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전라북도 내 5대 정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며 '호남제일정'이라 일컫는 정읍시 태인면에 위치한 피향정 일원의 입지 및 공간구성에 관해 고찰한 바, 집약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1. 피향정의 조영은 신라 헌강왕대 최치원이 이곳을 소요하며 풍월을 읊었다는 구전이 전할 뿐 창건기록은 전무하다. 다만 1618년 이지굉이 초라한 건물을 확장하였고, 1664년 박숭고 1715년 유근의 중수기록이 전한다. 2. 피향정의 입지는 태인면 북쪽의 성황산(189m)과 동쪽의 항가산(106m) 및 남쪽의 태산(33m)을 비롯하여, 북서쪽의 평야로 이루어진 북고남저(北高南低) 지형으로,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국임을 파악하였다. 3. 피향정 일원의 공간구성은 하연지(下蓮池)를 향해 피향정이 남남서(SSW)향으로 세워졌으며, 피향정 누상으로의 진입은 동서(좌우)의 석계(石階)로 접근토록 계획되었다. 4. 피향정 일원의 건축물은 '객관의 누정인 피향정 연지의 함벽루 관리인 시설' 등이다. 피향정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장방형 건물이며, 함벽루는 1918년 목조 2층 단청누각으로 초창 후 1971년 장방형 목조와즙 단층 5칸 팔작지붕집으로 개조하였다. 이후 2010년 육각정으로 신축되어 원형과는 전혀 다른 외관임을 파악하였다. 5. 피향정 일원의 점경물은 피향정 경내의 총 21기의 비석군과 피향정을 둘러싼 160m 전통한식 막돌담장을 확인하였고, 맞배지붕 일각문으로 3문 형식을 띤 3개의 출입문과 피향정일곽 외부의 동편에서는 하마석이 확인되었다. 6. 피향정 일원의 수경관은 관아인근의 자연못의 물을 끌어들이고 그 주변에 누정을 건립한 대표적 예이다. 7. 피향정 일원의 식생은 일곽경계에서는 느티나무, 남측 소공원에서는 느티나무 배롱나무 반송 소나무 영산홍 자산홍 잔디 등이, 하연지 상의 함벽루에서는 느릅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등이 양호한 생육상태로 확인되었다.
본 연구는 기문과 시문이 장소성의 함의와 원형경관의 유추 및 향유양상을 탐색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전제로 임실 만취정의 원래 위치 및 이건된 위치에서 입지 및 원형경관을 탐색하고 그 의미를 추론하였다. 임실 만취정의 이건 전 후의 장소적 가치와 원형경관 보존을 위해 시도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자의 당호 만취(晩翠)는 작정자 김위가 자신의 호로 삼았으며, 소나무를 마주보게 심고 만취라 편액하였는데, 시문에 근거하면 푸른 소나무와 같은 꿋꿋한 기개를 상징하고 있다. 특히 정자에 내재된 의미와 도입된 상징식물 등을 살펴보았을 때 당호는 절개, 가문의 장생, 생명력 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둘째, 만취정은 풍수적으로 강 건너 제비형국과 마주한 사두형에 자리잡아 팽팽한 균형을 갖고 있어 절개와 가문 번영을 염원하는 장소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 이건된 만취정은 풍수적 복치형(伏雉形) 형국으로 해석되는데, 학문과 가문 번영에 대한 계승노력이 전승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셋째, 만취정은 1572년에서 1582년 사이에 건립되었으며, 이건은 1880년대 말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넷째, 만취정은 변치 않는 절개와 가문번영의 염원을 장소적 언어로 대입시켰으나 후손들에 의해 만취 김위의 묘 옆으로 이건 됨으로서 조상 추모, 후손 학문번영이라고 하는 가치이동 양상이 추적된다. 다섯째, 이건된 만취정은 온돌방에 비중을 둔 사계절 활용, 공간 확장성을 고려한 툇마루, 주련의 내용 등으로 볼 때 강학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공유, 전승한 것으로 추론된다. 여섯째, 제영시에 나타난 소나무, 연못, 식물, 계곡, 시냇물 등을 통해 절개, 지조, 깨긋한 심성, 유유자적한 삶, 자아성찰, 인생무상 등의 의미가 투영되는 경관향유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십영의 제영 언어는 원운과 차별성이 인정되지만 의미나 감흥을 통해 원운십영이 지닌 원형경관 향유양상은 전승되고 있는바 관련 시문분석에 따른 경관탐색은 원형경관 보존 및 활용을 위한 근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The bureaucrat-scholars, ruling class of the Choseon Dynasty, used to build small private pavilions for rest and study for themselves. In the early period of the Dynasty, the pavilions had plain shapes with rectangular plan and simple wooden structure without any walls so as to enjoy the surrounding scenery. From the 16th century, the building form began to change into some diverse one by putting in an ondol room, an unique floor heating equipment. The pavilions also began to show regional differences by placing the ondol rooms in the floor. Myonang-jong, a pavilion occupied by a famous bureaucrat-scholar Song Soon, was built at Damyang of the southwest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so called Honam area, in 1533. At first, the building form followed the ordinary early pavilion shape using simple wooden structure and wooden floor. But when it was rebuilt in 1654 after burning down by war, there happened some changes. An ondol room was put in the center of the floor, of which regarded as a dominant regional characteristic of the Honam area. The change of the building form of Myonang-jong showed that it was the 17th century Honam area got the regional characteristic in the architecture of pavilion.
This study analyzed the characteristics of spatial expression in the Barcelona Pavilion to be based on tectonics. Mies pointed out the image of materiality about the material rather than the process of tectonics using the material, and he also expressed demateriality in the image of each material through the reflection. To be liberated from structural matters, the wall has been introduced. He intended to show the design plan as the independent structural system, however, the wall actually seems to be supporting the roof that shows rather clearly self-contradictory because of the expression of materiality in the material. In terms of architectural elements; wall, roof, column, floor, and so forth, tectonic expression and abstract aesthetics stands face to face, because of hiding the productional process and transforming to line and surface in the image of materiality. The interior of the glass wall seems fairly closed space from the exterior, because materiality and reflection of materials of columns and podium. The character of experiential space is inconsistent and fragmentary because of the splendid images from maternality and reflection on the wall, and collision with the reality and the image the wall reflects, even though the geometrical space of the Pavilion's plan has the mutual penetrability and organic character.
Gorji, Asal Akbari;Nasiri, Seyed Amin Mortazavi;Mohammadi, Fatemeh Ali;Ghanbarnia, Hosein
Computers and Concr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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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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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19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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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Population growth in cities increases the need for service facilities and different urban spaces, and the organism of the city undergoes profound changes. One of the main problems that endanger the physical environment of the city due to this turmoil is the lack of public spaces and cultural complexes that increase individual and social pollution and on the other hand make leisure facilities available to the public. It severely limits people and, ultimately, the flourishing of individual and social artistic tastes. Thus, dealing with an issue called cultural complex has special importance and is one of the most basic categories in the field of architecture and urban planning, so dealing with it must be done in a measured, comprehensive and accurate manner. Cultural shock results from the immersion of an unprepared traveler in a foreign culture. In other words, human connection with people, objects, places, organizations and institutions, thoughts and the world of information will be constantly becoming more unstable and diverse. As a result, there is a need to create places for information or, in a central sense, to acquire up-to-date knowledge that requires information in the fields of human individual and social life. Spaces and places are all kinds of media tools from gramophone records to cassettes, CDs, newspapers, magazines, Internet books, etc. Each person can use them according to his needs and work.
본 연구는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주변을 대상으로 사료 분석과 현지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과거의 식재 원형과 식생 관리방안은 도출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석천지(石泉誌)"에 의하면 청암정 주변에는 소나무, 잣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의 교목류와 모란, 작약, 철쭉, 장미, 국화, 연꼿 등의 화목류가 심겨져 있었으며, 석천정사 주변에는 회양목, 대나무, 단풍나무, 복숭아나무, 다래, 작약이 식재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청암정과 석천정사 주변은 사시가경(四時佳景)을 즐기는 완상의 목적 뿐 아니라 다양한 상징성과 의미를 가지는 식재 경관을 연출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사료에 나타난 당시의 식재 현황은 차후 청암정과 석천정사와 주변 계곡의 식생 정비와 관리시 매우 유용한 준거(準據)가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조선 후기의 식재 양상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 둘째, 청암정과 석천정사 주변은 "석천지"에 묘사된 대로 식재 경관을 유지해야 할 것이며, 석천계곡의 소나무 군락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므로 소나무군락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외래수종과 낙엽활엽수를 제거하는 등 지속적인 관리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는 누원(樓園) 조성의 관점에서 광한루원의 경관변화양상을 파악하고자 관련 문헌을 바탕으로 공간구조 중심의 변화과정을 4시기의 공간변화로 구분할 수 있었으며, 현존하지 않거나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는 경관요소를 설화나 소설에서 나타나는 상상환경에 도입하여 도식화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광한루가 처음으로 조성되는 시기는 광한루(廣寒樓)의 전신인 광통루(廣通樓)가 조성되는 기간으로, 작은 개울을 근경으로 그 일대의 지리산을 원경으로 하는 등 경관이 수려한 장소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헌을 통해 광한루는 광통루의 경관을 그대로 계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 광한루가 원(園)의 성격을 가지는 시기는 1582년 이후로. 신선사상이 반영된 이상세계 구현을 위하여 삼신산을 조성하고,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를 조성하였다. 셋째, 광한루원이 복구되는 시기는 정유재란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기간으로 광한루원의 원형을 회복하는 과정은 매우 부분적으로 진행되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 당시 기록에서 나타나는 광한루원은 정유재란 이전의 경관을 계승하여 여전히 선경의 모습에 비유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넷째, 근대에 이르러 광한루는 춘향전의 배경으로 관광지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으며, 세 차례에 걸쳐 권역이 확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섯째, 광한루원의 각 시기별 변화양상은 광한루를 중심으로 외부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으나, 외부로 확장되는 요소는 관아누각인 광한루원의 진정성과는 무관한 시설이 다수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광한루원 일원의 주요 요소들이 설화와 소설 속에 내재된 상상환경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당시의 정원문화가 묘사되고 있는 것을 통해 문헌상의 한계로 인해 확인할 수 없었던 광한루원의 문화경관을 추정할 수 있었다.
제주의 관덕정은 군병들의 활터로 '활쏘기'는 물론 '말 타면서 활쏘기', '전쟁의 진법'까지 훈련하여 상무 정신을 고취시키고, 전쟁 대비를 위해 무예를 연마할 목적으로 1448년에 건립되었다. 또한 제주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인원이 운집할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각종 연회나 관아의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관덕풍림'과 같이 계절의 정취와 자연의 운치를 향유하는 장소였다. 이러한 장소성과 건축적 의미가 큰 관덕정이 17세기 건물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기에 건물 상인방 4면의 5가지 그림이 조선 후기의 그림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관덕정은 10여 차례 이상의 수리와 중수를 거쳤기에 벽화가 구체적으로 언제 처음 그려졌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현재의 벽화원형은(1976년 모사본 기준) 벽화의 도상과 양식으로 추정해보면 1850년(철종1) 재건, 1882년(고종19) 중수, 1924년 도사(島司) 전전선차(前田善次)의 보수, 1969년 10번째 중수 때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벽화 도상을 분석하여 제작 시기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즉, 최초 <호렵도>가 18세기 이후 그려지기 시작한 점을 비롯하여 삼국지의 유명 화제인 <적벽대전>이나 한나라 때의 은일자를 그린 <상산사호>, 당나라 시인 두목의 이야기인 <취과양주귤만거>와 같은 고사인물도의 유행과 민화풍의 <십장생도> 등의 주제는 물론 그림의 구성, 인물의 무기와 복식, 산수 표현과 채색, 필법 같은 세부적인 사항도 관덕정의 벽화가 19세기 말경에서 20세기 전반기에 그려진 작품임을 방증한다. 또한 당시 화단에서 유행하던 회화 주제나 양식과 관련이 깊어 1850년이나 1882년에 제작된 벽화가 1924년 보수와 1969년 중수를 거치면서도 벽화의 기존 내용과 형태를 보존·유지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관덕정의 벽화 주제나 구성 방식은 군사훈련이라는 건물의 목적과 기능에 적합하게 건물 중앙 좌우에 파노라마 형식으로 <적벽대전>, <호렵도>를 구성하고, 바깥쪽으로는 감계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제주의 관리가 지녀야 할 덕목인 은일과 입조 등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상산사호도>나 <취과양주귤만거>의 고사 인물도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또한 신선 사상과 장수를 상징하며, 궁중 행사나 장식화로 쓰이던 주제가 민간으로 확장되어 길상·벽사 기능이 강화된 <십장생도>를 표현하였는데, 이는 당인들의 지향을 반영하기 위해 전체적인 벽화 주제와 구성을 선택적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벽화의 산수가 제주의 명산인 '한라산'이라는 점, 높고 낮은 오름, 현무암 자연석 돌담 표현, 수많은 고사 중에 제주의 진상품이자 특산품인 '귤'을 주제로 한 두목의 고사를 채택하여 시각화한 점, 백록담의 흰 사슴 전설의 응용, 제사를 중시하는 유가적 관습이 남병산의 제사 장면으로 표현된 것 등은 모두 제주의 풍속과 자연환경, 생활상의 일부를 반영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본 연구는 문헌 및 현장조사를 통해 전북 남원 몽심재의 공간구성과 정원 조형언어의 특성을 고찰한 것으로 특히 정원내 존치된 거석과 연당내 바위글씨를 중심으로 한 분석과 해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당호(堂號) "몽심재(夢心齋)"에는 죽산(竹山) 박씨(朴氏) 중시조인 송암(松菴) 박문수(朴門壽)의 귀거래(歸去來)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선비정신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사랑마당에 조성된 연당(蓮塘)은 몽심재의 조영자 '연당(蓮堂) 박동식(朴東式)'을 상징하는 정원시설이며, 후원과 연결된 대나무동산은 몽심재 주인의 본관(本貫) '죽산'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데 이러한 의도는 화계(花階)를 통해 외원(外園)을 정원 내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있음에서도 엿보인다. 사랑채의 좌향은 축좌미향(丑坐未向)인데 비해 안채와 대문채는 서쪽으로 편향 배치시킨 것은 연당으로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하는 동시에 사랑마당에 존치된 거석으로 인한 폐쇄감을 완화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정원요소로 적극 활용된 3기의 거석에 음각된 바위글씨 '존심대(存心臺)'는 이곳이 남원 입향조 행촌(杏村) 박자량(朴子良) 이래 남원 홈실에 정착한 죽산 박씨가 '수심 양성의 터'임을 일러주며, '정와(靖窩)'는 몽심재의 3대 가주(家主) '정와 박해창(1876~1933)이 거처하는 편안한 집'임을 알리는 낙관(落款)으로 이해된다. 연당내 중도(中島)는 절삭(切削)된 정사각형 형태로, 수위에 따라 '섬' 또는 '디딤돌'의 2가지 용도로 활용되도록 고안되어 있으며 중도 측면에 새겨진 바위글씨를 통해 연당의 명칭이 '천운담(天雲潭)'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호안 마감석에 새겨진 바위글씨 '임리(臨履)'는 "시경(詩經)"의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항상 자신의 처신에 신중을 기하는 올곧은 선비가 되라'는 뜻을 함축하며, '정축(渟?)'은 죽산 박씨의 재화가 영원히 머물기를 희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덧붙여 '천창애(千蒼崖)'는 후원 화계와 연계된 대나무숲을 '하늘로 치솟은 푸른 대나무 숲 언덕'에 비유하는 것으로 '곧은 성정으로 욕심을 비우자'는 가주의 가치관이 담긴 것으로 판단된다. 궁극적으로 거석과 연당에 바위글씨는 몽심재와 주인 죽산 박씨가 올곧은 성정과 하늘의 도움으로 충만한 부귀를 지속하라는 염원을 담는 상징적 조형언어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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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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