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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 수마노탑 탑지석(塔誌石) 연구 (A Study on the Memorial stone of the Sumanotap in Jeongamsa Temple)

  • 손신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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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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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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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수마노탑 탑지석은 1석부터 5석까지 차례로 1719년, 1773년, 1874년, 1653년, 1874년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연호(年號)와 간지(干支)를 분석해본 결과, 제2석과 제4석 모두 1713년의 기록임을 알게 되었다. 동시기의 기록이 둘로 나눠진 것은, 중수대상을 탑신과 찰간으로 나누어 각기 소임을 맡은 이와 시주자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수마노탑 탑지석 5매에는 모두 중수불사의 역할을 맡은 승려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일반인 시주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중 법호법명(法號法名)으로 기록된 제3석의 승려들 이름을 19세기 후반 불사 기록과 비교하여 12명의 동명(同名)을 파악하였다. 이들 대부분이 수마노탑 중수불사 전후로 강원도 서울 경상북도 사불산 일대와 경남 해인사 등지에서 활약했다는 사실은, 당대 불사의 경향과 수마노탑의 위상을 시사하고 있다. 1874년 탑 내에 봉안된 금은합 시주자인 김좌근은 청신녀양씨와 함께 기록되어, 수마노탑 시주자 중 유일하게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실재는 그의 애첩, 나합이라 불리던 나주 출신 기생 양씨가 그의 사망 이후 시주한 것이다. 영의정을 지낸 김좌근의 애첩이던 양씨가 왕과 왕비 왕대비 대비 부대부인 등이 대거 참여한 불사에 개인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1874년 수마노탑중수는 원자 즉 순종의 탄생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 왕실에서 사적(私的)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할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탑지석에 기록된 10여 곳의 사찰 중 빈번히 등장하는 곳은 경북 봉화의 각화사와 강원도 영월 보덕사이다. 각화사는 사고사찰(史庫寺刹)로서 조정의 관리대상이었고, 보덕사는 단종 능의 원찰로서 왕실에서 돌보는 곳이었다. 따라서 이 두 사찰이 수마노탑 중수 불사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이 두 사찰의 조력으로 수마노탑이 중수되었다는 점과 당시 수마노탑의 위상이 사고사찰이나 능침수호사찰 못지 않았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