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Mun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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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간의대 천문관측기기 개발자 (MANUFACTURERS OF ASTRONOMICAL INSTRUMENTS INVENTED DURING THE GANUI-DAE PROJECT IN JOSEON DYNASTY)

  • 민병희;이민수;최고은;이기원
    • 천문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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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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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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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We study the manufacturers of the astronomical instruments invented as part of the so-called Ganui-Dae (astronomical platform) project in the reign of King Sejong (1418-1450) of the Joseon dynasty. The main purpose of this project was to compile the Chiljeongsan-Naepyeon, a Korean calendar, that lasted for 5.5 years from 1432 to 1438. Through this project, a total of 17 astronomical instruments such as the armillary sphere, celestial globe, and auto-striking clepsydra were developed. It is generally known that most of them were manufactured by Lee Cheon (李蕆, 1376-1451) and Jang Yeong-Sil (蔣英實, fl. 1423-1442). In this study, we investigate the accounts of the Veritable Records of King Sejong, Munjong, and Sejo, focusing on the inscription written out to memorize the completion of the Ganui-Dae project. We found that at least 12 persons took part in manufacturing the astronomical instruments of the Ganui-Dae project. Lee Cheon was involved in the production of four instruments, while Jang Yeong-Sil was involved in two; therefore, it seems that the achievement of Jang Yeong-Sil was overestimated. We also found that Jeong Cho (鄭招, ?-1434) was a scientist and Lee Cheon was an engineer in the early phase of the Ganui-Dae project, while King Sejong and Yi Sun-Ji (李純之, 1406-1465) played major role in the late phase. According to our study, King Sejong and Yi Sun-Ji were involved in the production of at least seven and five instruments, respectively. In conclusion, we believe that this study will be helpful to understand the practical manufacturers of the astronomical instruments invented during the Ganui-Dae project in the Joseon dynasty.

경주읍성 성곽시설의 원형고증에 관한 연구 (A Study on Historical Research of Archetype of Kyeong Ju Castle)

  • 김홍곤;김영모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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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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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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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에서는 경주읍성의 성벽과 성곽시설을 대상으로 그 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고 구체적인 규모와 구조를 밝히기 위하여 원형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경주읍성의 위치와 규모를 고증하기 위하여 일제강점기 지적도 현재 지적도 현재 수지형도 발굴조사 유구 현황도를 도면중첩(over-lay) 한 결과 정확한 성곽유적의 위치와 규모를 확증할 수 있었다. 둘째, 문헌적 고증과 근현대의 연구사료 일제강점기의 유적조사 기록 보수정비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 고증한 결과 체성과 치의 규모 및 구조를 고증할 수 있었다. 셋째, 조선시대의 여장규식과 관련 문헌기록을 통하여 여장의 원형을 고증한 결과 문종원년(1451)의 초기 경주읍성의 여장과 임진란 전후(16세기 경)의 경주읍성 여장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었다. 넷째, 성곽 유적 대부분이 멸실된 상태이나 경주읍성의 문헌적 고증과 근현대 연구 사료(발굴조사 보수 수리기록 현장조사)의 조사내용을 토대로 규모를 산정하고 구조를 추정하였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향후 복원정비의 기초자료로서 개별 유적의 원형복원도를 작성 제시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五禮)」에 기록된 배표의 절차와 복식 연구 (A Study on the Bapyo Ritual Procedures and Costumes Recorded in the Five rituals of Sejong-Silok)

  • 김진홍;조우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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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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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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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배표의(拜表儀)는 황제에게 보내는 외교문서인 표문(表文)에 치르던 의례로, 세종 대에 행하여진 배표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직책과 그에 따른 복식을 살펴보았다. 의례 주체자인 왕은 최고 법복인 면복을 착용하였고, 면복은 구류평천관에 구장복으로 구성된다. 왕세자와 종친, 문무백관은 조복인 양관과 적라의를 착용하였다. 왕세자의 조복은 세종 10년에 오량관에서 육량관으로 바뀌었고, 문종 즉위년에 왕세자의 면복을 받아서 단종 이후에는 팔류평천관과 칠장곤복을 착용하였다. 사행원인 사자와 종사관은 상복을 착용하였다. 사자가 착용한 상복은 사모에 흑단령, 서대, 협금화이고, 종사관이 착용한 상복은 사모에 흑단령, 흑각대, 흑피화이다. 왕의 측근에서 시종하는 별감은 공복과 상복을 착용하였다. 공복은 자건에 청단령과 흑피화, 상복은 주황초립과 직령에 조아, 흑피화로 구성되었다. 의장군은 황의장과 왕의 의장이 진열되었고, 산과 개, 수정장, 금월부를 들고 있는 자는 자건에 청의를, 전도황기는 피모자에 청의를 착용하였다. 선과 금은횡과·금은입과·금은장도는 피모자에 홍의를 착용하였다. 시위군은 갑옷과 투구에 검 또는 궁시를 갖추어 착용하였다. 공인 중 악사의 복식은 복두에 비공복, 금동혁대, 비백대대, 오피리로 구성되었고, 악생은 개책에 비수란삼, 협고, 말대, 말, 오피리로 구성되었다. 이상의 결과로 세종 대에 의례복식이 의제화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표의에 참여하는 왕 이하 왕세자, 문무백관, 사자, 별감, 시위군, 공인 모두 각 품계에 맞는 최고 등급의 예복을 착용하였다. 세종은 유교를 바탕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거듭된 논의를 거쳐 각 의례와 그에 따른 복식을 정비하였고, 배표의 복식도 직책별로 체계적으로 갖추어졌다. 세종 대에 정리된 의례복식은 예전에 규정화되어 조선 후기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

홍성 홍주읍성 성벽의 보존상태 및 축성유형과 안정성 고찰 (Conservation Status, Construction Type and Stability Considerations for Fortress Wall in Hongjuupseong (Town Wall) of Hongseong, Korea)

  • 박준형;이찬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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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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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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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홍주읍성의 초축 연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문종 1년 축조 이후 수십 차례에 걸친 보수와 정비를 거쳤으며, 일제강점기에 일부 성벽이 훼철되면서 오늘날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 홍성은 지구조적으로 지진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역사지진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78년과 1979년에 각각 규모 5.0과 4.0의 지진이 발생하여 성벽 일부가 붕괴된 바가 있다. 2010년에는 집중강우에 의해 성벽이 붕괴되기도 하였다. 홍주읍성 성벽은 구간에 따라 다양한 구성암종, 치석형태, 축조방식, 채움재료 등이 적용되었다. 또한 보수과정에서 기존의 성벽을 훼철하지 않고 재사용 가능한 부분을 그대로 사용하여 시대에 따른 특성이 성벽에 수직적으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홍주읍성의 유형분류는 성벽의 수직적 분포를 기준으로 나누었으며, 축성유형의 수직적 개수에 따라 유형 I, 유형 II, 유형 III으로 구분하였다. 성벽에 사용된 암석은 주로 조립질화강암이나 성벽유형에 따라 암종의 차이가 명확하다. 성벽 하부는 자연석 내지 할석을 사용하여 다양한 암종이 혼재되어 나타나나, 중앙부의 치석한 암석은 대부분 조립질 화강암이다. 보수석재는 담홍색화강암이나 수구지와 조양문의 구성 암종은 성벽과 상이하다. 홍주읍성의 대표적인 손상유형은 배부름, 성돌의 돌출, 기초부 성돌의 유실, 부재의 이격, 균열 및 단열, 기초불안정 및 구조적 변형이다. 성벽에 발생하는 거동의 양과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수동 간이계측 및 광파측정을 수행하였다. 수동계측 결과, 성벽의 구조적 변형이 진행되는 구간을 분류할 수 있다. 광파측정 자료와 비교한 결과, 두 모니터링 방법은 상호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장기적인 보존관리 방안으로 두 계측방법은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홍주읍성의 안정화를 위해 계측시스템은 유지, 관리 및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남문지 일대의 계측결과를 종합할 때, 붕괴된 성벽 또한 강우에 의한 거동변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오랜 기간 변위가 누적된 상태에서 집중강우에 의해 발생한 이상거동에 따라 임계점을 초과하여 붕괴에 이르렀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홍주읍성 성벽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연구결과를 토대로 0등급부터 5등급까지 총 6단계의 관리등급을 제안하였다. 이 관리등급을 적용한 결과, 1등급 501.9m (61.10%), 2등급 29.5m (3.77%), 3등급 10.4m (1.33%), 4등급 241.2m (30.80%)로 나타났다. 4등급 구간은 홍화문 서쪽과 치성의 동쪽에 밀집된 양상으로 나타나며, 상시 모니터링 수행을 통해 위험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6단계로 분류한 관리등급은 전체적인 안정성 검토를 통해 수리와 보수가 수행된다면 다시 0등급으로 회귀하는 윤회적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기적인 정밀 모니터링을 통한 관리등급의 평가가 필요하다.