallel and multidisciplinary as an international cooperation, focusing on international funding for medical support and continuous education for local doctors who are willing to devote to their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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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맥 판막만을 침범한 감염성 심내막염의 수술적 치료: 승모판막만을 침범한 경우와 비교 연구 (Surgical Treatment for Isolated Aortic Endocarditis: a Comparison with Isolated Mitral Endocarditis)

  • 홍성범;박정민;이교선;류상우;윤주식;제갈재기;윤지형;김상형;안병희
    • Journal of Chest Surg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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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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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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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배경: 감염성 심내막염으로 인한 심장 수술은 위험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대동맥 판막 심내막염 수술은 합병증 발생과 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본 연구는 대동맥 판막만을 침범한 감염성 심내막염에 대한 임상 양상 및 수술 결과를 분석하고자 시행되었다. 대상 및 방법: 1990년 7월부터 2005년 5월까지 본원에서 대동맥 판막만을 침범한 감염성 심내막염으로 수술받은 환자를 1군(25예, 남자 : 여자=18 : 7, 평균 나이 $43.2{\pm}18.6$세), 승모판막만을 침범하여 수술 받은 환자를 2군(23예, 남자 : 여자=10 : 13, 평균 나이 $43.2{\pm}17.1$세)으로 하여 양군의 임상 양상 및 수술 결과를 비교 분석하였다. 술전 좌심실 구출률은 1군 $60.8{\pm}8.7%$, 2군 $62.1{\pm}8.1%$ (p=0.945)였다. 술 전 1군은 18예에서 중등도 이상의 대동맥 판막 역류증을 보였고, 17예에서 우종이 관찰되었으며, 동반 질환으로 심실 중격 결손증 2예와 동맥관 개존증 1예가 있었다. 2군은 19예에서 중등도 이상의 승모판막 역류증을 보였고, 18예에서 우종이 관찰되었으며, 동반 질환으로 심실 중격 결손증이 1예 있었으며, 1예에서 심방 세동으로 Microwave를 이용한 Maze 수술을 동시에 시행 받았다. 1군은 모두 자가 판막 심내막염이었으며, 7예에서 이엽성 대동맥 판막 소견을 보였으며, 2군은 인공판막 심내막염 2예, 승모판막 성형술 후 발생한 심내막염이 1예였다. 혈액 배양 검사상 1군은 11예(44.0%)에서 원인균이 동정되었으며, 2군은 10예(43.3%)에서 원인균이 동정되었다. 수술 직후에 심장 초음파를 시행하였으며, 이후 1년 간격으로 심장 초음파를 추적 검사하였다. 평균 추적 관찰 기간은 $37.2{\pm}23.5$ ($9{\sim}123$)개월 이었다. 결과: 수술 후 합병증으로 1군의 3예에서 저심박출증이 있었으며, 2군에서 출혈로 인한 재수술 1예, 저심박출증 1예가 있었다. 1군에서 수술 1일 후 뇌출혈로 인해 신경외과 수술을 받았으나 사망한 1예가 있었으며, 2군에서는 수술 사망률은 없었다. 1, 3, 5년 판막 관련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을 확률은 1군은 각각 92.0%, 88.0%, 88.0%였으며, 2군은 91.3%, 76.0%, 76.0%였다. 수술 후 1, 3, 5년 생존율은 1군에서 각각 96.0%, 96.0%, 96.0%였으며, 2군은 각각 100%, 84.9%, 84.9%였다. 결론: 대동맥 판막만을 침범한 감염성 심내막염 환자의 수술적 치료는 만족할 만한 임상 결과와 중, 단기 결과를 보여 주었다.

과시된 효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 연구 (Showing Filial Piety: Ancestral Burial Ground on the Inwangsan Mountain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재호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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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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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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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덕수5520)는 그림과 발문(跋文) 열 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으로, 작가는 조중묵(趙重黙)(1820~1894 이후), 주문자는 박경빈(朴景彬)(생몰년 미상), 발문을 쓴 사람은 홍선주(洪善疇)(생몰년 미상), 제작연대는 1868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낱장으로 보관되어 온 <인왕선영도>를 병풍으로 복원하고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최초로 공개하였다. <인왕선영도>에는 오늘날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을 아우르는 인왕산 서쪽 실경이 묘사되어있고 원경에는 북한산 연봉이 그려져 있다. 화면 속에는 인왕산(仁旺山), 추모현(追慕峴), 홍재원(弘濟院), 삼각산(三角山), 대남문(大南門), 미륵당(彌勒堂)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있다. 이 지역을 나타낸 조선후기 지도와 비교해보면 지형 표현과 지명 표기에 유사성이 있다. 조중묵은 넓은 공간을 포착하기 위해 지도의 지리정보를 숙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경의 현장을 답사한 결과, 조중묵은 각각의 경물을 과장하거나 생략하였고 수평의 화면에 나열식으로 조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조중묵은 남종화풍 정형산수에 뛰어났던 화가로, <인왕선영도>의 세부 표현에서 사왕파(四王派) 화풍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도화서 화원들이 화보를 활용하여 가옥을 그리거나 토파에 호초점을 찍고 당분법(撞粉法)으로 꽃을 나타내는 등 장식적인 화풍을 구사한 경향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인왕선영도>에는 바위를 짙은 먹으로 쓸어내리듯 붓질한 기법, 산세의 괴량감, 가로로 붓을 대어 단순하게 그린 소나무 등 18세기 정선(鄭敾)(1676~1759)의 개성적 양식도 가미되어있다. 조중묵은 인왕산 실경산수로 유명한 정선의 양식과 권위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유기적 공간감과 현장의 인상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연폭 화면이라는 매체도 조중묵의 개인 양식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왕선영도>는 발문의 텍스트와 화면의 이미지가 잘 조응하는 작품이다. 발문의 내용을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①무덤의 주인공과 이장 경위, ②무덤의 입지와 풍수, ③묘제(墓祭)와 신이(神異)한 응답, ④무덤 관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협력, ⑤병풍 제작의 동기인 박경빈의 효성과 수묘(守墓), ⑥발문을 쓴 의의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화면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용이한 ②의 내용은 화면에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인왕선영도> 제작의 직접적 동기인 ⑤를 보면 주문자 박경빈이 "무덤이 마치 새롭게 단장한 것 같이 눈에 완연하다."라 하여 <인왕선영도>에 만족했음을 알 수 있다. 경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듯 나열한 구도는 회화미는 떨어지더라도 무덤의 풍수지리를 전달하는 데는 더 적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상당수의 산도(山圖)는 18세기 이후 제작된 목판본 선영도로서, 족보와 문집에 수록된 경우가 많다. 16~17세기의 기록에서는 족자 선영도를 첨배(瞻拜)의 대상으로 삼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선영도 첨배는 현실적으로 수묘(守墓)가 곤란할 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의례로 인정되었다. 한효원(韓效元)(1468~1534), 조실구(曺實久)(1591~1658) 등이 선영도를 제작한 후 당대의 명사에게 서문을 요청하고 효심을 과시한 사례는 <인왕선영도>의 선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정처사유거도(石亭處士幽居圖)>(개인 소장),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국립중앙박물관) 등은 선영도는 아니지만 계회도 형식의 족자이고 풍수를 도해했다는 점에서 17세기 선영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인왕선영도>는 첨배라는 측면에서 초상화와도 의미가 비슷했다. 발문의 "부친의 기침소리를 직접 접하는 듯하고, 그 태도와 몸가짐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는 표현과 부친의 초상에 조석 문안을 올린 서효숙 고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박경빈이 일반적인 선영도 형식이었던 족자나 목판화 대신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를 주문한 의도는 분명히 알기 어렵다. 19세기에는 민간에서도 사례(四禮) 의식에 다수의 병풍을 배설(排設)하였는데, 의례의 성격에 따라 그림의 주제를 반드시 구분하여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인왕선영도> 또한 여러 의례에 두루 배설하거나 장식 병풍으로도 사용하기 위해서 선영 그림이라는 주제를 실경산수화 이미지 아래에 가렸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왕선영도>의 핵심 소재인 무덤 봉분이 모호하게 처리된 것은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제 위반을 숨기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다. <인왕선영도>에 묘사된 인왕산 서쪽 산기슭은 분묘 조성 금지구역이었다. 1832년에 금표 내에 몰래 쓴 묘를 적발하여 즉시 파내고 관련자를 엄히 처벌한 사례로 볼 때, 19세기 중엽까지도 사산금표 내의 분묘 금제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장지를 얻기 위해 쏟은 정성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장지조성에 마을사람들의 협조와 묵인이 필요했던 것은 금표 구역 내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인왕선영도>와 비교 가능한 동시대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로 이한철(李漢喆)(1808~1880)이 그린 <석파정도(石坡亭圖)>(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를 들 수 있다. <석파정도> 제작시기를 전후한 1861년에 이한철과 조중묵은 철종어진도사에 함께 참여하였으므로 조중묵이 이한철의 <석파정도> 제작 과정을 보았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조중묵이 몇 년 후 <인왕선영도>를 주문받았을 때 <석파정도>의 인상적인 연폭 실경산수를 본 경험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작품의 화풍 차이는 주문자의 취향과 제작 목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는 실경산수화와 선영도의 중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관람자의 지식수준과 주문자와의 친분, 관람에 들이는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자호, 본관이 일체 작성되지 않은 채 '박공(朴公)'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주문자인 박경빈의 인적 사항도 파악할 수 없었으나 다만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가계를 미루어 볼 때 재력이 있음에도 지배계층으로 올라설 수 없는 신분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발문을 쓴 홍선주 또한 사대부로 보기 어려우며, 『승정원일기』 기록에 나타나는 경아전 서리일 가능성이 있다. 박경빈은 상류 계층에 진입하고 싶은 욕망으로 보수적인 가치인 효(孝)를 강조하여 부친의 무덤을 명당으로 이전하고 <인왕선영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금제위반 적발에 대한 우려, 병풍의 다목적성 등의 이유로 본래의 제작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모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병풍이 제작된 지 47년 만에 각 폭이 분리된 채 미술상을 통해 이왕가미술관 소장품이 된 상황을 보더라도, 박경빈이 <인왕선영도>에서 꿈꾸었던 명당 발복과 가문의 신분상승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