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Neo Confucianism

검색결과 167건 처리시간 0.025초

周敦颐与阳明心学 (A Study on Zhou Dunyi and Yangming Xin-Xue)

  • 선병삼
    • 동양고전연구
    • /
    • 제67호
    • /
    • pp.327-344
    • /
    • 2017
  • Zhou Dunyi is regarded as a precursor of Li-Xue, which is called Neo-Confucianism. So, it could be say that Zhou Dunyi is a precursor of Song-Ming-Li-Xue. As is well known, Zhu xi is a synthesizer of Li-Xue in Song Dynasty, which is called Dao-Xue; Wang Yangming is a synthesizer of Li-Xue in Ming Dynasty, which is called Xin-Xue. Dao-Xue and Xin-Xue were engaged in an unyielding confrontation for many centuries in Asian areas. It is certain that Dao-Xue and Xin-Xue both succeed to the resources of Zhou Dunyi together, but it is not easy to confirm that the resources of Zhou Dunyi are common to both sides taking an unyielding confrontation into consideration. Usually, Zhou Dunyi is recognized as a Master of Dao-Xue rather than Xin-Xue. But in this paper, I try to give a question to this prevalent view, like this: Yang-Ming-Xin-Xue much absorbed and developed the Thought of Zhou Dunyi than Zhu-Xi-Dao-Xue did. In order to prove this assertion, I take two steps. The first is about Daotong, the second is about sincerity. In conclusion, while Wang Yangming build his own thought of moral philosophy, he fully absorbed Zhou Dunyi's thought of sincerity, and concreted his typical moral philosophy, which is Liangzhi-Xue. I could say that besides the viewpoint of Zhu xi, there is another viewpoint of Wang Yangming to understand the thought of Zhou Dunyi properly.

세계유산 정읍무성서원의 건축구성에 관한연구 - 강학영역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omposition of the World Heritage Jeongeup MuseongSeowon - Focusing on the Lecture Area -)

  • 김윤상
    • 한국농촌건축학회논문집
    • /
    • 제24권3호
    • /
    • pp.13-21
    • /
    • 2022
  • Seowon is an educational institution of Neo-Confucianism in the Joseon Dynasty and is distributed throughout the country. Such a Seowon has a certain form in the composition and arrangement of buildings. Korean Seowon were recognized as excellent for localization by transforming them according to the local environment. Therefore, it was registered as a World Heritage Site. Museongseowon is located in the village differently from the 8 registered Seowons. However, data and research on the location setting and architectural composition of MuseongSeowon are insignificant, so related research is needed. Therefore, in this study, the appearance of the period when MuseongSeowon was equipped with architectural formality was investigated. This study compared the appearance of MuseongSeowon in Chilkwong-do drawn in 1910 and the present appearance, focusing on the Ganghak area. As a result, the architectural composition of the Seowon was similar to the present appearance after the revision of the Gangdang area in Chilkwong-do. Therefore, the present architectural composition of the Seowon appears to be the same as before 1900. In addition, the location and appearance of Heunghakjae and Myeonamsa, which were currently lost in the Gangsujae area, were partially derived. It seems that seowon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village even after 1910. Also, since it is located in the village, the building seems to have a flexible spatial composition.

조선초기(朝鮮初期) 국왕의 차가변화(車駕變化)와 상로(象輅)·연(輦) (A Study on The Change of Royal Cart in Early Joseon Dynasty)

  • 신명호
    • 동북아문화연구
    • /
    • 제30권
    • /
    • pp.123-143
    • /
    • 2012
  • in the late 14th century, korean confucian literati, sinjinsadaebe(新進士大夫), tried to reform korean society in the base of neo confucianism. after Joseon Founding, korean confucian literati modified a lot of confucian ceremonies in order to substitute buddhist ceremonies. at first, they titled confucian ceremonies as "gyu sik(regulation manuals)", "Eui mun(ceremonial manuals)", and "Eui je(ceremonial manuals)". but in the end, they titled confucian ceremonies as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they also titled the reports on national occasions as "Eui gwe(Ritual Protocol Manuals)". among the confucian reforms, the most important reforms were auspicious ceremony. korean confucian literati tried to make perfect confucian auspicious ceremony. the first national achievement by confucian reformers was the five national rituals in annals of king sejong. and the second national achievement by confucian reformers was the five national rituals. the royal cart regulated in the five national rituals in annals of king sejong was cart decorated by ivory. but the royal cart regulated in the five national rituals was the sedan with cover. the reason of the change of royal cart were king sejo's political showmanship and diplomatic pretext toward ming(明) china. after the publishment of the five national rituals, the royal cart was represented by the sedan with cover.

주자학과 양명학, 그리고 '국학'의 형성 - 주체성과 실심(實心)의 계보학 - (Zhuzi Learning, Yangming Learning, and Formation of "Gukhak": Genealogy of Subjectivity and Silsim)

  • 김우형
    • 한국철학논집
    • /
    • 제58호
    • /
    • pp.307-336
    • /
    • 2018
  • 본고는 정인보의 '국학' 사상에 나타나는 주체성과 실심(實心, 참된 마음) 정신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하고 그 특징을 조명하였다. 근세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주체성과 실심이 주요 화두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송대(宋代) 신유학(新儒學)에서 비롯된다. 정이(程?)는 주체의식을 강조한 최초의 사상가이며, 주희(朱熹)와 왕양명(王陽明)은 정이의 주체성의 원리에 입각한 사상을 계승하되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조선시대 정제두(鄭齊斗)와 강화학파는 신유학의 주체성과 실심의 정신을 발휘한 하나의 사례이다. 정인보(鄭寅普)는 학맥에 있어 강화학파에 속하지만, 양명학이 실심의 자각과 실천에 있어 더 효과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방법론적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주체성의 원리가 정인보로 하여금 주희 도덕이론(인심도심론)의 골격을 거의 그대로 따르도록 이끌었다는 점이다. 이기적인 욕구(자사심)를 옳고 마땅한 것을 자각한 마음(실심)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심(감각욕구)과 도심(도덕심)의 갈등상황에서 도심을 선택하여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받도록 제어하라는 주희의 견해와 일치한다. 이 같은 윤리학은 행위의 내적 동기나 의무감을 중시하는 입장으로서, 사실상 주희와 왕양명에 있어서도 근본적 차이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이점에서 근현대 한국학을 유교전통과의 단절이 아닌 연속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의 파리장서운동과 그 사상적 배경 - 화서학파(華西學派)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 (Kim Bok-han's Petition Movement to Paris Peace Conference and Its Idealogical Background)

  • 박성순
    • 동양고전연구
    • /
    • 제69호
    • /
    • pp.481-507
    • /
    • 2017
  • 파리장서운동은 1919년 3월에 곽종석(郭鍾錫) 등 유림 137명이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요청한 독립청원운동이다. 김복한(金福漢)은 호서본 작성의 모든 과정을 주도하였다. 여러 판본들을 비교해 보면 호서본은 영남본에 비해 좀더 보수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호서유림들의 보수적 입장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서본의 보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파리장서운동을 기획 실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김복한의 능동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본고에서 해명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이 능동적인 입장에서 파리장서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규명하는 일이다. 특히 그동안 도외시되었던 유학사상사의 전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김복한의 역사적 위상이 드러나도록 시도하였다. 김복한이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할 때 유림계의 보수세력으로부터 오랑캐와 동사(同事)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김복한의 대국적 태도는 남당학파와 경쟁관계에 있던 화서학파에 대해서, 특히 1903년 '최익현 문제'가 야기된 이후에도 김복한이 최익현에게 보여준 포용적 태도에서부터 두드러져 보였다. 이것이 파리장서운동을 추진할 때의 대승적 태도로 연결되었다. 이는 '사공(事功)'을 중시한 김복한의 역사의식에서 발현된 것이었다.

"그림 같은 풍경"의 재해석 - 병산서원 차경 설계의 수양론(修養論)적 해석 - (Reimagining "A Picturesque Landscape" - The Borrowed Scenery of the Byungsan Neo-Confucian Academy, Korea, and its Heuristic Instrumentality -)

  • 이경근
    • 한국조경학회지
    • /
    • 제50권6호
    • /
    • pp.15-29
    • /
    • 2022
  • 병산서원은 한국 전통 건축과 차경 설계의 자연친화성 또는 비인위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다. 본 연구는 오늘날 병산서원을 수식하는 대표적인 비유인 '그림과 액자'를 중심으로 서원의 차경이 착시와 환영의 풍경을 선사하는 인위적 기법임을 논의하고자 한다. 연구는 다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 오늘날 '그림'과 '액자'는 각기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이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건축적 틀을 일컫는 비유로 사용되며, 이는 자연과 건축의 조화라는 현대 한국인의 기대 심리가 투사된 결과물임을 지적한다. 둘째, 서원을 설계하고 이용하던 조선 중기의 인물들이 차경을 향유한 방식을 추론하기 위해 당대의 시와 회화에 묘사된 풍경과 차경이 선사하는 풍경을 비교하고, 차경을 통한 조망이 동시대의 경관 예술과 마찬가지로 성리학적으로 이념화된 자연의 이미지를 연상하도록 유도함을 밝힌다. 셋째, 이상의 고찰을 바탕으로 차경이 선사하는 '그림'이란 보는 이의 인식이 빚어낸 환영(幻影)이며 차경이라는 '액자'는 이를 촉발하는 인지적 착시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병산서원의 차경을 자연주의적 표상으로 소비하는 시선에서 이탈하여 시대적, 문화적 보기 방식을 유도하는 적극적인 설계 행위로 인식하고, 자연과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오늘날의 시선을 재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화회십육경(河回十六景)"과 "하외낙강상하일대도(河隈洛江上下一帶圖)"를 통해 본 하회16경의 경관상 (A Study on the Landscape Characteristics of 16 Sceneries of Hahoe Village, Represented in "Hahoe 16 Sceneries" and "Picture Describing Hahwae Village")

  • 노재현;이현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1권1호
    • /
    • pp.48-58
    • /
    • 2013
  • '하회십육경(河回十六景)'과 '하외낙강상하일대도'의 해석과 분석을 통해 하회16경(시)의 형식과 구조 변화 상징성을 밝힌 본 연구의 결과는 아래와 같다. 하회16경은 소상팔경 유사형의 집경(集景)으로, 표제어 결속의 일관성은 발견되지 않지만, 내적으로는 산과 강의 수직 수평적 대비효과 및 자연과 인간의 삶이라는 대비적 풍경 이미지가 강하며, 강, 다리, 계류, 그리고 눈과 비는 모두 '물(水)'이라는 원초적 생명요소를 통한 의미결속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회16경에는 다채로운 변동요인과 감각 의존성을 바탕으로, 강변 고유의 풍토성을 담은 경물과 현상이 겸암 옥연정사를 조망처로 반경 200m에서 3km의 조망권역에 펼쳐져 있다. 겸암 옥연정사의 조망각은 대칭적으로 마주하여 상호 관입하고 있는 반면, 원지 옥연정사에서는 부용대의 영향으로 시야각이 상호 교차하지 못한 채 독립적인 조망권을 형성하고 있음을 볼 때, 하회16경은 겸암 옥연 2개 정사(精舍)뿐만 아니라 원지 빈연정사의 조망점 보완을 통해 완결된 경관임이 확인되었다. 한편, "하외낙강상하일대도" 에서는 하회16경의 조망처인 겸암 옥연 빈연 원지정사가 뚜렷이 명시되고 있을 뿐 아니라, 화산(花山) 입암(立巖) 마암(馬巖) 송림(松林) 수봉(秀峯) 잔도(棧道) 홍교(虹橋) 반기(盤磯) 적벽(赤壁) 횡주(橫舟) 수림(水林) 평사(平沙) 등 하회16경 중 12개 경이 한정된 조망구도 및 화폭 크기에도 불구하고 상세히 묘사되고 있음을 볼 때 하외도는 '하회16경'을 의식해 표현된 실경산수화적 와유물(臥遊物)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마을을 에워싸듯 열식된 띠숲은 방사림으로 추정되며, 수목의 표현법을 비교할 때 남쪽 띠숲은 현 만송정 송림과는 다른 활엽수림으로 추론된다. 하회16경에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연결시키고, 나아가 인간의 삶이 자연에 우선한다는 성리철학적 경향이 읽혀지는데, 이는 하회16경시의 저작자 류원지의 아호 '졸재(拙齋)'에서 보듯이 소박한 일상을 바탕으로 올곧은 선비가 추구하고자 한 도학적 세계에 대한 졸박미(拙撲美)를 기본 정서로 하고 있다. 하회16경시에 드러난 경관상은 이 지역 유자(儒者)들이 부용대와 하회마을 정사(精舍)를 중심으로 한 관념적 사고를 경물과 현상에 의탁해 표현한 도학적 세계관이 반영된 하회마을의 대표적 풍경이다.

조선 전기 도가사상 연구 - 「심기리편(心氣理篇)」과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도가'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aoism Theory in the Former Half of Joseon Dynasty)

  • 김윤경
    • 한국철학논집
    • /
    • 제43호
    • /
    • pp.9-32
    • /
    • 2014
  • 조선 도가사상 연구는 지금까지 조선후기를 중심으로 다루어져 왔다. 조선시대 5권의 "노자" 주석서와 2권의 "장자" 주석서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조선전기의 도가사상 전개를 고찰하기 위한 1차 작업으로 개국초기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정도전의 "심기리편"과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실록"에서 임란 이전까지 200여년 간의 사료 안에서 도가 사상에 대한 언급을 발췌하고 이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연구결과를 도출하였다. 정도전과 권근은 도가를 '도덕이 없는 양생술의 추구'로 비판하였다. 도교와 불교의 비판 위에서 성리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에서 도가는 세 가지 단계로 변용(變容)된다. 첫째는 '노자'를 장생의 사술, 신선의 방술, 도교의 최고 신으로 환치시켜 이단시하고 배척하는 단계이다. 둘째는 1차적인 배척의 논의에서 벗어나 도가사상의 핵심으로서의 "노자"와 '신선술' 및 기복신앙의 대상이 되는 '도교 신'인 '노자'와 분리해서 보려는 단계이다. 셋째 3차 논의는 "노자"의 정치술과 처세술에 대한 존숭으로 드러난다. 즉 조선 전기 도가 사상은 건국초기에서 15~16세기에 이르기까지 초기의 강력한 벽도불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전개된다. 이러한 점은 조선 전기의 도가를 단순히 성리학의 도통관에 따른 이단논리로 해석할 수 없는 지점이다. 건국 초기의 벽이단론에서 도가에 대한 온정적 태도를 취하게 되고, 유학과 사상적으로 융합되는 처세술과 정치술을 수용하는 변화를 보인다. 즉 '노자(老子)'는 비도덕적인 장생불사(長生不死)의 탐욕을 가진 이단(異端)에서 유교국가의 처세술과 정치술로 수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용은 조선 후기로 가면 도가서(道家書)에 대한 적극적 해석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학문(學問) 개념의 근대적 변환 - '격치(格致)', '궁리(窮理)' 개념을 중심으로 - (How has 'Hakmun'(學問, learning) become converted into a modern concept? focused on 'gyeogchi'(格致) and 'gungni'(窮理))

  • 이행훈
    • 동양고전연구
    • /
    • 제37호
    • /
    • pp.377-410
    • /
    • 2009
  • 근대 이전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지적 체계와 학문은 인간과 자연을 통일체적으로 사유하는 가운데 인간의 본성을 발현함으로써 사회적 실천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특히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 송대 신유학은 '이기(理氣)' 개념으로 인간과 사회, 우주와 자연을 일통의 유기적 구조로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철학체계 내에서 인간학과 자연학은 통합되어 있었다. 동서의 충돌과 교류는 동아시아의 지적 체계에 균열을 일으켰고, 전통적 학문 개념의 전이와 변용을 가져왔다. 개화와 진보의 욕망을 내면화하고, 동도(東道)와 서기(西器), 신학(新學)과 구학(舊學) 논쟁을 거치면서 유학은 비판과 쇄신, 부정과 폐기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 본성의 자각과 도덕 실천의 이상(理想)은 문명개화와 근대 국가 설립의 제한적 수단으로만 논의될 뿐 더 이상 학문의 본령으로서 위상을 갖지 못했다. 서구 근대의 광휘는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를 규준했던 학문의 내용과 방법은 물론 목적까지 변화시켰다. 근대 계몽기 서구 문명 수용과정에서 한자(어)로 구성된 전통 학술 용어나 개념은 외래 학문을 번역, 소개하는데 여전히 유효한 기제였다. '격치(格致)'와 '궁리(窮理)'는 자주 인용되었는데, 인간과 우주 만물에 내재한 본성을 탐구하는 전통적 의미는 점차 퇴색되고, '격치학(格致學)', '궁리학(窮理學)' 등 개별 학문을 지칭하는 명사로 변환되었으며, 때때로 철학(philosophy), 과학(science) 등 상이한 학문 영역을 넘나들며 사용되었다. 학문 개념과 지적 체계의 이러한 변동은 외래 학문의 수용 양상을 보여주는 한편 동아시아 전통 학문이 지닌 특성을 드러낸다. 이제 가치와 사실의 분리, 인간학과 자연학의 분리, 학문의 분과화를 진행해 온 근대학문은 또 하나의 전통이 되었고, 계승과 극복의 양가적 대상이다.

진단의 내단이론과 삼교회통론 (The Theory of Chen tuan's Internal Alchemy and Intermixture of Taoism, Buddhism and Neo-Confucianism)

  • 김경수
    • 한국철학논집
    • /
    • 제31호
    • /
    • pp.53-86
    • /
    • 2011
  • 진단은 도교 내단이론의 정립자이며, 북송 이래 사상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다른 종교의 장점을 자신의 이론체계에 받아들이고 있음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는 도교 수련과정의 논리적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유교의 역학(易學)을 도교 비전(秘傳)의 역학으로 대치하고, 육신과 정신의 이중구조를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선불교의 마음수행법을 자신의 체계 속으로 끌어들였다. 진단의 내단이론은 정기신(精氣神)의 개념에 기반하여 '연정화기' '연기화신' '연신환허'의 단계로 수련하는 도식이다. 진단이 말하는 내단수련이란, '도교 방식으로 해석한 "주역"의 근본원리에 바탕을 두고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선(禪)의 수행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고요함의 끝에서 온갖 변화에 신묘하게 통할 수 있고 지혜가 충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미묘한 정(精)의 흐름을 간취하여 이것을 기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 복귀무극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그는 "무극도"를 그려서 표현했다. 동양철학은 인간을 '현상적 존재'와 '본원적 존재'로 구분한다. 이러한 '존재 규정'으로부터 수도론의 논리가 성립된다. '자아' 또는 '자기'라는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현상적 존재'로부터 '본원적 존재'로의 회귀 내지는 도약 방법이 결정된다. 도교 내단이론의 정립자라 할 수 있는 진단은 이런 측면에서 독특한 내단수련론과 삼교회통론의 체계를 확립한 인물이다. 오늘날은 '자아상실의 시대' 또는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생기는 '난치병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자아의 회복과 건강한 삶을 위해서 몸과 마음을 연결짓는 진단의 수련론에 대한 검토와, 여기에 기초한 새로운 수련법의 모색은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