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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키치론 비판 (Criticism on Anti-Kitsch Theory)

  • 김주현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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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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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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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논문은 그린버그, 카플란, 칼리니스쿠를 중심으로 반키치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를 통해 반키치론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반키치론은 근대 미학에서 '예술' 개념의 내포적, 외연적 기준에 근거하여 키치를 비판한다. 이들은 키치가 사심 없는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쾌적함과 감상성을 추구하므로 나쁜 취미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반키치론의 기초 개념인 '사심 없는 즐거움'과 '미적 판단의 보편성과 필연성'은 문화중재자의 편향성을 가정한다. 또한 미적/반성적 예술과 쾌적하고/감상적인 키치 개념을 분류하는 기준은 모호하다. 반키치론자들은 개념 논증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경제적, 정치적 논거를 추가한다. 이들은 키치의 미적 부절적성을 증명하기 위해 과시적 소비와 정치적 우민화를 키치 평가의 논거로 제시하지만, 변화하는 문화 환경 속에서 대중들의 요구가 반영된 다양한 양태의 키치를 공정하게 다루지 못한다. 결국 반키치론자들은 엘리트주의와 형식주의 미학만을 제한적으로 승인하면서 키치에 대한 폄하를 계속한다. 예술의 죽음 이후 포스트예술 시대의 변화된 문화적 실천은 키치에 대한 재평가와 더불어 대안적 대중 미학을 필요로 한다.

북인(北人) 학파의 연원과 사상, 그리고 현실인식 (The Origin and Philosophy of the "Northerners School(北人)," and their Perception of the world)

  • 신병주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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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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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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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중기 북인의 모집단을 형성하는데 주축이 되었던 학파는 남명학파와 화담학파였다. 경의(敬義)의 실천을 강조한 남명의 사상은 임진왜란 때 다수의 의병장을 배출하였고, 광해군대 정인홍이 북인의 영수로 활약하면서 그 사상이 이어졌다. 이외에 성리학을 절충적으로 이해하고 개방적 성향을 보인 화담의 사상이 북인 학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광해군대에 북인이 정국을 운영할 때 실천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성리학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유스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에는 남명이나 화담의 사상적 영향력이 크다고 판단된다. 대북(大北)의 정인홍과 허균, 소북(小北)의 김신국, 남이공 등은 북인의 사상과 현실인식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인물이었다. 1623년의 인조반정이후 사상계가 퇴계학파나 율곡학파가 주축이 된 주자성리학 흐름으로 정착되면서 북인(北人)의 사상은 시대의 주류적 흐름에서 밀려나게 된다. 정치사상에도 자파(自派)만이 군자당(君子黨)이라 확신하고 타 정파에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 점 또한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17세기 중반 인조반정과 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사상계가 주자성리학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북인(北人)의 사상은 역사의 전면에서 밀려나 저류적인 흐름으로서 그 역사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북인(北人)의 사상은 17세기 중, 후반 근기남인 학자들이나 18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 흐름이 일부 이어졌다. 북인은 조선중기 서인, 남인과 함께 정치, 사상을 이끌어간 대표적인 정파이자 학파였다. 최근 북인의 뿌리가 되는 조식과 서경덕에 대한 연구를 비롯하여, 북인 정치사상의 계승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조선중기 이후 정치사와 사상사 연구의 폭을 보다 확대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