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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백선도(百扇圖)의 새로운 제작경향 -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 <백선도(百扇圖)>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선도(百扇圖) 초본(草本)>을 중심으로 - (New Trends in the Production of One Hundred Fans Paintings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One Hundred Fans Painting in the Museum am Rothenbaum Kulturen und Künste der Welt in Germany and Its Original Drawings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권혜은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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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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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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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논고는 19세기 이후 형성된 서화(書畫)의 유통과 확산의 양상을 당시 활발히 제작된 장식병풍 중 하나인 <백선도(百扇圖)>의 예를 통해 살펴본 글이다. 백선도는 화면에 다양한 형태의 부채를 겹쳐서 배치하고 각각의 선면(扇面) 안에 여러 종류의 화제(畫題)를 그린 것을 말한다. 부채와 선면화(扇面畫)라는 소재는 이전부터 존재하였지만 장식용 회화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이후로, 호사취미 경향을 반영하여 주로 병풍(屛風)으로 활발히 제작되었다. 지난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에서 독일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 <백선도>가 새로이 소개된 바 있다. 6폭으로 구성된 이 병풍에는 한 폭 당 5개 이상의 다양한 종류의 부채들이 등장하고 각 부채 면에는 단순히 채색한 것 뿐 아니라 다양한 화목(畫目)의 그림들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동일한 초본(草本)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전의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향유하였던 서화(書畫)는 민간으로 확산되었고 시장을 통한 유통의 단계로 넓어졌다. 집안을 꾸미고 장식하는 풍조에 따라 화려한 장식그림들이 선호되었고, 한 폭에 다양한 형태의 화면과 다채로운 畫目(화목)의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 백납도병풍 제작이 성행하였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한국 컬렉션의 상당수는 독일 주재 조선국 총영사이자 독일의 사업가였던 하인리히 콘스탄틴 에두아르 마이어(Heinrich Constantin Eduard Meyer, 1841~1926)의 수집품이다. 그는 1890년대 후반부터 1905년까지 조선과 독일을 오가며 다양한 유물들을 수집하여 독일에 돌아가 1909년까지 순차적으로 수집품을 로텐바움박물관에 전달하였으며, <백선도>도 그 중 하나이다. 새롭고 장식미가 돋보이는 <백선도>는 조선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납도>는 제2폭의 뒷면에 "동현(銅峴)"이라는 지명이 적힌 종이조각이 거꾸로 붙어있어 흥미를 끈다. 동현은 지금의 서울 을지로 1가와 을지로2가 사이에 위치했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화서(圖畫署)를 비롯한 혜민서(惠民署)·장악원(掌樂院) 등의 관청과 시전(市廛)이 있어 가내수공업이 성하던 지역이었다. 실제로 1900년대 초 이곳에는 서화를 유통하는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마이어가 수집했던 서화들의 구입처가 동현에 위치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는 총 6폭의 병풍으로, 1980년대에 한국 서화 소장품들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선도 초본>은 1945년부터 1950년 사이 국립민족박물관에 입수된 작품이다. <백선도 초본>은 총 7점으로, 7점 중 6면 화면의 여백에 화면의 순서까지 정해져 있어 본래 총 8폭 병풍용 초본임을 알 수 있다. 한 화면에는 5개 이상의 다양한 접선(摺扇)과 단선(團扇)들이 배열해있는데, 작은 장식에서부터 부챗살의 문양까지 초본부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석간주(石間朱)', '홍(紅)', '묵(墨)', '청(靑)' 등과 같이 부채에 들어갈 색 대부분을 지정하고, 빈 부채에는 '유(油)'라고 적거나 비워두었으며 이 중 10개의 부채에는 화훼초충도(花卉草蟲圖)나 고사인물도의 밑그림이 남아있다. 이를 실제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와 비교하면 화면의 크기와 비례까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어, 초본의 매뉴얼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펼쳐진 부채 면에는 산수, 고사인물, 화조, 영모, 초충, 어해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화접도(花蝶圖)나 어해도(魚蟹圖) 등은 19세기 유행하였던 소재로 당시 화단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김홍도(金弘道)의 전형적인 화풍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백선도나 백납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작은 화면에 그려야 하는 백납도나 백선도의 특성상 잘 다루지 않는 소재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병풍과 화면의 구성이나 화풍 모두 매우 흡사하다. 더구나 <백선도>병풍의 몇몇 장면은 김홍도의 작품 중에서도 1796년작 《병진년화첩(丙辰年畫帖)》과 유사한 화면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사인암(舍人巖)>과 흡사한 산수도(山水圖)를 비롯하여 <서원아집도>, <쌍치도(雙雉圖)> 등에서 김홍도 화풍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부채 속 그림을 그린 인물은 김홍도 화풍의 영향을 받은 직업화가일 것으로 보이며, 작가는 《병진년화첩》을 직접 감상한 적이 있거나, 서화시장에 《병진년화첩》을 베껴 그린 부본(副本)이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까지 알려진 병풍으로 된 백선도는 10점 내외인 것으로 파악되며, 이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화면의 구성이 부채 1개 정도 차이가 있거나 비례와 좌우가 바뀌었을 뿐 화면구성이 매우 유사함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일정한 패턴의 화면구성은 같은 시기 민간에서 성행한 책가도(冊架圖)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19세기 서화의 수요층이 넓어짐에 따라 세밀한 표현과 화려한 장식성이 요구되는 회화들의 대량 제작을 위한 초본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도안이 복잡하여 범본이 필요한 곽분양행락도나 요지연도, 백동자도, 해학반도도 등의 규모가 큰 장식병풍에서 적극 활용되었으며, 실제 남아있는 작품에서 몇 가지의 도상들이 반복하여 등장하고 있어 초본을 참고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시장의 수요에 맞추어 대량 제작할 수 있는 초본 활용이 성행했던 당시의 경향은 화면을 다채로운 부채들로 채우고 그 부채 면에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려야하는 백선도 제작에 있어서도, 초본을 요긴하게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테두리를 그은 후 다양한 화목의 그림을 담는 백납도에 비해 백선도는 다양한 형태의 부채들을 먼저 그려야하는 공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대량 제작이 어렵고 그만큼 남아있는 작품이 상대적으로 적은 원인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 병풍과 국립중앙박물관 <백선도 초본>은 새로운 화풍이 수용되어 시도되었던 조선 말기 화단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다수의 백선도들이 박기준의 작품과 유사한 화풍과 화면 구성 보이는 것에 비해, 김홍도의 영향이 분명히 드러나는 매우 이례적인 예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더욱 심층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칠곡 심원정원림의 공간구성과 경관특성 - '심원정 25영(心遠亭 二十五詠)'과 「심원정수석기(心遠亭水石記)」를 중심으로 - (Spatial Composition and Landscape Characteristics of Shimwon-Pavilion Garden in Chilgok - Focusing on 'Shimwon-pavilion Poem of 25 Sceneries' and 「Shimwon-pavilion Soosukgi(心遠亭水石記)」 -)

  • 김화옥;박율진;노재현;신상섭;조호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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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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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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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기헌(寄軒)집"에 실린 "심원정수석기(心遠亭水石記)"의 '심원정 25영'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기헌 조병선에 의해 조성되고 향유된 칠곡 심원정원림의 공간구성과 경관특성을 고찰한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심원정원림은 북쪽으로는 송림이 있는 '임수형(林藪型)'이자 원림 내부로 구야천이 흐르는 '계류형 별서원림'의 입지 특성을 공유하며 본제(本第)와는 직선거리로 약 400m 이격되어 있다. 2. 북쪽에는 가산(假山)인 학림산을, 동쪽과 서쪽에는 만경류를 올린 취병(翠屛)을, 남쪽으로는 구야천변의 석벽(隱屛)을 포치시키는 등 사방에 '가림'시설을 조성함으로써 위요공간 속에 은일을 추구한 기헌의 정신을 표출하고 있다. 3. 심성을 수양하는 선비의 소우주이자 거처로 조성되고 향유된 심원정원림은 송림사의 경역 내에 위치함으로써 불교사상을 수용하며, 도연명의 전원사상과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이백의 낭만주적 감성을 통한 도가적 삶의 추구 그리고 주자의 성리학적 가치를 실현하는 통섭(統攝)의 장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4. 심원정 25영 중 5영은 정운루 암수실 위류재 이열당 등의 용도가 다른 부속실과 이를 아우르는 정각인 '장수지소(藏修之所)' 심원정에 의탁되었으며 외원에 부여된 20영은 자연에 이름을 붙인 것 9개, 조성한 것 11개로 나뉘며, 자연에서 얻은 9영은 "석경기"에 기술된 바를 바위에 각인시켰다. 5. 현존하는 실내경물 4영은 편액으로, 원림내 경물 중 5개소는 바위글씨로 그리고 8개소는 표지석으로 각 경물이 인식되도록 의도했으나, 8개 영의 표식은 유실 및 훼철 등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6. 심원정 25영 중 '괴강(槐岡)'에는 학자수를 상징하는 회화나무, '유제(柳堤)'에는 도연명과 줄기찬 생명력을 상징하는 버드나무, '기천(杞泉)'에는 '가족의 단란함'을 상징하는 구기자나무 그리고 '동 서취병(東 西翠屛)'과 '방원(芳園)'에는 만경류와 초본류 등 다채로운 의미를 담는 식물경관이 등장한다. 또한 폭포(은폭(隱瀑)), 소(군자소(君子沼)), 못(양지(湯池)), 샘(기천(杞泉)), 바위를 가운데 두고 갈라 흐르는 물(반타석(盤陀石)) 그리고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수구암(水口巖)) 등 다채로운 수경관이 기도되었다. 7. 심원정원림은 수계 인접형 원림임에도 불구하고 11개 영을 직접 조성하는 등의 적극적인 개입이 두드러진다. 기존의 여타 정자원림이 가깝고 먼 곳에 자연 중심의 경(景)과 곡(曲)의 경물 설정에 충실한 곳이었다면, 심원정원림은 정자를 시점으로 의미 강화된 경물을 취경(聚景)하도록 유도된 적극적인 수경(修景)이 두드러진다.

선유(船遊)와 유산(遊山)으로 본 정수영(鄭遂榮)의 《한임강유람도권》 고찰 (A Study on Jeong Su-yeong's Handscroll of a Sightseeing Trip to the Hangang and Imjingang Rivers through the Lens of Boating and Mountain Outings)

  • 한상윤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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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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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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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논문은 지우재(之又齋) 정수영(鄭遂榮)(1743~1831)의 《한임강유람도권(漢臨江遊覽圖卷)》이 한양 근교 지역의 여러 곳을 선유(船遊)와 유산(遊山) 여행하면서 화가의 주관적인 시각이 잘 담긴 사적인 여행 기록이라는 점을 밝힌 연구이다. 이 작품은 정수영이 1796년 무렵, 각 지역을 여행하고 총 16m 길이의 긴 화권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독립된 경관으로 나뉜 작품을 긴 두루마리의 형태로 계속 이어 붙인 점은 《한임강유람도권》이 특별한 여행이 아닌 여행에서 마주한 주관적 경험을 담았음을 보여준다. 《한임강유람도권》은 장소에 따라 선유와 유산의 두 가지 여행 형태로 구분된다. 선유 여행 지역은 넓게 한강과 임진강 수계에 포함되며, 유산 여행 장소는 북한산과 관악산 일대, 도봉산 지역이다. 정수영은 넓은 범위의 장소를 한 번이 아닌 여러 번에 걸쳐서 여행했음이 확인된다. 특히 한강 수계의 장소에서 그려진 순서가 실제 위치와 다른 점은 이곳이 다른 시간대에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한강변 및 남한강변은 두 차례에 걸쳐 여행한 후, 제14장면까지 그렸다. 이 중 1차 선유 여행은 첫 장면에서 제8장면까지, 2차 선유 여행은 제9장면부터 제14장면까지인 점이 확인된다. 화권의 전체 길이 상 절반을 차지하는 양으로 한양에서 가까운 근교 지역이 많이 남겨진 것을 알 수 있다. 한강 수계의 1차 선유 여행은 잘 알려진 곳보다 자신의 여행 과정에서 눈으로 직접 마주한 풍경을 표현하였다. 용문산이나 청심루, 신륵사와 같이 여주 팔경에 속하는 곳도 그렸으나 흔히 명소를 표현하는 방식이 아닌, 자기의 눈에 들어온 잘 그려지지 않았던 장소를 수평시점으로 묘사하였다. 2차 선유 여행에서는 친구의 별업을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한 순간을 담았다. 이에 더해 1차 여행에서 그린 청심루와 신륵사를 시점과 구도를 달리해 표현하였다. 정수영은 이미 그린 장소도 다른 시점과 각도에서 그리고자 했다. 한강 수계의 1, 2차 선유 여행은 길을 그대로 표현한 곳이 많아 현장감 있는 표현이 돋보이며, 배에서 경물을 수평적 바라보는 정수영의 시선이 잘 느껴진다. 임진강 수계에서는 영평천과 한탄강의 장소가 먼저 그려지고, 화권의 가장 마지막 부분은 임진강 물길에 있는 곳이 그려졌다. 이곳은 다양한 시점으로 표현되었는데, 여기서만 나타나는 특징적인 점이다. 정수영은 영평천에 있었던 장소에서 이어지는 물길의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 부감시점으로 표현했지만, 백운담에서 수평시점으로 바위의 모습을 나타낸 것은 바위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에 따라 자유롭게 시점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탄강변에 위치한 화적연은 주변의 모습과 바위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부감시점이 사용되었다. 임진강변에서는 우화정 주변의 모습이 부감시점과 파노라마 형식으로 잘 드러나며, 이보다 상류에 위치한 토산의 삼성대와 낙화암은 위로 올려다보는 시점[앙시(仰視)]으로 표현되었다. 유산 여행의 장소에서는 주로 정자와 암자가 그려졌다. 먼저 북한산의 재간정은 한강 수계의 선유 여행 경로와 이어지지 않으며, 다른 유산 여행과도 화권에서 분리되어 있기에 이전까지 정확한 장소가 밝혀지기 어려웠다. 필자는 한양 근교 중 재간정이라는 이름을 찾아 북한산 우이동구곡 중 한 곳과 손가장의 재간정으로 추정해보았다. 몇몇 기록들의 재간정에 대한 묘사가 비슷한 것은 두 곳 모두 북한산의 계곡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관악산 일대는 취향정과 일간정 두 정자와 관악산 줄기인 검지산이 그려졌다. 일간정은 관악산에서 잘 알려진 신위의 정자였으나, 정수영은 신위와 연관시키지 않고 객관적인 지리정보만 표기하였다. 취향정과 검지산에서는 담장이 묘사되어 있다. 정수영은 담장을 그리면서 <취향정>에서는 담장 안을 주제로, <검지산>은 담장 밖을 중심으로 다르게 그렸다. 도봉산에서는 망월암과 옥천암 두 암자를 담았다. 이 부분도 어느 곳을 그린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임천상의 『궁오집』을 통해 도봉산을 그린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화가들이 그린 도봉산은 도봉서원과 만장봉을 부각시켜 드러낸 것에 반해 정수영은 암자 두 곳을 표현했다. <망월암>에는 영산전과 천봉탑비가 그려지고, <옥천암>에서는 대웅전이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정수영은 화면에 암자 건물과 함께 도봉산의 봉우리 모습을 그렸으나 봉우리의 명칭은 적지 않았다. 이를 통해 도봉산의 봉우리를 배경으로만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 간취된다. 《한임강유람도권》은 정수영의 개인적인 시각이 잘 반영되어 있으며, 그가 지나온 여행의 흔적들을 담고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